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34
“선과 악을 나누는 절대적인 경계선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앙케 라가 악을 제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이기에 선으로도 악으로도 흐를 수 있고, 그렇기에 불안정하지.”
우오린은 술을 따른 크리스털 잔을 들고 등받이에 기댔다.
“불안정함은 언제나 약점을 드러내지. 그래서 인간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야. 하지만 그렇기에 강해지는 것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죠?”
생각에서 벗어난 간도가 고개를 들고 묻자 우오린이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손가락으로 간도를 가리켰다.
“신념.”
콰아아앙!
벽에 처박힌 에텔라는 웅크린 자세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윽!”
전투의 고단함은 둘째 치고,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현재 천국에서 선의 의지가 가장 강한 사람은 에텔라일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사탄을 막아 낼 수 있는 것도 그녀였다.
하지만 사력을 다해 기운을 끌어 올려 사탄을 몰아붙여도 사탄은 금세 기력을 회복하며 오히려 전보다 더욱 강한 육체로 반격을 가해 왔다.
보지 않고도 이 세계의 율법이 사탄에게 기울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크크, 단단한 여자로군.”
신장 30미터의 사탄이 목을 꺾으며 에텔라에게 다가왔다.
이미 그들이 있던 건물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고, 낮은 벽의 경계선만이 천사들의 방이라는 것을 말해 줄 뿐이었다.
“어째서 덤비는 것이지?”
사탄이 에텔라의 사나운 눈초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왜 멍청한 생각에 목숨을 걸지? 세상을 지배하는 건 언제나 악이다. 욕망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야.”
사탄은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제불의 지붕을 붙잡고 뜯어냈다.
주먹을 쥐자 단단한 벽돌이 먼지처럼 부서졌다.
“무언가를 갖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그것을 가져 버리는 것이다. 먹을 것이 저기 보인다면 다가가서 그것을 빼앗으면 그만이야. 인간은 그 단순한 이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그런데 왜 멍청한 짓을 하지?”
에텔라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인간이 정말로 악한 존재라면…….”
그리고 다시 싸울 자세를 취하며 사탄의 높은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째서 지금도 이 세상은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는 사탄이 침묵했다.
“그래, 인간에게 굳이 선 따위는 필요치 않을지도 모르지. 욕망대로 내버려 두어도 나름의 정의를 만들어서 잘 살아가겠지. 하지만 똑똑히 기억해 둬. 악이 팽배한 이 삶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건, 소수의 선의 의지를 지닌 자들이 끝없이 지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너도 싸우는 거냐? 너의 욕망을 포기하면서까지?”
에텔라는 피식 웃었다.
“이것이 나의 욕망이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 세상에 사랑이 가득 차기를 원해.”
후우우우우.
숨소리가 길게 뿜어져 나오면서 에텔라의 몸에 다시금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너 같은 악이 시선조차 두지 않는 곳에 분명 선은 살아 있다. 그리고 나도 살아 있지.”
에텔라는 이를 악물고 돌진했다.
“인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명확한 선에 대한 확신이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에텔라를 바라보며 사탄은 인상을 구겼다.
신념.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믿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위험하다.
악의 방법론을 따르는 것이 달콤하고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을 추구하는 자들은 끝없이 존재해 왔다.
“같잖군.”
사탄은 치고 올라오는 에텔라를 겨누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덤벼라. 인간!”
“타하아아아!”
주먹을 피해 팔뚝 위를 치달린 에텔라가 회전하며 사탄의 턱에 발길질을 가했다.
바위처럼 거대한 사탄의 얼굴이 돌아가고, 추락하는 에텔라는 두 팔을 교차하며 숨을 골랐다.
팔이 열리면서 그녀의 눈이 광채를 내는 순간 음양파동권의 오의가 펼쳐졌다.
천수관음 번뢰격.
두두두두두두두두!
엄청난 속도의 연타가 단단한 가슴을 두드리자 내부에서부터 파문이 퍼졌다.
무수한 파동들이 간섭, 굴절, 반사되며 사탄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믿는다! 인간을!’
에텔라는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연타의 속도를 높였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선의 의지를!’
두두두두두!
사탄의 몸속에 소낙비가 내렸다.
“크으으으으!”
사탄의 몸속에 소낙비가 내렸다.
* * *
“야! 유리엘!”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카리엘은 또다시 자신의 창조물을 박살 내 버린 유리엘을 찾아 나섰다.
멍하니 천공을 올려다보고 있는 거구의 덩치만 봐도 밉살스러울 지경이었다.
‘무식해 가지고.’
카리엘은 사나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야! 너 왜 자꾸 내 물건을 부수는 거야!”
고개를 돌린 유리엘의 대답은 단순했다.
“부술 수 없게 만들면 되잖아.”
“뭐, 뭐?”
“나는 파괴의 대천사. 모든 걸 부술 수 있지. 너 또한 창조의 대천사라면, 절대로 부술 수 없는 걸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카리엘은 무언가 반박을 하려다가 이를 악물었다.
“제길!”
반박할 말이 없었다.
“만들 수 있어! 하지만 네가 파괴한 건 애초부터 그런 식의 물건이 아니었다고! 이카엘에게 다 말할 거야.”
“한심하기는. 우리보다 먼저 탄생한 건 이카엘이 유일하지만 어차피 같은 대천사다.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하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꼼짝 못 할 거면서. 기다려, 내가 지금 당장…….”
카리엘이 돌아서는 순간 저 멀리서 이카엘이 날아왔다.
얼굴이 확 밝아진 카리엘이 성광체를 밝히며 그녀를 불렀다.
“이카엘! 이카엘!”
이카엘이 날아오자 카리엘은 유리엘의 만행을 낱낱이 고했다.
“내가 만든 건 무조건 망가뜨려요. 혼내 주세요.”
아까의 당당하던 말과 달리 유리엘 또한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
“흠.”
이카엘은 처참하게 망가진 카리엘의 창조물을 굽어보기로 살펴보았다.
“그래, 심하게 부서졌구나. 유리엘이 심했네.”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물건을 만들 거예요. 유리엘이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물건을.”
이카엘이 아름다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그것도 멋진 일이지. 하지만 카리엘, 모든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는 날이 오고 말 거란다.”
“하, 하지만…….”
“파괴가 없이는 창조도 없는 법. 너도 알고 있지 않니?”
“하지만 기분이 나빠요. 왠지 유리엘에게 밀리는 것 같기도 하고.”
“후후, 천만에. 너는 탄생의 천사. 가장 끔찍한 폐허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란다.”
이카엘은 카리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라. 너무나 아름다워서 유리엘이 파괴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것을 말이야.”
“…….”
카리엘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카엘이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
“할 수 있겠지, 카리엘?”
“쿨럭! 쿨럭!”
소멸을 기다리는 카리엘이 거친 기침을 토했다.
그의 동공은 이미 완전히 풀려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끔찍한 몰골이었다.
‘내가 만든 건 폐허일 뿐. 여기에서 내가 더 무엇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카엘, 당신은 틀렸어. 난 결국 해내지 못했어.’
창공보다 더 높은 곳에서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무언가가 오고 있군.’
“카리엘.”
이카엘이 다가왔다.
신의 징벌이 곧 천국을 강타할 테지만 카리엘의 마지막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흥, 이제야 날 봐 주는 것인가? 너무 영광스러워서 소멸할 지경이군.”
“괜찮니?”
“아주 괜찮지. 곧 소멸할 거야. 금방 사라져 줄 테니까 빨리 꺼져 버려.”
이카엘은 카리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일그러진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미안하구나. 모든 게 내 탓이다. 너를 이렇게 만든 것도.”
카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따가운 말투에도 다정하게 대해 주는 이카엘의 태도가, 받아들이기 나쁘지 않았다.
‘아…….’
카리엘은 뒤늦게 깨달았다.
이카엘은 언제나 자신에게 다정했다는 사실을.
“날…… 원망하고 있겠지?”
이카엘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널 왜 원망하겠니?”
그 설레는 말이 오히려 카리엘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어차피 마지막이야. 난 소멸할 거니까. 그러니 솔직히 말해 줘. 날 원망하잖아? 당신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괴롭게 만들었잖아.”
“카리엘, 너는 착한 천사란다.”
“거짓말하지 마!”
어디서 이런 기력이 나온 것일까?
카리엘은 당장 소멸해도 상관없다는 듯 소리쳤다.
“인간을 사랑했잖아! 마지막까지 인간의 편을 들었잖아! 그런데 왜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야!”
이카엘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카리엘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나는 인간을 사랑하지.”
부드러운 손길이 카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래전에 느꼈던 그 손길이었다.
“그리고 카리엘, 너는 내가 알고 있는 천사 중에, 가장 인간과 닮은 천사란다.”
“흑! 흐윽!”
눈을 질끈 감은 카리엘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야 깨달았다.
어째서 인간을 미워했는지.
“잘못했어요! 흑! 죄송해요!”
이카엘은 슬픔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슬픈 미소를 지으며 카리엘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몽롱해진 카리엘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엄마.
천사에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이름이 카리엘의 성광체에 새겨진 마지막 정신이었다.
흉하게 망가진 몸이 찬란한 빛으로 화하면서 소멸의 끝을 장식했다.
‘앙케 라시여, 불쌍한 카리엘을 살피소서.’
이카엘은 카리엘이 사라진 뒤에도 자리를 지켰고, 그녀의 뒤에 서 있던 플루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신의 징벌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하긴, 당연한 일이지.’
가히 가공할 속도일 것이다.
따라서 일단 가시거리에 들어오면 지상에 처박히는 건 반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이었다.
천국 파괴까지 남은 시간.
4분 32초.
악의 역풍 (3)
무거운 침묵으로 줄루를 노려보던 에르가의 얼굴에서 혐오의 기운이 사라졌다.
끼루루루루.
귀여운 소리를 내며 작은 몬스터가 사라지고, 줄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환.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또다시 끝없는 심연으로 빨려 들 것이기에 그녀는 마음에 차오르는 악의의 감정을 수없이 퍼냈다.
쪽.
바닥에 떨어진 공갈 젖꼭지를 다시 입에 물고 시온의 정경을 살폈다.
칼리와의 대결로 대부분의 기물들이 파괴되었으나 메타게이트는 수없이 많았다.
그중의 하나를 움켜쥔 줄루는 시간을 살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디스크를 찾기로 한 에텔라는, 잉그리스에서 돌아갈 좌표를 추출해야 할 아르민 일행은 임무를 완수했을까?
가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기에 그녀는 황급히 지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하지만 시온을 벗어나기 직전, 그녀가 멈춰 섰다.
이미 늦었다고 보는 게 옳다.
어떤 임무에 한해서는 작은 가능성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