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43
미로는 질주하듯 펼쳐진 세계를 돌아보았다.
“글쎄, 어디부터 둘러 볼까?”
20년 만에 돌아온 세상은 온통 미지로 가득했지만, 그녀에게는 그 모든 미지가 놀이터일 뿐이었다.
* * *
히스토리 서치를 끝낸 우오린이 눈을 번쩍 떴다.
“찾았다!”
역사 전체를 돌아본 대장정 끝에 그녀가 찾아낸 것은 밑사건과 다른 하나의 균열.
간도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찾았습니까?”
“중동에서 태어났다. 나이는 15세에서 30세 사이. 성별은 남성. 이름은 아카제지만 이미 고향을 떠났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을 테지.”
우오린이 풍장을 부르자 문이 벌컥 열리면서 올빼미 가면을 쓴 30명의 인원이 연기처럼 빨려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최고의 첩보력을 동원해서 찾아라. 아카드 사막의 부족에서 태어났다. 오아시스 전쟁으로 일가족은 사망했고, 생존자 중의 1명이다.”
우오린이 전한 정보는 그게 끝이었다.
대략적인 나이대와 성별, 단순한 정보만으로 온 세계를 뒤져야 하는 일이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풍장이 소리 없이 빠져나가고, 우오린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방 안을 서성거렸다.
라가 지상에 강림했다.
목적은 단 하나. 혼돈을 구축하는 인류를 멸하기 위해.
“정말로 라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말입니까?”
“그래.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가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오린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말을 간도는 상상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아카식 레코드의 환생이다.
그가 이 세계에 대한 판단을 끝냈을 때 일어날 사건은 전대미문의 충격파로 인류에게 다가올 것이다.
“거대한 재앙이 왔군요.”
“상관없어. 설령 신이라도 테라제의 아성을 넘볼 수는 없다. 만반의 대비를 해야겠지.”
마침내 걸음을 멈춘 우오린이 간도를 돌아보았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간도.”
거핀 말소에 이어 앙케 라 말소, 그리고 이것이 세 번째 리셋이자 마지막 리셋.
이름하여 대大정화기였다.
무명의 검사 (1)
바이덴과 페리스 왕국의 국경 지대는 휴전협정을 맺은 뒤에도 끊임없이 국지전이 일어날 만큼 위험한 지역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기사 수행을 하는 검사가 실전을 경험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기도 했다.
국경 지대에서 바이덴 쪽으로 조금 더 치우친 라프네 마을.
1명의 검사가 마을 입구를 넘어섰다.
날렵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갖춘 육체는 단순히 멋을 위해 만든 근육이 아님을 증명했고, 등 뒤에 차고 있는 거대한 직도가 그 사실을 방증하고 있었다.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카이젠 검술학교를 자퇴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기사 수행자, 오젠트 리안이었다.
“제길…….”
완전히 쉬어 버린 목에서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전장을 찾아 세상을 유랑하다 바이덴 왕국 쪽의 용병이 되어 페리스 병사와 국지전을 벌였다.
하지만 전말은 왕국에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두 지역 관리가 은밀한 협상을 통해 이루어 낸 소모전이었고, 고용한 용병들은 입막음을 위해 대부분 척살당했다.
졸지에 아군에게까지 공격을 받은 리안이었으나 결국 살아남아 이곳까지 당도한 것이다.
‘조금만 주의가 깊었더라도…….’
하기야, 어디를 가든 용병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일전에 갈리앙트에서 만났던 앵무 용병단도 귀족들의 이권 다툼에 휘말려 도적단으로 전락하고 말지 않았던가.
‘여기서도 밥 빌어먹기는 글렀군.’
전쟁터가 고달픈 이유 중에는 전장을 벗어나서도 마땅히 쉴 곳이 없다는 사실도 한몫을 했다.
지금 도착한 마을도 다르지 않아서, 시장은커녕 바닥에 굴러다니는 음식물 찌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많은 가옥들이 지붕이 무너진 채 보수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말라 있었다.
‘그러면 오늘 밤에 산을 넘어야 하는데.’
리안에게 음식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칼로 위협한다면 어쩔 수 없이 내놓기는 하겠지만, 세상을 떠돌면서 결국 그렇게 도적이 되어 버린 수많은 기사 수행자를 보아 온 그였다.
“후우! 후우!”
갑자기 머리에 열이 오르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전쟁 중에 옆구리에 화살을 맞은 상처가 심하게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응급치료는 했지만 염증까지 잡아내지는 못했고, 더군다나 며칠째 먹은 것도 없어 몸이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쿵!
리안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길가에 있는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쓰러졌다.
“후우우우!”
목에서 뿜어지는 숨결이 이빨을 녹여 버릴 것같이 뜨거웠다.
“죽는 건가.”
클럼프에게 호언장담을 하고 뛰쳐나올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안 좋은 것에는 한계가 없음을.
피로, 고통, 공포, 절망 등 인간을 망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리안을 괴롭혔다.
이 정도면 됐다라고 말하며 불행을 멈춰 줄 교관 따위는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견딜 수 없다면, 죽어라.
‘하긴, 그것도 괜찮지.’
리안은 어떻게 전쟁터를 빠져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피 칠갑을 하고 괴성을 지르며 두 왕국 병사들의 포위망을 뚫고 날뛰는 자신의 모습만이 전지적 시점의 이미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죽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야.’
리안은 실없이 미소를 지었다.
웃음이 나와서가 아니라, 여전히 웃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두렵지 않으니까.’
다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땅에 묻힐 백골이 두려울 뿐.
“시로네……. 테스…….”
리안은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눈꺼풀이 닫힐 때마다 시야가 절반씩 좁아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아저씨, 왜 그래요?”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끄트머리에서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 봐요.”
검은 종이에 구멍 하나 뚫은 듯 좁아진 시야에 소녀의 얼굴이 밀려드는 모습이, 리안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아직은 알 수 없지. 하지만 가능할 거야.
-스밀레. 스밀레.
-위험하지만,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잖아.
-스밀레. 스밀레.
“허억!”
눈을 치켜뜬 리안이 벌떡 일어났다.
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환청처럼 나지막하게 반복되는 소리는 여전히 청각 신경에 맴돌고 있었다.
“빌어먹을!”
환청이 들리는 꿈을 꿀 때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욕지거리.
점점 미쳐 가고 있는 것일까?
리안은 애써 부정적인 마음을 외면했다.
‘스밀레가 도대체 뭐야?’
유일한 힌트는 직도 를 받았을 때 들었던 할아버지의 일화였다.
산적단을 토벌하고 치명상을 입은 그가 이상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 한 노인과 손녀를 만나 목숨을 구원받은 적이 있었다.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끊임없이 들렸던 말이 바로 스밀레였다.
‘오브제에 담긴 비밀인가?’
리안은 벽에 기대어 둔 를 빤히 바라보았으나 아르망과 달리 검은 어떤 정보도 전해 주지 않았다.
“응?”
거기까지 생각이 정리된 뒤에야 깨달은 것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황급히 침대에서 빠져나온 리안이 직도의 손잡이를 쥐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갈색 머리를 좌우로 땋은 여덟 살 정도의 소녀가 들어왔다.
“어? 아저씨 일어났다! 엄마, 아저씨 일어났어!”
소녀가 문밖을 돌아보며 소리치자 잠시 후 30대 중반의 여성이 들어왔다.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전쟁으로 피폐해진 마을치고는 단아한 인상이었다.
“깨어났군요. 다행이에요.”
처음 마주한 사람이 어린 소녀와 여성이고 눈빛과 말투에 적의가 없음을 깨달은 리안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이곳은 어디죠?”
“바이덴 왕국에 속한 마을이에요.”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사람답게 그녀는 피아 식별을 할 수 있는 정보부터 전해 주었다.
“아, 마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다.
의식을 잃기 직전 말을 건넨 소녀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를 데려온 거죠?”
“기억이 나지 않는가 보군요. 제 딸의 손을 잡고 직접 걸어왔어요. 물론 들어오자마자 쓰러지기는 했지만.”
그랬던가?
어쩌니 해도 살고 싶기는 했던 모양이라고 생각이 들자 절로 기분이 씁쓸해졌다.
“일단 나와요. 식사를 준비했으니.”
여자가 딸을 데리고 나가자 리안은 붕대를 두르고 있는 몸을 살펴보았다.
화살에 맞은 부위가 감쪽같이 아물어 있었다.
스키마를 할 수 없는 그가 이토록 빠른 시간에 회복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이제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환청이 들리는 꿈을 꿀 때면 언제나 모든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할아버지도, 꿈을 꿨던 건 아닐까?’
잠시 궁리하던 리안은 도움을 받아 놓고 무례가 심했다는 생각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집은 그리 크지 않아서, 방문을 나서자마자 거실이 보였다.
낡은 원형 식탁에 소녀가 앉아 있고 여자는 수프를 끓이고 있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소녀의 옆자리에 앉은 리안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 준 것뿐이에요. 정말 대단하더군요. 상처가 아무는 것을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에요. 스키마라는 거겠죠?”
검술에는 무지해도 전쟁터에서 살다 보면 이런저런 말을 듣는 법이다.
“아, 네. 뭐…… 그런 겁니다.”
리안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아저씨, 용병이죠? 이름이 뭐에요?”
“나? 리안. 그러는 너는?”
험한 일을 하다 보면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기사 수행에서 성까지 밝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리안? 흐음, 리안.”
소녀는 리안이라는 이름을 계속 웅얼거리더니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아저씨, 별로 안 유명한 용병인가 봐요. 아, 내 이름은 리즈예요.”
리안은 울컥했다.
이런 작은 마을에 이름이 알려졌으리란 기대는 애초부터 한 적도 없지만 순진한 꼬마의 입을 빌려서 듣자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그런데 꼬마야, 나는 아저씨가 아니야. 아직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리즈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요. 아저씨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거든요. 마음만은 10대라고.”
“…….”
리안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이 여자가 수프를 담은 접시를 들고 식탁으로 걸어왔다.
“오빠를 놀리면 못써. 죄송해요, 리즈가 장난치는 거예요.”
“하지만 나한테 꼬맹이라고 했단 말이야!”
딸의 말을 무시하고 여자는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 여행을 했는데도 수염이 많이 자라지 않았죠. 리즈는 아직 어려서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 말은 곧, 제 얼굴은…….”
여자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농담이에요. 지금 보니 앳되고 잘생긴 청년이네요.”
“하하, 그런 말을 들으려는 건 아닌데…….”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 리안은 소녀와 엄마의 시선을 깨닫고 머쓱하니 입맛을 다셨다.
장난기가 많은 건 모녀 유전인 듯했다.
“그럼 일단 잘 먹겠습니다.”
리안은 거두절미하고 게걸스럽게 수프를 퍼먹기 시작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수프에 벌레 몇 마리가 들어갔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을 듯했다.
리안이 허기를 채울 때까지 기다린 여자가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실비아예요. 여기는 딸 리즈.”
리안과 눈을 마주친 리즈가 혀를 삐죽 내밀었다.
“그럼 남편분은……?”
“죽었어요. 3년 전 전쟁터에서 우리를 두고 떠났죠.”
아빠를 떠올린 리즈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난 전쟁 싫어! 만날 찾아오는 그 도적들도 싫고!”
“리즈, 엄마가 뭐라고 했지? 손님이 계실 땐…….”
리즈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리안의 손목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