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39
외면하듯 미로에게로 시선을 되돌린 그가 말했다.
“설령 당신이라도 지금의 저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리셋이 되기 전에 미로를 제거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늦었어. 하늘을 보거라.”
유리엘이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직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대천사에게는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아라보트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런 것인가…….’
사탄이 없어졌더라도 신의 징벌이 떨어지면 앙케 라는 소멸을 피할 수 없다.
결국 리셋에도 타임 리미트가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
천국 파괴까지 남은 시간.
23초.
남겨진 질문 (3)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간도는 생각에 잠겼다.
사탄의 존재를 깨달은 앙케 라가 리셋을 이용해 인간에게 다시 기회를 제공한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어째서…… 말소를 하려고 한 것이죠?”
앙케 라 말소.
사탄이 소멸한다면 라는 다시 한 번 최후의 전쟁을 통해 인간계를 정복할 수 있다.
굳이 스스로를 말소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질문에도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었던 우오린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침묵이 길었다.
간도는 그 사실을 통해 깨달았다.
거핀 말소기에 대한 데자뷔는 없으나 충분히 추론 가능한 이야기였다.
테라제는 라를 만났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식의 타협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 테라제 미스트라는 최후의 전쟁 말미에 라와 단독으로 대면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대면하고 싶었던 사람은 테라제가 아니야. 미스트라가 라의 말소를 예언할 수 있었던 것도, 예정보다 빨리 여황이 교체된 것도 그 아이 때문이지.”
“그 아이라면?”
“아리안 시로네.”
간도는 시로네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법협회에서 가올드에게 거래를 제안했던 당돌한 소년.
아마도 가올드는 천국 프로젝트에 그를 이용할 생각이었겠지만, 테라제의 입에서까지 시로네라는 이름이 언급된다는 것은 의외였다.
“어째서 라가 시로네를 찾았던 거죠?”
“남겨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간도가 고개를 갸웃하자 우오린이 설명을 덧붙였다.
“사탄은, 그러니까 절대적인 혼돈은 앙케 라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지. 그는 전체지만, 혼돈은 전체의 바깥에 있다. 그 미지에 대한 공포가 앙케 라의 오랜 기억을 깨운 것이야.”
태곳적 기억에 가까운 정보를 끄집어내는 우오린의 인상이 살며시 일그러졌다.
“아마도 거핀은 최근까지 실존했을 인물일 가능성이 크지. 다만 우리가 잊어버린 것일 뿐.”
맥클라인 거핀은 아카식 레코드에 자신의 존재를 말소시켰다.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지만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는 이름과 결합되어 있던 다른 정보들을 통해서 유추할 뿐이었다.
“거핀 말소의 원인은 불분명. 현재까지는 시로네와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은가 생각할 뿐. 어쨌거나 거핀이 말소 전에 어떤 식으로든 라와 협의를 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협의의 과정에서 거핀은 라에게 한 가지 화두를 던진 것이지.”
“화두라 하오시면?”
“라는 아카식 레코드의 화신. 그리고 이 세상의 전부, 또는 전체. 당시 미스트라가 라를 대면했을 때, 그가 시로네에게 듣고자 했던 대답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긴 목을 꼿꼿이 세운 우오린이 간도에게 살며시 고개를 틀며 말했다.
“왜 나는…….”
“신이 될 수 없는가?”
라가 물었으나 시로네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발할라 액션의 채무로 파산해 버린 그의 화신은 시공간의 감옥에 격리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라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그것이 거핀 말소기에 시로네와 했던 약속이고, 앙케 라가 이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문제였다.
“나는 전체. 이 세상의 시작이자 끝. 그런데 어째서 신이 될 수 없는가? 어찌하여 혼돈은 내 바깥에 있는가?”
“…….”
잠깐의 정적조차 앙케 라는 아쉬웠다.
강력한 에너지를 담은 섬광이 아라보트의 첨탑, 정확히는 자신에게 쳐들어오고 있다.
시로네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없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이제 하나뿐이었다.
“인간에게 답을 구할 수 없다면…….”
앙케 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직접 인간이 될 것이다.”
“우오오오!”
유리엘은 끝가지 미로를 밀어붙였다.
천국 파괴까지 남은 시간은 23초.
하지만 리셋이 시도되기 전까지, 신의 징벌이 천국을 파괴하기 전까지 반드시 미로만큼은 죽여야 한다.
“끄으으으!”
세인은 턱이 부서진 상태에서도 유리엘에게 달라붙어 일월광륜을 시전했다.
이카엘이 일월광륜의 위력을 증폭시켰으나 완전히 불타오른 유리엘은 그럼에도 미로의 앞으로 달려가 극락곤을 휘둘렀다.
쿠우우우우웅!
수인을 맺은 미로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천폭을 이용해 미로의 시공에 균열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진 대천사.
삼매경에 들어가 균열을 보수하기는 했으나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사달의 근원은 유리엘이었다.
“어찌 된 것인가, 미로여? 이제는 그 입이 움직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크으윽!”
미로는 사력을 다해 정신을 집중했다.
쩌저적.
그럼에도 그녀가 펼친 소규모 방어막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19초.
“승리가 눈앞에 있다!”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라! 삶은 죽음 너머에 있으니!”
반군들은 필사적으로 첨탑을 향해 나아갔다.
아라보트에 진입한 순간 모든 생각은 불타 버리고 이제는 본능이 되어 버린 승리에 대한 집착만이 남은 상태였다.
17초.
“키에엑! 키엑!”
가라스는 제불의 폐허 속을 바람처럼 휘몰아치며 천사들을 사냥했다.
고매한 정신체인 천사의 천적은 오직 번식에만 특화된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세상이 끝나는 순간에도 가라스에게는 오직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는 동물적 욕구만이 전부일 터였다.
15초.
“안 돼! 우리를 두고 가 버리면 안 돼!”
카냐는 부서진 바벨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차가운 금속 표면을 따라 또르르 흘러내리는 투명한 물방울은 마치 바벨의 눈물처럼 보였다.
13초.
“아저씨! 아저씨!”
“…….”
가올드는 살아 있는 시체와 같았다.
지옥으로 끌려들어 간 그의 영혼은 지금 어디쯤을 헤매고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함께 그 지옥을 거닐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강난은 가올드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지옥에서 피는 꽃.
그렇기에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11초.
우르르르릉!
사방에서 건물이 붕괴되고 있었다.
무심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쿠안의 얼굴 옆으로 큼직한 바위가 쿵 하고 내리꽂혔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이보다 더 큰 바위가 얼굴을 짓이길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나 가는군.’
어릿광대의 퇴장 시간이었다.
9초.
유리엘의 일격에 튕겨 나간 아리우스는 패잔병처럼 무릎을 꿇고 창공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어쩌면 눈을 잃었기에 남들보다 먼저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에에. 에에.”
하늘에서 거대한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8초.
의식을 잃은 시로네를 앞에 두고 플루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피아의 구분 없이, 모두가 옳다고 믿는 것에 모든 걸 걸고 싸웠다.
“이게 뭐야…….”
플루는 눈물을 쏟아 냈다.
열망은 언제나 현실 앞에서 신기루처럼 부서져 버리고.
“이게 뭐야아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틀어져 버리는 미래의 굴곡 속에서, 인간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7초.
“시로네…….”
멸마의 함성으로 기력을 소진한 에텔라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활처럼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잘했어요, 시로네.”
그저 온 마음을 던질 뿐이다.
“신화는 신화일 뿐.”
동물적 욕망과 지고한 정신, 선과 악, 마음을 던질 수 있는 모든 것.
그렇게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신화는, 한 소년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차가운 생각에 의해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6초.
‘파르카 쿠안이라고.’
아르민은 패배감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를 평생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시이나, 행복해야 한다.”
“오빠?”
아르민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주고 하늘을 향해 플리커 마법을 시전했다.
뒤늦게 깨달은 시이나가 가슴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안 돼에에에!”
신의 징벌의 종말 속도는 무려 41마하.
즉, 음속의 41배.
스키마의 고수조차 반응할 수 없는 속도에 스톱을 건다는 것은 극히 낮은 확률의 도박이었다.
5초.
‘미안하다, 케이라.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상아탑을 나서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서도 협정 서약을 발동하지 않았던 그녀.
쿠안의 진심을 보았기 때문일까.
오늘만큼은 기억 속에 있는 케이라의 얼굴이 조금은 그리웠다.
4초.
‘엄청나군.’
남들보다 훨씬 거대한 가시거리를 가진 아르민의 광안에 마침내 신의 징벌이 포착되었다.
그의 경험으로는 형용할 길이 없는 속도.
거리는 아직 멀었지만 이미 눈앞에 도착한 것만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섬광이었다.
3초.
“이런……!”
불과 3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신의 징벌은 여전히 엄청난 높이에 머물러 있었다.
‘더 이상 올라가는 건 무리야!’
생각이 끝나는 순간 검은 하늘에 빛이 반짝이더니 곧바로 거대한 섬광이 아르민을 꿰뚫고 지나갔다.
“허억!”
1초를 100으로 쪼갠 것 같은 찰나의 순간에 아르민은 똑똑히 보았다.
자신을 감싸는 황금빛 새를.
‘포스메터리?’
신의 징벌이 시공간 새를 그대로 관통해 지상으로 쇄도했다.
2초.
“줄루 씨?”
플루는 아라보트의 첨탑에 도착한 줄루를 돌아보았다.
임무대로라면 그녀는 제불의 지하에서 메타게이트를 찾아야 한다.
‘어째서 여기에?’
포스메터리를 해제한 줄루는 하늘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녀가 최초로 상사에 성공한 10티어급 몬스터 에르가가 메타게이트를 움켜쥐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플루의 시선이 에르가를 따라 올라갔다.
1초.
메타게이트가 열리고 마침내 까마득히 높은 창공에서 신의 징벌이 대기를 뒤흔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인간이 눈으로 담을 수 있는 마지막 광경이었다.
하늘에서 지상까지 선을 긋듯 기다란 섬광이 메타게이트의 검은 구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삐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