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13
“전방 600미터 앞에 생물체 출현. 열 감지 센서 작동. 체온 40.1도. 대상 분류 아군. 이름. 라비드 플루.”
천국의 밤 (5)
“플루?”
크루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플루는 시로네 팀에 속한 인물이고 그들은 반군과 전혀 다른 노선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크루드가 달려가자 카냐와 레나가 뒤를 따랐고 바벨이 자기 부상하듯 비행하며 그들 모두를 호위했다.
“플루!”
크루드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이런……!”
플루는 훔쳐 입은 게 분명한 신민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군데군데 해졌고 그 사이로 수많은 상처가 보였다.
‘지독하게 당했어.’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어깨며 허벅지, 종아리에 온통 피멍이 들어 있었다.
“크, 크루드…….”
플루의 입에서 샌 소리가 나오자 크루드가 황급히 소리쳤다.
“여기 있다. 어디서 이렇게 다친 거지?”
“셰하킴…….”
“셰하킴?”
크루드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다.
이 몰골로 그 엄청난 거리를 달려왔다는 것인가?
“급히 할 얘기가…… 아주 급한…….”
플루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시 기절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크루드가 카냐와 레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옮겨야겠어. 노르 의무실로!”
바벨이 곧바로 명령을 수행했다.
반군이 통합되었기에 사령부에도 유능한 노르족 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거대한 수조에 물을 받아 두고 플루를 풍덩 빠트린 다음 물의 마법 오르히리를 시전하자 그녀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고 회복실로 옮겨진 플루는 전보다 숨소리가 골랐다.
1시간 정도 눈을 붙인 크루드가 회복실의 문을 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플루…….’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는 크루드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사람이었다.
이유 따위가 있을까?
아니, 아마도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고집스러운 외모만큼이나 똑 부러지는 성격.
시로네 팀은 모두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이지만 그중에서도 크루드에게 가장 신비로웠던 사람은 플루였다.
천국에는 없는, 인간이 만든 사회시스템에 완벽하게 특화된 인간, 시로네의 세계에서는 그런 자들을 프로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칼 같은 경계를 느낄 수 없었다.
잠에 든 여자는 그렇기에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크루드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이마를 향해 나아갔다.
열이 얼마나 끓는지 알고 싶다는 명목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지만 결국 그의 바람은 플루의 미간이 찡그러지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흐윽!”
황급히 손을 거둔 크루드는 천천히 눈을 뜨는 플루를 보고 말을 걸었다.
“좀 어때? 괜찮나?”
“여기는?”
플루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의식을 기억과 연결시켰다.
그런 다음 주변을 빠르게 탐색했다.
메카의 특색이 담긴 방. 그리고 눈앞에는 크루드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착했구나. 마테이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는 기억이 안나.’
단지 초인적인 정신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거리.
알고리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미 거인의 손에 잡혀 죽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안도감도 치미는 비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임무를 실패했다.
그녀의 임무는 시로네를 아라보트까지 무사히 운반하는 것.
서포터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왕립 마법학교 수석 졸업생의 자부심을 산산조각 부숴 버렸다.
입을 굳게 다물고 두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플루의 모습에 크루드는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의 목숨을 구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감사의 인사라도 바랐던 것일지 모르지만, 플루의 머릿속에는 실패에 대한 자책과 그것을 만회할 방법만이 맴돌고 있었다.
결정을 내린 플루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상처는 회복되었어도 통증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전황은 어떻죠? 어디까지 밀고 간 거예요?”
이야기가 전쟁으로 넘어가자 크루드도 감정을 접고 말했다.
“절반 이상은 밀고 들어갔지. 아라보트까지 남은 거리는 40킬로미터 정도. 하지만 이제부터의 전투는 다를 거야.”
천사의 활동이 없었다는 점과, 반군의 화력이 예상보다 막강한 덕분에 오늘의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단지 힘의 논리에서 이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보자면 적들의 수비 반경이 너무 넓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심원의 중심으로 접근할수록 수비 범위는 좁아지고 적들의 밀도는 높아질 거야.”
“아마도 그렇겠죠. 뚫을 수 있나요?”
“내 생각에는…… 불가능하다. 전진 거리는 같아도 적들의 밀도는 최소 3배 이상 뛸 거야. 어제처럼 돌파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 나오지 않아.”
크루드는 솔직히 말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카냐와 레나에게 삶의 희망을 주지 못한 이유였다.
“흐음, 그렇겠죠.”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일이다. 천국의 요격 시스템 이지스가 복구되는 순간 사방의 성벽에서 포화가 터질 테니까. 초전박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전략이다.”
크루드의 말에 뼈가 있음을 깨달은 플루가 고개를 돌렸다.
“작전이 있나요?”
“반군을 제불에 집중시킬 거야. 타이탄으로 천국의 벽을 파괴하면서 밀집시키는 거지. 그리고 거기에서 아라보트로 진입한다.”
제불이라면 강력한 천사들의 도시지만 현재 천사들의 활동은 없다.
어느 정도 도박의 느낌이 묻어나는 전략이지만 반군이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으려면 확실히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의식을 잃기 직전 분명 그렇게 들었다.
하지만 플루는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말이 없었다.
‘세인 씨는…….’
연옥에서 천국을 향해 출발하기 직전 플루는 세인에게서 두 가지 특명을 받았다.
하나는 터미네이터를 아라보트까지 이동시키는 것.
또한 이 임무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선시되어야 한다.
여기에 세인은 한 가지 임무를 더 부여했다.
“시로네가 아라보트에 무사히 도착한다면, 혹은 어떤 변수가 발생해서 네가 운반에 실패하거나 팀을 이탈했다면, 너는 반군 사령관을 찾아가라.”
“크루드 씨를요?”
“신의 징벌에 대해 알려야 한다. 아마도 두 번째 상황이 닥친다면 전쟁의 승패는 시로네의 손에 달려 있을 공산이 커. 최대한 이용하는 게 좋지만, 그때쯤이라면 알려도 상관없겠지.”
계산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세인다운 판단이었다.
일단 신의 징벌이 발동되면 그것을 막아 낼 수단은 없다.
천국은 파괴될 것이고 엄청난 반경에 폭발이 일어날 터.
만약 반군들이 아라보트 인근에 밀집해 있다면 그들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감추고 있었던 이유는,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지독히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플루는 두렵지 않았다.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마법사는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그런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세인은 플루에게 악역의 임무를 맡긴 것이었다.
“작전을 전파하기 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플루는 머뭇거림조차 없이 모든 걸 털어놓았다.
시로네의 마법은 천국을 파괴할 것이고, 그 마법이 시전되는 시간은 아무리 늦어도 내일 정오.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반군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정보였다.
사실을 들은 크루드의 얼굴은 창백했다.
승리의 땅이었던 아라보트는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전진해도 죽고, 후퇴해도 죽는다.
이용당했다.
수십만의 반군들이, 고작 땅의 나라에서 온 몇 명 때문에 생사부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를 속인 거였군.”
본심이 어떻든 간에 기세에서 밀리면 끝이었기에 플루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협회장님이 말씀하셨듯이 반군에도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요. 어차피 전쟁을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건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크루드가 평소의 냉철함을 저버리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과, 남의 손에 개죽음을 당하는 게 같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운 거지?”
플루는 입을 다물었다.
버텨 보려고 해 봤자 반박할 수단은 없다. 처음부터 그런 작전이었으니까.
“이제 날더러 뭘 어쩌라는 건가? 전 대원들에게 말해야 하나? 아라보트에 가 봤자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라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원들은 공포에 잠조차 자지 못하고 있어! 그런 자들에게 어떻게 말을 하라는 거야!”
“그것은…….”
플루는 이를 악물었다.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으며 크루드를 또렷하게 노려보았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크루드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이 순간에도 플루는 뻔뻔할 정도로 당당했다.
“젠장! 제기랄!”
크루드는 회복실의 기물을 전부 쓰러뜨리며 문으로 걸어갔다.
쾅! 하고 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크루드가 나간 뒤에야 플루는 전신을 괴롭히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시로네는 어디까지 갔을까?’
아니, 요정들의 포격에서 살아 있기는 한 것인가?
만약 살아 있다면 서포터로서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아라보트로 가야 한다.
큐브릭을 앞으로 내민 그녀는 피닉스를 꺼냈다.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지만 사지가 움직이는 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시로네…….’
그렇게 플루가 반군 사령부를 떠나는 사이 크루드는 지휘통제실의 음성 전파 장치 앞에 서 있었다.
말해야 한다.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지만, 최소한 각자의 죽음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령부 대원들에게 알린다.”
전파를 타고 각자의 방에 크루드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수백 군데에서 동시에 울리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타고 플루의 귓가에도 아련하게 들려왔다.
“나는 지금 중대한 사안을 발표하려 한다. 동이 트면 전쟁은 재개되고 결국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크루드는 잠시 말을 멈췄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지시가 떨어지면 정보는 무선통신을 통해 급속도로 전파될 것이고 수만 명의 반군들은 오늘 밤 죽음의 공포와 싸우게 된다.
제아무리 사령관이라도 이토록 많은 사람을 절망에 빠트릴 자격은 없지 않을까?
정적이 길어지자 잠에서 깨어난 대원들이 의아한 눈초리로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좋은 소식은 아닐 것이기에 그들의 눈에는 점차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싸우자.”
크루드의 잠긴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끝까지 싸우자.”
이를 악물고 쥐어짜 내듯 말을 내뱉은 크루드는 대상 없는 어둠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반군에게 사실을 고하면 절망하는 자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전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대원에게 비참한 패배만을 선물하는 꼴이었다.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역사에 남을 최악의 사령관이 되더라도, 설령 악귀라고 불리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를 이끌고 사지로 가야 한다.
크루드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이길 것이다! 반드시 이겨서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날이다! 모두 살기를 포기하고 맞서 싸우자!”
“와아아아아아!”
반군 최고 사령관의 각오는 잠깐의 단잠보다도 효과가 컸고, 수많은 막사에서 대원들이 함성을 질렀다.
마치 반경 전체가 내지르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사령부를 떠나고 있는 플루의 귀에까지 전해져 들어왔다.
‘싸운다. 끝까지 싸울 거야.’
전신 타박상의 고통으로 절뚝거리면서도 그녀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부옇게 동이 트고 있는 게 보였다.
천국에서의 마지막 밤이 끝나 가고 있었다.
새로운 변수 (1)
‘동이 튼다.’
혼란한 전투 속에서 시로네는 하늘이 밝아지는 것을 감지했다.
최대한 많은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아르망이 확장시킨 동공이 점점 조여들면서 케르고 전사들의 공포에 질린 표정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죽여! 물러서지 마라!”
그렇게 소리치는 케르고 부족장의 얼굴조차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족히 수백 년 동안 이단 사냥을 하며 스키마를 단련시켜 온 그들이지만 시로네가 구사하는 엘리시온은 정말이지 미지의 영역이었다.
스피릿 존의 경계선이 사라지며 수십 개의 포톤 캐논이 공간을 할퀴듯 좌우를 훑고 지나갔다.
적들의 칼날은 아르망을 베지 못했고, 촉수는 끝없이 시체들을 빨아들이며 시로네에게 활동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중 광폭이 폭발했을 때, 괴기스러운 비명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수십 개의 광원들이 발광하면서 케르고 사냥 부대를 모조리 으스러뜨렸다.
홀로 남겨진 시로네의 눈에는 슬픔이 그득했다.
전쟁을 해야 하는 수십 가지 이유를 머릿속에 박아 두고 왔지만 생명 하나가 소멸할 때마다 이유 또한 소거되었고, 이제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