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85
“확인해 볼 수밖에 없잖아?”
모리악이 일행을 돌아보며 말하자 타르반이 되물었다.
“방법은?”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지.”
“결국 누가 할 것이냐가 문제인가?”
“제가 할게요.”
손을 든 것은 이번에도 통신 마법사 웨이건이었다.
이견은 없었고, 웨이건은 메타게이트를 발동했다.
검은 구체 앞에서 웨이건은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8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죽는다. 감정적으로는 거의 100퍼센트.
“좌표가 변하지 않았으면 바로 돌아올 테니 출발할 준비를 해 주세요.”
그런 작전이었기에 1분의 시간도 촉박했다.
타르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빨리 와라. 딴 데로 새지 말고.”
“하하! 혹시 모르죠.”
웨이건은 귀여운 눈웃음을 지으며 메타게이트로 들어갔다.
그렇게 1분이 흘렀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
대세계전.
미로의 정수리에 작은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머릿속으로 침투하듯 들어갔다.
미로의 미간이 살며시 좁혀졌다.
인간이 만든 마력 제어 장치하고는 차원이 다른 구속력.
게다가 스피릿 존에 들어가기만 해도 폭발이 일어나는 위험한 마법진이었다.
“어째서 죽이지 않지? 이미 차원의 벽은 사라졌을 텐데?”
카리엘은 비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라. 금방 끝날 테니까.”
미로의 시공이 파괴되었어도 앙케 라의 허락이 없이는 천국의 군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증스러운 인간을 멸하려면 결국 독자적인 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
따라서 미로는 아직까지 쓸모가 있었다.
이미 대천사 회의를 소집해 두었다. 8명의 대천사에게서 의견을 끌어낸다면 인간을 멸할 충분한 세력을 확보할 수 있을 터.
거기에 천국을 공격하려는 가올드의 상황까지 겹치면 앙케 라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기대하라고. 화려한 처형식을 준비할 테니까.”
카리엘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천사 회의실로 떠났다.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미로는 딱히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나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최후의 전쟁이 유보되었다는 얘기. 하지만 어째서?’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일단 그녀가 무언가를 깨닫고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가올드가 왔다고?’
그렇다면 세인도 함께일 것이다.
자신의 실수로 가올드에게 끔찍한 비극을 주고 말았지만, 어쨌거나 미로의 시공이 파괴된 이상 그들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나저나…….’
“낑. 낑.”
아리우스가 능력을 구속당한 주인이 안쓰러운 듯 앓는 소리를 하며 얼굴을 비벼 댔다.
미로는 마치 강아지를 다루듯 그의 턱을 쓰다듬으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이 멍청이들은 20년 동안 대체 뭐 한 거야?’
***
제7천 아라보트.
이카엘은 바닥에 앉아 고요히 명상에 잠겼다.
아슈르가 카리엘이 무엇을 하는지 정보를 수집하러 떠났으나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신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라도 카리엘의 눈을 피해 대세계전을 살피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신호와 신호의 간섭을 이용하여 정보를 조립하는 만큼 평소보다는 훨씬 시간이 걸릴 터.
그런 만큼 이카엘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 갔다.
연옥의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정신을 고요히 만드는 그때 머릿속에서 음성이 들렸다.
-이카엘이여.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앙케 라의 목소리였다.
-죄지은 자, 이카엘이 부름을 받습니다.
-대답을 들을 때가 왔다.
-대답이라 하오시면?
앙케 라는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나를 알현하라. 너의 죄를 사하노라.
부릅떠진 그녀의 눈에 은하수가 흐르는 듯 빛이 총명하게 켜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 힘을 구속당한 채 근신하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들뜨거나, 기쁘다는 생각은 없었다.
오직 다시 대천사장의 자리에 올라 흐트러진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카엘은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녀의 몸이 흐릿해지면서, 순식간에 아라보트의 높은 첨탑으로 날아올랐다.
라의 부름 (2)
백색의 공간.
오직 순수한 개념에서 태어난 대천사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대천사 회의실 백경은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잉크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질감이었다.
그곳에서 요철이 발생하며 하나둘씩 대천사들이 등장했다.
바닥에서 완벽한 원형의 테이블이 올라오고, 7명의 대천사들이 내려앉았다.
빛의 날개와 성광체는 백색의 풍경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들은 동등하고, 오직 자기 자신의 주관에 따른 한 가지 의견만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대천사장 이카엘.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오랜만이군. 모두가 모인 게 말이야.”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 말했다.
전자기력을 지배하는 그는 신장 3미터의 늘씬한 몸매, 중성적인 외모의 미남자였다.
“1명이 빠졌어. 이카엘.”
존재의 대천사 메타트론이 말했다.
중력을 지배하는 그는 목소리에마저 빨려 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키는 2미터로 천사치고는 작은 편이지만 어깨는 넓었고 턱은 중후한 사각이었다.
“이카엘은 근신 중이다. 어차피 대천사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어.”
유리엘의 말에 결합의 대천사 메티엘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름다운 넓은 이마를 드러내고 금빛 머릿결을 뒤로 넘긴 그녀는 청순한 외모와 달리 차가운 성격이었고, 눈매 또한 날카로웠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 아닌가? 어떤 의견이 나든 대천사에게 기권은 없다. 7명이서는 무승부가 나지 않아.”
본래 대천사는 이카엘을 포함한 8명. 그리고 대천사 회의에서 의견이 완벽하게 갈릴 시에는 대천사장인 이카엘의 뜻에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게 이카엘은 모든 것을 책임져 왔다.
하지만 7명밖에 없는 지금, 어떤 안건이 나오든 반드시 결판이 난다.
한편으로는 깔끔한 해법이겠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공간이 백경이라는 게 문제였다.
원천 개념에서 탄생한 대천사들이 결정을 지은 안건은 천국을 넘어 연옥, 더 나아가서는 천국과 연결된 모든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아카식 레코드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백경에서 만들어진 사안은 신의 전언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분해의 대천사 사티엘이 말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이카엘이 없이 백경을 가동하는 건 위험해. 누가 책임질 거지?”
천사의 위상 도식으로 봤을 때 카리엘과 유리엘이 형체처럼 나란하듯 사티엘 또한 결합의 대천사 메티엘과 자매처럼 나란했다.
대천사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으나 그녀의 성격은 메티엘보다도 훨씬 잔혹하고 냉철했다.
“내가 책임진다.”
기다리고 있던 카리엘이 말문을 열었다.
“카리엘, 네가? 책임이라는 뜻을 알고 하는 소리겠지?”
대천사 중에서 가장 지성적인 그가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에 나온 의문이었다.
“물론이지. 대소멸을 각오하고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무슨 안건인지 들어는 보지.”
메타트론의 말에 카리엘은 미리 준비한 말을 꺼냈다.
“현재 연옥에 불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라께서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지. 대천사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 물었다.
“이카엘은 알고 있는 것인가?”
카리엘은 구겨지려는 얼굴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예전부터 그랬다.
이카엘. 이카엘.
모두가 이카엘만을 의지하고 따른다.
애초부터 백경은 그녀만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더 이상 우리의 장이 아니야. 의견을 물어야 할 필요는 없어.”
메티엘이 고개를 돌렸다. 살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왔다.
“고작해야 인간들 아닌가? 왜 그렇게 조급하지? 벌레들이 무슨 움직임을 보이든 언제라도 밟아 버리면 그만이야. 라께서 멈춘 일을 우리가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유리엘이 카리엘을 도왔다.
“인간 징벌에 대한 일을 금지시키신 적은 없다. 다만 천사들의 활동을 금지시켰을 뿐이지.”
메타트론이 말했다.
“그게 그거잖아? 어째서 지금이지? 카리엘,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미로의 시공이 사라졌다.”
백경의 공간에 대천사들이 발하는 분노의 바이브레이션이 일렁거렸다.
가장 먼저 성격을 드러낸 건 분해의 대천사 사티엘이었다.
“미로의 시공이, 사라졌다고?”
한낱 인간의 능력 앞에 대천사를 위시한 천국의 군대 모두가 행진을 멈추고 후퇴한 것은 그들 탄생 이후 최초이자 최고의 굴욕.
성광체에 미로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것만으로도 천사의 자존심에 조각조각 금이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확인해 보면 알 일이지. 또한, 현재 미로는 대세계전에 잡혀 있다. 모든 능력을 구속당한 채 말이야.”
끼이이이이이이잉!
6명의 대천사가 동시에 광륜을 퍼트리자 세상을 갈아 버릴 듯한 굉음이 퍼졌다.
어떤 생물체라도 이 소리를 듣고서는 견딜 수 없을 테지만 원탁에 앉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각자의 능력을 통해 확인한 그들은 광륜을 성광체로 되돌렸다.
카리엘의 말은 사실이었고,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 말했다.
“그래서 안건은?”
“우리의 힘을 총동원하여 땅의 나라를 친다.”
“흐음.”
메타트론이 턱을 쓰다듬었다.
요정이나 거인은 별개의 독립부대지만 실상 전력의 70퍼센트는 대천사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대천사의 위상이 너무나 높기에 모두의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려울 뿐.
백경에서 결정이 난다면 그들이 거느리는 천사와 마라만으로도 인간 세상을 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라께서는 천사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그렇기에 백경을 가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앙케 라에게서 나왔지만 원천의 개념. 권속의 율법을 따르지는 않아. 백경의 결정이라면 라께서도 어찌할 수 없겠지.”
대천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카리엘의 말이 옳지만 그들의 정신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달랐다.
“그거, 인간의 말로 하자면 반역이란 거잖아? 상위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뿐 아니었나?”
레이엘의 말에 유리엘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카리엘을 돌아보았다.
무엇이 카리엘을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
“라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대천사로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는 거야.”
“이미르가…….”
탁한 목소리가 백경을 울렸다.
“움직이지 않고 있다.”
모든 대천사들이 1명의 대천사를 돌아보았다.
소멸의 대천사, 파이엘.
대천사 중에서도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그는 인간과 거의 비슷한 1미터 70센티미터의 작은 신장에, 흰색의 로브를 걸치고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아는 존재는 우주를 통틀어 그다지 많지 않지만, 설령 본 자라도 그의 얼굴에 대해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대천사 중에서 가장 늦게 탄생한 파이엘이지만 순서에 의해 서열이 정해지는 건 인간의 방식.
오히려 도식상 증폭의 대천사 이카엘과 정확히 대척점을 이루는 자로, 중간 순위의 대천사들과는 성격의 궤가 다르다고 볼 수 있었다.
메티엘이 물었다.
“이미르의 율법은 전쟁의 선봉장.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결국 이번에도 전쟁은 없다?”
“전쟁이랄 것도 없이, 우리의 승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카리엘은 일개 거인의 존재를 신경 쓰는 대천사들이 못마땅했다.
“흥, 상위 율법이 하위 율법을 신경 쓴다는 게 말이 되나? 어쨌거나 이제 시작하지. 4명 이상이 찬성한다면 인간을 멸한다. 순식간에 연옥을 쓸어버리고 땅의 나라를 파괴하는 거야.”
대천사들은 생각에 잠겼다.
카리엘은 전쟁을 원하지만 어차피 천사에게는 설득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들의 화신은 너무나 뚜렷하고, 미지의 변수에 휘둘릴 만큼 앎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