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98
“호오? 그런 재주도 있었나?”
무르카는 일말의 긴장감도 없었다.
천 년 동안 숙련된 스키마는 모든 변수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다.
속도가 빠르면 느리게 보면 되고, 완력이 강하다면 우회하면 되고, 내구력이 강하다면 그것을 파괴할 위력을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다.
인간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
그것이 케르고 최고의 전사라 칭송받는 무르카의 장기였다.
곤충이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무르카의 눈이 커지며 허리가 뒤틀렸다.
후우웅!
강풍을 일으키며 휘둘린 촉수가 무르카를 지나가 벽을 박살 냈다.
예상을 까마득히 초월하는 속도.
‘뭐지?’
무르카가 기괴한 자세로 허리를 뒤틀어 시로네를 살피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가 촉수를 바닥에 꽂으며 몸을 날렸다.
현재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울분이 쌓여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또한 생물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영생에 대한 질투심이리라.
‘간다!’
포톤 캐논이 사방으로 쏘아지고 4개의 촉수가 넓게 휘둘리며 회피할 공간을 휩쓸었다.
“후우! 후우!”
무르카는 마치 실전이 아닌 연습 훈련을 하듯 호흡을 조절하며 공격을 회피해 나갔다.
‘확실히 대단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르카의 눈빛은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천 년을 살면서 이토록 강한 인간과 상대한 적이 있었던가?
영생을 얻은 순간부터 인간은 인간의 위상을 벗어나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
현재 그의 무력은 요정이나 거인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보인다. 내가 더 강해.’
십로회의 간부가 되어 더욱 막강한 권력을 얻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그럼 제대로 해볼까!”
오랜만에 케르고인의 호전성을 발휘한 무르카가 화살처럼 튀어 나가 시로네를 공격했다.
카카카카카캉!
동시에 아르망의 로브에 은색 상흔이 새겨지고, 충격파가 시로네의 뼈마디를 시리게 했다.
‘굉장히 단단한 로브군. 저것도 마음에 드는데?’
무르카는 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밀어 넣으면서 한 바퀴를 회전했다.
외중력이 사방으로 펼쳐지면서 그의 몸을 회전시키자 초당10회의 회전과 함께 검이 원반의 잔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칼날이 시로네의 목덜미를 물려고 하는 그때, 어마어마한 구속력이 그의 발을 묶었다.
“크윽!”
시로네가 뒤로 물러나면서 검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무르카는 이를 악물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버둥거렸다.
‘대체 이건?’
시로네의 왼편 허공에 떠 있는 구슬에서 눈동자 하나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타락천사인 이카사마저 구속시킨 안티테제.
하지만 무르카는 이카사와 달랐다.
또한 이것이 타락천사보다 더 높은 제3천 셰하킴에 그가 머무르고 있는 이유였다.
“너, 이게 무슨…….”
스키마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몸을 움직여 보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 첨예한 구속력이 근섬유를 올올이 파고들었다.
대상의 행동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전체의 율법이 작동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로네는 눈앞에 포톤 캐논을 집중시켰다.
갈토믹의 마력 증폭이 더해지자 펑 소리를 내며 무지막지하게 커진 섬광이 무르카의 안면부를 날려 버리기 위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무르카의 앞에 공기의 장벽이 펼쳐지며 포톤 캐논이 폭발했다.
“흐읍!”
가올드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굉장히 강력한 대기압에 시로네는 문 쪽을 살폈다.
“호호호! 이 정도로 고생하고 있는 거야? 너도 늙었구나, 무르카.”
‘저 여자는 또 뭐야?’
차가운 인상에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가 1미터 높이를 부양하며 파라다이스에 들어오고 있었다.
인人의 태동 (2)
케르고 사냥꾼들을 피해 골목을 달리던 플루는 측면에서 밀려드는 강력한 일격에 몸을 움츠렸다.
메카족의 무기인 시그나가 땅을 내리찍으면서 수 미터 높이의 쇼크웨이브가 일었다.
힘에 밀린 플루는 충격파와 함께 건물 벽에 처박혔다.
“크윽! 뭐야?”
“이런 제길. 난 꽝인가?”
철컹. 철컹.
금속성 소리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고막을 찔렀다.
파이퍼를 장착한 1명의 남자가 검과 방패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영생자 라운.
올해로 1,010살이 되는 그는 450살이 되던 해에 신적초월을 깨달았고 900살에 완벽하게 기계와 동화되는 신체 숙련도를 얻었다.
“아니, 이건 이것대로 좋은가? 여자라서 다행이군.”
라운은 플루의 외모를 찬찬히 살피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유구한 세월 동안 수많은 유희를 즐겼지만 역시나 생물에게 가장 강력한 욕구는 종족의 번식.
사랑이라는 개념도, 정이라는 느낌도 희박해진 그에게 남은 것은 뇌리 저편에 남아 있는 건조한 쾌락의 기억뿐이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플루의 목소리를 들은 라운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머리에 장착한 파이퍼의 버튼을 눌렀다.
그의 메카족 1단계 장비는 완벽하게 그에게 맞추어진 개인화 장비였고 통역의 기능 또한 야맹의 물건을 훨씬 상회했다.
“아, 그렇군. 까칠한 여자라는 거지. 남자의 손길에 순순히 안기지 않는 그런 여자 말이야.”
라운의 말이 기계음을 타고 통역되자 플루가 인상을 찡그렸다.
반면에 라운은 여태까지의 점잖은 모습을 버리고 지극히 사악한 욕망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런 여자는 내 전공이지.”
라운의 감정을 전달받은 플루의 몸에 소름이 돋는 순간 캉! 하고 바닥이 깨지며 라운의 몸이 튀어 올랐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든 플루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곳에 떠 있는 라운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반군 사령부에 몸담으면서 메카족의 전투 시스템은 대략 파악한 그녀였다.
어떤 파이퍼도 저렇게 기능을 높일 수는 없다.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육체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이퍼는 어디까지나 근력 보조 장치. 신경 전달 속도보다 더 빠른 기능을 갖추게 된다면 주먹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관절은 뽑혀 나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플루를 압박하는 라운의 동작은 그런 모든 상식을 깨고 있었다.
기계에 대한 완벽한 이해.
실제로 라운의 파이퍼는 반군들이 사용하는 장치보다 무려 30배나 강력한 마력을 갖추고 있다.
신경과 정신이 기계와 완벽하게 합치되지 않고서는 다루기 불가능한 장치인 셈이었다.
메가 스매시!
파이퍼의 강력한 구동력과 신적초월, 위력에 따라 증폭되는 시그나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자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듯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상대의 역량을 파악한 플루도 피닉스를 꺼내 들고 전력을 다해 맞섰다.
라운의 아크로바틱은 동선을 예측할 수조차 없을 만큼 현란했으나 플루 또한 프로 조너로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봉황정을 세워 두고 도킨스 알고리즘으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주위에 있는 건물들이 산산조각 터져 나갔다.
‘고작 이런 곳에서 질 수는 없어……!’
플루는 이를 악물고 사력을 다해 공격을 회피했다.
파이퍼와 도킨스 알고리즘은 타의에 의한 동작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라운의 기계에 대한 이해도는 가히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고 있었다.
시그나의 충격파가 휩쓸고 다닐 때마다 플루의 몸이 휘청거렸다.
‘상당히 재밌는 기술을 쓰는군.’
라운은 플루의 능력을 금세 파악했다.
노르족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지만 안에 담긴 이치는 메카족의 것이다.
‘모조인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잡탕이야.’
라운의 혀가 입술을 핥았다.
“재밌겠는데.”
시그나를 허리춤에 꽂은 라운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척추에서부터 전기가 흘러들면서 그의 주먹에 푸른 광채가 일렁거렸다.
일렉트릭 쇼크웨이브!
플루에게 다가간 그가 땅에 주먹을 내리꽂자 직경 20미터 반경 전체에 전기의 파도가 퍼져 나갔다.
“크윽!”
도킨스 알고리즘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광역 공격에 플루는 즉각 알고리즘을 풀고 방어 태세로 돌입했다.
라운이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몸을 내밀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가용 한계치까지 방어 마법 에어 실드를 전방에 겹친 플루는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퍼퍼퍼퍼펑!
묵직한 공기 장벽을 라운의 주먹이 손쉽게 뚫고 들어와 플루의 가드를 강타했다.
플루의 눈이 충격에 흔들리면서 바깥쪽에 있는 왼팔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앙!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얼마나 날아왔는지조차 모른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흐으윽!”
플루는 덜렁거리는 왼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라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배를 쳤으면 내장이 터져 죽었을 거야.”
몸을 부들거리면서도 플루는 매섭게 라운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가드를 쳤는지 알아?”
라운의 얼굴에 예고된 쾌락의 희열이 차올랐다.
“이제부터 가르쳐 주지.”
***
파라다이스 내부는 세 사람이 만들어 내는 전투력으로 초토화되어 가고 있었다.
금강무장 상태에서의 시로네는 아르망이 없을 때하고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으나 영생자 무르카와 데이나의 협공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르카의 신적초월은 필멸자가 구사할 수 없을 만큼 경지가 높았고, 데이나의 심적초월에서 나오는 마법의 위력은 대단한 전투를 경험해 왔던 시로네조차 기가 질릴 정도였다.
“깔깔깔! 뭐야, 이렇게 쉬운 상대였어?”
데이나는 마치 공기와 동화된 듯 사방으로 풍인을 퍼트렸다.
어차피 눈으로 볼 수 없겠지만, 설령 보인다고 하더라도 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무르카는 그 풍인의 틈새를 타고 검을 휘둘렀다.
신적초월로 베어 낼 수 없는 건 없는 듯했고, 시로네는 순식간에 100미터를 밀려났다.
그들이 지나온 자리의 건물들이 폭삭 주저앉으며 처참한 파괴력의 결과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것이 화신술을 기반으로 한 전투.’
시로네는 그들과의 전투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강자들을 만나 보았지만 화신술을 구사하는 적과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의지를 통해 힘을 발현시킨다.
그것은 힘의 강화가 아닌, 존재가 지닌 위상 자체를 뒤트는 힘이었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의 범주 안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화신술을 익힌 자는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 자들.
만약 인간이 12개의 손가락을 가졌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바뀌었을 것이듯, 화신술을 익힌 자들도 애초부터 전투에 대한 감각 자체가 인간과 달랐다.
거기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게 되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실전 역량이 천차만별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하하! 완전히 겁을 집어먹었군. 필멸자 따위가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살아온 경험과 숙련도가 다르다고!”
무르카는 이미 승리한 사람처럼 두 팔을 활짝 펴고 달려들었다.
시로네의 목을 베는 상상을 하는 순간 십로회의 간부 자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영생자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지닌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십로회는 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괴물들의 모임이었다.
십로회의 수장인 10명의 인간은 최소 1만 년 이상을 살아온 자들이었고 간부들의 평균 나이 또한 3천 살이 넘어간다.
그런 곳에 고작 1천 살인 그가 간부가 되는 것이다.
모든 영생자들이 우러러볼 것이고, 자신은 더욱 강하고 멋진 삶을 영위하며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시로네는 좌우에서 달려드는 무르카와 데이나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우선 데이나를 아카마이로 구속시킨 다음 포톤 캐논을 무르카에게 퍼부었다.
여태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위력의 섬광에 무르카의 얼굴이 창백하게 떴다.
‘심적초월?’
스키마의 고수인 그조차도 섬광의 줄기가 또렷하지 않고 잔상을 일으킬 정도였다.
마치 시로네가 폭발을 일으킨 듯 주위의 모든 것이 날아갔다.
산탄 무브먼트로 사방을 휩쓴 다음 레이저를 쏘아 대자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두 사람을 두렵게 만든 것은 폭발이 아닌 살을 녹일 듯한 열기였다.
‘뭐지?’
시로네는 갑자기 적의 반격이 느슨해지는 것을 깨닫고 의아한 눈으로 살폈다.
마치 실전 연습을 하듯 즐기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와 달리 심각한 표정의 두 사람이었다.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그들의 동선.
각일각 치열해져야 마땅한 전투인데도 오히려 전보다 활동성이 떨어져 있었다.
‘그렇구나.’
시로네는 해법을 찾은 듯 더욱 거칠게 적들을 몰아세웠다.
예상은 정확했고, 무르카와 데이나는 반격할 생각조차 못 하고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마침내 시로네의 포톤 캐논이 옆구리를 강타하자 무르카가 눈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으로 날아갔다.
쾅!
벽에 부딪힌 그는 시로네의 위치를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스키마의 재생을 발휘하여 옆구리를 치료했다.
데이나는 전투와 동떨어진 출구 쪽으로 물러서서 어찌해야 할 것인지 눈을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야 알았어.”
시로네가 아카마이를 띄운 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를 뿌드득 갈고 있는 무르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는 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