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97
그렇게 또다시, 인간은 신을 찾고.
‘어째서, 어째서 안 되는 것입니까? 이토록 고통을 받았는데도, 그렇게나 안 되는 것입니까?’
미로까지 남은 거리, 150미터.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영겁을 살아도 좋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녀만…… 그녀만…….’
미로까지 남은 거리, 200미터.
“밀어붙여! 더, 더!”
가올드는 왈칵 핏물을 토해 냈다.
원통하고, 분해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서, 내장에서 끓어오르는 탁한 분노의 응어리가 역류했다.
“흐으으으윽! 흐으으으윽!”
시바는 거인들의 몸을 비집고 침투하여 서럽게 울고 있는 가올드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죽여야 한다.’
날카로운 칼날이 심장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모른 채 가올드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20인의 심판이 있기 전의 날, 미로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럼 구해 주든가.
“흐으으으으으으!”
가올드의 온몸에서 신경이 전율하며 무지막지한 극기가 펼쳐졌다.
불의 바다가 풍경 끝까지 펼쳐지면서 검은 마음이 세상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해진 형태로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통각.
1천만 배.
쿠쿠쿠쿠쿠쿠쿠쿠쿵!
가올드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이 빗물처럼 주루룩 쏟아져 내렸다.
대지가 진동하면서 물결처럼 출렁이고, 전방에 있던 거인들이 갈라진 대지의 이빨에 씹혀 땅 밑으로 파고들었다.
“크으으으으! 흐으으으으!”
가올드는 고통에 몸을 부들거렸다. 두 다리를 쿵쿵 뛰면서 사지를 부들거렸다.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마침내 성벽에서 지켜보던 수르트가 튀어 나갔다.
가올드는 사방으로 손을 허우적대며 성벽을 향해 뛰어들었다.
미로까지 남은 거리 100미터. 80미터. 50미터.
“우오오오오오!”
연옥 최고의 검사 수르트가 화염의 검을 휘두르자 가올드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쿠우우우우웅!
몸에 두른 에어 실드가 화염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자 수르트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이, 이런…….”
앙상하게 대만 남아 버린 검을 바라보는 순간 가올드가 손을 휘둘렀다.
퍽 하고 수르트의 몸이 폭발하면서 형체조차 없이 사라졌다.
미로까지 남은 거리, 20미터.
“죽여 버리겠다!”
대장을 잃은 거인들이 분노의 기운을 담아 돌진했다.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가올드의 증오 앞에서 한낱 물거품일 뿐이었다.
펑! 퍼퍼퍼퍼펑!
지상에 있는 모든 거인이 사망했다.
남아 있는 것은 거인 마법사인 부군단장 우로타스뿐이었으나 이미 겁에 질린 그는 차마 성벽 아래로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아! 하아!”
가올드는 더 이상 막아설 자들이 없는 성벽 아래를 걸었다.
6미터. 4미터. 2미터.
미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얼굴로 가올드가 오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 칠갑을 하고 있는 육체는 20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강해 보였고 수많은 상흔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올드는 성벽 앞에 멈춰 수직으로 고개를 들어 미로를 올려다보았다.
미로까지 남은 거리.
“하아! 하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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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의 태동 (1)
페오페를 만난 시로네와 플루는 파라다이스에 잠입해 신민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요정의 능력이라면 실체와 비실체를 구별할 수 있으나, 페오페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플루는 그녀를 따라가도 괜찮을지 잠시 고민했지만 시로네가 군소리가 없는 이상 성급히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에게도 옷은 필요했으니까.
파라다이스 밖으로 나온 시로네는 페오페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이지스의 시스템이 무력화되어 요격 체계가 마비된 상태였다.
말인즉슨 천국의 제1천부터 제7천까지 자유롭게 벽을 타고 넘을 수 있다는 얘기.
그렇기에 현재 성벽 입구는 거인들이 지키고 있고, 하늘에는 신민관리부의 요정들이 임시로 배치되어 영공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아라보트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공중전을 해야 한다는 건가? 이건 이것대로 까다롭네.”
플루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순간 이동으로 뛰어넘는 건 금방이지만 각기 다른 정의 능력을 다루는 요정 부대를 돌파하는 건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임무였다.
“한 가지 방법이 있어.”
페오페가 말했다.
“영공에 있는 요정 부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간부님들의 허가증이 필요해. 그걸 받으면 무사히 아라보트로 넘어갈 수 있을 거야.”
시로네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페오페는 시로네가 무엇을 하기 위해 아라보트로 가려는 것인지 모른다.
신의 징벌을 발동하여 천국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째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지, 페오페?’
그러고 보면 천국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요정부에 속한 그녀가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단지 개인적인 호감만으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같은 생각을 한 플루가 의중을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허가증을 받을 수 있을까?”
“그건 몰라. 이기린 님에게 요청을 한다고 해도 쉽게 승낙이 떨어지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 보겠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시로네가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
페오페는 셰하킴의 서북쪽을 가리켰다.
파라다이스 너머로 흰색 벽돌로 지은 원뿔 모양의 첨탑이 서 있었다.
“저곳이 셰하킴의 신민관리부야.”
시로네와 플루는 눈을 마주쳤다.
적진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셈이다.
아무리 페오페를 믿는다고 해도 중요한 임무를 앞에 두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성벽을 넘는 방법을 택해야겠어. 아라보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수 있어?”
페오페는 슬픈 눈으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사실은 그가 아라보트로 가지 않았으면 했다.
최후의 최후까지 천국과 싸우겠다면 페오페도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고, 어떤 의미로든 비극밖에 남지 않을 테니까.
“알았어. 나를 따라와.”
페오페는 방향을 틀어 셰하킴의 파이 형태의 꼭짓점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시로네와 플루 또한 플라이 마법을 시전하여 뒤를 따랐고, 그렇게 10킬로미터를 전진했을 무렵.
“저기다! 쫓아!”
지상에 있는 파라다이스의 옥상을 건너뛰며 일단의 무리가 추격해 오기 시작했다.
영생을 받아 셰하킴에 들어온 케르고족이었다.
“이단을 처단하라!”
“끼야야야야야!”
괴조음을 내며 사방팔방에서 케르고인들이 몰려들었다.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제1천의 신민일 때부터 앙케 라를 위해 무수한 이단 사냥을 해 왔다는 얘기.
그들의 무력은 현재 연옥을 헤매는 다른 케르고족과는 차원이 다를 터였다.
“어떡하지?”
“눈에 들어온 이상 따돌릴 수는 없어요. 저들의 추격 능력은 엄청나니까요.”
시로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르고 전사들이 추진력을 받은 듯 하늘로 솟구쳤다.
예리한 박도를 든 그들은 외중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났고, 완력 또한 일화의 술을 끝마친 거인에 비견될 만했다.
“흩어져!”
시로네와 플루, 페오페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적들의 전력을 분산시켰다.
지상에 내려오자 더욱 많은 신민들이 골목을 점유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포상을 걸었어!
페오페의 정신감응이 시로네의 머릿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영생을 얻은 시점에서 동물적인 결핍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명예, 환락, 쾌락, 권력 등 지극히 고차원적인 욕망뿐이었다.
“크크크, 놈들을 잡으면 영생자 십로회의 간부가 될 수 있다 이거지?”
길목에서 튀어나오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1명의 케르고인이 태양에 반사되어 불덩어리처럼 이글거리는 검을 꺼내 들었다.
케르고 전사 중의 1명인 무르카.
신체는 이제 막 청춘을 맞이한 청년처럼 불끈거렸고 그을린 구릿빛 피부는 기름을 바른 듯 미끈했으나, 그의 실제 나이는 무려 1,023살이었다.
“십로회의 간부가 되면 유토피아의 출입이 가능하지.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멋진 옷들을 마음껏 살 거야.”
무르카의 옆에 노르족 여성이 걸어왔다.
금발 머리를 가느다랗게 갈래로 땋아서 늘어뜨리고 신민의 의복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황금빛 실크 재질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노르족 영생자 데이나였다.
가슴은 탄력 있게 발달하여 로브에 아름다운 굴곡을 선사하고, 옆트임으로 드러난 다리는 매끈했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도 무르카보다 그리 적지는 않았다.
철컹! 철컹!
파라다이스의 옥상에서 세련된 기계음이 들렸다. 메카족의 장비인 파이퍼를 장착한 젊은 남성이 아크로바틱을 선보이며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쿵!
무릎을 꿇은 채로 두 사람 앞에 착지한 남자가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메카족 영생자 라운.
메카족 파일럿이라면 기본적으로 파이퍼를 다루지만 천 년 가까이 숙달시킨 기술력은 거의 기계와 한 몸이 될 정도로 정밀하고 정교했다.
“간만에 3명이서 해보겠는데?”
라운이 시그나와 엑스드를 꺼내 들고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지만 필멸의 경계를 넘어선 자들.
천 년 이상을 살아왔다면 이미 화신을 깨달았다는 얘기이기에 단일 전투력만 따지자면 인간 중에서 최강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특히나 영생자 중에서도 탁월한 전투력을 갖춘 그들에게 이번 전쟁은 비극이 아닌 꽤나 유쾌한 유흿거리로 다가왔다.
데이나가 두 손에 바람을 회전시키자 그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누가 먼저 잡나 해보자. 이긴 사람이 십로회의 간부가 되는 거야.”
“좋지. 어차피 내가 될 거지만.”
무르카가 검을 역수로 꼬나쥐고 먼저 몸을 날렸다.
이어서 라운이 파이퍼를 조작하여 벽을 지그재그로 밟으며 사라지고, 데이나가 풍압을 더욱 강하게 하여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콰아아아앙!
벽이 부서지면서 케르고족의 전사들이 튀어나오자 시로네는 순간 이동을 시전해 거리를 벌렸다.
어디로 도망쳐도 사방에서 적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기에 의아함은 커졌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도록 만든 것일까?
“끼야아아아호!”
천공에서 들린 소리에 시로네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역광을 받은 전사의 그림자가 몸을 거꾸로 돌린 채 추락해 오고 있었다.
먹빛 검광이 콧잔등을 스치고, 일 검을 채 거두기도 전에 무르카가 달려들었다.
“하하하! 당첨이다!”
‘당첨?’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전사의 목소리가 의미로 밀려들었다.
그것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이들은 전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사냥 놀이처럼, 유희의 일환으로 자신을 쫓고 있었다.
‘하지만…….’
무르카의 몸놀림은 여태까지 봤던 어떤 케르고인보다 민첩하고 강력했다.
그가 회전하며 검풍을 일으키자 단단한 파라다이스의 외벽이 산산조각 터져 나갔다.
마법사의 정석으로 거리를 벌린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쏘아 댔다.
동시에 무르카의 눈이 번쩍이더니 온갖 스키마의 기술들이 안구를 강화시켰다.
전신에 퍼진 미세한 신경들이 일순 빛을 내며 피부 밖으로 투영되더니 그의 몸이 유령처럼 흐릿해졌다.
‘빠르다! 인지할 수 없어!’
시로네는 곧바로 손바닥을 펴고 금강무장을 발동했다.
최고 속도로 로브가 감싸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무르카의 검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큭!”
시로네는 벽을 뚫고 파라다이스 건물 안으로 처박혔다.
갑식광물종 링거의 금속체가 흉측하게 상흔을 드러내며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토막 났을 터였다.
시로네는 날다람쥐처럼 텀블링을 하며 건물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오직 신체 능력만으로 포톤 캐논을 회피했다.
‘이게 영생자인가?’
영원의 시간을 부여받았더라도 생물의 한계는 엄연히 존재하겠지만 스키마의 숙련도만큼은 인간의 한계치를 넘었다고 봐야 했다.
“하하! 벌써 겁먹은 건가? 네피림도 별것 아니군. 이런 놈을 73구역의 빛이랍시고 떠받들다니. 신민들도 정말 멍청해.”
시로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주인의 신경이 까칠해짐을 느낀 아르망이 그 감정대로 촉수를 공작새의 깃털처럼 활짝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