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35
줄루는 손에 든 메타게이트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다시 시온 쪽으로 돌아섰다.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천수관음 번뢰격.
끝없이 몰아치는 연타는 세상의 악을 몰아내기 위한 천 개의 팔이요, 마지막 강뢰장은 마를 파괴하는 한 번의 깨달음이다.
그것이 음양파동권의 오의인 천수관음 번뢰격일 테지만, 사탄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에텔라의 마음속에는 회의감만 쌓여 갔다.
“흐으으으으!”
에텔라의 바짝 다문 이빨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파동을 밀어 넣어도 사탄의 육체가 커져 감에 따라서 간섭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론상 음양파동권은 어떤 물체든 내부에서부터 파괴시킬 수 있다.
하지만 딱히 인간을 상대로 효율적인 권법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피부조차 부드러운 인간에게 굳이 내부 파괴를 일으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직 악을 멸하기 위한 기술.
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탄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카르시스 수도회의 신념마저 꺾이는 것 같아서 그녀는 더욱 사력을 다해 연타를 가하고 있었다.
“크으으으으!”
단단한 근육을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비로소 사탄의 얼굴에도 충격의 느낌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어. 강뢰장을 터뜨릴 수 있는 정도까지만 몰아치면…….’
“크크크. 크크크크크.”
희망의 빛을 발견한 에텔라의 귀에 사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지 않고서도 그의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또다시 사탄의 육체가 급격하게 거대해지기 시작하면서, 사력을 다해 꽂아 넣었던 파문들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완벽하게 기울었도다.”
사탄은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 두 팔을 활짝 펴고 상체를 젖혔다.
때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때려 보라는 제스처였다.
‘거대한 힘이 밀려들고 있다.’
아라보트에서 카리엘이 소멸함으로써 이제 남은 대천사는 4명.
그리고 여전히 가라스들은 천사들에게 수치를 주며 숫자를 줄여 나가고 있다.
율법의 시소가 처음으로 사탄 쪽으로 기울면서 육체가 한계를 모르고 끝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오오오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악의 육체 앞에서 에텔라는 눈물을 쏟았다.
“어째서, 어째서어어어어!”
카르시스 수도회에 몸담은 이후 수많은 악과 싸워 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비참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아아, 기분 좋다. 더, 더 때려 보아라. 더 나를 즐겁게 해라.”
사탄은 끝을 모르고 커져 갔다.
신장 20미터, 30미터, 50미터, 100미터가 넘어가자 주위에 있던 건물들마저 무너져 내렸다.
“크크크크, 가여운 인간이여.”
두두두두두!
에텔라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평생을 쌓아 왔던 신념이 한 번에 무너지는 기분 속에서 그녀를 지탱해 주는 건 음양파동권의 진의를 전수해 준 스승의 목소리였다.
-에텔라, 믿어야 한다. 선이 존재함을 믿어야 한다.
* * *
검술.
검을 다루는 기술이다.
허수아비를 상대로 검을 휘두른다면 아주 단순한 한 번의 동작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검이란 서로의 생명을 걸고 하는 술래잡기.
그리고 그때부터 상황은 심각해진다.
움직임의 상성, 궤적의 상성, 판단의 상성, 수많은 상성이 맞물려 바로 다음 앞의 결과를 도출해 내고, 그 결과는 또다시 새로운 판단의 원인이 되어 상대를 물기 위해 꿈틀대는 것이다.
쿠안과 무명의 대결은 살의의 뱀이 자유자재로 꾸물거리며 서로의 목을 물기 위해 움직이는 느낌을 자아냈다.
무명은 완벽에 가까웠고 쿠안은 불안정했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2개의 검로는 그들의 생각 바깥에 머물러 있던 존재를 일깨웠고, 그럴수록 수준은 더욱 높아져 갔다.
나는 강해지고 있다.
생명은 무시당하고 오직 생각만이 전부인 경지 속에서, 쿠안은 온몸으로 혼돈을 표현했다.
마치 풍랑을 만난 배 위에서 비틀거리는 듯 다리가 꼬이고 상체가 흐느적거릴 때마다 무명의 검은 흔들렸다.
검을 가지고 놀고 있다.
새로운 패턴이 끝없이 몸으로 스며들 때마다 쿠안의 생각은 오히려 단순해져 갔다.
그것은 검의 본질에 다가가는 여정이었고, 진리에 근접하기에 확신할 필요조차 없는 당위성이었다.
‘너무나 쉽다. 검이란…… 이렇듯 쉬운 거였단 말인가?’
쿠안의 검은 차가울 정도로 예리하게 무명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신체 어디랄 것도 없이 전신에 상처가 늘어나자 무명은 마침내 깨달았다.
‘죽어야 되는 게 애통하다.’
진실로.
‘이렇게 멋진 세계를 두고, 아무것도 전하지 못하고 사라져야 돼서 원통하다.’
무명의 허리를 베고 지나간 쿠안이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면서 적의 후미로 우회했다.
무명이 황급히 방향을 틀었으나 이미 쿠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크크, 알고 있었어. 있을 리가 없지.’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싸운 인간.
세상에는 이 남자보다 더 강한 검사도 존재할까?
무명은 쿠안이 최강의 검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묻히게 될 자신의 재능이 너무나 억울할 테니까.
‘아니, 그렇지 않다.’
무명이 쿠안을 찾아 사방을 헤집었으나 마치 사라진 듯 그의 잔상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넌 나를 보고 있겠지.’
하루도 살지 못하지만, 멋진 인생이었다.
‘너를 만났기 때문이야.’
무명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무브먼트 제로.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결국 쿠안을 찾을 수 없을 것이기에 더 이상의 움직임은 의미가 없었다.
“둘이기에 무한한 것이다.”
철썩!
시원한 소리를 내며 무명의 목이 뒤에서부터 뎅겅 떨어져 나갔다.
땅과 수평을 이루며 사선으로 검을 쳐올린 쿠안은 멀쩡한 발로 땅을 밟자마자 남은 외중력의 관성을 갈무리하듯 회전했다.
톡톡, 데구루루.
회전이 멈춘 뒤에야 무명의 목이 바닥을 구르고 여전히 서 있는 신체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래.”
쿠안은 무심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둘이기에 무한한 것이지.”
완벽한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만났을 때, 미래는 열리고 모든 가능성은 무한으로 퍼져 버리는 것.
그것이 검술이자 세상의 이치.
팔이 잘려 나간 쿠안의 어깨에서 퍽 하고 핏물이 터졌다.
한계의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갔던 싸움이고, 더 이상 스키마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런!”
아르민이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시이나가 도착해서 쓰러진 쿠안의 상체를 온몸으로 받아 냈다.
“쿠안 씨!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쿠안은 그저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부르는 자의 목소리를 듣고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여자에게서는……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한평생을 피와 땀 냄새만 맡으며 살았던 쿠안에게는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 향기는 내 것이 아니겠지.’
그래, 목숨을 주는 대가로 맡을 수 있는 향기일 뿐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잉그리스로 가십시오.”
에텔라와 줄루가 감감무소식이지만 본래의 임무대로 좌표를 추출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쿠쿠쿠쿠쿠쿠쿠!
그때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건물이 흔들렸다.
“뭐지?”
천장을 올려다본 아르민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피해!”
건물이 붕괴되고 있었다.
시이나가 쿠안을 업으려고 낑낑대자 아르민이 그 두 사람을 모두 데리고 플리커 마법을 시전했다.
동시에 거대한 돌덩어리가 그들이 있던 자리를 쿵 하고 내리찍었다.
우르르르르르릉!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아르민은 지진의 정체를 깨달았고, 시이나 또한 황당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뭐야?”
인간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커져 가고 있었다.
괴물이 허리를 구부리자 사악한 얼굴이 구름 아래로 불쑥 내려왔다.
으하하하하하하!
세상을 삼킬 것 같은 입 구멍에서 튀어나온 광포한 웃음이 지상을 뒤흔들었다.
아르민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가 봐야겠어.”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잉그리스로 갈 방법이 막히기도 했지만 현재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돌아갈 좌표나 찾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괴물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이 꼬인 게 분명해. 에텔라 양도 저곳에 있는 것 같은데.”
괴물과 싸우고 있는 인간은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광안의 아르민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아르민이 곧장 행동에 옮긴 반면에 시이나는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생명의 은인인 쿠안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가십시오.”
무심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쿠안이 말했다.
“하지만 쿠안 씨는 지금…….”
“검사에게 동정은 수치입니다. 죽을 정도는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살 수 있으리란 확신도 없지만.
사실 어느 정도 상처를 입어야 죽는 것인지, 한 번도 죽어 보지 않은 인간이 어찌 알겠는가?
‘시이나…….’
아르민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임무는 최우선.
하지만 이미 시이나를 살리기 위해 쿠안을 저버린 그였기에 그런 말로 설득할 자격은 이미 없는 상태였다.
‘그래, 시간이 없어.’
시이나는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쿠안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차고 넘치지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남는 건 전멸뿐이다.
“금방 돌아올게요.”
돌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뱉어 본들 어차피 짐이 될 것이기에, 쿠안은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삼켰다.
그때 시이나가 다시 돌아서며 물었다.
“그때까지, 살아 있어 주실 거죠?”
쿠안은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온몸이 난도질당한 상태에서 살아 있어 달라고 한들 자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살아서 돌아간다면, 그때는…….”
시이나는 한참이나 다음 말을 궁리하더니 살며시 홍조를 띄우며 말했다.
“또 같이 밥 먹어요.”
그 말을 남겨 두고 시이나는 도망치듯 아르민과 함께 사탄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홀로 남은 뒤에도 쿠안은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그저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푸우!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상처가 욱신거리면서 얼굴이 오만상으로 구겨졌으나 여전히 폐는 가려운 듯 헐떡이고 있었다.
‘크크크, 나랑 뭘 하자고? 이 여자야, 이 몸으로는 이제 스테이크도 못 썰어.’
무명과 겨루면서 쿠안은 바늘구멍보다 작은 확률을 뚫고 지금의 경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외팔이에 절름발이가 한 여자의 남자로서 구실을 하기에는 스스로 수치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래, 다 끝났어. 이곳이 내 무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우울한 기분이 찾아오자 애써 버텨 내고 있던 출혈이 또다시 터졌다.
-같이 밥 먹어요.
“하아.”
쿠안은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사람 돌아버 리겠군.”
악의 역풍 (4)
“전체라고 생각했던 아카식 레코드에 대칭하는 개념이 존재한다. 율법 외의 개념. 즉, 완벽한 혼돈이다.”
“그렇군요.”
우오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졌다.
“그 혼돈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라는 모든 것을 초기화시킨 것이다.”
간도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우오린은 테이블로 걸어가 서류를 꺼냈다.
두꺼운 서류철이 간도의 앞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