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92
도킨스 알고리즘의 한계는 마법사의 육체 능력에 있다.
제아무리 자동 반응이라 해도 이토록 연사를 당하게 되면 자신의 몸이 배겨 나지를 못하게 된다.
‘54초.’
괴력의 요정과 돌발의 요정의 합작품은 가장 까다로웠다.
막강한 힘이 플루를 짓누르면 돌발의 요정이 전혀 예상치 못한 궤적으로 가시 창을 찔러 냈다.
‘55초.’
그럴 때마다 플루의 몸은 기괴하게 꺾였고, 가동관절이 비명을 토해 냈다.
“죽여! 이자들만 잡으면 전쟁은 끝난다!”
반군들의 화력은 천국조차 만만히 볼 것이 아니지만 73구역의 빛, 시로네를 붙잡으면 적의 사기는 바닥을 기게 된다.
셰하킴 외곽의 전투를 보고 첩보 전략을 간파한 오르가의 지략은 가히 요정의 전략가라 부를 만했다.
‘56초.’
굉음의 요정이 음파를 쏘자 바로 옆에서 수백 톤의 철근이 밀려 나가는 듯한 소리가 플루의 정신을 흐트러뜨렸다.
“크윽!”
도킨스 알고리즘이 깨지면서 사방에서 수십 명의 요정들이 달려들었다.
정확히 57초!
동시에 시로네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괴력의 요정이 플루의 머리를 붙잡고 합장하듯 터뜨리려는 순간 흐릿한 무언가가 지나가며 오히려 그녀의 몸이 폭발했다.
이어서 주위에 있던 요정들이 산산조각 부서지기 시작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오르가는 진한 화장 속에 감춰진 눈동자로 멍하니 시로네를 쳐다보았다.
가히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촉수가 휘둘리고 있었다.
마법이라면 모를까 물리력을 동반한 공격에 요정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크윽!”
“부장님! 벌써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지원을…… 지원을 요청해라.”
그러는 사이에도 시로네는 눈에 보이는 요정들을 전부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저쪽이다!”
요정이 지원을 요청하기도 전에 거인 부대가 달려들었다. 후미에는 영생을 얻은 케르고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또한 한때는 사냥조에 속해 있던 자들이었기에 전투력은 동족 내에서도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로네! 일단 후퇴하자!”
잠입의 전제 조건인 정숙성이 깨진 이상 플루의 말을 따르는 게 좋았으나 어차피 이대로 도주는 불가능하다.
이미 천국에서 케르고족의 추적 실력을 느낀 바였다.
“흐으읍!”
시로네는 눈을 부릅뜨고 적진을 노려보았다.
인공두뇌 외에서 눈동자가 탄생하며 아카마이의 안티테제가 그들을 묶었다.
“크으으으으!”
어마어마한 구속력에 거인은 물론 요정들까지도 놀란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타락천사지만 천사의 위상인 이카사를 꼼짝 못 하게 만들 정도의 구속력은 일개 거인들이 깨부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마이식종 갈토믹의 형질인 마력 증폭이 더해지면서 시로네의 눈앞에 전보다 몇 배는 커다란 포톤 캐논이 장착되었다.
포톤 캐논은 마치 분신술을 쓰듯 하나둘씩 숫자를 늘려 나갔고, 마침내 12개의 거대한 빛의 구체가 백광을 내뿜으며 흔들렸다.
“지금이에요!”
시로네는 모든 포톤 캐논을 쏘아 보내고 몸을 틀었다.
안티테제가 풀리면서 비로소 적들이 움직였으나 이미 시위를 떠난 포톤 캐논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셰하킴 12번 구역에 굉음이 터지면서 빛이 번쩍거렸다.
아마도 가근방에 있는 적군들이 몰려들 테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시로네 일행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빨리!”
시로네와 플루는 파라다이스의 건물을 뛰어넘어 도주했다.
“쫓아라! 놓치면 안 돼!”
폭발에서 생존한 케르고족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30분 동안 치러졌다.
스키마의 운동 능력은 시가전에서 빛을 발했고, 시로네와 플루는 최대한 동선을 복잡하게 설정하며 간신히 그들의 추격을 따돌렸다.
“하아! 하아!”
두 사람은 나란히 벽에 등을 대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아르망이 산소 포화도를 높여 순식간에 호흡을 안정화시켰고, 그러는 사이에 부러졌던 검지도 어느새 완치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골절을 몇 시간 만에 치료하다니.’
켄서의 무한 세포 증식의 형질이 더해진 덕분이었다.
“이제 어떡하죠?”
“가야지, 아라보트로.”
“하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데요. 방향을 잃었어요. 게다가…….”
이미 적들은 시로네가 잠입한 것을 알고 있다.
임무 수행의 난이도는 처음보다 수십 배나 치솟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일단은 다시 옷부터 구하자.”
오르가의 규정외식에 호되게 당한 뒤였으나 이런 몰골로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찾았다, 시로네.”
하늘에서 들린 목소리에 시로네와 플루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목소리가 도달하는 것과 동시에 하나의 물체가 그들의 스피릿 존 반경에 들어왔다.
작은 생물체. 요정이었다.
‘죽여야 해!’
플루가 몸을 돌리고, 시로네가 그보다 빠르게 촉수를 휘둘렀다.
요정은 갑자기 날아드는 공격에 몸을 움찔했다.
시로네가 촉수를 멈출 수 있었던 이유는 아르망이 그의 동체 시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촉수의 날카로운 바늘이 요정의 눈앞에서 우뚝 멈췄다.
눈을 질끈 감고 부르르 떨고 있는 요정의 모습을 본 순간 시로네는 멍한 표정으로 후드를 벗었다.
“너, 너……?”
저번 천국행에서 시로네를 마지막까지 도와줬던 나선의 요정, 페오페가 살며시 눈을 뜨고 있었다.
“히익!”
페오페는 눈앞에 머물고 있는 바늘을 보고 기겁하여 물러섰다.
그러다가 빨개진 얼굴로 시로네에게 소리쳤다.
“뭐야! 날 죽일 셈이야!”
시로네는 황급히 촉수를 거뒀다.
페오페! 다른 것보다도 오직 반가움이 앞섰다.
전쟁터였기에, 그래서 더욱 외로웠기에 페오페의 얼굴을 본 순간 눈물이 글썽거렸다.
시로네가 끌어안을 듯 다가오자 페오페는 황급히 손을 내밀며 내숭을 떨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왔어? 아니, 이래도 괜찮은 거야?”
마법사의 냉철한 이성은 페오페가 적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분명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그 차가운 생각을 일단 한편으로 미루어 두었다.
만약 가정이 사실이라면,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페오페는 다정한 눈길로 시로네를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떨어진 시간은 그리 오래가 아니었지만 어느새 그녀의 표정에는 지성적인 여유로움이 묻어 나왔다.
“잘 왔어, 시로네. 보고 싶었어.”
페오페는 시로네의 뺨을 붙잡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따스한 입술의 온기가 전해졌을 때, 시로네의 머릿속에는 일전에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흘러들어 왔다.
사랑해.
아직 개념이 세부적으로 분화되지 않은 미성숙한 요정의 고백이었을지라도 그녀의 진심만큼은 확실히 전해졌다.
‘페오페. 페오페로구나.’
시로네는 두 손을 떠받들어 페오페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모두가 자신을 해하려고 해도 그녀만큼은 아니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었다.
“페오페.”
“응?”
“난 천국과 싸워야 해.”
페오페는 눈을 깜박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나를, 아니 우리를 아라보트로 데려다줄 수 있어?”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어떤 대화를 나누든 결국 도달할 질문은 이것이었고 들어야 할 대답 또한 이제 곧 페오페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페오페는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지만, 단 한 번도 시로네가 보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체념한 듯 그녀의 눈동자가 슬픔에 잠기고, 반면에 새로운 설렘이 스며들듯 그녀의 입꼬리가 살며시 위로 올라갔다.
그런 얼굴로, 페오페는 시로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데려다줄게.”
전쟁 개시 (3)
제7천 아라보트.
천국 외곽에서는 천국의 군대와 반군의 전쟁이 한창이지만 동심원의 중심에 위치한 아라보트는 여전히 고요했다.
포성도, 비명 소리도 도달하지 않는 첨탑의 아래에서 이카엘은 멀리 피어오르는 포연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깃들지 않았다. 오직 앙케 라의 의지를 수행하기 위한 의지만이 건조하게 말라붙어 있을 뿐이었다.
찌르는 듯한 기운이 이카엘에게 접근하자 반사적으로 성광체가 광륜으로 확장되었다.
치이이이이잉!
사상 최대의 속도로 광륜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의 속도 또한 최고조라는 얘기.
천사장 이카엘을 이토록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자는 천국에서도 손에 꼽을 것이다.
“무엇을 지키는 것입니까?”
이카엘의 왼편으로 중성적인 외모의 미남자가 걸어왔다.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었다.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가?”
키는 작지만 어깨가 다른 천사들의 2배나 되는 존재의 대천사 메타트론이 오른편에 등장했다.
이어서 정면에 결합과 분해의 대천사인 메티엘과 사티엘이 나타났다.
“결국 전쟁은 일어났군요. 그것도 굴욕적인 침략으로. 실망입니다, 이카엘.”
아라보트의 첨탑을 등 뒤에 둔 채 4명의 대천사에게 에워싸인 이카엘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다.
잠시 시선을 돌려 면면을 살핀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파이엘은 움직이지 않고 있군.’
소멸의 대천사 파이엘.
이곳에 모인 4명의 대천사 또한 원천 개념을 다루는 강력한 적이지만 파이엘의 존재는 이카엘에게 특별했다.
무력으로 따졌을 때 파괴의 대천사 유리엘이 자신과 나란한 정도라면 파이엘은 증폭의 개념에 대한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것은 파이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껄끄러운 상황에서 당분간 동태를 지켜보기를 택한 듯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이봐, 이카엘.”
메타트론이 고개를 삐거덕 꺾으며 다가왔다.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하지만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우리 4명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을 텐데.”
“어째서 반동을 일으킨 거지? 앙케 라에 대한 거부인가?”
레이엘이 한 걸음을 내딛자 그의 몸에서 푸른 전기가 일렁거렸다.
마법 같은 것이 아닌 원천이 빛인 존재.
정통으로 당한다면 이카엘이라도 무사할 수 없었다.
‘마라는 부르지 않고 있다. 이미 전장에 투입시킨 거로군.’
레이엘이 말했다.
“앙케 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확고하다. 하지만 당신은 아니야.”
사티엘이 다가왔다.
“천사장 이카엘도 이제는 옛말인가? 일개 인간에게 휘둘린 수치는 타락천사보다 훨씬 큰 중죄. 당신이 자초한 일이겠지.”
이카엘의 눈에 처음으로 살기가 감돌았다.
“건방진 것들.”
도발에 분노한 메타트론이 헤일로를 발동했다.
무지막지한 중력장이 펼쳐지면서 풍경조차 그를 향해 휘어지는 기분이었다.
“천사장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오. 최초의 천사라 하나 대천사 간에 우열은 없는 법. 여기에서 결착을 내도록 합시다.”
메타트론의 말이 끝나는 순간 4명의 대천사가 동시에 능력을 발동했다.
전자기력, 중력, 약력, 강력.
우주를 이루고 있는 4대력이 동시에 발휘되면서 이카엘을 짓눌렀다.
쿵! 쿵! 쿵! 쿵!
동시에 터진 네 번의 충격음.
대천사들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이카엘의 콧잔등이 잔뜩 구겨졌다.
헤일로가 수십 미터 직경으로 펼쳐지면서 대형 아타락시아가 빛의 기둥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
무지막지한 힘이 증폭되면서 아라보트를 휩쓸었다.
번쩍!
첨탑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에너지의 상승을 천국의 모두가 볼 수 있었다.
***
천국 제5천 마테이.
모든 것이 인간의 기준보다 거대한 거인의 도시에서 반군 사령부의 본진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메카의 기술은 대거인에 특화되어 있었고 주력 장비인 구로이의 대수도 전체의 4분의 1인 2천 대나 투입된 상황이었다.
“진격! 진격하라!”
사령관 크루드는 타이탄에 탑승해 사방에 열 섬광포를 쏘아 대며 대원들을 독려했다.
그에 맞춰 구로이 파일럿들도 달려드는 거인을 향해 무지막지한 화력 시위를 퍼부었다.
전쟁 시작 후 2시간 만에 전진한 거리는 무려 2킬로미터.
하지만 내부로 들어갈수록 적들의 반격은 거세졌고, 등장하는 거인의 능력치도 기하급수로 올라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들이 전진한 2킬로미터의 거리는 이제 고작 2킬로미터로 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