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12
유리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빛의 대천사 레이엘에게 카리엘에게 걸린 스톱 마법을 풀어 달라고 제안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놀랍게도 거절이었다.
“어째서? 너의 능력이라면 멈춘 시간을 되돌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레이엘의 원천 개념은 빛.
전자기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는 천국 최고의 속도광이었다.
“힘의 논리라고 해야 할까?”
레이엘은 다른 3명의 대천사와 함께 이카엘과 충돌했던 사건을 전했다.
“라는 천사들의 활동을 금지시켰고 천사장 이카엘은 라의 뜻을 따른다. 그런 이유로, 카리엘을 풀어 줄 수는 없어.”
이카엘이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면 유리엘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백경을 발동하겠다.”
천국 최고의 집행기관 백경.
풍경이 사라지고 백색의 공간이 들어차면서 대천사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톱 마법에 걸린 카리엘은 당연히 오지 못했고, 이번에는 소멸의 대천사 파이엘도 불참했다.
천국 최고의 권위, 증폭의 대천사 이카엘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른 대천사들은 모르지 않았다.
“유리엘, 백경을 발동한 이유는?”
4대력의 대천사를 힘의 논리로 설득시킨 이카엘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권위적이었다.
“카리엘이 인간의 마법에 당했습니다. 전시 상황인 만큼 레이엘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이카엘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허락한다.”
대천사들의 시선이 동시에 이카엘에게 쏠렸다.
“괜찮겠습니까? 카리엘의 반역은 결과적으로 천국의 힘을 분산시켰습니다.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가 우선이다.”
대천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라에 의해 평천사의 활동이 금지되고, 인간들의 저항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물론 여전히 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조차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째서 라는 천사의 활동을 금지시킨 것인가?’
원천 개념을 다루는 대천사들조차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미르카가 사망했어.”
결합의 대천사 메티엘이 말했다.
금사처럼 가느다란 머리를 좌우로 늘어뜨린 그녀는 그 아름다운 얼굴이 만들어 낼 수 없을 것 같은 분노의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로네, 네피림의 짓이다.”
한 소년의 이름이 등장하자 이카엘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다시 예리해졌다.
요정 제2계급 미르카.
내정부의 최고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그녀가 사망한 사건은 천국 전체에 빠르게 퍼졌고, 시로네는 수많은 요정들의 원수가 되었다.
“그 정도로 강한가, 고작 네피림이?”
분해의 대천사 사티엘이 말했다.
외모는 메티엘과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둘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난폭한 기질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의 기운을 감지한 대천사들의 성광체가 일제히 빛을 발했다.
만약 이곳이 만물 통합의 백경이 아니었다면 주위의 모든 물질은 입자로 분해되어 버렸을 것이다.
대천사들의 불만을 읽은 이카엘이 말했다.
“시로네는 내가 맡겠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
메타트론이 입을 열었다.
“그것이 문제. 어째서 네피림에게 집착하오? 혹시 그 소년이…….”
메타트론의 말이 끊어지면서 백경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대천사조차도 차마 목소리를 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메타트론의 입이 사라졌다.
마치 피부로 덮어 버린 듯 코 아래쪽으로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경우는 하나.
앙케 라.
그의 의지가 처음으로 발동한 사건에 대천사들은 그저 눈만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메타트론이 떠올린 의문은 모든 대천사들의 의문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대체 라께서는…….’
원천 개념이 말소된다는 것은 아카식 레코드가 아무리 부분을 지배한다고 해도 너무나 큰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기에 입만 사라지게 한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른다면 말소시키겠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역시, 무언가가 있어. 시로네와 나는 어떤 관계지?’
라의 의지를 느낀 건 이카엘도 마찬가지였으나 더 이상의 관심은 독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 이미 각오했기에 라가 자신을 복권시킨 것이라면, 당시의 그 의지에 따르는 게 가장 명확한 해법이었다.
“시로네를 죽이겠다.”
이카엘의 선언이 대단한 위압감으로 백경을 짓눌렀다.
“보다시피 라의 의지는 단호하다. 평천사의 활동은 금한다. 단, 대천사급에 한하여 아라보트를 지키는 것은 허한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 이제부터 투표하겠다.”
예상대로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
깊은 동굴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는 미로의 머리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대천사 레이엘이 카리엘에게 걸린 스톱을 풀면서 폭발까지 남은 0.1초의 시간이 다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0.09초. 0.08초…….
그리고 현재, 미로의 모태 심리에서는 그녀의 화신과 아리우스가 사력을 다해 마법진을 파훼하고 있었다.
“연결됐습니다!”
아리우스는 두 눈이 먼 상태에서도 정확하게 미로의 대뇌 신경을 연결했다.
스케일 마법 중에서도 미립 공간을 다루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
빛의 선이 뻗어 나가 카리엘의 마법진이 가로막고 있는 회로를 우회하는 데에까지 성공하자 갑자기 마법진이 폭발을 일으킬 듯 진동했다.
미로의 화신은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짓깨물었다.
‘이미 늦은 것인가?’
현실의 시간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기에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로는 아리우스가 우회시킨 회로를 통해 스피릿 존을 발동했다.
곧바로 스케일 마법을 시전하자 마법진이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기폭 작용이 피부로 느껴지고서야 알 수 있는 사실은 시간에 맞출 수 없다는 것.
‘안 돼. 이 상태로 폭발하면 너무 피해가 크다.’
스케일을 줄였기에 머리가 터질 정도는 아니겠지만 짐작건대 뇌의 15퍼센트 정도가 손상되어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을 터였다.
“아리우스!”
“네!”
양손을 펼치고 빛을 뿜어내고 있는 아리우스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동시에 미로가 달려와 손톱만큼 작아진 마법진을 그의 입 속에 처넣었다.
“먹어!”
이곳의 모든 것이 미로의 정신이기에 여기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그 피해는 온전히 미로에게 들어간다.
다만 아리우스는 미로의 생각에 들어온 이물질.
따라서 이물질에 이물질을 넣어 충격을 완화시킨다.
“컥!”
마법진을 삼킨 아리우스는 배시시 웃고 있는 미로를 경악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헤헤, 내 머리보다 네 염통이 당하는 게 낫잖아?”
‘아아.’
아리우스는 눈물을 흘렸다.
‘아름답다. 너무 사랑스러워.’
펑!
아리우스의 몸이 들썩이면서 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현실의 미로가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옆으로 튕겨 나갔다.
“아으, 머리야!”
충격 상쇄를 거쳐서 들어온 폭발이었기에 뇌는 무사했지만 도어를 통해 빠져나온 아리우스의 입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괜찮아?”
느침을 질질 흘리며 배를 움켜쥐던 아리우스가 불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신성한 미로에게 개인적인 서운함은 있을 수가 없다.
또한 마법사의 판단으로도 둘 중의 하나가 당해야 한다면 자신이 당하는 게 옳았다.
‘아…… 미로 님.’
문득 깨달은 아리우스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녀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주었다는 감동에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고통도 잠시나마 망각할 정도였다.
“미로 님이시여.”
“응?”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저에게도 기회를…….”
“죽을래?”
“죄, 죄송합니다!”
절대자의 압력을 느끼고 제정신을 차린 아리우스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미로의 모태 심리에 도달했던 유일한 인간인 아리우스는 알고 있다.
드리모의 신전에서 발견했던 그녀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역시 당신은…….’
아리우스가 생각에 잠긴 동안 미로는 동굴 밖으로 나갔다.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떠 있었다.
‘마법은 구사할 수 있지만 시공의 장벽이 깨졌으니 나 혼자 전쟁을 막을 수는 없어.’
“앞으로 어찌하실 겁니까?”
아리우스가 죄책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묻자, 미로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뭘 어떡해? 천국 탐험해야지.”
이런 기회를 놓칠 미로가 아니었으니까.
***
이른 아침에 발발한 전쟁은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천국의 각 구역에서는 여전히 소규모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낮처럼 치열하지는 않았다.
첫날의 전투를 요약하자면 반군의 일방적인 승리라고 봐도 무방했다.
제1천부터 제6천까지, 사방에서 외문을 뚫고 아라보트로 진격한 반군의 이동 거리는 천국을 3개의 동심원으로 나누었을 때 두 번째 동심원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현재 크루드가 지휘하는 반군 사령부는 천국 제5천 마테이의 중간 지점에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내일을 대비하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것처럼 사위는 고요했지만 피곤에 지쳐 기절한 자들 외에는 모두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령부에 속한 카냐와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란히 앉아서 바라보는 별 속에 부모님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레나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카냐에게 어깨를 기댔다.
아직은 의지할 가족이 있기에,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다른 반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치잉. 치잉.
차분한 금속음이 들리자 카냐의 얼굴이 구겨졌다.
프로그램에 따라 주둔지 순찰을 마친 바벨이 돌아오고 있었다.
임무가 없을 경우 그녀는 카냐와 레나를 돌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시로네의 배려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지만, 카냐에게는 이것이 더욱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원수.
아버지의 몸통을 관통한 기계와 함께 싸워야 한다니.
“시로네 알고리즘 적용. 카냐와 레나 보호. 임무 수행.”
“닥쳐.”
바벨의 기계적인 음성을 드는 순간 카냐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닥치란 말이야!”
“로그를 공개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로그? 우리 아버지를 죽인 로그도 있어?”
“검색 완료. 데이터 번호 0342-24-6-46.”
“닥쳐어어어!”
카냐의 목소리에서 비정상적인 파장을 읽은 바벨은 긴급 모드로 전환하여 음 소거를 시행했다.
“네가 뭘 알아? 너에게 가족이 있어? 고통은 느끼는 거야?”
바벨은 침묵을 지켰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가장 좋은 결과값을 가진 판단이었다.
“대답해. 네가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방법을 말하란 말이야!”
“저는 고통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는 신경 기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카냐는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두고 봐. 반드시 찾아 주겠어. 전쟁이 끝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수치스럽게, 세상에서 가장 능멸하는 방법으로 널 파괴할 거야!”
바벨은 잠시 후에 대답했다.
“전쟁이 끝나면 저는 대가를 치릅니다.”
카냐가 이를 뿌드득 갈고 돌아서는 그때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흥분하지 마라. 그 분노마저도 아껴 뒀다가 내일 쏟아붓는 거다.”
“사령관님.”
카냐와 레나가 동시에 기립하여 경례를 올렸다.
“잠을 못 자는 것 같군. 하긴, 당연한 일인가?”
내일이면 반군 전원은 천국의 중심부인 아라보트의 진입을 시도할 것이다.
누구 하나 목숨을 구제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지금 보는 달이 마지막 달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잠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사령관님은 이 시간에…….”
크루드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잠이 오지 않아서. 하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 두는 게 좋아. 우리는 이기러 가는 거지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다.”
카냐는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루드의 말에 살 수 있다는 말이 빠져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치잉!
바벨의 눈에 갑자기 불이 켜졌다.
붉은 레이저가 빠르게 전방을 훑더니 곧바로 거동 수상자를 파악하고 보고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