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27
가올드의 비명이 천공을 찢을 듯 솟구쳤다.
통각 1억 배의 위력은 주위에 포위하고 있는 타락천사들과 마라들을 죽처럼 짓이길 정도로 강력했지만, 어디까지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집중력이 유지될 때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가올드는 다시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강난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10년 전의 그때처럼.
“크아아아! 크아아!”
이미 눈동자가 완전히 말려 돌아간 가올드는 그저 손을 허우적대며 돌아다녔다.
초반의 위력에 기가 질려 아직까지 아무도 접근하지 않고 있지만 에어 프레스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아! 아아악!”
강난은 온 힘을 다해 을 끌어당겼으나 몸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올드를 떠나보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열망은 현실의 냉혹한 장벽에 처박혀 망상으로 부서질 뿐이었다.
그 눈물겨운 사투의 현장 속에서도 카리엘은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결국 미로는 오지 않았다.
그녀가 살아 있는 이상 인간은 패한 게 아니었다.
‘가증스러운 미로.’
굽어보기로 천국의 곳곳을 빠르게 살피고 있지만 그녀의 존재감조차 느낄 수 없었다.
‘어디 있지? 어디 있는 거냐.’
그 순간 카리엘의 눈에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카엘…….”
카리엘은 유리엘이 돌아보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카엘이 죽어 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통쾌한 일이다.
그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은, 미로 다음으로 가증스러운 시로네를 지키기 위해 파이엘의 손에 난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간! 인간! 인간과 동침한 더러운 대천사! 그 더러운 몸으로 어디까지 타락할 셈이냐!’
소멸을 무릅쓰고 시로네를 보호하고 있는 이카엘의 모습에서 카리엘은 잊고 있었던 분노의 원천을 깨달았다.
‘그녀는 어째서…….’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는 것일까?
창공으로 솟구친 강렬한 섬광이 굉음을 내며 아라보트로 휘어져 들어갔다.
* * *
‘이카엘! 이카엘!’
시로네는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파이엘의 기운에 점차 쇠약해져 가고 있는 이카엘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발할라 액션은 아카식 레코드의 원리를 차용하고 있기에 인과의 역전에 필요한 행위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마법진을 구사하는 자조차 알 수가 없다.
그저 무기력함에 세상 모든 게 원망스러울 뿐.
그런 시로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이카엘은 미소를 잃지 않았으나, 얼굴색은 이미 찬란한 빛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파이엘이 증폭의 장벽을 깨부수고 소멸의 기운을 밀어 넣을 때마다 시로네의 마음은 전쟁터처럼 피폐해져 갔다.
‘빨리! 제발 빨리!’
발할라 액션의 대가가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분 남짓.
1초 1초가 너무나 느리게 가는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할 것이다.
움직일 수만 있다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로만 돌아간다면, 설령 지옥이라고 해도 기꺼이 떨어질 수 있었다.
“시로네, 발할라 액션이 풀리면…….”
이카엘이 인자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국을 떠나세요. 다시는 이곳에 와서는 안 됩니다.”
‘싫어요, 이카엘!’
아직 듣지 못한 말들이 너무나 많은데.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초.
그때까지 과연 이카엘이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로 공포가 밀려들면서, 시로네의 마음에 무언가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않겠어!’
이카엘의 등 뒤에 있을 파이엘의 존재를 상상하며 시로네는 지옥과도 같은 10초를 기다렸다.
9초. 8초.
‘움직일 수만 있다면…….’
4초. 3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2초. 1초.
파이엘만큼은 용서하지 않는다.
발할라 액션 초기화.
시로네의 입이 열렸다.
“이카……!”
“이카에에에에엘!”
동시에 찢어질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시로네의 목소리를 뒤덮었다.
쾅!
제불에서 사탄을 피해 이곳으로 날아온 사티엘이 이카엘을 걷어차면서 착지했다.
“당신 때문에……! 모든 게 당신 때문이야!”
그녀는 이카엘을 잔혹하게 짓밟았다.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메티엘이 사탄의 손에 허무하게 소멸하는 와중에도 고작 인간 따위를 지키려고 힘을 낭비하다니.
‘어째서 그는…….’
이런 지조 없는 천사를 사랑했던 것일까?
모든 천사가 증오했음에도 유일하게 그의 편을 들었던 자신을 외면하고.
“당신 때문이야! 모든 게 다!”
이미 기력이 쇠한 이카엘은 얻어맞으면서도 방어 자세조차 취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로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발할라 액션.
시로네의 머리 위에 흑백의 마법진이 회전하자 파이엘이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발할라 액션과 아타락시아의 조합은 천사에게는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
비록 인간이 구사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것으로 끝이다, 네피림이여.”
파이엘의 시커먼 손이 시로네의 목을 찌르기 직전, 순간 이동의 섬광이 파이엘을 강타했다.
“크윽!”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플루가 파이엘을 끌어안고 바닥에 쓰러졌다.
조너의 탁월한 거리감으로 순간 이동이 해제되는 지점을 파악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갔어도 몸이 박살 났을 터였다.
“시로네! 쏴 버려!”
플루는 파이엘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소리쳤다.
그리고 발할라 액션이 발동되면서 시로네의 눈앞에 아타락시아가 펼쳐지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마법이 시전되든 자신의 삶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나지막한 시로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안녕.”
예상과 달리 아무런 마법도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
또한 발할라 액션 상태에서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연산에 들어간 상태라는 얘기.
의아함을 느낀 플루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시로네의 몸이 아타락시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티엘의 공격에 당하고 있던 이카엘이 기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안 됩니다, 시로네! 그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시로네의 몸이 아타락시아의 경계선을 넘어섰다.
번쩍!
동시에 세상이 한순간 빛나면서 아라보트를 완전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정신력이 증폭되었다.
아타락시아-육탄계.
전심全心 (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간도를 돌아보며 우오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사는 게 그런 거니까.”
“…….”
간도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글쎄, 사실이라면 미토콘드리아 이브인 우오린은 참으로 불행한 여자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 간도에게 중요한 것은 갑자기 여황의 집무실로 불러 뜬금없는 얘기를 꺼내는 이유였다.
“저에게 하명하실 일이라도…….”
계산이라고는 들어갈 여지가 없는 정직한 말에 우오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전 마법협회 경비대장, 우레의 간도.
하지만 실상은 카샨의 전 여황 미스트라의 생물학적 아들로서, 가올드의 동태를 살피는 역할을 부여받은 간자였다.
미스트라 또한 간도를 키우지는 않았기에 우오린에게 모정은 없다.
그렇다면 간도는 어떨까?
그는 과연 자신을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하명할 일이 있지.”
“무슨 일이든 해내겠습니다.”
간도는 곧장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작 공인 4급의 마법사인 그가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임무를 끝내고도 여태까지 목이 붙어 있는 것은 우오린의 개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우오린은 짐짓 어머니 같은 인자한 눈빛을 연기해 보다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일어서라. 아직 모든 게 끝나려면 조금 시간이 남아 있을 테니까. 그 전에, 잠시 내 말벗이나 되어 다오.”
모든 게 끝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으나 간도는 묻지 않기로 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에게 서툰 호기심으로 접근했다가는 목숨이 10개라도 모자랐다.
“알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후후, 심심하기는.”
우오린은 테이블에 놓인 독한 술병을 열었다.
잔에 따르기도 전부터 뜨거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술이었다.
크리스털 잔에 얼음을 채운 그녀는 술을 따라 간도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간도가 머뭇거리든 말든 자신의 잔에도 술을 가득 채우고 3분의 1가량을 꿀떡 삼켰다.
“하아아아.”
선명한 붉은 혓바닥을 꿈틀대며 우오린은 천장을 향해 김을 내뿜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카샨의 여황은 오늘따라 왠지 슬퍼 보였다.
“간도야.”
“네.”
어머니.
간도는 마지막 말을 삼켰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이지. 하찮다가도, 그 하찮은 것이 커지고 커져 급기야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도 하니까 말이야.”
간도는 그저 듣기만 할 생각이었다.
“유구한 세월 동안 나는, 테라제는 카샨을 최강의 제국으로 키웠다. 그 과정 속에서 숱한 난관이 있었지.”
우오린은 테라제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중에서도 딱 한 번, 카샨이 통째로 넘어갈 뻔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미스트라의 아들로서 카샨의 역사를 공부한 간도지만 들은 바가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도 수많은 무리가 카샨을 먹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지. 무력으로 쳐부수거나, 분란을 일으키거나,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거나, 방법은 여러 가지일 터. 너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간도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카샨은 삼황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최강의 제국.
이름 없는 무리가 함락시킬 수 없음은 역사가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 카샨은 강하지.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사실 너무나 쉬우면서 간단한 일이지. 이 거대한 제국을 차지하는 건 말이야.”
“그게…… 어떤 방법입니까?”
경청을 자처한 간도지만 이번만큼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우오린은 허무한 대답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테라제가, 카샨의 여황인 내가, 그냥 줘 버리면 되는 것이지.”
간도는 반박하지 못했다.
카샨을 차지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들이 우오린이 제시한 해답보다 쉬울 것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것인가?’
우오린은 당시를 회상했다.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지만 독이 묻은 기억은 새로운 육신에 다시 스며들어 심장을 아리게 했다.
“오직 던질 수밖에 없는 것. 회수할 수조차 없는 것. 카샨보다도,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거대해질 수 있는 것.”
테라제의 역사기 깊어질수록 당시의 사건도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파묻혔지만 오늘만큼은 끄집어내고 싶었다.
미래시를 가지고 있는 자의 직감에 의하면,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 날일 테니까.
우오린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온전한 여자로서의 웃음이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란다, 간도야.”
* * *
활처럼 허리를 펼친 시로네의 동공은 하늘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아타락시아의 즉시 발동에 대한 대가로 행동 불능에 빠지는 시간은 고작 15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로네의 정신이 얼마나 집중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 시로네를 바라보는 이카엘의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짓을……!’
아타락시아는 증폭의 트리거.
따라서 시로네의 정신을 증폭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나 뒷감당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