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08
요정들이 일제히 긴장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비록 미르카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수많은 요정들을 격추시킨 실력자였다.
하지만 이미 시로네와의 승부에 변수가 없음을 알고 있는 미르카는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 무기를 가졌구나. 덕분에 같잖은 실력으로 여기까지 활약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무기를 벗은 너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화신의 강함에서 압도했으니 상대가 어떤 기술을 구사하든, 얼마나 다양한 기능을 가졌든 상관이 없는 일이다.
변수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면도날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시로네는 대꾸 없이 페오페를 아르망의 로브에 넣었다.
심장 근처에 주머니를 만든 다음 링거의 광물질로 안전하게 보호했다.
최대한 빨리 이카엘에게 가려면 아무래도 치열한 싸움을 거쳐야 할 테니까.
시로네의 행동에서 항복의 의사가 없음을 깨달은 미르카가 분노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죽여라. 천국을 능멸한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라.”
사방에 대기하고 있던 요정들이 시로네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동시에 시로네의 눈이 전방을 향해 치떠졌다.
속성조차 확인할 수 없는 마법들이 사방에서 빗발치고 요정들은 폭풍 속을 휘몰아치듯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시로네는 그 모든 것을 무시했다.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 모든 것이 보이는 법.
시로네의 직지가 발동되면서 스피릿 존의 경계선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최상급 정의 존재인 미르카가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했다.
“저건……?”
스피릿 존의 존재감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급기야는 완전히 세상에 녹아들면서 경계선이 사라졌다.
콰콰콰콰콰콰콰!
시로네가 눈을 부릅뜨자 수십 발의 포톤 캐논이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사선으로 내리꽂혔다.
시로네가 허공에서 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각도였다.
예상치도 못한 패턴의 공격에 측면에서 달려들던 요정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섬광의 폭포에 쓸려 바닥에 내리꽂혔다.
“뭐지? 어떻게 마법을……!”
시로네는 사방팔방에서 포톤 캐논을 만들어 쏘아 보냈다.
섬광의 폭주가 그물처럼 얽히면서 요정들을 무차별로 폭격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요정들은 마법의 시작점을 찾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필 뿐이었다.
마법이 구현되는 중심점이 없다.
세상과 동화된 시로네의 정신은 완벽한 전능의 상태를 이루었고, 다발로 묶인 포톤 캐논들이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는 멸치 떼처럼 급격히 방향을 선회하며 적들을 쓸어 담았다.
“크으윽!”
미르카는 황급히 몸을 피해 반경 밖으로 벗어났다.
시로네를 제압하려던 1차 부대가 모조리 전멸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고대의 기록이었다.
“이건 가이아인의…….”
울티마 시스템을 구사하는 자들의 스피릿 존, ‘엘리시온’이 유구한 세월을 뛰어넘어 부활했다.
직지直指 (4)
“어차피 인간이다!”
미르카는 시로네의 스피릿 존이 엘리시온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앙케 라가 두려워했고 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신화 속의 인류, 가이아.
하지만 그들은 결국 전쟁에서 패해 세상을 이탈하지 않았는가?
단편적인 기록 외에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던 그들의 능력이 이 순간 갑자기 부활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인간 따위가 엘리시온을 구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어설픈 흉내를 내는구나.”
미르카의 말에 반박하듯 시로네가 눈을 부릅뜨며 포톤 캐논을 시전했다.
지척에서 튀어나오는 섬광에 그녀는 규정외식을 시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확실히 위험하다.’
이모탈 펑션이 무한이라면 엘리시온은 무형이다.
외부와 완벽하게 통합되어 버린 정신은 울티마 시스템으로 감지되는 모든 정보를 자신의 것처럼 다룬다.
마치 시로네가 구사하는 스피릿 존과 고대의 마법이 합쳐진 것과 유사한 것으로, 미르카는 시로네라는 특정 개인이 아닌 시스템과 싸우고 있는 격이었다.
개성을 지닌 모든 존재에게 울티마 시스템의 직지는 너무나도 생소한 현상이었다.
그 완전히 다른 전투 체계는 요정들을 혼란으로 빠트렸고 엘리시온에 적응이 된 시로네의 마법은 더욱 강력한 파괴력으로 사방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서 막아야 한다.’
불과 10초 만에 7명의 요정이 소멸하는 것을 지켜본 미르카는 비로소 마음을 다잡았다.
시로네가 구사하는 것이 엘리시온이든 그것을 모방한 것이든, 어쨌거나 능력 자체는 진짜였다.
“모두 나를 따르라!”
미르카가 선두에 나서서 비행하자 시로네 또한 등 뒤에서 포톤 캐논을 날려 마치 두 주먹으로 연타를 휘두르듯 섬광을 퍼부었다.
동시에 미르카의 규정외식 진리의 면도날이 발동되었다.
그녀의 주위에 섬뜩한 백인이 반짝거리고 질량을 담은 광자가 몸을 강타했다.
콰콰콰콰콰콰쾅!
규정외식의 능력을 아는 모든 요정들이 잠시 전투를 멈추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시로네 또한 매서운 눈초리로 미르카를 살폈다.
“후, 후후후.”
멀쩡한 상태의 미르카가 손을 내민 채로 웃고 있었다.
요정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할 정도였기에 여전히 화신의 힘은 그녀가 우위.
하지만 긴장은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의 미소는 심각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내가 이겼다.”
어쨌거나 규정외식이 발동한 이상 시로네에게는 무적.
또 다른 규정외식 복종의 율법을 발동한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쳇!”
시로네는 광익을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모든 요정들이 수직으로 솟구치면서 순식간에 고래의 골짜기를 벗어나 창공에 돌입했다.
“잡아라! 붙잡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다.”
시로네의 시야에 요정들의 수많은 마법들이 빗발쳤다.
가시적, 비가시적, 물질적, 현상적, 요정의 탄생 개념에 따라 종류는 다양했으나 시로네는 어느 하나에 미련을 두지 않고 그저 똑바로 바라보았다.
엘리시온은 모든 정보를 일차원적으로 통합시켜 전달했고 아르망의 강력한 기능이 시로네의 반사 신경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렸다.
“이럴 수가…….”
사각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다수의 포화를 회피하는 시로네의 무브먼트는 기본적으로 비행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요정들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밀리미터 단위의 오차까지 계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마법의 화망을 빠져나온 시로네가 반격을 시작했다.
아카마이의 눈동자가 타깃을 붙잡으면 곧바로 사방에서 포톤 캐논이 날아들어 집중 타격을 가했다.
안티테제의 포커스가 요정과 요정 사이를 빠르게 건너뛸 때마다 여지없이 요정들이 추락했다.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미르카가 분노의 일갈을 내지르며 날아들자 시로네 또한 공격을 멈추고 그녀를 주시했다.
‘침착하자. 생각을 하는 거야.’
미르카가 무적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로네였으나 전과 달리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모든 규정외식에는 발동 조건과 대가가 수반된다.
‘단지 첫 번째 공격을 막아 낸 정도로 무적이 될 수는 없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시간적 제약.
무적 상태를 영구히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장점이 너무나도 강력하기에 시로네는 오히려 판단을 내리기 쉬웠다.
‘공간적 제약.’
결론을 내린 시로네는 쇄도하는 미르카를 피해 급격히 각도를 틀었다.
사력을 다해 시로네를 시선으로 쫓으려는 미르카의 반응을 확인한 그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졌다.
‘그렇구나. 시야에…….’
광익의 기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현란한 무브먼트로 미르카를 교란시켰다.
“흥! 생각은 좋다만…….”
여태까지 진리의 면도날을 깨 보려는 적들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것은 변수를 제거한다는 능력에만 초점을 맞춘 착각에 불과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미르카가 어째서 이런 능력을 얻었는지 알 수 있다.
수많은 요정 중의 서열 3위.
미르카는 본래부터 강한 요정이었고, 규정외식은 그 강함을 100퍼센트 유지하는 데에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했다.
“감히 날 따돌려 보겠다고?”
미르카의 몸이 빛으로 변해 시로네를 뒤쫓았다.
가히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한 그녀는 복종의 율법에 걸린 시로네의 몸을 꿰뚫을 생각으로 가속도를 높였다.
펑! 소리가 터지면서 시로네를 관통해 지나간 미르카의 눈이 충격에 휩싸였다.
“뭐지?”
시로네가 갑자기 사라졌다.
좌표의 이동이 아닌, 말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바람이 베이는 소리에 미르카는 황급히 옆을 돌아보았다. 시로네의 촉수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야에서 놓친 이상 규정외식은 초기화.
이를 앙다문 미르카는 황급히 상체를 젖혔다.
크윽! 풍압만으로 그녀의 몸이 수 미터를 밀려났다.
시로네는 촉수를 휘두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계하여 포톤 캐논을 퍼부었다.
빛으로 변하여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피하는 와중에도 미르카의 머릿속에서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시야 밖으로 벗어난 것일까?
“진리의 면도날!”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그녀가 다시 규정외식을 발동했다.
포톤 캐논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다시 무적 상태를 깨달은 그녀는 시로네를 노려보았다.
발할라 액션.
시로네의 등 뒤에 펼쳐진 타락천사의 마법진을 본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아차……!’
원인과 결과의 역전.
특정 좌표에 이미 도달한 상태로 시간을 뒤집어 버린다면 그녀로서는 시로네를 시야에 가두어 둘 수가 없었다.
‘이것으로 규정외식에는 당하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큰 공격은 자제해야 돼.’
다만 시로네도 인과를 역전시킨 대가로 행동의 딜레이라는 제약이 있었다.
미르카가 규정외식을 발동하려면 반드시 한 번은 공격을 당해야 하고, 시로네 또한 딜레이 계산을 잘못하면 물리게 된다.
서로 간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이것으로 규정외식의 무지막지한 강점은 파괴되고 힘의 균형이 맞춰졌다고 할 수 있었다.
시로네는 요정 부대의 무리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일 대 다수의 전투였지만 승기는 점차 시로네에게 기울고 있었다.
엘리시온의 무형에서 나오는 마법들은 적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착실하게 적들을 해치웠고, 마침내 필살의 레이저망이 펼쳐졌다.
중심점이 없기에 가능한 붉은 선의 그물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요정들의 동선을 방해했다.
호밍 포톤 캐논이 그물의 사이사이를 빠져나가 적들을 폭사시킬 때마다 비명 소리가 창공을 울렸다.
“이 하찮은 인간이!”
미르카가 진리의 면도날을 시전하는 것과 동시에 여지없이 발할라 액션이 발동하면서 시로네의 모습이 사라졌다.
‘찾아야 한다!’
미르카는 고개가 부러지도록 주위를 살폈다.
시로네의 딜레이가 끝나기 전에 찾아낼 수만 있다면 자신의 승리였다.
‘응?’
등 뒤로 몸을 돌린 그녀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예상과 달리 시로네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회전하며 촉수를 휘두르는 모습은 패도적이었으나 미르카의 실력으로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리석은 인간. 초조함에 무리수를 던진 것인가?’
미르카는 비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규정외식으로 막아 내기만 하면 시로네는 완벽한 무방비 상태.
“컥!”
하지만 능력을 발동하기 직전 미르카는 강력한 구속력을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측면에서 인공두뇌 외에 박힌 아카마이의 눈동자가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발할라 액션의 장점은 연계되는 모든 사건의 인과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
즉, 미르카의 측면에 외를 띄워 두고 다시 그녀의 후미로 돌아가 공격을 하는 두 가지 결과를 동시에 앞당긴 것이다.
그만큼 딜레이는 길어지지만 팽팽한 힘의 균형을 깨기 위해 만들어 낸 시로네만의 변수였다.
‘절대적인 결과는 없다는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했을 때 퍽 하는 소리가 미르카의 머리를 울렸다.
머리가 부서진 그녀는 먼 하늘을 향해 날아갔고, 관성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미르카 님!”
하늘에 떠 있는 모든 요정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했다.
요정 72계급 중에서 제2계급에 속하는 고귀한 정신체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소멸하다니.
종족의 자부심이 짓밟힌 분노가 치솟으면서 모든 요정들이 달려들었다.
“흐으으으!”
시로네는 인상을 찡그리며 딜레이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두 가지의 사건을 역전시켰기 때문에 대기하는 시간은 평소보다 훨씬 길었다.
마침내 딜레이가 풀렸을 때에는 이미 수많은 마법들이 자신을 향해 쇄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할 수밖에 없어.’
성향에 맞는 방식은 결코 아니었지만 지금은 전시 상황. 승리를 위해서는 때로는 난폭함도 필요한 법이다.
시로네는 엘리시온의 정신력을 통해 자신의 장기 중의 하나인 광폭을 시전했다.
다만 그 광폭은 여태까지 그가 선보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질이었다.
말 그대로 광폭의 다중 폭발.
중심점이 없는 엘리시온의 특성상 수많은 장소에서 광폭이 폭발했다.
단순히 무언가를 튕겨 내는 데에 그쳤던 것이 기존의 광폭이라면 이번에는 사방에서 빛의 장막이 몰아쳐서 압사시키는 방식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꺄아아아아악!”
엘리시온의 영향권에 갇힌 모든 요정들이 참혹한 비명을 내질렀다.
장막과 장막의 틈 사이에 끼인 작은 몸에서는 으드득으드득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봤을 때는 맑은 하늘에 난데없이 뇌전이 몰아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직경 30미터짜리의 빛의 구체들이 저마다 번쩍거리면 마치 감전된 듯 요정들이 몸을 떨면서 우수수 추락했다.
엘리시온에서만 발휘되는 광폭의 시전이 끝나자 창공은 다시 푸른 상태로 고요했다.
요정 부대는 전멸했고, 홀로 허공에 떠 있던 시로네는 더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