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24
하지만 이자벨은 사키리가 다가오는 것을 만류하지 않았다.
육체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얻고자 했던 것은 가올드를 향한 오랜 의문의 해답이었다.
“어떻게 됐지?”
이자벨의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온 사키리가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되물었다.
“무엇이 말이죠?”
“가올드는…… 천국으로 갔나?”
“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죠.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사키리는 긴 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긴 이자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협회에서 케이지 B팀을 파견했으나 그들 또한 연락 두절입니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사키리의 말은 이자벨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로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초월했을까?”
사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올드는…….”
오른손을 불끈 쥔 그녀는 치미는 수치심과 비참함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온갖 고문의 고통 속에서 이자벨은 수천 번이고 생물로 태어난 것을 저주했다.
꺾여 버리고 말았다.
인간 이하의 무언가를 향해 끝도 없이 추락하는 기분.
이 고통을 멈출 수만 있다면 어떤 비열한 짓도, 수치스러운 짓도, 더럽고 흉물스러운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생물의 숙명.
고통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업보.
‘그런데 어떻게…… 가올드, 당신은 어떻게…….’
이자벨은 주먹을 불끈 쥔 팔을 들어 두 눈을 가렸다.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줄기차게 흘러내렸다.
“가올드는…….”
이자벨이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정말로 초월했을까! 고통을, 인간의 굴레를, 생물의 숙명을 초월했을까!”
삶이 고통이라면, 태어난 것은 저주.
하지만 가올드라면, 어쩌면 그라면 그 저주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고통에서 해방된 무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자벨은 버틸 수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뇌리에 박혀 버린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이겨 내고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사키리는 수많은 사람을 고문한 고문관의 경험을 담아 솔직하게 답했다.
“글쎄요. 고통을 잊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뛰어넘는다는 것은 생물의 단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창문으로 고개를 돌린 그가 하늘보다 먼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약 가능한 경우가 있다면, 그건 이 세상에서 가올드가 유일할 겁니다.”
* * *
퍼석!
세 번째의 에어 프레스가 시전되면서 타락천사와 마라의 숫자는 처음의 절반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이제는 적들도 접근과 동시에 소멸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기세를 깨닫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방향도 목적도 설정되지 않은 채 그저 고통의 화신이 되어 버린 가올드는 이제 성벽에 묶여 있는 강난의 존재마저 잊고 마음대로 미쳐 날뛰었다.
아래턱이 빠져나오고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피눈물을 쏟아 내는 가올드의 모습은 흡사 악귀.
“아저씨……! 아저씨……!”
10년 전 가올드를 지옥으로 떠나보냈을 당시의 소녀처럼 강난은 겁에 질려 있었다.
삶은 고통이 아니다.
가올드의 진정한 얼굴은 저런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가올드가 화단으로 걸어가며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지자 강난도 고통에 대한 생각을 접고 정신을 환기시켰다.
“참으로 이상하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경험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 고통을 느껴야 하지. 그렇다면 생명이란 우주의 저주가 깃든 사생아일 뿐인 것일까?”
강난이 대답을 궁리하는 동안 가올드는 화단으로 걸어가 흙을 퍼내고 꽃을 다시 심었다.
“살아날 수 있을까, 뿌리도 없는데?”
“어쩌면 다시 뿌리를 내릴지도 모르지. 물론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말이야.”
가올드는 화단으로 다가온 강난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강난아,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태어났으니까, 고통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이지.”
가올드는 생명을 향해 사투하는 꽃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강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기에 생명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이 꽃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다운 것이야.”
강난은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선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가올드의 얼굴이야말로 광인이 되기 전 진정한 그의 모습이었다.
“크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
가올드는 절규했다.
혓바닥이 뽑혀 나오고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에는 온통 고통이라는 감정밖에 깃들어 있지 않은 듯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올드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난은 눈을 질끈 감고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 아아아아아……!”
자기상환적 돌연변이라는, 어쩌면 신이 내린 저주일지도 모를 병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가올드.
하지만 그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가,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던 남자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
‘풀려라! 제발 풀려!’
강난은 두 손을 구속하고 있는 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풀려! 풀리란 말이야!”
팔이 부러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흔들어 대지만 힘이 흡수당하는 탓에 조금의 충격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
몸이 박살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내려가야 한다.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가올드를 만나야 한다.
“크에에에에! 크에에에에!”
가올드가 고통에 비명을 지를 때마다 강난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아저씨! 내가 갈게! 조금만 기다려!”
강난이 울음을 터뜨리며 더욱 몸부림을 쳐 보지만 은 조금도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인생이 송두리째 붕괴되는 무력감 속에서 그녀는 수갑에 매달려 비참한 절규를 토해 냈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만 봐야 하는 기분은 통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의 고통.
강난은 비로소 줄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사람의 마음이 지옥이다.
절망. 절망 (2)
2티어급 몬스터 푸라카.
3개의 머리가 달린 거대 파충류로 각각의 뿔에서 화염, 맹독, 전기를 뿜어내는 최강의 괴수였다.
줄루의 소환 마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 마법을 자랑하는 몬스터답게 푸라카는 3각 마라 칼리를 상대로도 위축되지 않았다.
맹독의 연무가 깔리고 화염의 색채가 가득한 곳에 벼락의 백광이 번뜩거렸다.
풍광이 발광할 때마다 칼리의 시커먼 그림자 같은 몸에 새겨진 벽지 같은 무늬가 드러났다.
소용돌이를 닮은 무늬는 푸라카의 마법을 흡수하여 검은 연기로 배출시켰다.
죽음의 기운이었다.
“아둔하구나, 인간아.”
칼리는 사망의 검을 휘둘러 푸라카의 3개의 목을 동시에 떨어뜨리고 줄루에게 돌진했다.
칼리의 4대무구인 검, 방패, 채찍, 해골은 각각 죽음을 상징하며 그 효과는 절삭, 질병, 고통, 부패로 인간에게는 어느 하나 치명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너의 생명을 내가 거두어 가겠다.”
칼리의 채찍이 줄루의 손목을 휘감자 극심한 통증이 전해졌다.
푸라카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것은 상사가 깨졌다는 뜻.
하지만 줄루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표현이란 지켜봐 줄 누군가가 있을 때에나 가능한 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고통의 채찍에 휘감긴 상태에서도 태연한 줄루의 모습에 칼리는 미간을 찡그렸다.
“가당찮은 인간이로구나.”
참는다거나, 내색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마치 그녀의 마음속에 심연의 구멍이 뚫려 있어서 모든 감정이 그곳으로 빨려 드는 듯한 기묘함이었다.
“어쨌거나 죽음은 찾아오는 법이지.”
해골을 앞세운 칼리는 칼과 방패를 휘두르며 돌진했다.
질병의 기운이 줄루의 몸을 악화시키고 부패의 기운이 세포를 썩게 만드는 가운데 흑빛 검이 괴상한 궤적을 그리며 줄루의 목을 노렸다.
포스메터리.
금빛 시공간 새가 천장으로 솟구치며 칼날이 줄루의 목을 그대로 관통해 지나갔다.
다른 시공간으로 이탈한 줄루는 손목을 휘감은 채찍에서 벗어나 트레일러의 끝까지 후퇴했다.
고통의 채찍에 휘감긴 상태에서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
칼리는 줄루라는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심하게 결핍되어 있군.’
절대 부정.
고통을 부정한다.
죽음을 부정한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마저도 부정해 버리고 있다.
순환의 중심에 서 있는 그녀에게 명확한 실체란 존재하지 않고, 그렇기에 고통조차도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가올드의 극기하고는 완전히 반대되는 성질이었고, 따라서 비인간적이었다.
쪽쪽쪽쪽쪽쪽쪽.
칼리를 바라보는 줄루에게서 유일하게 살필 수 있는 변화는 점차 빨라지는 공갈 젖꼭지를 빠는 소리였다.
“애석하구나, 인간이여. 어쩌다가 그 지경까지 떨어지게 된 거냐?”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요.’
파이엘의 3각 마라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한 천적.
‘생명을 버려야 하는가?’
황당한 전략이지만 줄루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쪽.
한 번의 뾰족한 소리를 끝으로 줄루는 공갈 젖꼭지를 빠는 것을 멈췄다.
모든 것을 순환시키던 사유가 정지하자 처음으로 줄루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실로 엄청나지 않은가.’
칼리는 여태까지 싸운 대상이 줄루라는 인간의 껍데기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결코 끊어지지 않는 순환의 흐름에 숨어 있던 줄루의 실체는 가히 죽음의 신이라 불리는 칼리와 같은 성질이었다.
음습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비스럽기까지 한 중동어가 줄루의 입에서 노래의 첫 소절처럼 흘러나왔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다.”
칼리는 줄루의 언어를 태어날 때부터 학습한 모국어처럼 이해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너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이지?”
“죽음을 등에 업은 삶.”
줄루는 상사를 장착했다.
“에르가.”
검은 새 한 마리가 소환되어 줄루의 어깨에 앉았다.
그녀 나이 고작 세 살에 처음으로 소환한 10티어급 몬스터.
그 작고 볼품없는 소환수의 모습에 칼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것으로 날 상대해 보겠다고?”
줄루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라서, 죽음을 알면서도 부정하지. 실상 그들의 삶 속에 죽음은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어떤 이유로 인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인간이다.”
“너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죽음은…….”
줄루는 머리 위에서 날고 있는 에르가의 날갯짓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두 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암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언제나 내 등에 업혀 있었다.”
“헛소리.”
칼리가 다시 해골을 앞세워 돌진할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에르가가 줄루의 앞을 가로막으며 넓적한 부리를 벌려 줄루의 말을 따라 했다.
“죽음은 언제나 내 등에 업혀 있었다.”
칼리의 전진이 멈췄다.
에르가의 목소리가 줄루의 목소리와 완벽하게 똑같은 탓이다.
“이 몬스터는 내가 최초로 소환에 성공한 생물이다. 이름은 에르가라고 하지.”
“그래서? 마지막을 맞이해 함께 죽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소환 마법은 상사라는 전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상사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는데 각인, 공감, 소멸의 과정이지.”
줄루는 자신을 돌아보며 부리를 뻐끔거리는 에르가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에르가는 나에게 찾아온 최초의 생물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지. 그것이 각인이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게 되었지. 그것이 공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줄루가 다시 칼리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극단적인 고독.
탄생 이후 단 하나의 존재도 방문하지 않았던 어떤 행성의 풍경처럼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칼리는 처음 그녀가 본모습을 드러냈을 때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사랑이 없다.
그녀는 완벽한 애정 결핍으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다.
“재밌는 사실을 말해 줄까?”
줄루의 치떠진 눈동자 아래로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내 나이는 세 살이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쯤 되었을 거야. 그리고 나는…….”
에르가의 검은 몸체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짓이겨지기 시작했다.
다진 고기처럼 뭉친 검은 덩어리가 불쾌하게 꿈틀대더니 두루마리가 풀리듯 거대한 몸체로 풀어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