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80
“그러니까…… 나랑 사귀고 싶다는 거야?”
가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열과 열정으로 눈이 이글거렸으나 미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간단히 내뱉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 안 좋아하는데?”
펑!
가올드의 정수리 바깥으로 뜨거운 열기가 폭발하면서 정신이 이탈했다.
그렇게 가올드는 생존 테스트에서 탈락했고, 세인은 그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로 가올드는 체면치레를 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종교적 신념 때문에 탈락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최고의 멍청이가 된 건 사실이야. 만나는 사람마다 웃어 댔지. 사상 최초로 지옥에서 퇴짜 맞은 남자라고 말이야.”
결국 가올드의 순애보는 미로에게 무참히 걷어차였다.
하지만 세인은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변화의 시작 (7)
“잡아!”
케이지 B팀의 남은 18명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육식중독자 베니피스를 죽이고 가올드가 다음으로 노린 것은 군중 제어 계열의 블랙과 조작계 조너 뱅이었다.
어차피 무력으로는 가올드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그들이 노리는 건 비물리적 마법을 통한 변수였고, 가올드는 그 가능성을 착실하게 줄여 나가고 있었다.
‘증폭 마법사…….’
가올드는 언령사 마미를 겨누었다.
초당 수백 발의 에어건이 그녀를 노리는 순간 눈앞에 푸르스름한 장막이 생겨났다.
“크으으윽!”
철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방어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라이더지만 스피릿 존이 붕괴될 정도의 충격이었다.
로즈는 전장을 살폈다.
벌써 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케이지 B팀의 전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면 변수고 뭐고, 가올드를 제거할 확률은 0퍼센트에 수렴한다고 할 수 있었다.
‘도박을 걸어야 해. 이대로는 실패다.’
로즈가 소리쳤다.
“파이널 플랜을 가동한다!”
남은 대원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제부터 죽는 것에 순서는 없다.
금속 마법사 로체가 선두에 서고, 라이더가 방어막을 펼쳤다.
급류 계열의 마법사 몽랑이 수룡의 형태로 물을 변화시켜 가올드를 향해 집어 던졌다.
“어리석은 것들.”
가올드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어떤 공격을 시도해도 에어 프레스 한 방에 모든 것이 땅으로 꺼져 버렸다.
그때 가올드의 몸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블랙과 함께 또 한 명의 군중 제어 기술자인 화이트의 마법 몽란이었다.
동생의 죽음 앞에서 그는 이미 살기를 포기했다. 복수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넌 죽는다.’
오직 그것만을 위한 마법.
화이트의 정신이 몽란의 꽃 속으로 침투하며 가올드의 정신을 직접 타격했다.
사망한 화이트가 쓰러지고, 사경을 초월한 정신이 가올드를 움츠러들게 했다.
“크으으으!”
가올드의 극기가 열리면서 대초열지옥이 공간을 휘감았다.
아귀의 비명 소리에 누구도 놀라지는 않았으나 화이트의 몽란은 시커먼 재가 되어 지옥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하아, 하찮은 내 인생…….’
염화의 아로엘라는 사상 초유의 불꽃을 양손에 태우며 가올드를 향해 돌진했다.
‘멋진 사랑도 못 해 보고 말이야.’
돈 주고 몸 주고 마음까지 다 줬지만 결국 남자들은 다 떠나가 버렸다.
‘그래도…… 뜨겁기는 했잖아?’
헬파이어 인피니티!
대초열지옥 속에 폭염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동시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가올드가 에어 프레스로 불꽃을 짓누르며 달려들었다.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남자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아로엘라는 미소 지었다.
예리한 바람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그녀의 얼굴이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가올드는 웃고 있는 아로엘라를 향해 마주 웃어 주었다.
‘좋은 눈이군. 멋진 마법사다.’
진심이 전해진 것인지, 멀어지는 아로엘라가 씩 하고 해맑게 웃었다.
얼굴 없는 그녀의 몸이 저절로 가올드를 향해 돌진해 폭발했다.
섭씨 6천 도에 달하는 거대한 폭발조차도 가올드는 대기압으로 짓눌러 버렸다.
‘성공이다.’
로즈가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가올드도 느끼고 있었다. 스케일 마법사이자 규정외식자인 모노로스가 가올드의 목 뒤쪽에 스티커를 붙인 것이다.
규정외식-배틀 아레나.
발밑에 직경 1미터짜리의 작은 투기장이 형성되더니 가올드의 몸이 줄어들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스케일 계열이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장난감 속의 미니어처와 같았으나 줄어든 가올드의 입장에서는 화려하고 거대한 투기장이었다.
상대의 스케일을 특정 공간의 비율에 맞게 줄이는 모노로스의 규정외식은 원하는 대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가올드는 투기장을 둘러보며 탈출 방법을 궁리했다.
이 정도로 강제성을 가진 스케일 조율이라면 외부의 힘에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노로스가 멍청이가 아니라면 투기장 내의 물리력이 외부에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했을 리가 없다.
‘시간제한, 혹은 스텝. 그 정도가 아니면 이런 환경은 구현하지 못해.’
“배틀 아레나의 탈출 방법은 스텝이다.”
모두가 투기장 속의 가올드를 내려다보는 가운데 모노로스가 말했다.
“아레나에 등장하는 세 가지 괴수를 물리치면 해제되지.”
타르반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같은 스케일이잖아?”
모노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레나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티커를 통해 스케일을 축소시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모노로스는 옆에 차고 있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거대한 문어가 손에 달라붙어 꿈틀거렸다.
“투기장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생물체는 그대로 투입이 가능하다.”
“……그렇군.”
타르반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모노로스가 문어를 떨어뜨렸다.
가올드는 푸른 하늘로 뒤덮여 있던 허공에 연회색으로 꿈틀대는 거대한 물체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폭토퍼스군.’
지중해 연안에 사는 종으로, 성질이 포악하고 식탐이 어마어마하여 자신의 몸집보다 큰 상어조차도 공격하는 육식성 연체동물.
벌써 이틀을 굶은 폭토퍼스는 가올드를 보자마자 날카로운 침이 달린 다리를 휘둘러 공격했다.
가올드는 대기를 날카롭게 팽창시켜 다리를 잘라 낸 다음 돌진했다.
무지막지한 에어 프레스가 투기장을 짓눌렀으나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가올드뿐이었다.
잠시 뭉클, 구겨지던 폭토퍼스는 별다른 충격을 입지 않은 듯 남은 다리를 휘둘러 댔다.
“크크크, 되지도 않는 장난을……!‘
스케일이 약화되면서 마법의 위력도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 상태.
하지만 가올드는 상태의 저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한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통각 100만 배-에어 프레싱.
쿵!
문어가 납작하게 짓눌리더니 결국 견디지 못하고 폭사되어 터져 나갔다.
온갖 내장이 휘몰아치는 곳에서 가올드는 인상을 구겼다.
헬을 상대로 발휘했던 위력을 고작 문어 따위에게 쓰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나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극심한 통증이 몸을 괴롭혔다.
가올드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케이지 B팀은 아직까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모노로스가 다음 전략을 설명했다.
“이제 알겠지. 천하의 가올드도 스케일이 줄어들면 문어 하나를 상대하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지?”
“두 번째 스텝에서는 이걸 푼다.”
모노로스가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을 펼쳤다. 수백 마리의 귀뚜라미 떼가 바글바글 섞여 있었다.
부팀장 호르킨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투기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형태라면 ‘다수’도 상관없다는 건가?”
“그렇다. 스케일로 위력을 줄이고, 인해전술로 교란시킨다. 마지막은…….”
“내가 하면 되는 거로군.”
타르반이 나섰다.
팀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구사하는 터미네이터.
하지만 모노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들어가려면 스티커가 필요하다. 똑같은 스케일로 줄어든다면 카이저 블래스트도 약화될 수밖에 없어.”
“내가 하겠다.”
또 한 명의 규정외식자, 포르콜이 나섰다.
같은 스케일하에서 가올드를 사망시킬 정도의 위력을 내려면 결국 규정외식이 유일했다.
모노로스가 동의했다. 포르콜의 규정외식이라면 천하의 가올드라도 어찌하지 못할 터였다.
“그럼 시작한다.”
수백 마리의 귀뚜라미가 투기장 안으로 부어졌다. 이어서 모노로스가 포르콜에게 스티커를 붙이자, 스케일이 줄어들면서 그 역시 투기장 안으로 침투했다.
규정외식-판타지스타.
그의 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몇 마리의 귀뚜라미 떼가 부딪치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며 껍질처럼 깨졌다.
노화와 폭발의 등가교환.
그는 1시간의 노화를 대가로 100킬로버스터의 폭발력을 낼 수 있다.
40대 초반처럼 보이는 포르콜이지만 실제 나이는 서른두 살.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수명은 줄어들겠지만 규정외식자란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건 또 뭐야?”
가올드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귀뚜라미 떼를 사정없이 파괴했다.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고 흉측한 물체들이 비산했으나 그의 눈은 오직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이딴 걸로 감추려고 해 봤자…….’
케이지 B팀은 전 마법협회 협회장까지 오른 미케아 가올드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다.
따라서 벌레는 눈속임. 진실은 숫자와 흉물 속에 감추어져 있을 터였다.
규정외식-인생은 짧고 굵게.
휘오오오오!
포르콜은 자신의 몸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노화를 촉진시켰다.
그의 얼굴이 빠르게 늙어 가더니 급기야는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최종적으로는 앙상한 해골이 되어 가올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죽음을 코앞에 둔 그의 정신은 마치 가질 수 없는 젊음을 부러워하는 욕심 많은 늙은이처럼 뒤틀렸고,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키하하하하하! 내가 가올드를 죽이다니!”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릴 듯한 탐욕의 해골 앞에서도 가올드는 태연했다.
아니, 규정외식자가 온 인생을 걸고 발휘하는 뒤틀린 사념에 긴장했다.
통각 100만 배.
가올드가 이를 악물고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포르콜이 가올드를 치받았다.
“젠장!”
케이지 B팀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과 동시에 투기장이 폭발하면서 버섯구름이 일어났다.
스케일을 대폭 축소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었다.
“미친 자식, 얼마나 오래 살려고 했던 거야?”
“규정외식자는 원래 미쳤지. 그나저나…….”
타르반이 어깨를 풀며 다시 접근했다.
스텝이 완료되고 현실로 돌아온 가올드가 포연 속에 서 있었다.
가올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순간의 광경을 믿지 못할 것이다.
상의는 완전히 날아가서 근육질에 상처투성이인 몸이 드러나 있었고, 탈골된 오른쪽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몸 이곳저곳에는 피가 흘러내렸다.
타르반은 진심을 다해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규정외식자가 시전한 생명과의 등가교환을 버틸 수 있는 인간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대단하군요. 솔직히 존경스럽습니다.”
“이제…….”
가올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7명.”
케이지 B팀의 사망자 수였다.
“아뇨, 6명입니다.”
타르반이 말하는 그때 털썩 소리가 났다. 규정외식자 모노로스가 목이 잘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가 폭발을 회피했어도 규정외식의 술자만큼은 멀리까지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폭발 직후에도 정신이 흔들리지 않고 반격을 가할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괴물은 괴물이군.’
“흔들릴 필요 없다.”
로즈가 가올드에게 다가왔다.
“이미 치명상을 입었어. 숫자가 줄었어도 여전히 승기는 우리에게 있다.”
가올드만큼이나 로즈의 눈빛도 굳건했다.
가올드를 죽인다. 그것이 협회에 소속된 마법사로서의 임무.
“그만 포기하시죠. 순순히 오라를 받는다면, 목숨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크크크, 그거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군.”
거짓말이라는 건 가올드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