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02
그곳을 바라본 모두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수많은 타락천사들이 하늘을 날아 몰려오고 있었다.
“후폭풍인가?”
여태까지 스톱 마법으로 묶어 두었던 적들이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멈추는 말도 안 되는 능력 덕분에 이토록 빠르게 미로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하지만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세인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마법진을 해제하겠다. 그사이에 적들을 막아 줘. 단, 스톱과 포스메터리는 금지다.”
에르그의 방어막을 파괴한다고 해도 현재 이곳에는 2명의 대천사가 머물고 있다.
미로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마법이라면 스톱과 시공간 새 포스메터리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한 자는 아무도 없었고, 일행은 빠르게 자신이 유리한 위치를 찾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유리엘은 가올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타깝군.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사람에게 또다시 버림을 받았으니 말이야.”
유리엘의 말에는 품격이 있었으나 동정심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유리엘이 인간이 아닌 이유였다.
“크크. 크크크크.”
가올드가 입꼬리를 찢으며 고개를 쳐들었다.
“역시…… 넌 최고다, 미로.”
대천사의 공명을 통해 미로의 말을 들었을 때, 세상 모든 게 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사실일 테지만, 또한 효과적이었다.
“계속 발버둥을 쳐 보려는 건가? 그게 진정 인간인가?”
“넌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쿠쿠쿠쿠쿠쿠쿠!
가올드의 주위에 있는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과 다른, 아니 여태까지 수많은 적들을 일거에 쓸어버린 그 기운이 또다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가올드의 손 앞에 진공상태의 구체가 탄생했다.
이미 근육이 너덜너덜해져서 팔을 휘두를 수도 없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너 같은 게 어찌 알겠어?”
‘위험하다!’
유리엘은 황급히 팔을 들어 극락곤을 눈앞에 휘돌렸다.
빠르게 회전하는 잔상 너머로 보이는 것은 밧줄처럼 늘어진 팔을 휘돌리고 있는 가올드의 귀신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 어찌 알겠는가?
가질 수 없을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통각 1천만 배-바쿰 프레스.
콰아아아아아앙!
수 킬로미터 반경에 걸쳐 찢어진 대기가 천둥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구쳤다.
왔던 길만큼 (3)
‘들어갔다!’
가올드는 확신했다.
손끝에서 짜릿한 바쿰 프레스의 폭발이 일어난 순간 유리엘이 흔들렸다는 감각이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통각 1천만 배가 전달하는 확신이었다.
인근에는 먼지 한 톨 남아 있지 않았지만 대기의 주름만으로도 시야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공기가 바깥으로 퍼지면서 순간적인 진공상태에 빠져 있던 전장에 태풍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후폭풍이 몰려들었다.
공기는 회전하며 모여들었고, 난기류로 돌변하여 수백 개에 달하는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 바람의 움직임 속에서 극락곤으로 몸을 방어한 채 거구를 움츠리고 있는 유리엘이 보였다.
‘정말 인간의 기술인가?’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무위의 우월이 꼭 승부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건 유리엘도 알고 있었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천사조차 예측하지 못한 기술을 지닌 인간이라면 잠시 밀린다고 해도 부끄러울 일은 아닐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미로가 있지만, 가올드는 오직 무위만으로 여기까지 도달했다.
“크으으으!”
가올드는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릿결을 휘날리며 연거푸 돌진해 들어갔다.
바쿰 프레스는 강력한 방어기이기도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 초고밀도 공기압을 폭발시키는 폭탄이 되기도 한다.
“흥미롭군.”
극락곤이 굉음을 내면서 바쿰 프레스와 충돌했다.
마찰열에 공기가 타들어 가면서 마치 폭탄이 터진 듯 거대한 불 구름이 승천했다.
뜨거운 열기는 성벽에 있는 자들에게까지 전해졌고, 에르그의 마법진을 파훼하고 있는 세인은 더욱 초조해졌다.
‘빌어먹을. 죽었을지도 몰라.’
말 그대로 공기가 불로 변했다.
천하의 가올드라도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위력.
세인이 일월광륜을 발동하며 소리쳤다.
“엄호해!”
2개의 톱니바퀴가 에르그에게 침투하면서 세인의 의식이 바깥의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시켰다.
무방비 상태의 세인을 지키기 위해 줄루와 아르민이 도착했다.
슬로 마법의 역장이 펼쳐지고, 줄루의 소환수 쿠거가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타락천사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뿐이었다.
‘이쪽도 오래 버틸 수는 없겠군.’
가올드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고 성벽 위의 전투도 점차 밀려가고 있다.
‘이것이 천사의 능력인가?’
천사와 타락천사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그들의 개념에서 나오는 능력은 마법사의 어떤 것과도 차별화되는 이상성을 지니고 있었다.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적이다요.”
줄루가 쿠거를 지휘하며 말했다.
“시간을 끄는 데 주력하면 된다요. 아직 한 번의 기회는 남아 있으니.”
“가올드가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줄루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불의 거인족 마법사인 우로타스와 싸우고 있는 강난을 바라보았다.
“살고 죽는 게 아니다요. 포기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인 것이지.”
쿵! 쿵! 쿵!
우로타스의 주먹이 땅을 내리찍을 때마다 강난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남은 불의 거인족.
하지만 무려 부군단장이었고, 거인에게는 특이한 마법사였다.
‘불의 인장!’
공격을 멈춘 우로타스가 합장을 하며 마법을 시전하자 강난의 팔뚝에 타오르는 불꽃의 인장이 새겨졌다.
“쳇!”
그 불은 곧바로 실체화되어 타올랐고 강난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로타스의 마법은 인장술.
불의 시선으로 겨눈 곳에 인장을 새겨 지배권을 불태우는 능력이었다.
일단 인장이 새겨지면 마치 신경이 끊어진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다.
적용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것 같지만, 상대가 거인의 완력까지 지닌 마법사임을 생각해 보면 짜증 나는 기술임에 틀림이 없었다.
“일족의 원수를 갚아 주마!”
고집으로만 싸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강난은 유연하게 몸을 뒤틀며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람무아이 특유의 직선적이고 패도적인 공격이 가해지자 우로타스는 황급히 거리를 벌려 다시 인장술을 시전했다.
오른쪽 허벅지에 불이 타오르면서 통제권이 사라지자 강난은 반대쪽 발로 타격하듯 땅을 박찼다.
화살처럼 빠르게 쇄도한 그녀가 채찍처럼 휘는 발 차기로 우로타스의 옆구리를 가격하자 거인의 몸이 밀렸다.
“우오오오!”
우로타스의 눈동자가 불에 이글거리면서 강난의 명치 쪽에 인장이 새겨졌다.
“헉!”
불이 타오르고 주위의 지배권이 일순 타 버리면서 심장이 움찔 정지했다.
우로타스의 주먹이 날아들자 강난은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매일같이 무수히 반복한 끝에 도달할 수 있었던 조건반사적인 움직임.
충격이 가드 위를 뚫고 지나가면서 강난의 의식이 흐려졌다.
“크윽!”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성벽의 발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사람처럼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걸었음에도 그가 도달했던 언저리에조차 머물 수 없다.
“흐읍!”
강난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섰다.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이 자리에 온 것이니까.
“반드시…… 반드시 데려다 놓겠어.”
어느덧 성벽 위의 전투는 절정을 치닫고 있었다.
시이나의 빙결 마법이 마라들을 구속시키면 쿠안이 날아들어 얼어붙은 몸을 베었다.
에텔라는 거대한 마라의 몸에 음양파동권을 퍼부어 폭파시키고 있었고, 줄루와 아르민은 타락천사들의 기괴한 능력을 막아 내느라 가진 모든 기술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인은…… 마침내 1각 마라 에르그의 중앙 연산장치에 도달했다.
수많은 회로가 그물처럼 엉킨 곳을 지나가며 일월광륜으로 모든 연결을 해제해 나갔다.
현실의 마법진들의 빛이 점차 미약해지자 카리엘의 얼굴이 살며시 구겨졌다.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 오래 버티고 있다.
인간을 벌레처럼 하찮게 여긴 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쾌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쓸어버리고 싶지만…….’
하지만 카리엘은 유리엘과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다.
‘훨씬 간단한 해법이 있지.’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은 카리엘은 미로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심어 놓은 마력 억제 마법진을 폭발시키면 얼굴이 통째로 터져 나가게 될 것이다.
미로는 카리엘의 의도를 짐작한 뒤에도 묵묵히 전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타락의 전당 앞은 가올드의 대기압이 만든 크고 작은 크레이터로 울퉁불퉁했고, 유리엘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여지없이 깊은 계곡이 생겨났다.
‘강해졌구나, 가올드.’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린 가올드를 바라보며 미로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가올드는 강하지만 대천사를 이길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원천 개념이다.
1의 파괴도 1,000의 파괴도 아닌, 그저 파괴.
우주는 시작에서 끝으로만 흐르고, 그 원리의 후발 주자에 있는 인간은 선행하는 개념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 나도 그냥 여자야.’
대천사와 무려 1분이 넘게 겨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올드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솔직히, 조금 감동이었어.’
기이이이.
머릿속의 마법진이 기폭을 대기하며 울림을 전하자 미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모두…… 안녕.’
가올드는 허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만두자.’
평생을 살면서 이토록 무언가를 쏟아 낸 적이 있을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음에도 무언가를 이룬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의 성취감이었다.
‘그래, 포기하자.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어.’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어째서 그녀를 잊을 수 없단 말인가? 그저 손바닥 뒤집듯 마음만 바꾸면 될 일이다.
‘다시 협회장이 되어야지. 미로보다 훨씬 좋은 여자를 만날 거야. 엄청난 거부가 될 수 있겠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도 있을 거야. 지긋지긋하다고.’
가올드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끝내는 것이다.
미로만 잊으면…… 세상은 그의 것이 된다.
미로만…….
“흐윽! 흑!”
가올드는 이를 악물었다.
“젠장! 그게 안 되니까……!”
아무것도 필요 없다.
여자도, 부도, 명예도, 심지어는 행복조차도.
“내가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잖아!”
오직 미로.
단 하루만이라도, 아니 1분만이라도 그녀와 웃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데.
“빌어먹을. 어째서 그것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인가?
그 어두운 마음이 다시금 그의 지옥을 태우며 세상을 불길로 뒤덮었다.
“아직도 해보겠다는 건가?”
가올드는 누운 상태 그대로 기립했다.
전신의 신경이 괴물처럼 꿈틀대는 몸으로 상체를 굽힌 그가 바쿰 프레스를 압축시키며 튀어 나갔다.
콰아아아아앙!
피부가 녹을 것 같은 열풍이 몰아치자 미로의 눈이 다시 뜨였다.
카리엘 또한 흥미롭다는 듯 전장을 살폈으나 이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챙! 챙! 챙!
에르그의 마법진이 연쇄적으로 깨지고 세인의 의식이 현실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