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78
제1반군사령부로부터 2킬로미터 떨어진 지역.
어두운 숲속을 가올드는 걷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풍경이 담기지 않았다.
20년 전,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자신과는 너무나 달라서, 싫다가도 호기심에 저절로 눈이 돌아가게 되는 그런 여자.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마음은 실체가 없고, 그렇기에 어디로 흐를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가올드는 후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여자에게 전부를 던져 버려서, 이제 남은 건 지옥뿐인 이 현실이 지겹도록 싫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줘 버린 마음을 잘라 버릴 수도, 다시 받아 올 수도 없어서, 그렇게 이 지옥 속을 나아가 한적한 공터의 중앙에 도착한 것이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함 가운데 가올드는 뻥 뚫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하늘.
저 별 속에 미로는 없다. 미로는 지금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과 이어진 어느 곳에서 살아 있다.
쿵쿵. 쿵쿵.
심장이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가올드는 깊은 숲속에 말을 던졌다.
“그만 나오지. 혼자 왔으니 시간 끌 필요 없잖아?”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숲의 어둠 속에서 21명의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토르미아 마법협회 케이지 B팀.
한때는 모두 가올드의 부하였지만 얼굴을 아는 자는 드물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 무력을 발휘하는지는 전 마법협회장으로서 똑똑히 알고 있었다.
물론 개인의 무력으로 가올드를 넘을 수 있는 자는 1명도 없지만 가위가 주먹을 이길 수 없듯이, 바다가 바람을 이길 수 없듯이, 개성적인 마법의 상성은 있는 법.
또한 자신을 제거하러 파견된 팀이라면 규정외식자를 섞지 않았을 리가 없다.
팀장 로즈가 전면으로 걸어 나왔다.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농밀한 살기가 그녀의 얼굴에 아롱거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었습니까?”
공인 4급의 향기 마법사 로즈. 협회장이었을 때부터 익히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크크, 눈치까지 갈 필요 있나? 어차피 날 노리고 있는 거라면 말이야.”
가올드가 혼자서 온 이유이기도 했다.
21명의 목적은 가올드의 제거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몇 명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일념으로 들어올 터.
만약 가올드가 혼자가 아니라면 그들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고 뒤를 칠 기회만 보고 있을 것이다.
20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반드시 끝내고 나아가야 하는 일이었다.
“포위해.”
로즈의 말이 떨어지자 20명의 인원이 네트처럼 얽히며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가올드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 로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움을 피하고 싶다든지, 동료를 죽이기 싫다든지 하는 감정 따위는 없다.
다만 케이지 B팀은 가올드를 알고 있고 가올드는 케이지 B팀을 모른다.
설령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각기 다른 20명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전술 전략의 변화는 거의 무한대.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스스스스.
풀이 스치는 소리마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뒤편의 몇 명이 움직였다.
육식중독자 베니피스가 고기 칼을 꺼내 들고 좌우의 동료를 살폈다.
곤충 마법의 빔이 고개를 끄덕이고, 저주 마법의 리드가 전지와 전능을 결합시켰다.
토르미아 최고의 완력을 보유한 마법사를 상대로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오래 걸리지는 않겠군.’
“어이, 후배들.”
가올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21명이 동시에 몸을 움찔거렸다.
“무슨 놈의 각오가 이리 길어? 죽으러 찾아온 놈들이.”
마법사들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마치 21개의 인이 타오르듯, 그들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사즉사. 삶을 포기한 자들이 남은 수명을 태우면서 의지를 불사르는 의식이었다.
***
가올드가 빠진 자리에서 세인을 포함한 9명은 사령부 뒤편의 공터에 횃불을 피워 두고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세인은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풀려 있었다.
아마도 20년 전, 아직 블랙 라인의 잔혹한 마법사로 이름을 알리기 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인의 심판에 대해서…….”
세인이 입을 열었다.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지. 하지만 미로와 나, 가올드에 얽힌 이야기는 오직 우리 세 사람밖에 모른다.”
일행은 눈을 빛내며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세인의 입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속에서 일어난 아주 작고 개인적인 비밀을 털어놓는 것에 대한 부담이었다.
“나는 미로를 사랑했다.”
기습처럼 내뱉은 말에 아무도 반박을 못 하자 세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올드도 미로를 사랑했지.”
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가올드처럼.
“그래,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것만이 전부였다.”
이것은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여자 그리고…….”
오직 신에게 순종하며 살기를 바랐던 한 남자가 신을 증오하며, 저주하며, 조롱하며 지옥으로 뛰어들었던 끔찍한 슬픔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착해 빠진 얼간이가,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세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토르미아 요르 교단.
요르 교는 인류가 암흑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단 한차례의 전쟁도 치르지 않고 오직 자애만을 베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 세계적인 종교다.
그들 사이에서는 직위조차 존재하지 않고, 평민과 귀족의 신분도 따지지 않는다.
교회에는 오직 교단의 교리를 설파하는 ‘요라’만이 거주하는데, 어떤 경우에도 돈을 받지 않고 오직 신자들의 봉사 활동과 기부하는 물건들로만 생활을 꾸려 가는 청빈 주의로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요르 신이시여.’
햇볕이 내리쬐는 교단 아래에 무릎을 꿇은 청년은 요르의 상징인 작은 원에 십자가가 들어간 펜던트를 손에 쥐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오늘도 세상의 모든 불행한 자들이 행복을 찾기를 바라옵니다. 저를 당신의 종으로 삼으소서. 저에게 악조차 사랑할 용기를 주소서.’
얼굴은 하얗고 피부는 아이처럼 깨끗한 청년.
오직 순수함만으로 가득할 것 같은 선한 인상의 그가 바로 20년 전의 가올드였다.
“졸업반 진급 감사 기도라도 올리는 거니?”
가올드는 기도를 끝내고 눈을 떴다.
감동에 젖은 그의 눈가에는 살며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요라님.”
쑥스럽게 얼굴을 붉힌 가올드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부터 졸업반 수업이 시작되는구나.”
미케아 가올드.
요르 신자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착한 아이다.
그런 그가 마법학교에 입학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마법은 무력이고 무력은 폭력을 부른다. 하지만 가올드는 그렇기에 마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신성과 마법은 상통하는 면이 있음에도 마법사들은 신을 부정한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마법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가올드는 알페아스 마법학교로 향했다.
갖은 노력을 통해 겨우 오르게 된 졸업반.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지만 끈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였다.
‘요르 신이시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고급반 아이들의 입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공원을 산책하던 가올드는 가장 마주치기 싫은 동기를 발견했다.
클래스 세븐에서부터 앙숙인 세인이었다.
그래도 모른 체할 수는 없었기에 가올드는 악수를 청했다.
“오늘부터 진정한 경쟁이군. 열심히 해 보자.”
세인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내가 왜 너랑 악수를 해야 하지? 나랑 악수를 하려면 네가 믿는 신을 내 앞에 데려와.”
기분이 팍 상한 가올드가 언성을 높였다.
“나는 내 생각을 강요한 적 없어. 왜 항상 시비야? 네 말버릇은 정말이지…….”
그렇게 지긋지긋한 논쟁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0분 정도가 지날 무렵.
“어이, 거기 너희 둘!”
멀리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세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드리아스 미로.
현재 알페아스 마법학교에서 가장 주목받는 졸업반 학생이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실험실을 불태우는 바람에 1년 정학을 당했지만 실력만큼은 이미 타국에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
“안 들려? 이쪽으로 좀 와 봐.”
두 사람이 다가가자 미로는 실험 재료가 담긴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후우, 이거 진짜 무겁네. 너희들 신입생이지? 이거 좀 옮겨, 내 실험실로.”
세인이 고개를 치켜들고 말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졸업반부터 선배 개념은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야…… 너희가 한심하게 정력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싸울 힘 아껴서 좀 도와주면 좋잖아?”
말이야 옳은 말이었기에 가올드가 흔쾌히 나섰다.
“그러네. 그럼 내가…….”
“기다려. 난 도와주지 않을 거야.”
“알았어. 하지만 난 도와줄 거야.”
“아니, 난 네가 도와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어. 우리의 논쟁이 한심하다고?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의견의 충돌에서 튀어나온 파편이야.”
미로가 인상을 찡그렸다.
“거 되게 딱딱하게 구네. 너, 성격 원래 이러니?”
가올드가 통쾌하게 웃었다.
“하하! 그게, 이 녀석은…….”
“세인이다. 졸업반이라도 이름은 들어 봤겠지.”
세인이 말을 끊으며 자신을 소개하자 미로도 그제야 놀란 듯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아, 네가 세인이야? 그 서번트?”
세인은 그녀가 자신을 아는 게 당연하다는 듯 표정조차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단한 실력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온 이상 1등은 내 차지야.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미로는 세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 냉혈 인간이라며? 정말로 흥분 같은 거 안 하는 거야?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흥분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통제하는 거다.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냉철함.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
“흐음, 못 믿겠는데? 인간이라면 당연히 감정이 있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야지.”
‘마법사가 감정을 입에 담다니. 소문이 과장된 것뿐인가?’
세인은 실망감을 미뤄 두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렇다면 시험해 보는 게 어때? 날 조금이라도 화나게 한다면 이 짐을 들어 주지.”
“어? 정말? 좋아, 그럼. 음…….”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눈을 굴리던 미로가 손으로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
“정말로 통제할 수 있는 거지?”
“물론이다. 서번트는……”
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로가 주저앉았다. 그리고 세인의 바지를 붙잡더니 팬티째로 끌어내렸다.
“…….”
세인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가올드의 심정도 정상은 아니었다.
“미, 미쳤어…….”
미로는 눈앞에 있는 것을 빤히 들여다보며 엄지와 검지로 길이를 재는 시늉을 했다.
“흐음, 이렇게 생겼구나.”
미로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어때? 이래도 감정의 동요가 없어?”
“다, 당연하지. 나는 절대로…….”
세인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지만 미로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일어났다.
“그래? 진짜 대단하다. 이런 사람이 정말로 있구나.”
그러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쳤다.
“맞다! 파스카 뿌리! 그걸 빼먹었네!”
미로가 가올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름이 뭐야?”
“가, 가올드인데……요.”
제정신이 아닌 가올드는 습관적으로 존대를 했다.
“짐 좀 실험실에 옮겨 줘. 위험한 물건이니까 조심히 운반해야 돼. 부탁할게.”
“잠깐! 실험실이 어디인지……!”
미로는 말을 듣지도 않고 공원 밖으로 달려갔다.
가올드는 입맛을 다시며 세인을 돌아보았다.
앙숙이긴 하지만 같은 남자로서 그가 어떤 심정일지는 충분히 동정이 갔다.
“야, 괜찮냐?”
세인은 천천히 바지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가올드는 안쓰럽게 혀를 찼다.
‘어떻게 팬티를 벗기지? 진짜 이상한 여자네.’
그것이 미로에 대한 가올드의 첫인상이었다.
변화의 시작 (6)
번쩍! 10여 명이 동시에 순간 이동을 시전하자 사위가 잠시 낮처럼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