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5
30초 지점에서 이루키가 동점을 잡자 시로네는 수열식을 가속시켰다.
‘더, 더 빠르게.’
가히 최상의 컨디션.
엄청난 수의 행렬을 뛰어넘자 눈을 빠르게 깜박이듯 세상이 번쩍번쩍했다.
학생들이 소리쳤다.
“시로네가 다시 4점 차 리드야!”
이루키도 슬슬 초조했다.
연습 때와 달리 지금은 최선을 다해 타기팅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밀린다고? 내 연산 속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3일 전만 해도 월등히 앞섰던 상황. 대체 그 짧은 시간에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가?
시로네는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잡았다.
‘모듈화의 제한을 푼다.’
여태까지 100개의 숫자를 균등하게 처리했다면, 지금은 닥치는 대로 연산 중이었다.
187개, 293개, 378개, 423개…….
하나의 행렬이라도 놓치면 수열식 자체가 붕괴되는 외줄타기에서, 집중력은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469점 대 432점.
시로네가 갑자기 치고 올라가자 학생들이 전부 일어나 함성을 내질렀다.
심지어 에텔라마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루키는 시로네의 작전을 간파했다.
‘연산 루틴을 깨 버렸군. 일종의 정신적 도핑. 무조건 이길 생각인 거야.’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대를.
‘받아 주마, 시로네.’
생애 최고의 라이벌 앞에서, 이루키 또한 외줄타기 승부를 시작했다.
‘내 도박은 너하고 차원이 달라.’
변화는 곧바로 일어났고,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연달아 터지는 리듬 사이로 또 다른 리듬이 끼어드는 게 느껴졌다.
“어? 저게 뭐야?”
542점 대 558점.
시로네의 점수를 따라잡은 것도 모자라 아예 추월해 버린 속도였다.
마크가 물었다.
“세리엘 선배님, 어떻게 된 거죠? 혹시 시로네 선배가 실수를 한 건…….”
“아니, 시로네의 속도도 올라가고 있어. 이루키의 속도가 더 빠른 것뿐이야.”
“하지만! 순식간에 100점이 올랐잖아요! 속도가 2배 이상 뛴다는 게 가능한 가요?”
세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그것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또한 정말로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상황도 완벽하게 설명이 되었다.
“저 녀석, 스피릿 존이 두 개야.”
세리엘의 말을 들은 후배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미지 존을 살폈다.
흐릿하기는 했지만 2개의 잔상이 저마다 다른 각도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정, 정말이네?”
세리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단지 대결 때문이 아니라, 마법학교에 또 한 명의 경쟁자가 나타난 상황이었다.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더블 스피릿 존이라니.’
이탈형 고유의 특성인 정신 분할.
하지만 이탈형에 익숙하다고 해도 선택받은 자만이 가능한 고등 기술이었다.
‘나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현재 학교에서 가능한 사람은 졸업반까지 포함해 이루키밖에 없겠지. 무엇보다 정신을 둘로 나누었는데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두 가지 수열식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어. 인간의 머리로 가능한 일일까?’
이루키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로그를 씌운 두 가지 수열식이었다.
‘전부 암산으로 처리한다는 건, 재능으로 설명할 수준이 아니야. 이건 돌연변이다.’
서번트의 진정한 위력은 점수가 되어 전광판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692점 대 845점.
100점이 넘는 점수 차였고, 레벨도 이루키가 몇 단계나 더 높은 상황이었다.
“끝났어. 여기서 결정된 거야.”
대부분의 학생들이 승부가 났다고 생각하는 반면 시로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 더 많은 숫자를 묶어!’
모듈화로 처리되는 숫자의 개수는 이제 평균 1천 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732점 대 911점.
시로네는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이루키 또한 개인 기록을 넘어 에이미의 기록마저 갈아 치울 기세였다.
학생들은 넋을 잃었다.
“이루키…… 진짜 대단하다. 이대로 가면 클래스 파이브 역사를 새로 쓰는 거야.”
그러는 동안에도 시로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연산으로는 도달할 수 없어.’
뛰어넘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이것이 과연 인간에게 허락된 능력일까?
대답을 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로네는 마치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수를 초월한다!’
리미트리스(7)
연산은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시로네가 가고자 하는 곳은 수열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
수가 아닌 그 너머의 개념이었다.
‘무한.’
수백, 수천 개씩 묶여 들어오던 모듈화의 리미트가 점차 사라져 가고…….
‘더 멀리.’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숫자가 하나의 점으로 통합되듯 밀려들어 왔다.
펑! 펑! 펑! 펑!
타깃이 터지는 리듬이 급격히 치솟자 모두의 시선이 시로네에게 돌아갔다.
두 줄기의 섬광이 동시에 나가고 있었다.
“시로네 선배님도 더블이에요! 하, 하지만 이미 늦은 거겠죠? 남은 시간이…….”
“아니, 더블이 아니야.”
세리엘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섬광의 개수가 계속 2배로 늘어나더니 급기야 서로 맞붙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해방감에 전율했다.
“아…….”
세상에서 벗어난 기분.
자신을 이루는 모든 감각이 만물에 스며들면서 자아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사방으로 뻗는 섬광이 전부 합쳐지고, 급기야 거대한 장막이 되어 공간을 뒤덮었다.
타깃이 나오는 순간 폭발하고 스피드건의 레벨이 계속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아…… 아아아!’
잊히고 있다.
시로네라는 이름도, 존재도, 그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서 옅어지고 있었다.
반면 이루키는 더욱 자신에게 집중했다.
“크으으으!”
무섭게 추격하는 시로네의 점수를 확인했지만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시로네가 얼마나 속도를 올리든 그보다 더 빠르게 질주하면 되는 것이다.
‘서번트의 계산에는 한계가 없다! 모조리 계산해 주마! 세상에 존재하는 숫자의 끝을 봐 주마!’
이루키의 더블 스피릿 존이 잔상조차 사라진 속도로 타깃을 폭발시켰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초! 0.9초! 0.85초! 빌어먹을! 뭔 놈의 시간이 이렇게 안 가!’
삐-!
영겁 같던 1분의 시간이 끝났다.
타깃이 홀로그램으로 사라지면서 시로네와 이루키가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는 이루키와 달리 시로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이 없었다.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후우.”
이루키는 자신의 점수를 확인했다.
1,247점.
고급반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에이미의 최고 기록을 260점이나 앞섰다.
‘나쁘지 않군. 내가 이겼나? 그런데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시로네는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루키가 고개를 돌렸을 때 시로네는 얼굴을 가슴에 파묻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숨은 쉬고 있었으나, 딱히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묘한 느낌이었다.
‘뭐야?’
이루키는 시로네의 전광판을 살폈다.
1,253점.
두 사람의 점수를 몇 번이고 대조한 마크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선, 선배님. 시로네 선배님이…….”
“시로네가 이겼어!”
마크를 끌어안고 방방 뛰던 세리엘이 시로네에게 달려가자 후배들도 질세라 뒤를 따랐다.
“시로네 선배님! 정말 축하…… 어? 선배님?”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시로네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허억!”
마치 탄생한 것처럼, 그는 폐부 깊숙한 곳까지 숨을 빨아들였다.
무한의 영역으로 흩어지던 정신이 실낱같은 이성을 따라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어…….”
주위를 둘러보자 세리엘은 물론 후배들과 동급생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시로네, 괜찮아? 나야, 세리엘.”
기억이 되돌아오고, 비로소 자아를 되찾은 시로네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네, 괜찮아요.”
그 순간 주위를 감싸고 있던 후배들과 동급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진짜 멋있었어! 역시 네가 최고야, 시로네!”
모두가 시로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루키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
무심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어깨를 짚었다.
네이드였다.
“졌네. 그래도 멋진 승부였어.”
“별로. 승부는 멋있으려고 하는 게 아니야. 이기기 위해 하는 거지.”
이루키다운 대답에 입꼬리를 올린 네이드는 시로네 쪽을 돌아보았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또한 친구이기에, 그는 마음으로 엄지를 세웠다.
‘축하한다, 시로네.’
학생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과 달리 에텔라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점수 차이는 6점이지만, 정신의 속도로 계산했을 때 엄청난 거리였다.
‘이루키는 수의 끝에 도달하려고 했다. 말 그대로 극한. 그것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무한이라는 개념이 있다.
극한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수를 아득히 넘어서는 가장 거대한 공리.
누군가는 그것을 신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만물이라 부른다.
‘인간은 무한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또한…… 인간은 무한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모순된 문장에 담겨 있는 감정이야말로 어젯밤 시로네가 느낀 슬픔이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니?’
숫자가 가진 유한의 장벽을 깨달은 시로네는 정신을 무한의 영역으로 퍼트렸다.
실로 인간이 무한에 도달한 것이지만, 또한 그때부터는 인간이 아니기에…….
‘정말로 떠날 생각이었어?’
마법사들은 이런 현상을 일컬어 불멸의 함수인 ‘이모탈 펑션’이라 한다.
그리고 에텔라는 수도사가 부르는 이모탈 펑션의 다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니르바나(열반).’
평범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도 아니거니와, 도달해서도 안 된다.
에텔라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안 돼, 시로네. 인간이 함부로 무한을 품어서는 안 되는 거야. 그것이 아무리 빛나 보여도, 아무리 찬란하게 보인다고 해도, 열반에 들어간 순간 너라는 존재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오랜 고행을 통해 세상의 무상함을 깨달은 고승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지만, 시로네는 아직 열일곱 살의 소년이었다.
미래가 창창한 그가 품기에 무한이라는 이름은 너무 위험하고 또한 허무했다.
‘그래, 기절로 끝난 걸 보면 완벽한 건 아니야. 하지만 정말로 열반에 들었다면…….’
그다음은 에텔라도 모른다.
유일하게 아는 것은 세상을 떠난 시로네에게 평생 참회하며 살아가야 했을 거라는 것.
1등을 차지한 사람답지 않게, 시로네는 슬픈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에텔라는 우연이 아님을 확신했다.
“시로네, 너…….”
“죄송해요, 선생님. 이기고 싶었어요. 얼마나 위험한지 확신하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