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26
고작 두 갈래라면 모두 제압해 버리면 된다.
쿠안을 지나치며 순식간에 세 군데를 베어 버린 무명은 회심의 미소를 짓다 말고 충격에 휩싸였다.
‘베였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오른쪽 어깨의 피부가 갈라지면서 선혈이 튀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상처는 지독히도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감각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심리 상태는 고통을 신경 쓰지도 못할 만큼 혼란스러웠다.
‘대체 언제?’
두 갈래 길이었다.
아니, 이미 나온 결과를 부정하는 것 멍청한 짓이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길?’
가능한 일인가?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린 무명의 눈에 쿠안이 악귀처럼 사악한 얼굴로 회전하고 있었다.
“크크, 얕았군. 하지만 이번에는 좀 깊을 거야.”
또다시 서로의 검이 충돌했다.
일 합처럼 보이는 짧은 순간에 수십 합이 교차되면서 다시금 무명의 왼쪽 대퇴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보이지 않는다.
쿠안의 검이 무명의 예상 밖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럴 일은 일어날 수……!”
거대한 성취의 욕망만큼이나 그것이 억제되었을 때의 분노 또한 강렬했다.
자존심이 짓밟히면서 가라스의 본성에 가미된 폭발적인 감정이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없다구우우우우!”
수십 개의 외중력이 무명을 서로 잡아당기자 그의 동선이 미친 듯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한 줌의 털실을 헝클어 버린 듯 복잡한 궤적을 보고서도 쿠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거슬려.”
챙!
검의 충돌은 수십 회에 달했으나 너무나 속도가 빠른 탓에 하나의 불협화음으로 세상에 터졌다.
비틀거리며 정지한 쿠안의 등에 일자의 선혈이 새겨지더니 핏물이 퍽 하고 터져 나왔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내쉬며 동작을 멈춘 무명의 목덜미에 핏, 하고 피부가 잘리면서 붉은 선이 그어졌다.
“이런……!”
또다시 쿠안의 검로를 놓쳤다.
하지만 그것은 무명의 확신을 오히려 다시 의심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인간의 통찰보다 훨씬 위에 있는 자신의 상상력이 쿠안을 압도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상하게 거슬린단 말이야…….”
언제부턴가 쿠안은 같은 소리만을 중얼거리고 있다.
풍장에게 목숨을 내려놓고 덤빈 대가로 깨달음을 얻었을 때처럼 또다시 머리가 열린 기분이었다.
“아하, 그렇군. 이제 알겠어.”
쿠안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며 물러섰다.
실제로 깊은 사유에 잠겼다가 빠져나온 그의 눈동자는 반쯤 정신이 나간 듯 몽롱하게 풀어져 있었다.
“이러면 되는 거였잖아.”
퍼석!
살과 뼈가 동시에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쿠안의 이름을 연달아 외치던 시이나도, 호기를 직감하고 도주를 결심한 아르민조차도 머릿속이 창백해졌다.
무명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쿠안의 오른팔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정확히 어깨 아래에서 절단되어 있다.
스스로 자신의 팔을 잘라 버린 것이다.
‘어째서?’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도 같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이런 행동은 결코 성취가 아니라는 것이다.
‘발전 가능성을 스스로 국한시켰다. 미친 것인가?’
“자, 이러면 어떨까?”
쿠안의 목소리에 무명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로 검을 내밀고 있는 모습은 분명 전보다 나약한 자태였으나, 잠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쿠안이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마치 지반이 붕괴된 듯 풍경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대칭의 극의-어릿광대 피에로.
“너…….”
무명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담겼다.
오직 편향성을 가진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죽음을 향한 성취였다.
* * *
“왜? 도대체 왜?”
추락 직전에 크루드를 끌어안은 플루는 조심스럽게 그를 땅에 눕혔다.
이미 전신의 뼈가 부러지고 꺾여서 구했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었다.
크루드의 몽롱한 시선이 정착하지 못하고 하늘을 떠돌아다녔다.
파이퍼의 프레임 덕분에 몸이 으스러지는 것은 막았지만 오히려 고통은 더욱 심할 터였다.
“어째서 날 찾아온 거예요? 왜? 이렇게 죽어 버릴 거면, 왜 날 찾아온 거야!”
플루는 죽어 가는 크루드에게 소리쳤다.
잔인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속에서 폭발하는 화를 견딜 수가 없었다.
“네가…… 너무 싫은데…….”
크루드가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가족이 없어.”
짧은 한마디의 말로 모든 것을 깨달은 플루의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졌다.
“최소한 죽어야 할 이유라도 있어야…….”
“그만! 그런 얘긴 듣고 싶지 않아!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이런 꼴이 돼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라고!”
크루드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했던 여자에게 전부 다 줘 버리는 것.
가장 소중한 생명까지도 바쳐 버린 끝에 그녀의 마음속에 영원히 머물게 되어 버리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복수인지도 모른다.
“플루……. 사랑……하…….”
크루드의 혀가 굳어지면서 눈이 감겼다.
고개를 떨어뜨린 크루드의 시신을 플루는 떨리는 팔로 부둥켜안았다.
참으려고 할수록 더욱 거대해지는 감정에,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아아아아아아!”
사랑했기에 미워하고, 그 미워하는 마음만이라도 알아주기를 바라다가 결국 죽어 버리는 것.
그것이 실체 없는, 그래서 끝조차 없는 인간의 마음.
그 마음이 플루의 가슴에 무거운 바위처럼 내려앉아 숨을 멎게 만들고 있었다.
절망. 절망 (4)
음양파동권 천붕각.
에텔라의 돌려차기가 사탄의 복부를 강타했다.
미리부터 들어가 있던 수백 개의 파동이 간섭을 일으키면서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내부에서 휘몰아쳤다.
“크아아악!”
전신의 근육이 물결처럼 출렁이는 기분.
제불의 끝까지 날아간 사탄은 벽에 등을 처박은 채로 축 늘어졌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어.’
에텔라는 왼손을 등 뒤로 넘기고 공수 중립적인 전투 자세를 취했다.
두 번째 대결.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프랭크와인에게 사망의 고비를 맛봤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예상대로 사탄의 시선은 에텔라를 넘어 메티엘과 사티엘까지 눈에 담고 있었다.
‘흐음, 선의 추종자라. 이건 좀 위험하군.’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
대천사를 소멸시켜 율법의 시소를 급속도로 기울이거나, 온 힘을 다해 에텔라를 제거하는 것.
사탄의 시선을 느낀 메티엘이 말했다.
“도망쳐라, 사티엘.”
사티엘의 인상이 구겨졌다.
“뭐? 도망? 대천사인 우리가 도망이라고?”
“아니, 너 혼자 가는 거다. 1명이라도 도망쳐서 더 많은 천사를 집결시켜야 해. 그러지 않으면 이길 수 없어.”
물론 사탄은 율법에서 벗어난 천사의 천적이지만 사티엘은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인간의 공격에 날아갈 정도라면 현재 사탄의 힘이 그리 강하지 않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여기서 끝을 내.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우리 둘이 공격하면 소멸시킬 수 있어.”
“천만에. 사탄은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지. 평천사들이 가라스에게 당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저 인간의 공격은 먹혔어. 그렇다면 우리의 공격도 충분히 먹혀.”
“위력의 문제가 아니야. 저 인간의 율법이 사탄의 율법을 부정하고 있기에 상성에서 이긴 것뿐이다.”
사티엘은 에텔라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사탄의 율법을 부정한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인간 또한 천사와 마찬가지로 결국 아카식 레코드의 율법에 얽매인 존재가 아니던가?”
“그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앙케 라가 인간을 두려워하는 이유일지도 모르지.”
메티엘은 비로소 이 전쟁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으나, 무언가를 설명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무슨 소리야? 라께서 인간을 두려워하다니?”
“사티엘, 내 말대로 해라.”
메티엘이 빛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사탄이 벽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그가 시선으로 겨누는 목표물은 에텔라였다.
‘역시 이게 제일 거슬려.’
인간의 선의 의지는 사탄의 의지를 파괴시킨다.
아카식 레코드에 포함된 존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사탄조차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약하지.’
그것이 생물의 한계.
반면에 사탄은 잠깐 동안 시간을 끈 것만으로도 에텔라에게 얻어맞을 당시의 두 배 이상 강해져 있었다.
‘지금이라면 끝낼 수 있다.’
무시무시한 가속도를 뽐내며 에텔라에게 돌진한 사탄이 거대한 갈퀴손을 쳐들었다.
동시에 메티엘이 측면에서 날아와 가녀린 팔로 사탄의 갈빗대를 후렸다.
“크윽!”
인상을 구긴 건 오히려 공격한 메티엘이었다.
역시나 율법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어지간한 위력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사탄은 단단해진 상태였다.
“크크, 절반만 잃겠다는 건가?”
대천사 1명을 희생하는 대가로 1명의 대천사를 살린다는 전략.
그렇더라도 사탄에게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상체를 뒤틀어 목표를 바꾼 사탄이 강력한 힘으로 메티엘의 가슴을 꿰뚫었다.
“메티에에에엘!”
천사의 등을 뚫고 시뻘건 팔뚝이 튀어나오는 것을 본 사티엘이 분노의 일갈을 내질렀다.
그녀의 날개가 활짝 펴지며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정반대의 성향.
평생을 라이벌 관계로 지내 왔어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죽여 버리겠어!”
금빛 날개로 공기를 후려치려는 순간 사탄의 차가운 동공이 사티엘을 겨누었다.
소멸.
오싹한 공포를 느낀 사티엘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바꾸고 온 힘을 다해 날아올랐다.
‘크크, 늦었어.’
메티엘이 사망하면서 벌어 준 시간은 불과 1초.
하지만 그 1초야말로 사티엘이 도망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전신의 근육을 응축시켜 스프링처럼 힘을 비축하는 순간 에텔라의 주먹이 사탄의 얼굴을 가격했다.
콰앙!
충격과 동시에 옆으로 날아간 사탄이 복도에 어깨를 부닥치고, 사티엘은 천장을 머리로 부수며 사탄의 시선 밖으로 도주했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사탄은 파충류처럼 가느다란 동공을 움직여 에텔라를 노려보았다.
이렇게까지 강해졌는데도 단 일격에 화신이 흔들렸다.
혼을 담은 일격이라는 말이 이 순간만큼은 과장이 아니었다.
사티엘이 도망친 것을 확인한 에텔라가 거리를 벌리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간사한 존재여, 어설픈 수작은 부리지 마라. 어차피 이제 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크하하하하하하!”
유쾌한 폭소를 터트린 사탄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을 바로 세우고 양팔을 활짝 펼쳤다.
“인정하지, 네가 선의 편이라는 것을 말이야. 하지만…….”
사탄의 눈동자가 가슴이 뚫린 채 쓰러진 메티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몸이 빛으로 화하면서 고운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이로써 소멸시킨 대천사는 둘.
아카식 레코드의 8분의 2가 사라진 셈이었다.
쿠쿠쿠쿠쿠쿠쿠!
사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거대해지자 에텔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결국 이기는 것은 악이다.”
신장 10미터에 달하는 붉은 악마가 에텔라를 내려다보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 * *
“으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