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06
퍼퍼퍼퍼퍼퍼펑!
거대한 빛의 섬광이 여덟 방향으로 퍼졌다.
1명의 요정이 피하지 못하고 추락하자 순간 이동의 섬광이 급격히 꺾이며 그곳으로 질주했다.
산탄은 수도 없이 퍼졌고, 순식간에 허공은 포톤 캐논의 섬광으로 얽힌 그물이 되었다.
갈토믹의 마력 증폭이 더해진 포톤 캐논의 위력은 전과 차원이 달라서, 대부분의 요정들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페오페는 수많은 동료들이 추락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73구역에서 일화의 술을 막을 때만 해도 요정들에게 시달렸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력.
특히나 이 자리에 있는 요정들은 당시와 달리 하나같이 72계급의 중간에 위치한 강력한 정신을 가진 요정들이었다.
“따라가! 멈추지 마라!”
동료들이 폭사당하는 와중에도 요정들은 끝없이 날아들었다.
광익을 활짝 펼친 시로네는 현란한 무브먼트로 요정들과 한데 어우러져 공중전을 벌였다.
“이런……!”
요정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미간에 찍힌 붉은 점을 발견하고 이를 악물었다.
시커를 장착한 호밍 포톤 캐논이 쏘아지자 시로네를 둘러싸고 있던 요정들이 일제히 산개했다.
하지만 호밍 포톤 캐논은 집요하게 요정들을 뒤쫓았고, 먼 하늘에서 단말마의 비명 소리와 함께 폭음성이 터졌다.
‘이 많은 숫자의 요정으로도 막아 낼 수 없다고?’
내정부의 보고에 의하면 일화의 술을 저지했을 당시 시로네의 전투력은 65계급 요정 한 부대가 충분히 막아 낼 정도였으나 지금은 40계급대 요정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오히려 전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간다! 아라보트로!’
시로네는 광익을 최대치로 펄럭이며 가속도를 높였다.
정신력이 약한 요정부터 점차 거리가 멀어지더니, 마침내 어느 요정도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한심한 것들.
속도전에서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시로네의 머릿속에 요정의 음성이 퍼졌다.
푸른 섬광을 그리며 날아든 제2계급 미르카가 어느새 앞을 막아섰다.
시로네는 16개의 호밍 포톤 캐논을 띄워 모조리 그녀에게 퍼부었다.
섬광이 휘어지듯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순간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규정외식-진리의 면도날.
미르카의 주위에 실빛처럼 가느다란 칼날들이 엄청난 속도로 반짝이더니 호밍 포톤 캐논이 모조리 처박혔다.
퍼퍼퍼퍼퍼퍼펑!
시로네는 광익을 세우고 급격히 몸을 정지시켰다.
‘이건……?’
충격을 조금도 받지 않은 듯 미르카가 여전히 손을 내민 채로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막아 낸 게 아니야. 어떤 능력이다.’
요정의 내구력은 절대로 강하지 않다.
설령 제2계급이라도 마력 증폭으로 강력해진 포톤 캐논 열여섯 발을 맞고서 온전히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것으로 명확히 정해졌다.”
혼란스러워하는 시로네를 쳐다보던 미르카가 근엄하게 말했다.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는 변수는 절대로 없느니라.”
직지直指 (2)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시로네는 미르카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포톤 캐논에 직격을 당하고도 멀쩡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요정의 규정외식을 구사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의 말도 단순한 허세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었다.
‘대체 뭐지?’
시로네는 다시 한 번 호밍 포톤 캐논을 날렸다.
예상대로 미르카는 피하지 않았고, 포톤 캐논은 강력한 충격음을 내며 폭발했다.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미르카의 모습에 시로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막아 낸 것이 아니다.
아예 공격 자체에 면역이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버틸 수 있을까?”
시로네는 마력 증폭으로 더욱 강력해진 레이저를 쏘았다.
제아무리 내구력이 높은 물질이라도 분자 진동을 일으키는 레이저를 영원히 막아 낼 수는 없지만, 이번에도 미르카는 조금의 흔들림 없이 그저 마법을 받아 내고 있었다.
그제야 시로네는 공격을 멈췄다.
‘난감하다.’
어떤 발동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르카의 규정외식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능력이었다.
“무적……이라는 건가?”
미르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너는 나보다 약하기에,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니라.”
미르카의 규정외식 진리의 면도날은 명백한 살의가 담긴 상대의 공격을 최초에 받아 내는 것으로 발동된다.
능력이 발동되면 두 대상의 강함에 대한 비교 우위의 판정이 시작되고, 거기에서 승리했을 시 상대의 어떤 공격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무적 상태가 된다.
비교 우위의 판정은 계측 가능한 수치가 아닌 화신의 존재성에 기인하며, 진리의 면도날이 전투에서 벌어질 수 있는 변칙과 변수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기 때문에 무적 상태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전에서는 이긴 자가 강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미르카의 규정외식은 전투 중의 변수를 모조리 제거하여 순수한 강함, 즉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뒤틀어 버린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었다.
이 강력한 개념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대가가 등가교환이 되어야 하는데, 미르카의 시선 밖으로 벗어나면 판정은 취소되고 설령 시선 안에 가두어 두더라도 유지 시간은 고작해야 30분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리스크가 극심한 대가라면 역시나 명백한 살의가 담긴 최초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 있었다.
만약 비교 우위의 판정에서 미르카가 패했을 시에는 공격에 당하는 것은 물론 진리의 면도날이 역으로 발동되어 오히려 상대가 자신에 대해 무적 상태가 되어 버린다.
즉, 순수한 화신의 힘에서 밀리는 적을 만났을 시에는 거의 100퍼센트에 준하는 사망 및 패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적이라는 극단적인 상태를 구현하기 위한 등가교환으로는 꽤나 밸런스가 맞는 치명적인 조건.
하지만 미르카는 자신의 능력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요정 제72계급의 서열 3위였다.
“시작해 볼까?”
미르카는 거칠 것 없이 시로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규정외식-복종의 율법.
진리의 면도날과 연계되는 또 하나의 규정외식이 발동되었다.
미르카가 빠른 속도로 시로네의 명치로 파고들자 퍽 소리를 내며 엄청난 충격이 몸에 퍼졌다.
‘어떻게?’
시로네는 숨조차 쉬기 힘든 와중에도 의구심이 들었다.
갑식광물종 링거의 스킨이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요정의 위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물리력이었다.
‘이것도 능력이구나.’
시로네의 예상은 정확했다.
진리의 면도날에서 미르카가 비교 우위를 점했을 시 발동되는 복종의 율법은 상대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반작용으로 발생하는 힘까지 모조리 밀어낼 수 있다.
즉, 크리티컬 2배의 히트라는 것으로, 절대 무적 상태인 미르카의 육탄 공격이라면 맨몸 상태나 마찬가지인 시로네가 버틸 수 있는 충격이 아니었다.
미르카는 계속해서 시로네에게 육탄 공격을 가했다.
시로네를 상대하는 한 그녀의 육체는 무적이기에 공격은 거칠 게 없었다.
묵직한 바위에 얻어맞는 충격을 받으며 시로네의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길 수 없다.
경험상 수많은 규정외식을 접해 왔기에, 파훼법이라 예상되는 다양한 선택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중에는 시야 밖으로 벗어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정답도 있었으나,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무려 제72계급 중에서 제2계급에 위치한 요정이다.
살아온 세월부터가 다른 요정의 화신을 뛰어넘는 강함이 없다면 애당초 진리의 면도날은 이길 수가 없는 능력이었다.
미르카가 시로네의 발을 묶어 두자 수많은 요정들이 따라와 갖은 마법을 퍼부었다.
미르카의 공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충격은 아르망이 막아 냈으나 계속되는 연타에는 어떤 방어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규정외식이 문제야.’
전투 중에 일어나는 변수를 원천 봉쇄하는 능력이라니.
강력한 통찰력과 임기응변으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뜨려 왔던 시로네에게는 가히 천적에 가까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끝이다.”
미르카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시로네의 배에 육탄 공격을 가했다.
“컥!”
복근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창공이 테두리부터 어두워지더니 시야의 3분의 2가 암흑으로 변했다.
“지금이다! 전부 퍼부어!”
술자의 의식과 공명하는 아르망이기에 시로네의 의식이 약해질수록 기능은 떨어지기 마련.
촉수가 물먹은 풀처럼 늘어지는 것을 확인한 요정들이 모조리 마법을 퍼부었다.
완벽하게 의식을 끊어 놓을 생각이었고, 지상에 추락하기도 전에 생명은 꺼지고 말 것이다.
요정들의 총공격이 좁아진 시야를 통해 들어왔다.
난무하는 오색찬란한 마법을 바라보며 시로네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냈다.
사법 광륜-발할라 액션.
광륜이 회전하면서 순식간에 한 가지의 마법을 연산했다.
사법 광륜-초마력 증폭진 아타락시아.
거대한 광륜이 전방에 펼쳐지자 시로네를 향하고 있던 요정들이 충격에 머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유일하게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건 이미 무적 상태가 되어 있는 미르카뿐이었다.
“이런…….”
탄생과 동시에 집적된 아타락시아를 본 그녀가 사방의 요정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피해라!”
포톤 캐논이 아타락시아를 통과하면서 무지막지한 대형 섬광이 창공을 완전히 가득 메웠다.
그 위력에 쏟아지던 마법들이 모조리 쓸려 나가고, 반경 내에 갇혀 있던 요정들이 불꽃에 타 버린 파리들처럼 순식간에 증발했다.
“크윽!”
섬광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미르카를 제외한 어떤 요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르카는 시야에서 사라진 시로네를 찾아 시선을 돌리다가 체념하고 이를 악물었다.
대천사 이카엘의 전매특허인 아타락시아.
무적 상태라는 걸 알면서도 차마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고 기다렸던 것은 능력이 아닌 정신의 시작 지점에 위치한 본능적인 공포 때문이었으리라.
‘살아 있을 리가 없어. 이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찾아라. 놈의 시체를 토막 내기 전까지는 절대로 수색을 멈추지 마.”
미르카의 지시에 생존한 모든 요정들이 지상으로 쇄도했다.
현재 비행하고 있는 곳이 셰하킴에서 가장 험난하기로 이름난 고래의 골짜기라는 게 더욱 짜증 났다.
‘확실히 끝장을 냈어야 했는데.’
요정 서열 3위의 체면이 이만저만 상한 게 아니었다.
어쨌거나 지난 일이기에 미르카는 곧바로 미련을 접고 부하 요정들을 따라 골짜기로 빠르게 비행했다.
‘정신 차리자. 의식을 잃으면 안 돼.’
골짜기 아래로 추락하면서, 시로네는 사력을 다해 정신을 지탱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빈사 상태나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 낸 가히 가공할 집중력이었다.
의식만 유지된다면 추락하더라도 아르망이 어느 정도 회복을 시켜 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신이 끊어지면 그 이후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쿵! 쿵!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둔탁한 충격이 시로네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골짜기의 절벽에 충돌한 시로네는 튕겨 나가 반대쪽 벽에 또다시 머리를 박고 떨어졌다.
눈을 감은 채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시로네.
지상까지는 불과 500미터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진다면 목이 부러질 것은 자명한 일.
그때 계곡의 날카로운 바위틈을 유려하게 피해 나가며 1명의 요정이 무서운 속도로 시로네에게 날아갔다.
나선의 요정 페오페였다.
“이이이익!”
시로네의 로브를 붙잡고 사력을 다해 끌어 올렸으나 추락의 관성력은 너무나 강했다.
나선의 마법을 이용해서 낙하력을 분산시켜 보았지만 속도를 줄이는 게 전부였다.
“흐으으윽!”
어깨뼈가 빠지는 고통을 느끼며 페오페는 이를 악물었다.
쿵!
시로네가 지상에 추락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녀는 시로네에게 날아갔다.
“시로네! 시로네!”
의식을 잃은 채 움직임이 없자 덜컥 겁이 난 페오페는 황급히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다.
두근두근.
미약하게 심장이 뛰고 있다.
조만간 이것조차 멈출 테지만 그래도 일말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다른 요정들이 고래의 골짜기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면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로브를 붙잡고 주변을 살핀 페오페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동굴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시로네를 잡아끌었다.
“후우, 당분간은 괜찮겠지.”
땀을 닦은 페오페는 죽은 듯 잠에 빠진 시로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가 여기까지 추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타락시아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시로네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알아 버렸다.
“당연하지.”
페오페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친구니까.”
사실은 내정부보다 시로네를 선택하고 싶었던 마음을 그는 알고 있을까?
천대받던 요정 72계급의 막내에서 순식간에 중진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택해야 했던 마음을 그는 이해해 줄까?
“시로네, 나는…….”
할 말을 고르는 페오페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