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32
‘반야까지 도달했구나.’
불과 1년 전 아타락시아를 전수할 때만 해도 시로네는 아직 정신의 깊은 곳에 들어가 보지 못한 초심자에 불과했다.
물론 금강태의 정신 상태도 10대의 소년이 아우를 경지가 아니지만 반야는 그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단계의 정신 체계.
이카엘이 기준으로 하는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로 봤을 때 최소 1천 년 이상의 수행이 필요한 과정을 단번에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꿀렁. 꿀렁. 꿀렁.
스피릿 존의 수축과 팽창이 더욱 빨라졌다.
드드드드드드!
마치 구심력을 받는 것처럼 크기가 줄어들수록 박동의 빠르기가 셀 수 없을 만큼 세상을 두드려 댔다.
그리고 마침내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심적초월-반야.
스피릿 존이 사라지면서 시로네에게서 황금빛 아지랑이가 마치 불꽃처럼 화악 하고 피어올랐다.
온 마음이 정신을 구축한 결과 시로네의 화신이 마음을 넘어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르망의 화신.
시로네의 화신과 통합된 아르망의 실체는 현실의 괴물 같은 모습과는 달리 황금이 녹은 듯 번들거리는 매끈한 갑옷의 형태였다.
그보다 더욱 밝은 빛으로 시로네의 화신이 빛나면서 양쪽 어깨에 거대한 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마음을 걷어 내고 진정한 화신을 깨달은 존재.
그것이 바로 반야였다.
흐오오오오오오!
반야를 눈에 담는 순간 파이엘의 몸에서 흑색 아우라가 퍼지면서 상공을 뒤흔들었다.
‘반야라고?’
인간이 도달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경지이기에 그 가능성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또한 그렇기에 앙케 라가 필사적으로 경계하며 막으려고 했던 것이 반야이기도 했다.
땅의 나라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영생을 얻은 신민들 중에는 드물게 반야에 오르는 자가 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앙케 라의 의지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기에 자체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항거 아닌 항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제3천 셰하킴을 통솔하는 조직인 십로회였다.
‘반야를 제거한다.’
파이엘이 흑색 연기로 풀어지듯 튀어 나가자 이카엘이 쇠약해진 몸으로 시로네를 막아섰다.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파이엘의 얼굴을 본 순간 승산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그녀의 발은 굳건하게 땅에 뿌리박혀 있었다.
끼이이잉!
파이엘이 이카엘의 몸통을 꿰뚫으려는 것과 동시에 금빛 섬광이 휘어지듯 들어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시로네의 몸에 화신이 덧씌워진 듯 중첩되어 있는 잔상이 파이엘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그아아아아앙!
포톤 캐논의 거대한 섬광이 전방을 밀어냈다.
단단한 땅이 마치 물결처럼 밀려 나가고, 백색 광채 속에 파이엘의 실루엣이 재처럼 나풀거렸다.
“크으으으!”
섬광이 지나간 자리에서 두 손을 교차한 파이엘이 신음을 내뱉었다.
아타락시아 육탄계로 폭발시킨 정신이 온전히 화신에 집중되어 있기에 위력은 더욱 강해졌다.
“파이엘! 이제 그만둬! 더 이상 대천사를 잃어서는 안 돼!”
사티엘이 뒤늦게 날아와 소리쳤으나 파이엘의 성광체에는 이미 시로네의 죽음밖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흐오오오오오!
파이엘의 백색 로브가 열기에 타들어 가면서 그의 몸이 완벽한 어둠으로 동화되어 시로네를 덮쳤다.
더 이상 천사라고도 부를 수 없는, 오직 파이엘만이 가질 수 있는 소멸의 의지에 시로네의 화신이 빛을 잃어 가듯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않겠어.’
시로네는 죽음의 기운이 넘실대는 어둠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아타락시아는 불가능하다.
여전히 증폭의 개념이 그에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서하지 않겠어!’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또 하나의 무기가 남아 있었다.
발할라 액션!
광륜이 펼쳐지면서 원인과 결과를 역전시키는 트리거가 발동되었다.
‘너만큼은…….’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이카엘의 비명 소리, 그녀의 눈물, 그녀의 고통.
모든 것들이 찰나의 시간 동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의 각오를 불태웠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꺼져 가던 화신이 다시금 불타오르자 어둠이 소용돌이치며 괴성이 들렸다.
흐오오오오오!
화신에는 한 존재의 평생이 담겨 있다.
일찍이 아린이 초경으로 발견했듯 시로네의 화신은 빛을 지니고 있었고 그 빛의 율법이 어둠의 율법을 찢어발겼다.
“크으으으으!”
시로네가 양손을 내밀며 돌진하자 검은 연기가 꼬리를 물고 따라오면서 손아귀 사이에 모여들었다.
잠시 후 연기가 응축되면서 다시금 천사의 로브를 입은 파이엘의 형태가 실체화되었다.
“크크! 크크크크!”
시로네에게 목이 조인 상황에서도 파이엘은 괴기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튀어나오는 웃음이었다.
‘이것이 반야.’
오늘의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
8명의 대천사 중에서도 죽음을 인도하는 데에 가장 능숙한 그가 고작 1명의 인간에게 여기까지 밀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결국 인간.’
파이엘의 입술 한쪽이 뺨이 있는 자리까지 치솟았다.
“분한가 보구나.”
조롱의 말투에 시로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순간에도 발할라 액션은 어떤 결과의 입력을 기다리고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파이엘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 그것이 너의 한계다.”
시로네의 실력은 파이엘이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천사의 능력 아타락시아와 천사의 능력 발할라 무브먼트, 연옥 최강 종의 특성까지 흡수한 마검 아르망의 기능과 일체유심조를 통한 화신의 강화.
이모탈 펑션의 강력한 정신력과 언로커만의 깨달음인 신의 입자를 이용한 마법.
거기에 금강태의 정신 상태와 가이아인의 정신인 엘리시온까지 섭렵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의 진정한 화신을 끌어내는 반야의 경지까지.
하나의 인간이 섭렵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경지, 능력, 기술이 결합되어 있었고 그것이 마침내 아타락시아 육탄계라는 거대 트리거를 통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도착한 결과가 바로 여기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파이엘을 소멸까지 몰고 가기에는 무리였다.
아타락시아가 대천사의 능력이라면 아파테이아 또한 그와 맞먹는 위력의 능력.
증폭과 소멸의 상쇄에서 얻어 낸 것은 대천사를 단 한 번 무릎 꿇게 만든 것뿐.
설령 제압할 수 있더라도 소멸이라는 궁극의 방패가 있는 이상 시로네가 파이엘을 완전히 지워 버릴 정도의 위력을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것이 인간이지. 꽤나 섬뜩한 발버둥이었지만, 결국 발버둥일 뿐인 것이다.”
여태까지 구겨졌던 자존심을 펼치려는 듯 파이엘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온 마음을 던져 봤자 천사의 정신에는 도달하지 못해!”
소멸의 대천사답지 않은 흥분 앞에서 시로네의 눈빛이 마치 절대영도처럼 차가워졌다.
“아니.”
황금빛 화신이 조금 더 확장되면서 시로네의 육체를 완전히 뒤덮었다.
“아직 아니야.”
발할라 액션이 다시 가동하며 빠르게 회전했다.
무시무시한 광채를 눈에서 뿜어내는 시로네는 어금니를 짓깨물며 결과를 입력했다.
‘더 강력한 위력이 필요해.’
발할라 액션은 시로네의 끝없는 욕망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더 강한! 더! 더! 더!’
아카식 레코드에 욕망이 중개되면서 마침내 인과 교환의 결과값이 나왔다.
파이엘을 없애기에 충분하다고 확신할 정도의 위력.
그 결과를 대출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자그마치 127년 9개월 17일 43분 5초였다.
피를 토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지불 방식.
이는 특정 행위를 앞당기는 것과 미래의 수준을 앞당기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A에서 B로 움직이는 행동에는 대략 고정적인 시간이 산출되는 반면 정신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결코 시간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법의 위력을 높이는 데에는 잠재력, 노력, 훈련 방식, 회복 여부 등 수많은 변수가 결과를 가로막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악질 고리대금업자도 혀를 내두를 만큼 시간의 이자가 복리로 붙어 버린 것이 분명했다.
욕망과 가능성의 등가교환.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출해야 하는 결과를 앞에 두고도 시로네는 단호했다.
‘상관없어.’
시로네의 승인이 떨어지자 발할라 액션이 원인과 결과를 역전시키기 시작했다.
“상관없어, 너만 없앨 수 있다면.”
그것이 파이엘조차 간과한 인생 전부를 던진 마음.
즉, 시로네의 전심이었다.
발할라 액션-포톤 캐논.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시로네의 정면에 섬광이 터졌다.
만약 천국 바깥에서 지금의 광경을 지켜본다면 섬광은 분명 광선처럼 뻗어 나가고 있을 것이나,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모두의 눈에는 그저 거대한 장벽이 밀고 나가는 듯했다.
“크으으으윽!”
목덜미가 붙잡힌 상태에서 파이엘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질량이 엄청난 속도로 토해지는 앞에서는 대천사라도 불가항력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흐오오오오오!
가장 먼저 왼팔이 떨어지고 이어서 오른팔과 두 다리가 동시에 뜯어져 갔다.
전신이 해체되면서 그를 이루는 어둠의 기운이 용을 쓰듯 회전했으나 그조차도 찰나에 불과했다.
결국 100미터를 밀리기도 전에 파이엘은 이미 한 줌의 먼지가 되었고, 그렇게 세상의 끝으로 소멸했다.
펑! 펑! 펑! 펑!
천국 중앙의 아라보트에서 발사된 포톤 캐논은 요정의 도시 마코놈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다시 거기에서 수많은 구역들을 파괴하며 천국 외곽 성벽을 뚫고 연옥으로 사라졌다.
“파, 파이엘……?”
사티엘은 전율했다.
천국을 절단한 섬광의 흔적 안에서는 파이엘의 존재감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이 대천사를 소멸시켰다.
천국에서 민民으로 취급할 만큼 격이 낮은 존재가 천국 최상위의 존재를 짓밟아 버린 것이다.
‘그렇구나. 결국 라의 의지라는 것은…….’
사티엘은 비로소 메티엘이 죽기 직전의 순간에 말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인간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마라조차도 인간에게 신으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들의 신화였다.
하지만 지금, 그 신화의 장막이 걷히려 하고 있었다.
‘사탄.’
사티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제불을 돌아보았다.
파이엘이 소멸함으로써 악의 율법은 더욱 강해졌을 터였다.
“레이엘을 찾아야 해!”
카리엘은 소멸할 것이고, 이카엘조차 전투 불능.
1명이라도 더 많이 천사들을 모아서 최소한 상황이 악화되는 것만이라도 막아야 한다.
‘라의 의지가 발동하기 전까지는……!’
결정을 내린 사티엘은 잠시 이카엘을 흘겨보다가 빛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쿠르르르르릉.
그녀의 생각을 증명하듯 멀리 제불에서 구조물들이 부러지고 끊어지며 붕괴되고 있는 게 보였다.
“악마 따위가……!”
무언가를 발견한 사티엘의 눈에 살의가 번뜩였다.
메티엘의 원수,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 속에서 빨간 고깃덩어리가 거대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악의 역풍 (1)
사티엘이 날아가는 것을 확인한 이카엘은 시로네를 살폈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구부린 채 두 팔은 늘어져 있었다.
몸은 서 있었으나 정신은 이미 누워 있는 듯한 그런 자세였고, 눈빛에는 총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시로네.”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는 시로네를 향해 이카엘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시로네를 붙잡았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전투 앞에서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플루였다.
“시로네! 정신 차려, 시로네!”
시로네의 얼굴을 무릎에 누인 플루가 뺨을 두드렸으나 시체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포톤 캐논의 거대한 섬광은 전장에서 이탈해 있던 플루에게조차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강렬했다.
어떤 방법으로 거기까지 위력을 끌어올렸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확실한 건 마법의 세계에 대가 없는 보상은 없다는 점이다.
시로네의 의식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플루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이카엘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시로네가 깨어나지 않는 거야!”
대천사를 앞에 두고도 플루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녀의 정신도 막장까지 다다라 이제 악밖에 남지 않은 탓이기도 했지만, 이카엘의 기운에서 조금의 악의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오히려 이카엘은 누구보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시로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로네…….’
아타락시아를 육탄계로 시전했을 때부터 이미 그의 정신은 산산조각 박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반야의 경지까지 도달하면서 정신적 폭발을 유예시켰다.
만약 거기에서 그쳤다면, 어쩌면 조금은 희망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시로네는 이카사의 사법 광륜 발할라 액션을 통해 파이엘을 물리쳤습니다. 현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예요.”
“발할라 액션?”
플루는 놀란 눈으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