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38
사탄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비틀거리며 제불의 구조물을 쓰러뜨리며 걸음을 옮겼다.
“쿠에에에에에!”
그러다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검은 것들을 토해 냈다.
거대한 목구멍에서 시커먼 연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지상을 탁한 기운으로 물들였다.
“크윽!”
물질은 아니지만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뼈가 썩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카악! 카악!”
속에 담긴 것을 모조리 쏟아 낸 사탄이 거친 숨을 내쉬더니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크크크.”
여전히 그는 하늘 끝에 있었고 지상은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크하하하하!”
버텨 냈다.
완벽한 혼돈인 그조차도 관음의 화신 앞에서는 공포를 느꼈지만, 결국 1억 8천 개의 율법으로도 자신을 소멸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가 바로 공포다! 내가 바로 악이다!”
쿠아아아아앙!
거대한 주먹이 내리꽂히자 아리우스가 미로를 끌어안고 플리커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더 이상 사탄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고, 거칠 것 없이 천국을 파괴하며 아라보트의 첨탑으로 향했다.
발로 두드리고 주먹으로 내리칠 때마다 천국의 풍경이 뭉텅이째로 폐허로 변했다.
“저, 저게 뭐야?”
아라보트에 진입한 반군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탄을 올려다보았다.
쿠우우우우웅!
발이 내리찍히면서 안에 갇힌 모두가 피 떡으로 변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관음의 일격을 충격적으로 지켜보았던 대천사들도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에텔라, 믿어야 한다.
단 1명을 제외하고.
-믿어야 한다, 에텔라.
에텔라는 세상을 뒤집어엎고 있는 사탄에게 돌진했다.
“흐으으으으!”
세상은 온통 악으로 물들어 있는 듯하고.
-모두가 악하다면 우리는 이미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설령 악의 강력함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선이 백의 악을 막아 내고 있음을.
선하고 싶은 욕망.
악을 부끄러워하고 선을 자랑스러워하는 인간의 마음.
“흐으으윽!”
에텔라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악이 세상을 지배할 수 없는 만큼이나 이 세상이 오직 선으로 가득 채워지는 일도 어렵겠지만, 그녀는 믿었다.
인간은 선택할 수 있음을.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혼돈의 공포를 떨쳐 내고 지고의 경지로 올라갈 수 있음을.
수천 년, 수만 년, 수억 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면.
-우리가 마지막까지 선을 지키는 이상 악은 절대로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 그러니 믿어라.
‘믿습니다, 스승님!’
에텔라는 자리에 멈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드드득!
부러진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지만 충만한 감동이 고통마저 무시하고 선의 의지를 일깨웠다.
-세상을 깨우는 깨달음은!
‘세상을 깨우는 깨달음은!’
굉음과 함께 온다.
카르시스 수도회 최강의 후吼-멸마의 함성.
“아……!”
에텔라가 입을 벌리는 순간.
까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선의 의지가 굉음을 타고 사탄을 덮쳤다.
“크아아아아아아!”
아라보트의 첨탑으로 걸어가던 사탄이 몸을 활처럼 펴고 비명을 질렀다.
미로의 극락장에 강타당하면서 응집되어 있던 악의 율법은 파편으로 깨어져 있던 상태.
거기에 새로운 선의 의지가 밀려들자 파편의 형태 그대로 몸이 조각조각 쪼개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마치 용암처럼 붉어지고, 몸의 군데군데가 일그러지면서 재처럼 타들어 갔다.
“크, 크크크크!”
버틸 수 없음을 깨달은 사탄은 사악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에텔라를 내려다보았다.
“제법이구나, 인간.”
마치 장작 위에 서 있는 듯 뜨거운 공기가 상승하면서 사탄의 몸이 하늘로 뜯어져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너의 승리는 아니다. 나는 소멸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이 세상을 악으로 물들일 것이다.”
쿠오오오오오오!
사탄은 스스로를 불태우듯 상체에 힘을 불어 넣으며 포효했다.
거대한 열기의 기둥이 승천하면서 가루로 분해되어 버린 육체가 나풀거렸다.
“사탄이…… 소멸했다.”
제불의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티엘이 중얼거렸다.
빛의 대천사 레이엘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아라보트의 첨탑을 돌아보았다.
라의 의지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장벽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카식 레코드를 리셋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뜻.
“가자, 사티엘. 조만간 세상이 리셋된다.”
일단 리셋이 발동되면 세상은 꺼짐 상태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리셋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부분의 존재는 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똑같은 과정을 반복할 뿐.
따라서 리셋 이전까지 벌어진 사건들은 리셋 이후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될 것이다.
대천사들은 소멸할 것이고, 사탄은 인간에게 무너질 것이며, 천사들 대부분이 가라스에게 당하게 된다.
‘어떤 사건을 저장할 것인가?’
두 대천사들은 다시 제불의 폐허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택한 것은 1명이라도 많은 천사들을 살려 놓는 것이었다.
* * *
‘사탄이 소멸했다!’
아라보트의 첨탑 최상위 층에 있던 앙케 라가 번쩍 눈을 떴다.
아카식 레코드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없는, 율법 외의 존재가 지금 막 사라졌다.
따라서 이제부터 세상을 리셋시킨다면 사탄의 소멸을 유지한 채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라가 선택한 것은 리셋이 아니었다.
‘들어야 한다.’
가죽을 찢고 튀어나온 커다란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전기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동공이 잔상을 일으키면서 무언가를 그려 내자 빛의 날개를 가진 무언가가 소환되었다.
발할라 액션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시로네의 화신이었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로네를 바라보던 앙케 라가 벽에 달라붙은 신경절을 마찰시켜 음성을 전했다.
“약속을 기억하는가? 인류의 존망을 걸고 너는 나에게 해답을 가져오겠노라고 약속했다.”
“…….”
“너에게는 거핀이 남기고 간 질문에 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
시로네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 * *
하늘에서 굵직한 섬광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앙!
땅의 파편을 불태우며 기마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자는 파괴의 대천사 유리엘.
착지한 자세 그대로 힘을 압축시킨 그가 다음 순간 미로를 향해 튀어 나갔다.
“우오오오오!”
극락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공기를 불태웠다.
그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사탄이 소멸했다는 것은 조만간 라의 의지가 발동한다는 얘기.
세상은 초기화될 것이고, 라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인류를 정복할 것이다.
‘그 전에…….’
미로만큼은 제거해야 한다.
사탄의 소멸은 에텔라가 결정지었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역할의 9할은 미로가 해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존재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최후의 승패가 좌우될 수 있는 만큼, 리셋 전에 미로를 지워 두어야 한다는 게 유리엘의 판단이었다.
“왈왈! 크르르르!”
무신의 기운을 뿜어내며 돌진하는 유리엘을 향해 아리우스가 달려들었다.
미로를 신앙으로 삼은 충직한 종의 모습이었으나, 도굴꾼인 그가 파괴의 대천사를 막아 낼 도리는 없었다.
“깨갱!”
극락곤 한 방에 아리우스의 몸이 땅에 처박히더니 고무처럼 튀었다.
유리엘은 신경 쓰지 않고 미로에게 돌진했다.
사탄에게 일격을 가함으로써 힘은 극도로 떨어졌을 테지만 방심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라그나로크-강압.
쿠우우웅!
사법 광륜을 펼친 상태로 미로를 치받은 유리엘이 우뚝 정지했다.
‘……역시나 미로인가?’
라그나로크의 강압을 멈추게 할 정도로 강력한 스케일 마법사가 인간계에 그녀 말고 또 있을까?
수인을 맺은 손으로 유리엘의 이마를 짓누르고 있는 미로가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이런 식으로 들이대면 곤란한데. 지금 대기하는 남자들이 줄을 섰거든?”
“우오오오오!”
파괴의 기운을 끌어 올린 유리엘의 몸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빛을 발산했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의 미로가 황급히 거리를 벌리는 순간, 섬광으로 변한 유리엘이 돌진했다.
철륜안-일월광륜.
세인이 유리엘의 힘을 제어했으나 고작해야 즉사를 막을 수 있을 뿐이었다.
“흐윽!”
복부에 태클을 당한 미로의 입에서 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튕겨 바닥을 굴렀다.
“후우, 이건 좀 힘드네.”
피로 새빨개진 입술을 닦으며 고개를 들자 이마를 깨 버릴 듯 극락곤을 내리꽂는 유리엘이 보였다.
세인이 악을 지르며 달려갔다.
“으아아아아!”
갑자기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유리엘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인이 이빨로 발목을 물고 있었다.
“흐으으! 흐으으으!”
일월광륜이 제어하는 요소의 총합은 언제나 같다.
따라서 세인은 스피릿 존을 육체의 경계선까지 줄이는 것으로 유리엘의 힘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비루하군.”
유리엘이 다리를 흔들었으나 세인은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쾅!
이어서 짜증 난 듯 발을 내리찍자 세인의 안면이 그대로 땅을 강타했다.
“크으으으…….”
여전히 다리를 깨물고 있는 턱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네가 옳았다, 가올드. 네가 옳았어.’
체면도 품위도 상관없다.
블랙 라인에서 정신계 최강의 마법사라고 불리던 이름값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온 마음을 던져 지키는 것.
“흐으으!”
버텨야 한다.
미로만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할 거면 빨리 하라고!’
대체 리셋은 언제 되는 것인가?
아니, 어쩌면 이미 리셋이 된 이후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령 리셋이 되었더라도 그 시점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 세인에게 남겨진 마지막 숙제였다.
“인간에게 기대할 것은 더 이상 없다.”
날개를 펼치고 몇 미터를 날아오른 유리엘이 온 힘을 다해 추락하자 턱이 부서진 세인이 바닥을 굴렀다.
“으아아악!”
일월광륜의 제어가 사라진 것을 깨달은 유리엘은 다시금 미로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지친 기색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그녀의 미간에 극락곤을 겨누었다.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 미로여. 우리의 승리다.”
“그만둬라, 유리엘.”
고개를 돌린 유리엘의 눈에 처참하게 흐트러진 몰골의 이카엘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