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17
강뢰장.
퍼어어어어어엉!
내부에서 맴돌던 수많은 파동들이 한 번의 파동에 휩쓸리면서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폭발했다.
복부를 얻어맞은 미트건은 천천히 두 주먹을 내리고 한참이나 자리를 지켰다.
잠시 비틀거리며 물러서던 그의 입에서 울컥하고 한 바가지의 핏물이 토해져 나왔다.
“흐으으으읍!”
에텔라는 허리를 구부리고 두 주먹을 움켜쥔 채로 몸에서 퍼지는 파동을 갈무리했다.
미트건의 정신에 충격을 가해 거울의 선명도를 떨어뜨린 덕분이지만 설령 아니었더라도 같은 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그 정도의 각오가 아니고서는 상대에게 화신의 격을 꽂아 넣을 수가 없다.
모순적이게도 그 신념이 적을 부쉈고, 에텔라는 바닥에 대자로 쓰러진 미트건에게 다가갔다.
“움직이지 마세요. 지금 치료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트건은 반응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삶을 살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넌 이상한 여자군.”
미트건은 힘겹게 손을 들어 속주머니에서 디스크를 꺼내 에텔라의 발 앞에 던졌다.
“보스에게 가라.”
미트건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아마 좋아할 거야.”
에텔라는 디스크를 품에 넣고 미트건의 시체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죽음을 애도했다.
“후우!”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에텔라의 눈빛은 미트건과 싸우기 전보다 훨씬 청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느껴진다, 그가 있는 곳이.’
화신술을 각성하고 나서야 모든 게 명확해졌다.
프랭크와인의 화신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절대적인 악.
거대한 악의 기운이 저 멀리 제불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불어오고 있었다.
***
쿠르르르릉!
천국의 성벽이 사방에서 붕괴되고 있었다.
천지를 울리는 소음은 바로 옆에서 고함을 질러도 듣지 못할 만큼 굉굉했고, 피어오르는 흙먼지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시각과 청각을 잃은 상황에서도 반군들의 전진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니! 아라보트까지 10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어!”
레나의 통신을 들은 카냐의 눈빛에 처음으로 희망의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반군들이 붕괴된 성벽을 통해 제불로 빠져나간 반면 제1사령부는 끝까지 마테이에 남아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현재 마테이는 제불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요충지였고, 누군가는 남아 적군의 추격을 저지해야 했다.
‘이길 수 있다! 정말로 이길 수 있어!’
아라보트까지만, 앙케 라에게만 도달하면 전쟁은 끝난다.
라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태양처럼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라는 전투에 나서지도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다.
카냐는 멀티비전을 통해 전방위를 살폈다.
누구 하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단연 발군의 성과를 올리는 건 인간이 아닌 기계였다.
대천사용 고대 병기 바벨.
강력한 엔진에서 출력되는 힘은 거인의 완력을 초월하고 있었고, 칼날 같은 손끝은 질긴 근육을 손쉽게 갈랐다.
‘대단하다. 대체 저걸 만든 자는…….’
카냐는 황급히 생각을 멈췄다.
그녀 또한 메카족으로서 바벨의 설계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으나 원수에게 감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 발견! 대군이다!
통신을 들은 카냐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비전을 살폈다.
가히 어마어마한 거인 병력이 시야를 가득 메우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우리가 맡겠다! 엄호해 줘!”
노르족 부대 120명이 전투를 멈추고 집단 마법을 준비하자 구로이 부대가 일사불란하게 그들을 호위했다.
무려 100명 이상의 마법사가 정신을 연결했을 때만 가능한 고대 마법 에스타시온.
반경 100미터의 대기가 산산조각 찢어지면서 거인 부대의 살점을 베어 내기 시작했다.
“후우!”
비전을 통해서 지켜보는 것임에도 마법의 흉포한 위력을 피부로 느낄 정도였다.
“언니! 효과가 없어!”
레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에스타시온에 당하고서도 거인 부대의 누구도 쓰러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내구력 자체가 여태까지 싸워 온 거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화의 술 5단계에 도달한 간부들이었다.
“적들을 짓밟아라! 그저 벌레일 뿐이다!”
거인들이 저마다 무기를 휘두르며 반군 진영을 파괴했다.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구로이가 잘려 나가고 검풍만으로 사람들이 좌우로 날아다녔다.
-맵 병기 발동. 코드명 바벨.
지상으로 내려온 바벨이 맵 병기 모드로 변신했다.
상체가 활짝 열리면서 사지가 땅에 박히고, 거대한 유리구가 박힌 포신을 거인들을 향해 겨누었다.
퍼퍼퍼퍼퍼퍼퍼펑!
광전자포가 다발로 쏘아지자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던 거인들의 육체에 숭숭 구멍이 뚫렸다.
카냐는 물론 모든 반군들이 넋을 잃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느끼는 유일한 감정은,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감동이었다.
“벌레들의 발버둥이란, 끔찍해서 차마 못 봐 주겠군.”
마테이의 성벽 위에서 거인과 인간의 대치를 지켜보는 1명의 거인이 있었다.
거인 군단장 기르신.
신장 3미터에 검은 망토를 펄럭이는 그의 손에는 길고 넓적한 양날검이 들려 있었다.
무려 일화의 술 7단계까지 도달한 그는 10단계의 이미르에게는 결코 미치지 못하지만 무력으로는 두말할 것 없는 거인족의 절대 2인자였다.
“이미르시여, 당신을 대신해 전쟁을 끝내겠습니다.”
기르신은 성벽을 박차고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도착과 동시에 회전하며 검을 휘두르자 반경 10미터의 반군들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두 쪽이 났다.
“적이다! 포위해!”
기르신을 발견한 반군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아직까지도 그들은 눈앞에 서 있는 자가 어떤 괴물인지 모르고 있었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뇌와 몸이 분리된 뒤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기르신은 멈추지 않고 반군의 핵심으로 내달렸다.
깃털을 가지고 노는 바람처럼, 그가 움직일 때마다 인간들이 휘둘렸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핏물이 승천했다.
“레나! 위험해!”
멀티비전으로 확인한 카냐가 급속도로 구로이의 방향을 뒤틀었다.
기르신의 일 검만 보고서도 여태까지 싸운 적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라는 게 느껴졌다.
반군을 직선으로 가르고 도달한 기르신이 레나에게 양날검을 쳐드는 순간 카냐가 앞을 가로막으며 포신을 겨누었다.
“어리석은 것.”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포신이 베이고 곧바로 몸체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조종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으나 카냐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았다.
멀티비전의 모든 화면에서 기르신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게 보였다.
“큭!”
비상 탈출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구로이가 토막처럼 분리되었다.
의자가 튀어 나가면서 땅바닥을 뒹군 레나는 자신의 안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주위를 살폈다.
“레나!”
기르신이 토막 낸 구로이를 지나 레나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안 돼에에에에!”
카냐의 심장이 레나의 생명과 함께 멈추려는 순간, 회색의 섬광이 날아와 기르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아아아아아아앙!
철과 철의 파금성이 혼란한 소음 속에서도 선명하게 카냐의 귓가를 쑤시고 들어왔다.
“호오?”
일화의 술 7단계 거인의 완력을 막아 낸 기계장치의 등장에 기르신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기억이 나는군. 예전에는 재밌었지.”
“바벨은 카냐와 레나를 보호합니다.”
카냐는 허겁지겁 레나에게 기어가 쇼크에 기절한 동생을 끌어안았다.
“어째서?”
바벨이 한창 전투 중에 맵 병기를 해제하고 동생과 자신을 구하러 올 이유는 없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다운 판단이기 때문이다.
시로네의 알고리즘에서도 카냐와 레나의 보호는 우선순위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선택지.
하지만 그렇기에 바벨은 움직였다.
카냐는 결코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기르신이 등장한 순간부터 그녀의 머릿속에 제1과 제2의 우선순위는 소거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벨의 초월적인 연산을 통해 얻어 낸 승리의 확률이 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새로운 변수 (5)
쿵! 쿵!
마테이의 성에서 일화의 술 6단계에 도달한 거인 근위병들이 출동하기 시작했다.
신장 80미터에 가까운 그들의 머리는 하늘에 닿아 있었고,그들이 내려다보는 시야에는 인간과 기계가 그저 벌레처럼 보였다.
거대한 발이 땅을 내리찍자 수많은 반군과 구로이가 동시에 납작하게 짓눌렸다.
거인의 얼굴을 그나마 볼 수 있는 건 메카 3단계 시스템인 타이탄에 탑승한 파일럿뿐이었다.
크루드는 모래알처럼 깔려 있는 반군들 너머로 성큼성큼 밀고 들어오는 20명의 거인들을 보고 침을 삼켰다.
신민이었을 때조차 얼핏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거인 중의 거인.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웃기지 마!”
크루드는 마음속에 차오르는 두려움을 애써 부정하며 타이탄을 전진시켰다.
엄청난 크기의 거인들은 스키마의 힘을 이용해 마치 작은 인간처럼 날렵하게 타이탄을 향해 뛰어왔다.
콰아아아아앙!
거인의 주먹이 타이탄의 기체를 후려치자 허리 부분의 구동 관절이 모조리 돌아가면서 휘청했다.
“크으으으윽!”
순간적으로 기체의 무게중심을 잡았으나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서면서 아군들이 짓이겨졌다.
크루드는 그들의 죽음을 인지조차 못 했다.
거대한 생물과 기계가 육탄전을 벌이는 와중에 죽어 나가는 건 반군이나 거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크루드는 기체 반동을 이용해 강력한 공격으로 거인을 후려쳤다.
타이탄의 출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지만 일화의 술 6단계 거인들의 스키마도 중첩에 중첩을 거쳐 생물로서는 불가능한 위력을 내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앙!
지근거리에서 쏘아진 열 섬광포가 거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깨의 살점이 뭉툭하게 사라진 거인이 천지가 떠나갈 듯한 괴성을 질렀으나 상처는 곧바로 수복되어 갔다.
거목보다 두꺼운 신경과 근육이 덩굴처럼 일어서면서 얽히는 과정은 가히 자연의 탄생을 닮았다고 할 만했다.
분노한 거인들이 달려와 타이탄을 두들기자 지상의 반군들은 마른하늘에서 천둥이 터지고 있는 착각을 받았다.
타이탄의 기계 부품이 터지면서 수 톤의 파편들이 추락해 구로이들과 거인들을 강타했다.
퍼어어어어엉!
마침내 엔진이 폭발하면서 조종계가 마비되고, 타이탄이 천천히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후우!”
크루드는 수십 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 땅에 처박히기 직전 비상 탈출 버튼을 눌렀다.
조종석이 열리면서 한 대의 구로이가 퉁 하고 튀어 오르더니 수직으로 추락했다.
크루드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메카 2단계 시스템 구로이 또한 추락의 충격으로 작동이 불가능했다.
그는 조종석에 앉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전을 통해서 비치는 하늘일 뿐이지만, 정오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태양은 지독히도 밝았다.
그 태양 아래에 끝을 볼 수 없는 거인들이 또 다른 타이탄을 파괴시키고 있었다.
“이곳은…… 지옥이다.”
거인의 발이 수십 미터 높이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딱히 크루드를 노린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누워 있다가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다시 비상 탈출 버튼을 누른 크루드는 구로이에서 튀어나와 메카 1단계 시스템 파이퍼의 힘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 없다.
반군에게 남은 건 오직 전진, 그리고 전진뿐이었다.
“끝까지 간다.”
앙케 라가 기다리고 있는 아라보트로.
각오를 끝마치고 고개를 치켜드는 그때, 크루드의 눈이 공포에 질렸다.
“뭐……야……?”
거인의 성 너머에 있는 아라보트에서 어마어마하게 불길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아라보트 전체가 검은 화염에 불타오르고 있는 듯한 풍경 속에서 죽음을 부르는 듯 희한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흐오오오오오오오!
크루드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오직 죽음.
아라보트로 들어가는 순간 반드시 죽는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강력한 기운에 그의 강철 같던 의지가 쇳물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대체 저기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