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20
“시로네에에에에!”
이카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빛의 날개를 펼쳤다.
기억을 되찾는 대가로 가진 정신력의 대부분을 소진해 버린 그녀였지만 일말의 힘을 쥐어짜 내 시로네에게 날아갔다.
굽어보기로 살펴보았을 때 파이엘은 이미 시로네의 앞에 도달하여 소멸의 기운을 손에 한껏 모으고 있었다.
“스스로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가. 하긴, 그것이 고작 인간의, 네피림의 한계일 것이다.”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파이엘을 노려보았다.
발할라 액션으로 인과를 바꾸면서 지불해야 할 시간은 무려 10분.
신의 징벌만 시전할 경우 이 정도로 리스크가 크지는 않았겠지만 아라보트의 첨탑을 정확히 맞힐 수 있는 좌표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
‘아니, 이걸로 된 거야.’
자신을 위해 온 수명을 바친 페오페를 구하지 못했고, 평생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 주리라 기대했던 이카엘에게는 오히려 죽임을 당할 뻔했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이제부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에이미, 미안해. 모두들…….’
고향에 남겨 둔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시로네는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사라져라, 하찮은 존재여!”
파이엘의 후드에 감추어진 빛과 어둠으로만 이루어진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입자로 이루어진 어둠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소멸의 힘이 휘몰아치면서 시로네를 집어삼키려는 그때, 이카엘이 간발의 차로 파이엘을 따라잡았다.
“안 돼에에에에!”
콰아아아아아아앙!
시로네의 앞을 가로막은 이카엘이 힘을 발동하자 소멸과 증폭의 개념이 충돌하면서 일대가 뒤흔들렸다.
‘이카엘?’
시로네는 자신보다 머리가 2개는 더 높은 이카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땀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안색이 파리했고 눈빛은 초췌하게 시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이카엘은 시로네를 위해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그 표정은 슬픔으로, 미안함으로, 모든 것을 뛰어넘은 애절함으로 변해 처연한 감정을 그대로 전달했다.
“미안합니다.”
이카엘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눈빛에 담아 말했다.
“미안해요. 시로네…….”
이카엘의 눈물을 본 순간 시로네의 눈에서도 똑같은 눈물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같은 성분일지도 모를, 그런 착각 속에 영원히 빠져 있고 싶게 만드는 아늑한 감동이 전쟁을 통해 말라비틀어진 시로네의 감성에 다시금 수분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시로네, 당신은…….”
콰아아아아아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카엘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녀가 사라진 시로네의 시야에 잔뜩 성난 표정을 짓고 있는 파이엘이 보였다.
“이카엘이여. 타락한 더러운 천사장이여. 어디까지 천사의 존재를 능멸하려 하는가.”
시로네는 사력을 다해 몸을 움직이려고 애썼으나 등가교환의 원칙을 위배할 방법은 없었다.
“상관없겠지.”
파이엘은 다시 시로네에게 고개를 돌렸다.
“추함도 고결함도 모두, 사라지면 그만이니.”
파이엘이 재차 시로네에게 공격을 감행하자 바닥에 쓰러진 이카엘이 벌떡 일어나 또다시 앞을 가로막았다.
“크윽!”
시로네를 기억한 대가로 힘을 소진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파이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힘으로, 개념으로 압도해 버리겠다는 듯 눈앞에 있는 이카엘에게 소멸의 능력을 쏟아부었다.
마치 벌레가 자글거리는 것처럼 점으로 이루어진 어둠의 연기가 이카엘을 감싸면서 그녀의 성광체가 점차 빛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으윽!”
필사적으로 버텨 보지만, 천사의 존재감이 지워지는 충격이 이카엘의 표정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시로네는 이카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기분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감정의 종착지였다.
“괜찮습니다, 시로네……. 괜찮아요.”
이카엘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
잉그리스의 포탈 앞에 도착한 아르민과 시이나, 쿠안은 에텔라가 오기를 기다렸다.
메타게이트를 구하러 간 줄루는 밖에서 따로 만나면 되는 일이지만 아카식 레코드에서 좌표를 추출하려면 반드시 디스크가 필요했다.
“이상하게 늦는군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에텔라 또한 시간이 촉박하다는 건 알고 있을 테니 설령 야맹이 약속을 어기거나 계약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쯤이면 제불에 도착해야 정상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착한 분이지만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만큼 어설프지 않아. 금방 올 거야.”
시이나는 여전히 에텔라를 믿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도 좋지 않은 촉이 발동하고 있었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
천국은 분명 보통의 실력으로는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조차 없을 만큼 강력한 존재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지만 최소한 싸움을 피해 임무를 수행하는 정도라면 하지 못할 리가 없다.
가올드가 최초에 팀을 꾸릴 때도 자신보다 에텔라를 더 우선시했다는 것만 봐도 증명이 되는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시이나의 생각 속에 점차 불안감이 깃들려는 그때 잉그리스의 복도에서 탁한 괴성이 나직하게 전해져 왔다.
“크르르르!”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먼저 모퉁이 밖으로 빠져나온 그림자의 흉악한 형태만 보고서도 정상적인 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뭐지?”
그들로서는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누구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아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명확한 종의 특징이 없는 가라스는 오직 어미의 생물학적 특징을 통해 외형이 발현되며, 고정불변의 형질은 단백궁과 어마무시한 번식욕밖에 없었다.
시커먼 것들의 형태는 그래서인지 제각각이었으나, 본래는 모두 야맹의 수하였기에 나름의 통일성은 있었다.
신장 2미터에 점액질로 둘러싸인 검은 피부, 역관절로 꺾인 기다란 무릎과 휘우듬히 구부러진 척추의 끝에는 돌기가 잔뜩 나 있는 꼬리가 이어져 있었다.
“키키키! 번식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형질이 접목되었기에 언어 구사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레이시스의 사령부에서 탄생했던 번식의 왕과 다른 점이라면 모두 텔로미어 레벨 5 이상의 생물학적 강함을 지닌 강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가라스의 눈빛을 본 순간 시이나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살기하고는 전혀 다른, 그렇지만 여자로서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아이스 클라우드.
시이나의 주위에 빙결의 연무가 피어올랐다.
급속도로 냉각된 공기가 얼음 결정으로 빙결되면서 바닥에 유리 가루처럼 튀었다.
호전적인 성향의 시이나가 일 합을 겨루기도 전에 방어 마법을 시전한 것만으로도 그녀가 느낀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느덧 공포는 마법사의 냉철한 이성에 의해 통제되고, 사악한 성욕귀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전의가 불타올랐다.
‘건방진 것들이.’
가라스의 기질을 느끼고 가장 기분이 불쾌한 사람은 쿠안이었다.
안 그래도 살심에 불타오르고 있던 그는 검의 손잡이를 평소보다 강하게 움켜쥐었다.
“제가 맡겠…….”
쿠안이 시이나의 앞을 막아서려는 순간 아르민이 먼저 자리를 선점했다.
“물러서 있어. 이런 곳에서 기력을 뺄 필요 없으니.”
아르민의 스톱이라면 어떤 적이든 일단 방어가 가능하다.
하지만 시이나의 입장에서는 천사도 마라도 아닌 적을 상대로 아르민의 과보호가 불쾌할 따름이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자신을 깔보듯 하는 가라스의 시선이 신경질이 날 정도로 거슬렸다.
“걱정은 됐어. 고작 이 정도로……!”
“키아아아아!”
수십 마리의 가라스가 괴성을 터뜨렸다.
한 줄기의 음파동에 수백 가지의 감정이 뒤섞인 것 같은 굉음은 어떤 생물이라도 모방할 수 없는 고유의 특성.
인간을 감정적으로 압도하는 욕망에 노출당한 세 사람은 바짝 긴장했다.
텔로미어 레벨 5의 강력한 생명력에 극단적인 욕망이 더해진 가라스의 움직임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이스 대거.
시이나의 빙결 구름에서 단도의 형태로 변한 얼음 칼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공인 5급의 마법사가 시전하는 마법은 쉴 틈 없이 쏘아졌고, 접근했던 가라스는 저마다 튕겨 나갔다.
팅! 티티팅!
가라스들이 몸을 와짝 움츠리자 놈들의 갑피가 경화되어 얼음의 칼을 부쉈다.
충격에 밀려나면서도 치명상은 입지 않는다.
심지어는 쿠안의 일 검조차도 키틴질의 반탄력에 튕겨 나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링거의 갑옷만큼은 아니지만 일개 생물이 자신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 낸다는 것은 검사로서 굴욕적이었다.
앱솔루트 제로.
시이나의 가장 강력한 마법 앱솔루트 제로가 시전되자 가라스들이 하나둘씩 얼어붙기 시작했다.
쿠안의 검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땅땅하게 얼어붙은 가라스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열린 시야의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날의 오후 (3)
“저건 또 뭐야?”
쿠안이 가장 먼저 호전성을 드러내며 다가갔다.
인간이면서도 어딘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한 묘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는가?”
이목구비는 허물어진 듯 못생겼고, 목 아래로 드러난 피부는 가라스의 키틴질로 덮여 있었다.
손가락은 마치 강철 글러브를 낀 듯 삐죽했고, 두껍고 날카로운 털이 고슴도치처럼 돋아 있었다.
성취의 천사 아디오가 출산한 네피림, 무명(이름 없음).
태어난 순간부터 마치 소명처럼 자리한 마음속의 질문을 따라 이곳까지 온 그에게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쿠안이 들고 있는 검을 바라보던 무명이 두 손을 활짝 펼치자 손바닥 앞에 빛이 펑 하고 폭발하면서 어느새 두 자루의 검이 들렸다.
쿠안이 한쪽 눈썹을 씰룩하며 불쾌하게 쳐다보자 무명이 검을 치켜들고 말했다.
“이 물건의 이름은 뭐지?”
무엇인지도 모르고 검을 구현시켰다는 게 이상한 일이지만 쿠안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검이다.”
“검이라. 어떻게 쓰는 거지?”
“어떻게 쓰는 거냐고 묻는다면…….”
쿠안이 외중력을 뽑아내며 몸을 날렸다.
“이렇게 쓰는 거라고 답해 주지.”
급속 회전을 먹은 쿠안의 몸이 무명의 앞에서 팽이처럼 돌며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무명은 깨달았다.
저 검이 조만간 자신의 목을 베고 생명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쾅!
무명의 쌍검이 앞을 가로막고, 쿠안의 검이 그 위를 강타했다.
기술도 전술도 아닌, 그저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
카이젠 검술학교 교관의 검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천사와 가라스에게서 물려받은 신체 조건 덕이었다.
칼날이 칼날을 긁으면서 불똥이 튀고 무명의 몸이 쭉 하고 뒤로 밀려나 벽에 처박혔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그는 여전히 방어를 풀지 않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싱거운 대응에 쿠안은 오히려 이상함을 느꼈다.
‘검술을 모르나? 그렇다면 뭐지, 처음 봤을 때의 강렬한 위화감은?’
생각을 끝마친 무명의 고개가 비로소 들렸다.
“알았다.”
“무엇을?”
쿠안이 검을 움켜쥐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검이 무엇인지.”
무명의 모습이 쿠안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스키마의 모든 기능이 무브먼트에 집중되어 있는 쿠안이었기에 단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사라진 적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쿠안의 동공이 왼쪽의 깊은 곳에 고정되었다.
깡! 하고 또다시 검이 맞부딪쳤으나 이번에는 완벽하게 전세가 역전된 상황이었다.
‘반응할 수 없어?’
인간의 사고는 과연 무한히 자유로운가?
검을 잡은 순간부터 쿠안의 머릿속에서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화두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검을 휘두르며 내린 결론은 분명 ‘그렇지 않다.’였다.
인간의 사고는 자유로운 듯 보이나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내려다보았을 때는 지극히 기계적이고 패턴에 얽매여 있다.
그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쿠안은 평생 동안 무브먼트를 수련했고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무명의 무브먼트는 그런 그의 사고조차 초월하는 것이었다.
‘검술을…… 알고 있었나?’
문득 그런 의문이 스쳤지만 쿠안은 이내 생각을 수정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 검을 맞부딪치면서 성장하고 있다.
‘아니, 이건 가히 진화 수준이다.’
그 정도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발적인 검술의 성장, 혹은 깨달음.
무명의 쌍검은 점차 쿠안의 상식을 벗어난 궤도에서 휘둘리기 시작했고 고작 5분 만에 쿠안의 육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크윽!”
가슴팍을 베인 쿠안은 회전하며 접근을 견제하고 복도의 끝까지 물러섰다.
가슴에 난 상처보다도 검사로서의 굴욕감이 더 아팠다.
만약 그가 오늘 처음 검을 잡은 자라면, 쿠안이 30년 동안 이룩한 모든 경지를 단 5분 만에 따라잡은 셈이었다.
‘가능한 일인가?’
무명은 성취의 천사와 가라스의 교배종이자 네피림.
어쩌면 천국 역사상 최초일지도 모를 이 기형적인 교배를 통해 무명에게는 새로운 형질이 발현되었다.
고매한 정신을 추구하는 천사의 정신이 가라스와 결합되면서 초월적인 번식의 욕구가 모조리 성취의 욕구로 전환되어 버린 것이다.
가라스가 오직 번식만을 추구한다면 현재 무명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오직 기술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더욱 깊은 경지였다.
한 인간이 부단한 수련을 통해 수년에 걸쳐 뛰어넘어야 할 장벽을 무명은 엄청난 속도로 돌파하고 있었다.
더 잘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