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01
세인의 목소리를 들은 가올드가 여전히 유리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동안에 미로를 구해.”
말이 되지 않는 작전이라는 것은 세인도 알고 있다.
이곳에 모인 10명이 전부 유리엘에게 달려들어도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드는 마당에 가올드 혼자서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가야겠지.’
세인을 위시한 모두가 각오를 다지는 그때, 유리엘의 몸에서 강력한 아우라가 폭발했다.
오직 파괴.
어떤 생물, 아니 어떤 존재라도 저 아우라에 파묻혔다가는 뼈조차 못 추릴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생길 정도의 기운이 성문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지나칠 수 없다.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 죽는 것뿐.”
가올드가 말했다.
“가.”
줄루가 가장 먼저 움직이고, 남은 자들이 뒤를 따랐다.
어쩌면 접근과 동시에 전멸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미로를 구할 방법은 없었다.
7명의 인원이 좌우로 흩어져 유리엘을 지나쳤다.
‘뭐지?’
놀란 정신을 챙길 여유도 없이, 강난이 성문을 발바닥으로 파괴하며 밀고 들어갔다.
타락의 전당으로 돌입하기 직전 세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유리엘은 가올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를 시험한 것인가?’
조롱당한 기분에 이를 악물었으나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
세인은 모두를 데리고 타락의 전당으로 침투했다.
가올드는 살며시 입가를 찢었다.
“대천사답게 자비라도 베푸는 건가?”
유리엘은 대답이 없었다.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돌진한다.
그것이 인간.
그리고 그 인간 중에서도 가장 기괴한 느낌을 받았던 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가올드였다.
“무엇을 꿈꾸고 있지? 너희에게 희망은 없다.”
“희망?”
가올드의 오른손에 구체의 대기압이 압축되었다.
아타락시아의 포톤 캐논까지 막아 냈던 바쿰 프레스였다.
“희망은 절망이 만든 망상일 뿐. 인간을 움직이는 건 희망이 아니야. 아주 가혹한…….”
가올드의 몸이 화살처럼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유리엘의 측면에 도달한 가올드가 오른손의 바쿰 프레스를 휘둘렀다.
“절망이지.”
왔던 길만큼 (2)
가올드의 바쿰 프레스가 유리엘의 얼굴에 직격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가 폭발하면서 장내의 공기가 바깥으로 밀려 나갔다가 모조리 빨려 들기 시작했다.
성벽에 있는 자들 또한 폭풍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고, 흔들리는 대기 속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 저런…….”
모두의 눈빛이 경악에 물들었다.
가올드의 엄청난 위력을 담은 바쿰 프레스를 정통으로 맞고도 유리엘은 처음과 같은 자리에 오롯이 서 있었다.
가올드의 일그러진 표정을 들여다보며 유리엘이 점잖게 말했다.
“이것이 네가 말한 인간의 절망인가?”
유리엘의 성광체가 번쩍 빛을 내며 광륜으로 퍼졌다.
“그렇다면 참으로 초라한 절망이군.”
유리엘의 사법 광륜이 황금빛을 내며 펼쳐지면서 극락곤이 탄생했다.
천도은하륜.
굉음을 내며 회전하는 극락곤을 본 순간 가올드는 거리를 벌리고 주위에 막강한 대기압을 가했다.
은하륜이 땅을 긁으며 질주하자 대지가 쩍 하고 갈라지며 가올드를 집어삼킬 듯 뻗어 나갔다.
가올드의 눈이 커졌다.
물체와 물체의 충돌이 아니다.
마치 물질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휘젓듯, 극락곤에 닿는 모든 게 그 자리에서 물거품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쿠우우우우웅!
가올드의 프레스가 대지를 짓누르는 것과 동시에 극락곤의 충격파가 밀려들어 와 그의 방어벽을 쩍 하고 갈랐다.
콰아아아아앙!
황급히 몸을 뒤튼 가올드의 옆으로 땅이 갈라지고, 단지 간접적인 충격파만으로 내장이 흔들린 가올드가 피를 토해 냈다.
“커억!”
가올드의 무력이 통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세인 일행에게 절망적이었다.
“제길! 빨리!”
세인이 황급히 냉정을 되찾고 일행을 타락의 전당으로 이끌었다.
무력의 격차를 확인하건대 가올드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분.
그 안에 미로에게 도달하지 못하면 남은 건 전멸뿐이었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다.
정말로 두려운 건 평생을 바친 프로젝트가 바로 눈앞에서 무산되는 것이었다.
타락의 전당에 남아 있던 몇몇 대천사들과 마라들이 그들을 가로막자 강난이 선두로 나섰다.
미로에게 갈 것이다.
평생을 쫓아다닌 한 남자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 버린 그 여자를 만나서 말할 것이다.
‘아저씨를…….’
전방에서 달려오는 거대한 1각 마라를 발견한 강난의 콧잔등이 늑대처럼 구겨졌다.
“크으으으!”
“여기서부터는 한 걸음도 들어올 수 없다.”
신장 3미터에 달하는 1각 마라는 털이 복슬복슬한 고릴라의 상체를 쳐들고 6개의 팔을 동시에 휘둘렀다.
강난은 상체를 굽히고 들어가 서 있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하고 허리를 뒤틀었다.
딸려오듯 휘둘린 오른발이 1각 마라의 정강이를 걷어차자 빠각 하고 다리가 부러졌다.
“크아아악!”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마라의 뒤로 돌아들어 간 강난이 두 바퀴를 더 회전하며 발 차기를 가했다.
콰아아아앙!
늑대 부족 전승의 스키마가 발동하면서, 목이 부러진 마라의 몸이 수 미터를 날아갔다.
‘미로는…….’
강난은 고개를 들어 미로가 있는 곳을 살폈다.
바깥에서 봤을 때는 그저 깎아지른 성벽이지만 내부는 복잡한 구조였고 수많은 계단이 교차하고 있었다.
하늘은 이미 잡다한 마라들이 점유하고 있고 계단에도 몇몇 타락천사들이 요지를 지키고 있었다.
여태까지 쓸어 낸 적들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현재 유리엘과 싸우고 있는 가올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이상 까다로운 상대였다.
“간다!”
강난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뛰어오르자 퍽 하고 스타킹이 터지면서 그녀의 몸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수많은 마라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뒤덮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단말마를 내지르며 하나둘씩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대단하군.”
강난의 무위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쿠안과 에텔라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내로라하는 스키마의 고수지만 강난은 기술이 아닌 육체 자체가 패도적이다.
그녀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체의 모든 부분이 오직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잘 싸우는군. 그래도 마법협회 비서실장이라는 건가?”
“그게 아니다요.”
줄루가 세인의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가올드가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다면, 이제부터는 강난이 우리를 데려가야 할 것이다요.”
세인은 줄루의 말을 음미했다.
천국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 딱히 연락을 취한 적은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가올드의 곁에는 강난이 있었다.
아마도 어떤 사연이 있겠지만, 세인은 황급히 생각을 지웠다.
한 번의 실수로 작전이 실패하는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한 인간의 소중한 마음일지라도.
“빌어먹을 것들이……!”
쿠안이 회전과 동시에 날아올라 사방의 적을 휩쓸었다.
마침내 시야가 열리고 타락의 전당 꼭대기의 전경이 보였다.
아래에서 봤던 것과 변한 건 없었다.
카리엘은 여전히 여유로웠고, 미로 또한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가올드와 유리엘의 전투를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가올드는 심각했다.
어느새 1킬로미터 밖으로 밀려난 그는 유리엘의 갖은 공격에 몸이 만신창이로 변해 있었다.
끝까지 뼈를 지켜 낸 끝에 얻은 건 고기처럼 다져진 근육뿐이었다.
“하아. 하아.”
두 팔이 축 늘어진 가올드는 유리엘을 노려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딱히 마법사에게 근육은 중요하지 않지만 힘의 원천이 통각인 그에게 부수적인 고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전만큼 에어 프레스의 위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쳇, 재수 없게 걸렸군.’
미로가 중얼거렸다.
“가올드는 이길 수 없을 거야.”
“끄응?”
옆에 누워 있던 아리우스가 답을 구하듯 앓는 목소리를 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육체의 문제가 아니야.”
미로는 살며시 미간을 좁히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네가 바보라는 거야, 가올드…….’
무려 20년이나 응축되어 있던 것이 한 번에 폭발하는 카타르시스였다.
그 한 번의 감정을 토해 내기 위해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지만, 일단 쏟아 낸 뒤에는 그만큼의 열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 네 잘못은 아니겠지.’
가올드를 밀어낸 것은 자신이다.
그렇기에 가올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마를 탄 왕자님처럼 환대해 줄 것이란 생각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춰 줄 것이란 기대 따위조차 없이, 그냥 온 것이다.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만나지 않고서는 미칠 것 같아서 그냥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지독하리만치 이기적이지만 그 모든 감정이 미로에게 맞춰져 있기에 또한 이타적이다.
‘만약 여기서 내가…….’
가올드의 극기를 다시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 가지뿐이었다.
“미로!”
펑!
마라의 피로 칠갑을 한 강난이 한 무리의 적들을 날려 버리고 성벽에 도착했다.
“말해!”
미로는 강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강난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대체 어떤 여자인지, 어떻게 생겨 먹은 여자이기에 한 남자가 이토록 미쳐 버렸는지, 밤마다 머릿속으로 그려 보던 인물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가올드를…….”
강난은 온 힘을 다해 토해 냈다.
“사랑한다고 말해!”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퍼지고, 숱한 충격파가 휘몰아치는 1킬로미터 밖 전장에까지 전해졌다.
가올드는 전투를 멈췄고 유리엘이 그에 응했다.
파괴의 대천사인 유리엘에게 전쟁은 그저 삶처럼 익숙한 사건일 뿐이지만 그는 알고 싶었다.
어찌하여 인간은 이다지도 어지러운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미로를 돌아보았다.
그 무언의 압박에 미로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강난에게 돌아갔다.
“……을 포함하여 아무것도 없다.”
20년 전, 인류를 위해 존재를 내던졌을 때부터, 그녀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녀는 그저 벽이었고, 시스템이었으며, 현상이었다.
강난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네까짓 게 뭘 알아?”
그래. 과연 미로는 무엇을 아는가?
단지 20년 전 한 남자의 마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저토록 뻔뻔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고통을 겪었으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작 한다는 말이 저런 말밖에 없는 것인가?
‘반드시 데려가 주마. 널 가올드 앞에 꿇어앉힐 거야!’
강난이 땅을 박차고 돌진하는 순간 카리엘이 손을 들었다.
“나와라, 에르그.”
손바닥 앞에 검은 구체가 팽창하면서 1각 마라 에르그가 등장했다.
다른 마라와 다르게 거대한 곤충을 닮은 금속질의 생물이었고, 말처럼 긴 얼굴의 중앙에 하나의 금속렌즈가 박혀 있었다.
놈의 별칭은 모든 원리의 연산장치.
카리엘이 전면 수비에 돌입할 때에 주로 소환하는 마라였다.
키이이이이잉!
에르그의 등에 달린 수십 개의 유리 종에 전기가 흐르면서 수많은 마법진들이 주위에 펼쳐졌다.
무려 420겹이 넘어가는 마법진은 모든 속성에 대해 방어막을 쳤고, 강난 또한 물리 계열의 마법진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꿈꾸지, 어리석은 인간아?”
카리엘은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너희에게 남은 건 신성을 분노케 한 형벌뿐이다.”
카리엘의 손가락이 넓은 창공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