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11
그 정도가 아니고서는 미로를 탈환할 수 없었고, 강난은 자신의 2인자로서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강난은 가올드의 품속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겪어야 했던 설움이 북받쳐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가올드에게 들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저씨, 나 이번에 결심한 게 하나 있어.”
강난이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쳐들자 가올드 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뭐냐?”
강난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여자가 될 거야.”
천국의 밤 (3)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고?”
라키아 타락의 전당 지하.
회상에서 벗어난 강난은 눈을 들었다.
타락천사 마우리엘의 수하, 1각 마라 토르코가 역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곧 있을 끔찍한 고문에 대한 각오인가? 하지만 생각을 차단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터.”
토르코가 강난의 멱살을 잡아당기자 찍 소리가 나며 옷이 뜯어졌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노예. 너의 시간을 길이로 펼친다면 정확히 18시간이 남았다. 오직 고통과 소멸만이 기다리는 시간인 것이지.”
토르코는 현실을 주지시키고 싶었으나 강난의 머릿속에서 이미 시간은 흐르지 않고 있었다.
“가올드는 오지 않아.”
여기가 끝이다. 그렇기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든 이미 끝난 것이다.
“크크크, 그렇다면 너에게 남은 건 처절한 비명뿐이다.”
강난이 마지막까지 비웃음으로 응수하자 토르코의 얼굴에서 비로소 표정이랄 것이 사라졌다.
“간만에 재밌는 재료를 얻었어.”
천천히 물러선 토르코가 두 손을 내밀자 그의 무구인 두 갈래 채찍이 양손에 쥐였다.
“일단, 고기부터 다져 놓아야겠지.”
말이 끝나자마자 토르코의 양손이 번갈아 휘둘렸다.
채찍이 후려칠 때마다 강난은 피부가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프다.’
그 고통은 신경을 타고 뇌로 들어가 새로운 정신적 아픔으로 승화되어 퍼졌다.
‘아프다.’
통증의 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더더욱 아련해지는 감정.
‘언제나 이렇게 아팠겠지.’
숨을 쉬는 것조차 유리 가루를 들이마시는 것 같고,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못 위를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올드는 모든 걸 버티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므로 자신도 참아 낼 수 있다.
‘비명 따위는, 지르지 않아.’
매서운 채찍질이 뺨을 후려칠 때마다 강난의 머릿속에서는 가올드와 함께했던 시간이 뇌전처럼 떠올랐다.
***
“해가 지는군.”
세인은 숲 밖으로 날이 어두워지는 것을 확인하고 가올드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엄지를 갉아 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접근하는 모든 것을 죽일 만큼 흉흉했지만 세인으로서도 더는 양보할 수 없었다.
“결정해라, 가올드. 어떻게 할 거냐?”
딱 하고 이빨이 맞물리는 것으로 가올드의 자해가 멈췄다.
이곳의 누구도 강난이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에 와서 깨달은 것은, 가올드 스스로도 그녀가 자신에게 주었던 것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직 미로.
멈춰 버린 시계를 돌리는 데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기에 단 한 번도 뒤에 누가 따라오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심하기는.’
미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바위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무릎에 걸친 왼쪽 다리가 까닥까닥 흔들리면서 그녀의 불만스러운 심경을 대변했다.
주인의 심기가 곱지 않자 아리우스가 그녀에게 엉금엉금 기어가 흔들리는 발을 머리로 받았다.
낑낑 소리를 내며 맨발에 묻은 흙을 볼로 쓸어내린 다음 그녀의 발가락을 입에 물고 쪽쪽 빨아 대기 시작했다.
아리우스가 인간이라면 미로는 신이고, 미로가 인간이라면 아리우스는 인간 이하의 무엇이다.
그 상대적 위상은 변하지 않기에, 미로는 그저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가 짜증 난 듯 입에 물린 발가락을 빼고 아리우스의 얼굴을 걷어찼다.
“낑! 낑!”
아리우스가 서운한 표정으로 바닥을 뒹굴든지 말든지, 벌떡 일어난 미로가 성큼성큼 가올드에게 다가갔다.
“야! 확실히 해! 나야, 그 여자야? 짜증 나서 못 봐 주겠네!”
미로의 정신 속에서는 천국과 인류에 대한 거대한 지도가 그려지고 있지만 조금 인간적인 측면으로 내려와 본다면 가올드의 우유부단함에 자존심이 상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가올드가 자신을 선택한다고 해서 그를 받아 줄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두 여자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 황당한 것이다.
가올드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미로를 올려다보았다.
그토록 원했던, 인생 전부를 걸었던 여자가 눈앞에 있고 미로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일까.
맹목적으로 미로를 향해 뛰어야 할 심장이 강난을 생각할 때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은 짐작이 가.”
가올드의 반응을 보고 미로는 확신을 가졌다.
“수많은 고통 속에서 단련했겠지. 20년 동안 오직 나만 바라보며 여기까지 도달한 세월이었을 거야.”
가올드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목숨보다 간절했던 여자가 자신의 수고를 알아준다는 것은 너무나 벅찬 감동이었지만, 비로소 깨달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잖아?”
미로는 마지막 순간 마주했던 강난의 눈빛을 떠올렸다.
“네가 나만 바라보며 달리는 동안, 그 아이는 너의 등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을.”
가올드는 미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처음일 것이다.
강난이 그의 앞에 서 있는 순간이.
“너희 둘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간다.”
가올드가 미로의 말을 끊으며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정확히는 그의 입술에 집중되었다.
“똥개를 구하러 간다.”
가올드의 판단에 이견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의 싸움이었으니까.
다만 그 주체인 미로의 표정에는 언뜻 서운한 빛이 스쳐 갔다.
강난을 되찾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미로의 죽음.
이미 각오했기에 두려울 것은 없지만, 막상 가올드가 이렇게 결정을 내려 버리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묘한 질투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인간적인 감정은 거대한 정신에 스며들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고, 그녀는 다시 홀가분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가자. 나를 보내고 그 아이를 되찾으면…….”
“아니. 가는 건 나 혼자야.”
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혼자? 뭘 어쩌려고?”
“말했잖아, 똥개를 되찾는다고.”
“하지만 미로가 없이는…….”
세인은 그제야 깨달은 듯 말을 멈췄다.
“너, 설마?”
가올드는 끝을 낼 생각이었다.
죽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것을 이루었기에 되새길 수 있는 각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가올드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
“최후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미로는 죽어서는 안 돼.”
거대한 가올드의 감정 앞에 모든 걸 양보했을 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게 세인이었다.
“흥, 너 하나 때문에 생긴 인류의 혼란에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끼는 거냐?”
“아니.”
고개를 돌린 가올드가 조롱의 웃음기를 드러냈다.
“알 게 뭐야, 그딴 거? 난 그냥 강난을 만나러 가는 것뿐이야. 나머지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
신에서 미로로, 그리고 이제는 강난으로.
오직 앞을 향해 달릴 줄 밖에 모르는 인간, 어쩌면 그것이 가올드라고 미로는 생각했다.
‘그래. 그래서 내가…….’
가올드가 숲을 벗어나는 것을 아련하게 바라보던 미로가 말했다.
“야, 이렇게까지 해 놓고 작별 인사도 안 하냐?”
가올드는 돌아보는 대신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걷어 냈다.
“그건 돌아와서 하자. 내가 한 번 예약해 둔 거야.”
작별 인사에 대한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미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직접 입으로 내뱉은 말이었으니 번복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건 그때 봐서. 오지五肢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크크크.”
가올드는 어깨를 들썩이며 숲속으로 사라졌다.
‘강해졌구나, 가올드. 정말로 강해졌어.’
여전히 외골수에 짜증 나리만치 답답하지만 그는 정말로 도달했다.
자신과 당당히 눈을 마주칠 정도의 남자가 된 것이다.
‘안녕, 가올드.’
세인을 향해 돌아선 미로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돼.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류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달라질 테니까.”
세인이 말했다.
“너는 어떡할 거지? 스톱으로 폭발을 막았지만 대천사 중에서는 마법을 해제할 정도의 능력이 있는 자가 있을 수도 있어.”
파괴의 대천사 유리엘의 사법 광륜을 보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이카엘의 아타락시아도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지만 라그나로크 또한 그에 못지않은 이상성을 지닌 능력이었다.
전신을 파괴의 개념으로 둘러 육탄 공격을 가한다.
원천 개념은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일단 라그나로크가 발동되면 유리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미로가 턱을 괴고 말했다.
“스톱 마법을 풀 수 있는 건 빛의 대천사 레이엘일 거야. 놈의 사법 광륜은 광속을 구현할 수 있을 테니까. 스톱이 풀리면 내 머리는 날아가는 거지.”
아르민이 말했다.
“광속을 구사한다면 제 시간 역장에 갇히지 않겠죠. 하지만 마법을 해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예요. 아마도 쉽게 파훼하지는 못할 겁니다.”
세인이 물었다.
“마법이 해제되기까지 대략 어느 정도 짐작하지?”
“대천사의 능력이라면 아마도…….”
아르민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5분 정도 걸릴 겁니다.”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해. 이제부터는 내가 해 볼게. 너희들은 각자의 작전에 신경 써.”
“어떡하려고?”
“아리우스.”
미로가 부르자 아리우스가 마치 꼬리가 달린 것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다가왔다.
“멍청한 짓은 그만해라. 이제부터 너에게 언어를 허한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리우스가 한쪽 무릎을 굽히며 앉았다.
“아리우스. 주인의 명을 받듭니다.”
“내 머리에 도어가 설치되어 있겠지. 다시 한 번 모태 의식으로 들어가라. 두 번은 쉬울 거 아냐.”
“그렇기는 합니다만…… 제 능력으로는 대천사의 마법진까지 해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건 신경 쓸 필요 없어. 마법진은 내가 제거한다.”
미로가 작전을 설명했다.
“카리엘의 마법진이 대뇌 회로를 차단해 집중을 막고 있다. 그러니 네가 내 신경이 되는 거야. 마법진을 우회하는 루트로 내 신경을 연결해. 스피릿 존에 들어가는 즉시 내가 스케일 마법으로 마법진을 무한히 축소시킨다. 폭발은 막을 수 없지만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이것이 바로 스케일 마법의 무서움이었다.
상대적 크기를 극대화시켜 버리면 온갖 지성이 만들어 낸 사유가 무의미하다.
세인이 생각하기에도 탁월한 판단이었다.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스톱이 풀려 버리면 너는 죽어.”
“그러니 빨리해야지. 일단 아리우스가 의식에 들어가기만 하면 거기서부터는 현실의 시간과 달라져. 5분. 충분히 가능할 거야.”
“그래, 너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지. 조심해라.”
천하의 미로를 두고 걱정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가자, 아리우스.”
주인의 생각을 읽은 아리우스가 플리커 마법을 시전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미로를 이동시켰다.
그렇게 가올드와 미로를 보낸 세인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끝낼 전략을 생각했다.
미로 탈환이라는 1차 목표가 절반이나마 성공하자 드는 생각은 천국에 오기 전에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였다.
‘전쟁이 발발했음에도 천사들의 움직임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제2천에서 유리엘과 카리엘의 방해를 받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타락천사들과 마라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평천사를 제외하고 전쟁을 치른다는 건, 천국의 입장에서 두 팔을 묶고 싸우는 것과 같은 것.
‘분명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체 어디에서 움직이는 거지? 천국인가? 아니면 인류 쪽?’
어쨌거나 평천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반군의 입장에서 호기였다.
‘특별한 연락이 없다면 시로네는 정오까지는 신의 징벌을 발동할 것이다. 지금의 호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지.’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내일이면 전쟁은 끝난다.
천국의 밤 (4)
“불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