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42
물론 최강의 파티인 데다가 미로까지 있는 마당에 그들이 손을 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송환 지점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포위망의 범위를 좁힐 수 있기에 따로 움직이는 게 정답이었다.
“그럼 준비하고 있어.”
순찰을 끝낸 미로가 사령부를 나서자 정문 앞에서 케이지 B팀이 떠날 채비를 끝내고 대기 중이었다.
천국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인간 세상은 앞으로 더욱 바빠질 터였다.
타르반이 다가왔다.
“왔군. 출발하자고.”
품에서 거핀의 디스크를 꺼낸 미로가 메타게이트에 꽂아 넣자 철판의 틈새에서 붉은 빛이 잠시 발광했다.
“됐어. 가져가.”
미로가 던진 메타게이트를 낚아챈 타르반이 물었다.
“어디로 설정되어 있지?”
“알 게 뭐야, 사막 한가운데든 대왕고래 엉덩이 속이든? 대충 맞춰 놨으니까 알아서 찾아가.”
타르반은 짜증 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사령부로 향하던 미로가 돌아섰다.
“무슨 뜻이야?”
“너 또한 토르미아의 국민 아닌가? 차라리 함께 돌아가서 왕국에 협조하는 건 어때?”
“토르미아의 국민이라.”
물론 미로의 조국은 토르미아다.
그리고 그 조국은 그녀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차원의 감옥 속에 밀어 넣었다.
“서운한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너는 물론이고 가올드 팀 또한 천국의 사건을 접한 당사자들. 앞으로 각국의 감시를 받게 될 거야. 그러느니 차라리…….”
“후후, 정중히 거절할게.”
미로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난 만인의 연인이라서.”
타르반은 두 번 제안하지 않았다.
역사상 최강의 스케일 마법사가 싫다고 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가올드, 괴물을 깨워 버렸구나.’
미로가 인간계로 다시 돌아왔다.
앞으로 세계 각국의 정세가 급변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상관없는 일이지.’
케이지 B팀이 돌아가면 천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토르미아에 보고될 것이고, 이 정보를 토대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간다.”
타르반이 메타게이트를 작동시켜 바닥에 던지자 검은 구체가 공간을 벌리듯 탄생했다.
“설마 진짜로 대왕고래 배 속은 아니겠지?”
그렇게 케이지 B팀이 천국을 떠나고 메타게이트의 검은 구체가 사라지자 미로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후우, 그렇다면.”
그녀의 품속에서 또 한 장의 디스크가 나왔다.
“우리도 집으로 돌아가 볼까?”
새로운 여정 (2)
* * *
천국 제3천 셰하킴.
신의 징벌이 시온에 꽂히면서 발생한 여파로 영생자들의 거주지인 파라다이스는 지진파의 방향으로 모조리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폐허 속에서도 오롯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 있었으니, 바로 도시 광장 북쪽에 있는 영도자들의 사법기관 대회의당이었다.
현재 건물 지하, 통칭 밀실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영생자들의 최고 영도자 10인이 모여 있었다.
영생자들 사이에서 십로회라고 불리는 이 모임의 수장들은 하나같이 유구한 세월을 영위한 끝에 화신술에 도달한 자들이었다.
시로네가 전쟁 중에 상대했던 무르카, 데이나, 라운도 족히 천 년을 넘게 산 화신술의 고수였지만 삶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반면에 십로회의 수장들은 최소 1만 년 이상 영생을 누린 자들로서 삶과 죽음에 대한 미련마저 뛰어넘은 구도자들이었다.
“가라스는 거인들에게 소멸됐다고 하는군.”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유일하게 상석에 앉아 있는 대머리 노인이 말했다.
눈동자는 미끌미끌한 검은자위뿐이었고, 말을 할 때마다 두꺼비처럼 턱 밑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십로회 회장 베론(나이 추정 불가)-아미타 반야.
베론의 왼편에 앉아 있는 남자가 말했다.
“선택적 진화의 실패지. 천사들이 모두 떠나 버렸으니.”
조각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금발을 뒤로 넘긴 그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말하면서 벌어지는 입속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박혀 있었다.
십로회 서열 3위 파우스트(추정 나이 1만 3천 세)-백귀 야차.
파우스트의 건너편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가라스 따위는 상관없어. 중요한 건 앙케 라가 말소되었다는 것. 이제부터는 우리가 인간을 지배해야 한다.”
단단한 덩치에 머리에는 울긋불긋 둥그런 혹이 튀어나와 있었고, 호전적으로 앙다문 삼각형의 이빨들이 정확하게 맞물려 있었다.
십로회 서열 4위 후아마(추정 나이 1만 7천 세)-금강 야차.
후아마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여자가 말했다.
“73구역의 빛, 시로네라고 했지. 전쟁 중에 영생자하고도 맞붙은 것 같던데.”
그녀의 머리는 칠흑처럼 검어서 어둠에 스며든 듯했고, 뱀처럼 매끈한 몸은 신체의 경계선을 붕괴시킨 듯 오직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실루엣 자체는 아름다웠으나 인간의 신체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괴기스러운 느낌이었다.
십로회 서열 7위 슈라(추정 나이 1만 200세)-사도 반야.
“흥! 영생자라고 해도 아직 젖도 안 뗀 애기들이었어. 미로 외에는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설마 슈라, 너까지 겁을 먹은 건 아니겠지?”
후아마의 핀잔에 슈라가 맞받아쳤다.
“누가 뭐래? 난 그냥 시로네라는 인간에게 호기심이 든 것뿐이야.”
그러더니 시로네를 상상하며 뱀처럼 긴 혀를 옷 속으로 집어넣어 전신의 굴곡을 핥았다.
“맛있겠다, 츄릅.”
그녀의 혀가 빠르게 입속으로 빨아들여진 것까지 확인한 파우스트가 말을 덧붙였다.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 대천사 파이엘을 소멸시킨 것도, 앙케 라 말소 직전 잠깐 보였던 섬광도 그가 해낸 업적. 그리고 무엇보다…….”
후아마가 답답한 듯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러니까 그건!”
“놈은 울티마 시스템이다.”
“끄응!”
후아마는 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틀었다.
영생자에게도 선대가 되는 가이아인의 정신을 시로네가 가진 이상 반박할 도리는 없었다.
말석에 앉아 있는 여성이 중얼거렸다.
“신을 죽인 인간인가…….”
늑대처럼 사나운 인상이지만 묘하게 여린 느낌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는 야생마의 갈퀴처럼 풍성하고, 두꺼운 터번을 어지럽게 두르고 있어 불꽃처럼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해진 터번만큼이나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고름이 헤퍼서 좌우로 벌어진 젖가슴의 무덤이 드러나 있었다.
대검의 손잡이에 머리를 기댄 채로 의자 위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있었고, 지지벌갠 허벅지의 깊은 곳까지 보였다.
십로회 서열 9위 박녀(추정 나이 1만 1,200세)-수라 야차.
베론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죽였다고 볼 수는 없지. 어쨌거나 라는 스스로의 의지로 말소되었으니. 하지만 그 소년이 이번 전쟁의 주요한 변수였던 것은 사실.”
파우스트가 물었다.
“그를 십로회에 영입할 생각입니까?”
슈라가 말했다.
“그건 좀 성급한데. 일단 시로네의 화신은 활동 정지 상태라 의견을 들을 수조차 없으니까. 로 간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너는 그 자식을 먹고 싶은 것뿐이잖아.”
슈라에게 쏘아붙인 후아마가 의견을 냈다.
“라가 말소된 마당에 경계할 대상은 없어. 굳이 따지자면 천사, 인간 중에서는 미로 정도뿐이야. 울티마고 뭐고, 강한 게 전부라고.”
강력한 화신술로 세상을 지배할 힘을 가진 그들이지만 여태까지 엄격한 통제하에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 자체를 말소시키는 앙케 라에게 대항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이제 인간은 자유를 얻었고, 영생자들의 족쇄는 완전히 풀린 셈이었다.
파우스트가 말했다.
“슬슬 정해야겠군요. 현존하는 유일한 울티마 시스템, 73구역의 빛, 시로네는 십로회의 적입니까, 동지입니까?”
정적이 길어지자 베론이 제안했다.
“다수결로 하지. 어쨌거나 우린 인간이니까. 자, 시로네를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게.”
잠시 후 밀실에 모인 10명이 각자의 생각을 거수로 표명했다.
베론의 말대로, 투표 결과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 * *
해발 7천 미터 높이의 설산에 검은 구체가 탄생했다.
잠시 후 미로를 선두로 일행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추워.”
플루가 몸을 떨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산소조차 희박한 산맥의 정상이었고, 볼 수 있는 건 수평으로 휘날리는 눈보라뿐이었다.
“샐러맨더를 소환하면 버틸 수 있겠지만 그러면 눈사태가 일어날 것이다요.”
줄루는 3티어급 몬스터 카이드라를 소환했다.
하루에 7천 킬로미터를 날 수 있는 거대한 괴조에 올라탄 일행은 빠르게 산맥을 벗어났다.
도착한 곳은 해발 600미터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눈구름이 뒤덮인 우중충한 풍경에 돌을 깔아 만든 길은 축축했고 사람들의 의복은 생소했다.
갑자기 거대한 괴조가 작은 마을에 착지하자 주민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미로는 주름이 깊게 파인 노인에게 다가갔다.
“말씀 좀 물을게요. 여기가 어디죠?”
세인의 정신계 마법을 통해 통역이 되자 노인이 눈을 깜박거리더니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스카투.”
마법을 처음 접한 것치고는 태연한 반응이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알게 된 미로는 이내 수긍했다.
“아, 에스카투.”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대륙 북동쪽에 있는 산맥의 이름이었다.
“일단 대륙에 들어오기는 했네. 그럼 어떻게 할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조촐하게 회식이라도?”
아무도 농담에 대꾸하지 않자 미로가 입맛을 다시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여기서 헤어지자. 혹시라도 추격이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다들 정해 둔 곳은 있어?”
강난은 가올드와 함께 줄루의 아지트로 간다고 했고 시이나와 에텔라는 마법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쿠안은 자신의 거처에 대해 함구했고, 아르민은 이미 상아탑을 나온 몸이니 어디를 가든 자유였다.
문제는 플루였다.
그녀가 돌아가야 하는 마법협회는 이미 새로운 협회장 루피스트에게 장악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괜찮겠어? 차라리 나랑 가는 게 어때?”
강난의 제안에 플루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선은 협회로 돌아가겠어요. 이자벨 님도 걱정되고요.”
“만약 그들이 천국에서 있었던 일을 추궁한다면?”
“원하는 게 있다면, 알려 줘야겠죠.”
모두의 시선이 플루에게 집중되었다.
“이미 케이지 B팀이 갔기 때문에 저에게서 얻을 게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정보를 제공할 겁니다. 저 또한 토르미아 왕국에 소속되어 있는 공인 마법사니까요.”
거기까지 들은 강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답구나.”
단순히 가올드를 추종한다는 이유로 프로젝트에 포함시킨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최우선시하는 프로라는 것을 알기에 시로네의 보좌를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조심해. 루피스트가 쉽게 복직을 시켜 주지는 않을 거야.”
“감수해야 할 일이죠. 하지만 저 같은 인재를 안 쓰고 배기겠어요?”
플루의 너스레에 강난도 웃고 말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믿는 것.
프로 마법사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일이었다.
“가올드 님을 잘 보살펴 주세요. 앞으로 저는 협회를 위해 일하게 되겠지만…….”
플루가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말했다.
“한번 전우는 영원한 전우니까요.”
“그래, 한번 전우는 영원한 전우지.”
플루의 말에 담긴 속뜻을 깨달은 강난은 줄루를 돌아보며 그만 떠나자는 신호를 보냈다.
“도시까지 갈 사람은 타도 된다요. 데려다주지.”
“아, 그렇다면 저희도…….”
시이나와 에텔라만 도시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남은 자들이야 딱히 바쁜 일도 없었고 험지 따위에 애를 먹을 만큼 나약한 자들도 아니었다.
아르민이 시이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이나, 너는 좋은 교사가 될 거야.”
“오빠.”
시이나는 아르민의 말을 이해했다.
단지 영겁의 성찰자를 프로젝트에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었을 때만 해도 자존심이 상한 그녀였지만 이제는 알았다.
어째서 가올드가 자신보다 에텔라를 더 원했는지를.
“모두가 싸울 필요는 없어. 모두가 강할 필요도 없지. 학교에 돌아가서 네가 원하는 것을 해. 훌륭한 교사가 되는 일 말이야.”
시이나는 처음으로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오빠도 행복해야 돼.”
그 말이 오히려 아르민을 서운하게 만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랑하는 여동생이 마침내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봐.”
괴조 카이드라가 창공으로 날아오르고, 아르민 또한 쿠안에게 묵례한 뒤 플리커 마법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한 사람씩 각자의 길을 떠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아리우스가 시로네를 업은 채로 미로에게 다가왔다.
“미로 님, 우리는 어떻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