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33
마지막 포톤 캐논의 규모를 따졌을 때 시로네가 치러야 하는 대가의 크기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였다.
“얼마나…… 이 상태로 있어야 하지?”
이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발할라 액션이라는 연산 트리거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알 수 없지만,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길 것입니다. 50년, 100년, 어쩌면 200년일 수도 있겠죠.”
이카엘을 돌아보는 플루의 눈에 짜증이 담겼다.
천사나 되어 가지고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200년? 시로네는 인간이야. 인간은 그렇게 오래 살 수 없단 말이야. 그렇다면 애초부터 마법조차 시행되지 않았어야 하잖아!”
확실히 그렇다.
결과에 도달할 수 없다면 원인조차 생기지 않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결국 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연산이 되었기에 원인이 성립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발할라 액션은 아카식 레코드를 중개하는 트리거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상식대로라면 원인이 결과에 선행되어야 하는 게 옳지만, 발할라 액션은 그 논리를 역행하죠. 이런 경우에는 결과가 나왔으니 원인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전히 울화통이 터지는 말이었으나 플루 또한 어리석은 마법사는 아니었다.
“그럼 만약 시로네가 수명이 다해서 죽으면 어떡하지? 아니, 그 전에 살해 같은 걸 당하면? 이미 결과는 나왔는데 어떻게 원인이 바뀐단 말이야?”
“알 수 없죠. 하지만 그것이 아카식 레코드입니다. 전체에게 부분의 변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부분이 어떻게 바뀌든 전체는 언제나 완벽하니까요. 만약 시로네가 죽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나겠죠. 하지만 그것 또한 전체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신神은 무심無心하다, 라는 건가?”
천사의 신과 플루의 신은 다른 개념일 테지만 이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의 죽음, 불치병, 흉악한 범죄 같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생물뿐.
전체에게는 시로네의 죽음도 어느 산중의 자갈이 한 바퀴를 구른 것과 정확하게 똑같은 무게의 사건일 뿐이다.
“맞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시로네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플루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카엘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발할라 액션이 어떤 연산을 수행했는지 모르는 이상 대천사라도 알 도리는 없다.
다만 그런 수준의 사안임을 전하고 싶은 것이었다.
“비통하게도 저의 역량 밖입니다. 하지만 시로네는 인간이니, 결국 인간이 찾아야 할 답이지요. 절망 속에서도 끝없이 해답을 갈구하는 것이 인간 아닌가요?”
플루는 무슨 말인가를 소리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시로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카엘 또한 비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어쩌면…… 정상적인 시간 속에서 정진했다면 시로네는 근 10년 안에 파이엘을 제압할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이카엘이 바라보는 시로네는 그만큼의 잠재력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아카식 레코드에 가정은 없다.
그렇기에 발할라 액션 또한 시로네가 절대적으로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을 산출해서 대가로 요구했을 터였다.
인간의 수명이 100년을 넘기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셰하킴에는 천 살이 넘은 자들이 부지기수니까.
“우선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반야의 경지에 도달해 폭발을 막아 냈으니까요. 발할라 액션은 욕망의 채무자를 지불불가능(모라토리엄)한 상태로 만들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죽지는 않는다는 얘기에 플루는 일단 걱정을 내려놓았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현재는 다른 걱정거리들이 태산이었다.
“헉!”
그 순간 어떤 생각에 도달한 그녀가 이카엘을 돌아보며 말했다.
감각적으로 느끼기에도 시간이 꽤나 지났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은 채 그녀가 소리쳤다.
“큰일 났어요! 신의 징벌이……!”
시로네에게 온 신경이 곤두서 있던 이카엘 또한 황급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굽어보기로 천공을 살핀 그녀의 눈이 충격에 잠겼다.
“이런…….”
* * *
가올드는 타락천사에게 둘러싸여 마치 사냥감처럼 공격당했다.
이미 의식을 잃은 채로 손만 휘두르는 그의 주위로 흉흉한 눈빛을 치켜뜬 천사들이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며 조금씩 그의 숨통을 끊어 놓고 있었다.
단순히 가올드를 괴롭히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펴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심.
라키아에 쳐들어와 수많은 타락천사와 마라를 도륙한 기억이 가올드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벽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강난의 심정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했다.
“으아아아!”
그럴수록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부수는 데에 더욱 힘을 쏟아부었다.
으직! 으지직!
비명과도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팔을 휘두를 때마다 손바닥뼈가 조금씩 으스러졌다.
신적초월-야차.
유리엘은 강난의 상태를 그렇게 정의했다.
분노의 힘으로 의지를 불태워 육체의 율법을 변화시키는 자들.
가올드의 고통은 온전히 강난의 분노로 스며들어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으지지직! 으지지직!
마침내 손바닥뼈가 모조리 으스러지면서 강난의 부서진 주먹이 을 빠져나왔다.
밤새 고통에 시달린 육체로는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어려웠으나 강난은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며 성벽 아래로 쓰러졌다.
착지와 추락 사이의 애매한 상태로 바닥에 떨어진 그녀는 한참을 기어가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가올드에게 걸어갔다.
“아저씨…… 아저씨…….”
“크아아악! 크아악!”
가올드는 강난이 다가오는 것조차 모른 채 손을 허우적거렸다.
의식도 기억도 생각도 이미 날아가 버린 상태.
그를 움직이는 것은 암흑 속에서 번쩍이는 고통이란 이름의 섬광뿐.
그 빛을 따라 몸을 휘돌리며 손을 낚아채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지는 듯했다.
“아저씨이이이이…….”
강난은 부서진 두 주먹을 힘없이 아래로 늘어뜨리며 다가갔다.
‘미로를 사랑해도 괜찮아. 나에게 오지 않아도 괜찮아.’
그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싸우는지 알고 있기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도 괜찮아. 그러니까…….’
강난은 가올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성을 잃은 가올드의 허우적거림이 멈췄다.
“그러니까…….”
강난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 내며 고개를 들었다.
“아프지 마. 내가 다 싸울 테니까, 제발 아프지 마.”
“지금이다!”
가올드의 흥분이 가라앉자 타락천사들이 용기를 내어 모조리 달려들었다.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피가 마르는 대치를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강난이 흠칫 어깨를 떨며 다가오는 적들을 노려보는 순간 머리 위에서 나약하지만 또렷한, 가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똥개야…….”
“아저씨!”
강난은 놀란 눈으로 가올드를 돌아보았다.
천국에 오기 전과 비교하자면 시체라고 해도 될 만큼 쇠약해진 얼굴이지만 그는 여전히 멋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 정신이 든 거야?”
“……집 잘 지키고 있어.”
강난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미 정신이 지옥에 떨어진 상황에서도 이 말을 전하기 위해 기어올라 온 것이다.
저 깊고 깊은 심연 속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기 위해 끄집어낸 것이다.
“안 돼, 아저씨! 가지 마! 날 두고 가지 마!”
“천국의 원수를 처단하라! 한 번에 끝내야 한다!”
고개를 돌린 가올드는 넘실대며 날아오는 타락천사들을 보고 괴기스럽게 입가를 찢었다.
“크크크.”
통각 1억 배? 10억 배? 100억, 1천억 배?
‘알 게 뭐야?’
“안 돼! 아저씨! 그러지 마!”
“고통 따위…….”
가올드는 강난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그녀의 머릿속에 직접 목소리를 새겨 넣어 주려는 듯이.
“통각일 뿐이잖아.”
에어 프레싱.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형체조차 없는 풍만하고 육중한 소리가 터지는 순간 땅이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으아아앙! 으아아앙!”
강난은 마법을 시전하고 털썩 무릎을 꿇은 가올드의 품에 안겨 오열했다.
미소를 지은 채 눈을 감고 있는 가올드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지만, 그 한 번의 미소를 보여 주기 위해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깊고 깊은 지옥의 불구덩이 속이었다.
“으아아아앙! 아저씨!”
성벽에 남아 있는 유리엘이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의무처럼 카리엘을 따라다니며 확인해야 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마지막 이해.
‘저것이…… 인간인가?’
결국 가올드는 라키아를 지워 버렸다.
1명의 인간이 타락천사와 그들의 마라를 모조리 쓸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끝을 알 수 없는 광기 어린 집착.’
가올드는 반야도 야차도 아니다.
그렇기에 저것이 인간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것은, 분명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의 극단이었다.
‘지금 제거해야 하는가?’
유리엘은 극락곤을 소환시켰다.
“…….”
그리고 수많은 강적들과 싸운 끝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비참한 몰골을 눈에 담았다.
-천사들의 활동을 금한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라의 명령.
하지만 이제는 유리엘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가급적…… 제거하는 게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라키아에 있는 병력이 총출동하여 얻어 낸 피니시의 기회.
하지만 그것은 파괴의 대천사인 유리엘에게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었다.
쿠쿠쿠쿠쿠쿠쿠!
유리엘이 빛의 날개를 펴자 성벽이 흔들렸다.
“사탄.”
지금 이 순간 천국에서 가장 강한 적.
천천히 성벽 위로 떠오른 유리엘은 섬광으로 변해 제불의 중심으로 날아갔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라키아의 적막 속으로 강난의 절규가 스며들었다.
악의 역풍 (2)
“악의 율법 사탄.”
간도는 우오린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현재 우오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 사탄이지만, 인류의 역사에서도 사탄이라는 이름은 친숙했다.
물론 그 실체를 직접 본 사람은 없으나 수많은 문서 기록과 그림을 통해서 사탄의 모습을 주관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 만약 앙케 라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악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악을 대표하는 개념이라면 사탄이 제격이지.”
오래전부터 천국과 땅의 나라는 제한적으로나마 교류를 해 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류는 신과 천사, 악마와 괴물에 대한 역사를 축적해 나갔고, 그것이 신화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선과 악의 대립은 무와 유의 대립과는 다르다. 명확하지 않지.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발생한 것일까?”
간도가 대답하지 못하자 우오린이 검지를 들어 천장을 가리켰다.
“처음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처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때부터.”
앙케 라는 이 우주를 신이 버린 쓰레기장이라 정의 내리고 스스로 신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주는 우주가 되었지만, 실상은 그가 없을 때부터 우주는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다.
“선과 악이란 그런 것이지. 전체와, 전체와 대립하는 어떤 무언가. 아마도 그것은 끝없는 혼돈과 불안정성일 것이야. 그리고 우리가 우주를 인지한 순간부터 그것은 선과 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작용하게 된 것이지.”
“그렇기에…… 앙케 라는 악의 율법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이로군요.”
우오린은 다리를 꼬고 턱을 괴었다.
“흠, 현재는 그게 가장 유력한 설이랄까. 일단 토르미아의 케이지 B팀이 복귀한다면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간도는 비로소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앙케 라가 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은 할 수 있다.
“결국 라가 우리에게 바랐던 것은 선의 추종자가 사탄을 해치우는 것이로군요.”
우오린은 지극히 가식적으로 웃는 표정을 지었다.
장난이라는 것을 알기에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옳다. 하지만 간도야, 인간이란 선과 악을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란다.”
간도는 눈을 깜박거렸다.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 자신조차도 그것을 결정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선과 악을 정의 내리는 존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