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9
‘네이드는 왜 그런 사람과 친한 거지?’
마법사의 전쟁사를 재밌게 읽기는 했지만 마법이 꼭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해칠 생각으로 마법을 배운 적은 없어.’
이루키에게 호기심이 동했지만, 이미 친하게 지내기는 글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시로네였다.
***
정말로 근신 처분을 받았는지, 이루키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사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로네는 한편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또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평범한 하루가 지나고, 시로네는 클래스 파이브에서 처음으로 정식 평가를 치렀다.
점수는 평균 41점.
여전히 하위권이었지만 한 달 사이에 전 과목을 10점 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 날 시험 결과를 확인한 학생들이 책상을 정리하고 기지개를 켰다.
“휴우, 당분간은 또 편하게 지낼 수 있겠네. 뭐 좀 사 가지고 연구회로 갈까?”
“좋지.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배고프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연구회로 떠났으나 시로네는 아직 연구회가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 좀 더 해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평균 40점대라니…….’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지식의 척추에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은 순탄했다.
특히 고무적인 부분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지식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식의 네트워크가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야.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고수하자.’
일주일 전에 빌린 스무 권의 책이 어느새 끝나 버렸다는 사실이 용기를 주었다.
“저기, 시로네.”
“응?”
책가방을 챙기는 그에게 여학생이 다가왔다.
강의실 한구석에서는 그녀의 친구들이 흥미진진하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무슨 할 얘기라도 있어?”
“응. 애들하고 상의를 해 봤는데, 혹시 연구회에 가입하지 않을래? 물질이동 마법을 연구하는 중인데, 네가 들어오면 성취도가 높아질 것 같아서. 광자 마법하고도 관련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고.”
“아하.”
시로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진급해서 몇몇 그룹에 제안을 받기는 했지만 적성에 맞는 연구회는 처음이었다.
가입 여부는 100퍼센트 학생 자율이지만, 입회한다고 시간이 낭비되는 경우는 없었다.
학교의 평가 항목은 크게 실기 시험, 이론 시험, 수행평가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 수행평가는 학기와 학기 사이에 자유 주제로 한 가지의 연구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연구회에 가입하면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수행평가를 해결하고 방학 기간에는 고향에 다녀오거나 학교에 남아 미진한 부분을 보강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시로네도 몇몇 연구회의 입회 자격 요건을 손수 찾아본 적이 있다.
학업 성취를 떠나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공부한다는 게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로네는 결국 포기했다.
지식의 척추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어설픈 참가는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당장은 이름값을 보고 제안하지만, 막상 연구를 시작하면 그들의 진도에 맞출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점도 결정에 한몫을 했다.
“어떡하지? 공부하는 분야가 있는데 아직 성과를 못 봐서. 당분간은 거기에 신경을 쓸 생각이야.”
“아, 그렇구나. 그럼 할 수 없지.”
“일부러 제안해 줬는데, 거절해서 미안해.”
“후후, 아니야. 미안할 일이 뭐가 있어? 나중에라도 만약 생각 있으면 얘기해 줘.”
여학생은 오히려 시로네를 배려하며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사실 클래스 파이브 정도만 되어도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물론 이루키 같은 괴짜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강의실을 떠난 여학생 일행이 복도에서 즐겁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좋겠다. 재밌겠다.’
시로네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에게도 리안과 에이미가 있지만, 리안은 학교가 달랐고 에이미는 졸업반이었다.
“어? 시로네, 지금 나가는 거야? 같이 가자.”
“네이드.”
시로네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강의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때면 여지없이 그가 나타나 말벗이 되어 주었으니까.
만인의 친구면 어떠한가.
오늘처럼 마음이 허할 때면 그의 배려가 단비처럼 고마워지는 시로네였다.
함께 교실을 나선 그들은 마법이나 성적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시로네가 좋아하는 주제였고, 네이드는 그런 맥락을 귀신같이 잘 파악했다.
“도서관에도 책이 많지만 연구회에도 전문 서적은 꽤 돌거든. 그러고 보니 아까 너, 연구회 가입 제의받지 않았어? 거기 꽤 준수한 연구회인데, 왜 거절한 거야?”
“아무래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하긴, 너는 이론 성적부터 올려야지. 그래도 부럽다. 나는 그런 의욕도 없는데 말이야.”
시로네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너는 친구가 많으니까 연구회 같은 곳에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라, 내가 말 안 했나? 나 연구회 있어. 이래 봬도 회장이라고.”
“정말?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네.”
생각해 보니 물어본 적도 없었다.
네이드라면 특정 그룹에 소속되는 걸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판인 듯했다.
“어떤 연구회인데?”
“하하! 사실 떠벌리기 부끄러운 연구회라서. 사람도 나 포함해서 달랑 2명밖에 없고.”
“그러면 최소 기준에 못 미치는 거 아니야? 지원금도 나오지 않잖아.”
자율 부서라고 해도 엄연히 조직체였기에 학교에서 요구하는 최소 인원은 3명 이상이었다.
1명은 단수, 2명은 복수, 3명부터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그게…… 작년에 선배님들이 졸업해 버렸거든. 그래서 회장직도 물려받은 거고. 안 그래도 걱정이야.”
“졸업?”
수많은 연구회가 있지만 졸업반 멤버가 속한 연구회는 결코 흔치 않았다.
더군다나 졸업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은 굉장히 뛰어난 선배라는 뜻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시로네가 물었다.
“괜찮으면 구경해도 될까?”
“정말? 넌 연구회에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관심은 쭉 있었어. 하지만 내가 들어가면 민폐가 될지도 모르고, 가입은 신중해야 할 것 같아서.”
“하하하! 무슨 말이야? 연구회라고 해 봤자 그냥 애들끼리 공부하면서 노는 것뿐이야. 부담감 느낄 필요 전혀 없다고.”
“으음, 그런가?”
“사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솔직히 너 다가가기 어려운 면이 있어. 어른스럽다고 해야 하나? 왜, 우리들 또래는 장난도 치고 말실수도 하고 그러잖아. 클래스 파이브에도 개차반은 있지만 대부분 사귀어 둬서 나쁜 애들은 없어. 조금 더 편하게 애들을 대해 봐.”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얘기였다.
생각해 보면 리안이나 에이미의 경우에도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 걸까?’
사실 오젠트 가문에 들어간 이후부터 마음이 편했던 상황은 거의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는 시로네를 빤히 쳐다보던 네이드가 결심한 듯 외쳤다.
“기분이다! 이건 정말 특별한 경우인데, 우리 연구회를 소개시켜 줄게. 대신 시시하다고 놀리면 안 된다?”
“정말? 나야 고맙지.”
“또 그런다. 친구 사이에 고맙고 말고가 어디 있어? 따라와. 깜짝 놀랄 테니까.”
***
네이드가 데려간 곳은 마법학교 중앙 공원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외진 곳이었다.
100여 개에 달하는 정사면체의 건물이 복잡한 구조로 콜로니를 형성하고 있었다.
건물의 재질은 철이었고, 가까이에서 보면 표면에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상식을 파괴하는 건물의 형태와 구조에 시로네는 시작부터 놀란 얼굴이었다.
“여긴 어디야?”
“마법 기재를 모아 두는 창고야. 교보재는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돼. 물론 우리 연구실도.”
연구실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연구회 회장이 신청 서류를 제출하면 학교 측에서 비어 있는 방을 물색하여 내주는 형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창고라니.’
거대한 부지를 자랑하는 학교에서 이런 외진 곳에 연구실을 내주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여기는 대대로 선배님들이 지킨 아지트 같은 곳이야. 사실 우리 연구회, 꽤나 역사가 깊거든. 이곳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싸움이 있었는지 모를 거야.”
“하지만 이건 좀…….”
“하하! 괜찮아. 가장 멋진 건 창고에 엄청나게 많은 재료가 있다는 거야. 뭐든지 만들 수 있지. 아, 이건 비밀이다. 너니까 믿고 말하는 거야.”
“헉! 정말?”
시로네는 꽤나 놀랐다.
학교에서는 평범의 극치인 네이드가 교칙을 어기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따라와. 보여 줄게.”
네이드는 시로네를 이끌고 건물로 들어갔다.
구조가 복잡한 만큼 입출구도 여러 개였고 모든 건물이 연결되어 미로를 헤매는 수준이었다.
“어때, 멋지지? 그렇다고 유심히 관찰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시간 날 때마다 건물 구조를 바꿔 버리거든.”
“구조를 바꾼다고? 그게 가능해?”
“이곳의 정식 이름은 마법 창고 이스타스. 건물 자체가 마법 장치야. 물건을 찾아서 옮기는 것보다 건물을 움직여서 출입구로 보내는 게 훨씬 빠르니까, 적재성과 운반성을 동시에 고려한 공학 설계지. 그래서 학교에 실습이 있는 날이면 구조가 바뀌는 경우가 허다해. 말인즉슨, 무슨 짓을 해도 우리를 찾을 수 없다는 거지.”
마지막 말을 하며 네이드는 킬킬대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아지트라.’
시로네도 가슴이 두근두근한 것을 보면 다른 또래와 똑같은 소년이었다.
“사실 길을 찾는 방법은 간단해. 하지만 너는 아직 회원이 아니라 가르쳐 줄 수 없어. 혹시라도 생각 있으면 말하고. 너라면 대환영이니까.”
실제로 네이드는 20개의 창고를 지나는 복잡한 길을 빠르게 나아갔다.
마침내 두 사람은 파란색 페인트로 내벽이 칠해진 건물에 도착했다.
하나의 건물에 대략 10여 개의 크고 작은 창고가 있었는데 네이드의 연구회는 그중에서 가장 컸다.
“짜잔! 도착! 바로 여기야!”
시로네는 긴장한 얼굴로 다가갔다. 대체 무슨 연구를 하기에 이런 곳까지 숨어든 것일까?
철문 앞에 간판이 비뚤게 붙어 있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
“심, 심령과학?”
시로네는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오며 수많은 분야를 생각했으나 심령과학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갑자기 흥분한 네이드가 빠르게 말했다.
“어때, 우리 연구회 끝내주지?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연구를 하는 거야. 귀신이나 영혼, 사후 세계, 외계인, 지옥, 신. 그 모든 걸 아우르는 거지.”
처음에는 허무맹랑했으나 듣고 보니 시로네도 관심이 없는 편이 아니었다.
특히나 흥미로운 주제는 이것이었다.
‘신神.’
마법사의 어떤 부류는 신을 부정한다.
물론 국가마다 종교가 있고 기적을 행하는 성직자도 있지만, 그들의 능력 또한 갈래가 다른 또 하나의 마법이라 여기는 관점이었다.
반대로 어떤 종교인은 마법을 기적의 다른 발현으로 여기며 이단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누가 옳은 것일까?’
과연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그래, 이거 흥미롭겠다. 마법과 연관이 될지는 모르지만 연구할 가치는 있을 수도.”
“그렇지? 역시 너라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어. 일단 들어와. 집처럼 편하게 생각해.”
네이드가 시로네를 이끌고 문을 열었다.
정갈한 사유의 공간일 것이란 생각과 달리 시로네를 반기는 건 자욱한 먼지였다.
“푸우!”
문 한번 세게 열었다고 이 정도의 먼지라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창고는 15평의 방이었다.
책상은 다리가 부러져 있었고 테이블 위는 언제 먹었는지 모를 빵과 구겨진 종이로 가득했다.
‘창고를 개조했다더니…….’
실상 개조한 건 간판뿐인 듯했다.
“하하하! 좀 더럽지? 다니다 보면 익숙해져. 그러지 말고 들어와, 들어와.”
시로네는 어째서 창고를 치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적응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의문도, 전방에 걸린 칠판을 확인하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삐딱하게 기울어진 칠판에 한 소년이 빠른 속도로 수식을 적어 나가고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에 시로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일주일 근신 처분을 받은 이루키였다.
또 1명의 천재(4)
시로네가 말을 잇지 못하자 네이드가 멋쩍게 웃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미안, 사실 우리 연구회가 악명이 좀 있어서. 멤버를 밝히면 곤란하거든.”
이루키가 네이드와 친한 이유를 알 듯했으나 문제는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라는 점이었다.
논리를 추종하는 그가 비과학적인 연구회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루키가 이런 쪽에 관심이 있단 말이야?”
네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 반대야. 비판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는 거지. 저 녀석은 세상에 논리적이지 않은 건 없다고 믿거든. 그러니 이것만큼 좋은 먹잇감이 어디 있겠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이루키는 눈치채지 못한 듯 무언가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깐 네이드 쪽을 살피더니 시로네를 발견하고 화색을 드러냈다.
“어? 시로네!”
대답할 겨를도 없이 다가온 그가 다짜고짜 시로네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마침 잘 왔다. 내가 지금 엄청난 걸 생각해 냈거든! 그러니까 뭐냐면, 가장 작은 물질을 쪼개는 거야. 가장 작은데 어떻게 쪼갤 수 있냐고 생각했지?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쪼개 버리면 더 이상 물질이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뭘까? 내가 3일 동안 계산을 해 봤는데, 놀랍게도 세상에!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 있어. 이게 가능하다면 어떨까? 응? 어떻게 될 거 같아? 빨리 말해 봐.”
워낙에 말이 빨라서 시로네는 자세히 듣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는 이루키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대답은 해야 할 듯했다.
“그, 글쎄? 에너지가 방출되겠지?”
“엄청난 폭발! 말도 못 하게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고!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폭발 말이야! 상상할 수 있지? 응? 너라면 상상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