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58
“치! 오빠도 아직 안 떨어졌잖아!”
태양의 아이들은 열매처럼 정수리에 꼭지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다가 결국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알았으니까 빨리 가자. ‘생명나무’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우드가가 길을 재촉하며 말했다.
“너도 이제 여덟 살이니까 ‘채집’을 해야 돼. 노예들에게는 시킬 수 없는 중요한 일이야. 오늘 길을 잘 보고 외워 둬.”
“하지만 ‘오염 구역’을 지나가야 하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태양의 아이들은 위험 요소가 가득한 험지를 능숙하게 빠져나와 도시 속으로 들어갔다.
“크하하하! 저기 있다!”
그때 갑자기 앙칼진 고함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하메이의 머리를 짓누르며 주저앉은 우드가는 모퉁이 밖으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지하인이다!’
팔이 길쭉하고 귀 아래까지 털이 자란 자들이 건물 잔해를 능숙하게 밟아 가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태양의 아이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지만, 그들 또한 아포칼립스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인류였다.
통칭 지하인.
원숭이의 신체 능력에 인간의 지능을 가진 종족으로, ‘사냥’을 통해 섭식을 하는 자들이었다.
‘하필이면 여기서 만나다니……!’
지하인이 위험한 이유는 땅속에 매장된 고대 문명의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냥을 하고 있는 자들도 저마다 기관총을 들고 폭탄을 주렁주렁 매단 채 달려가고 있었다.
“먹을 거다! 먹을 거!”
뱀 굴처럼 복잡한 잔해를 빠져나간 7명의 지하인은 하늘을 날고 있는 물고기를 겨누었다.
바다가 말라 버리면서 어떤 어류는 부레에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채워 하늘을 날도록 진화되었고, 지금 그들이 노리는 종은 라제트라는 하늘 물고기였다.
“쏴! 갈겨 버려!”
지하인들이 방아쇠를 당기자 반동에 긴 팔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탄창 하나가 금세 비워졌다.
우오옴! 우오옴!
하늘 물고기 라제트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항문 쪽으로 제트기류를 내뿜었다.
제트기관을 이용해 도주하는 것은, 무게를 줄인 탓에 내구력이 형편없어진 어류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탄환이 라제트를 관통하자 몸통이 급격히 쪼그라들면서 지상으로 추락했다.
“맞혔어! 눈알은 내 거야!”
살점은 거의 없을 테지만 그래도 7명이 하루를 빠듯하게 버틸 정도는 될 것이다.
쪼그라든 물고기가 땅에 떨어지자 7명은 모조리 달려들어 맨손으로 물고기를 해체했다.
“맛있어! 맛있어!”
손에 쥐인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입으로 밀어 넣는 광경을 훔쳐보고 있던 하메이가 몸을 떨었다.
“끔찍해.”
음식을 먹는 것은 지하인이 생존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다.
하지만 섭식이란 활동 자체에 강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태양의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광경이었다.
“지금이야. 정신없는 틈을 타서 빠져나가자.”
우드가는 하메이를 데리고 길을 건넜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긴장된 마음을 끌어안고 세 블록을 더 달려서야 두 사람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 냈다.
“휴우, 됐어. 여기서부터는…….”
우드가의 말이 갑자기 끊어졌다.
도로 저편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1명의 지하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녹슨 냄비를 방탄 철모처럼 쓰고 어깨에는 탄띠를 걸쳤으며 두 손에는 묵직한 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고기다!”
털 빠진 원숭이처럼 생긴 지하인은 태양의 아이들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며 기관총을 갈겼다.
조준 사격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지 대충 전방에 대고 갈기자 건물들이 퍽퍽 부서져 나갔다.
“달려! 달려, 하메이!”
건물의 철골에 피부가 긁히는 것도 모른 채 두 사람은 정신없이 길을 내달렸다.
“아야!”
그때 하메이의 발치에 무언가가 걸렸다.
낙법조차 못 하고 앞으로 고꾸라지자 그녀를 향해 돌아선 우드가의 눈이 충격에 휩싸였다.
“위험해! 하메이!”
“이야호오오오!”
마치 원숭이가 나무를 타듯 지하인이 신호등에서 뛰어내리며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나 혼자 다 먹어야지!”
끼야아아아!
그때 반대편에서 거대한 괴조가 날아와 거대한 부리로 지하인을 낚아채 갔다.
날개가 있다는 건 육식 생물이라는 얘기.
에너지원이 부족한 세계에서 폭발적인 속도를 내는 건 도박이지만, 공기를 먹는 생물들의 제트기관보다 빠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총성의 굉음까지 함께 물어 버린 듯 괴조가 아련하게 멀어져 가자 다리가 풀린 우드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우우, 진짜 죽을 뻔했어. 하메이, 괜찮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그제야 고개를 든 우드가는 넘어진 자리에서 땅을 살피고 있는 하메이를 발견했다.
“하메이, 뭐 하는 거야? 다쳤어?”
“……오빠, 이것 좀 봐.”
그제야 몸을 일으킨 우드가는 그녀가 보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잠시만 비켜 봐.”
땅 위로 올라온 유리 관의 흙을 쓸어내리자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다. 이거 ‘고대인의 쉼터’야.”
고대인의 쉼터는 이 세계가 멸망하기 이전에 살았던 자들이 잠들어 있는 개인용 캡슐이었다.
태양의 아이들에게는 노예로 부리는 노동력이 추가되는 셈이고 지하인에게는 살코기가 많은 최고급 식량이 되기에, 캡슐을 발견한 날은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고 볼 수 있었다.
“꺼내자! 도와줘!”
“하지만 ‘채집’은 어떡하고? 생명나무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잖아.”
“해가 지기 전에 한 번 더 기회가 있을 거야. ‘군락’에 돌아가면 이걸 네가 발견했다고 해. 그러면 라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라의 은총?”
달콤한 시간을 상상해 버린 하메이는 못 이기는 척 우드가를 따라 캡슐을 발굴했다.
지하인보다는 떨어지지만 태양의 아이들도 체력이나 근력은 아포칼립스에서 생존할 정도는 되었다.
어렵지 않게 캡슐이 발굴되자 두 사람은 유리 관 안에 잠들어 있는 금발 머리의 소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와, 살이 엄청 하얗다.”
“일단 열어 보자. 내가 전에 채집하려고 나왔을 때 형들이 하는 걸 본 적이 있어.”
흙을 걷어 내자 유리 관 밑에 고대인의 언어로 큼지막하게 새겨진 글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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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딘가를 만지면…….”
녹색 버튼을 누르자 캡슐이 흔들리면서 불이 들어오더니 엔진이 돌아가면서 여자의 안내 음성이 들렸다.
-시스템 가동. 대상자 코드 번호 10111-111001의 동면을 해제합니다.
-동면 시간 2,473년 287일 14시간 9분 42초.
마치 생각에 빠진 듯 침묵을 지키던 캡슐이 잠시 후 결과를 보고 했다.
-메모리 전력 부족. 사용자 정보 소실. 동면을 해제합니다.
갑자기 유리판이 쾅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이어서 불이라도 난 듯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자 하메이가 우드가의 팔을 붙잡았다.
“정말 괜찮은 거야, 오빠?”
“걱정하지 마. 폭발하지 않으니까. 전에 형들이 고대인을 깨웠을 때도 이런 연기가 났었어.”
연기가 걷힌 뒤에야 두 사람은 캡슐 안을 살폈다.
모든 과정이 끝났으나 금발 머리의 소년은 여전히 잠에 빠진 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떡하지? 깨워야 하나? 야, 야. 눈 좀 떠 봐.”
“허억!”
우드가가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순간 소년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됐다. 진짜로 깨어났어.”
소년은 마치 악몽을 꾸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눈조차 깜박이지 못하고 거친 숨을 헐떡거렸다.
그러다가 비로소 정신이 들었는지 주위를 살폈다.
‘여긴 어디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많은 기억들이 소실되었고,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소년과 눈이 마주친 우드가가 형들에게 들은 대로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뭘 쳐다보고 있어? 깨어났으면 빨리 나와. 이제부터 너는 우리 군락의 노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
소년은 우드가를 무시하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포칼립스의 세계에 가장 익숙한 형태로 정보가 결합되면서, 기억이 뒤죽박죽이었다.
‘분명 동면 장치에 들어간 기억은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세계에 살았던 기억도 꿈결처럼 남아 있었다.
문제는 어떤 것이 진짜 정보인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에잇! 야, 빨리 안 나와?”
우드가가 소년의 팔을 붙잡고 끌어내자 겁에 질린 하메이가 팔을 붙잡고 말렸다.
“오빠, 그러지 마! 이러다가 화가 나서 우리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해?”
“그럴수록 강하게 나가야 해. 라의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완전한 노예가 아니란 말이야.”
‘우와, 어린아이가 무슨 힘이……!’
소년은 불쾌감보다는 새롭게 만난 인간의 완력에 놀라며 캡슐에서 빠져나왔다.
어쨌거나 자신을 다시 깨어나게 해 준 사람들이었다.
“아, 고마워.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아니,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폐허의 세상을 보고도 놀란 감정이 크지 않은 이유는 동면을 결심한 순간부터 예고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알아듣지 못한 우드가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나는 우드가야. 그리고 여기는 하메이. 나중에 군락에 가면 꼭 하메이가 너를 발견했다고 말해야 돼. 알았지?”
‘우드가. 하메이. 이름인가 보구나.’
“너는 이름이 뭐야?”
우드가가 가리키자 소년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 이름. 나는 도대체 누구지?’
그때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두통이 밀려들면서 파편처럼 깨진 기억들이 뇌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제2발전소 붕괴! 출력이 부족합니다! 모두를 동면시킬 수는 없어요!
-닥쳐! 캡슐에서 대기하는 사람들 아직 깨어 있어!
-하지만!
-1명이라도 더 살려! 인류를 위해!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연구원들이 소리치듯 나누던 대화는 캡슐에 누워 있는 소년의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어왔다.
잠시 후 유리 관 내부에 황금빛 코드가 지나가면서 안에 갇힌 그의 눈동자가 불안감에 흔들렸다.
-하아! 하아! 하아!
-인공동면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분자 활동이 정지됩니다. 섭씨 마이너스 273도.
-으아아아!
칼로 자른 듯 기억이 끊어졌다.
“크으윽!”
소년은 온갖 거짓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했다.
“왜 그래? 괜찮아?”
우드가가 걱정스럽게 다가오는 순간, 소년의 머릿속에 그나마 진실에 근접한 한 가지 정보가 퍼뜩 떠올랐다.
“로…….”
“로?”
“로시네. 내 이름은 로시네일 거야. 아마도…….”
최후의 세계 (2)
우드가는 이름을 크게 담아 두지 않고 방향을 가리켰다.
“이제 생명나무에서 채집을 해야 돼. 앞으로 여기서 살고 싶으면 내 말을 잘 듣는 게 좋을 거야.”
소년이 알아듣지 못하자 우드가는 입맛을 다셨다.
“뭐, 라의 은총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알아듣게 될 거야. 어쨌거나 출발하자. 시간이 없어.”
소년은 파괴된 세계를 심란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멸망하다니.’
동면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아무리 커다란 재앙이 일어났어도 이 정도까지 망가진 세상은 아니었다.
‘초조해하지 말자.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되돌아오겠지.’
도심지로 갈수록 표정이 굳어지던 우드가는 마침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오빠…… 오염 구역이야.”
수십 층에 달하는 빌딩들이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지역의 풍경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특징적인 것은, 건물은 물론이고 바닥까지 온통 뒤덮고 있는 점액질이었다.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띠고 있지만 색채가 알록달록하여 마치 토사물을 보는 듯했다.
“뮤커스……?”
“맞아, 뮤커스야. 여기에 닿으면…… 응?”
우드가는 하메이의 목소리가 아님을 뒤늦게 깨닫고 소년을 돌아보았다.
“너, 뮤커스를 알아?”
소년은 대답 없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런 참담한 풍경을 본 기억은 없으나 붉은 점액질만큼은 묘하게도 익숙했다.
-핵전쟁으로 인한 자원 고갈의 여파는…….
-바이오매스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겁니다.
-뮤커스를 제거하라! 생태계 파괴의 주범!
순간적으로 몇 가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크윽!”
소년은 다시 괴로워했으나 태양의 아이들도 더 이상은 보살필 시간이 없었다.
“가자.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날 따라와.”
우드가는 뮤커스가 아직 잠식하지 못한 물길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걸었다.
‘큰일이다. 전보다 더 길이 좁아졌어.’
뮤커스의 원류가 어디인지, 원류가 있다면 과연 몇 개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확장되고 있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