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6
“언제부터였니?”
“아주 긴…… 여행을 떠났어요.”
선문답 같은 말 속에는 시로네가 겪었던 모든 감정이 함축되어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이제는 알았으니까요.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게요.”
에텔라는 조언이 필요 없음을 알았다.
스스로 깨달았고 스스로 멈추었으니, 선택권 또한 시로네가 가져야 마땅했다.
“그래요. 부디 자신을 소중히 여기세요. 선생님은 시로네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어요.”
마법사가 아닌 수도사로서, 에텔라는 진심으로 시로네의 경지를 걱정했다.
“네. 기억하겠습니다.”
그 기회를 노리고 후배는 물론 클래스 파이브 학생들까지 우르르 달려왔다.
“저도 사랑해요, 선생니임!”
시이나라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테지만 에텔라는 1명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요. 선생님은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자, 이제 시험을 끝내겠어요.”
클래스 파이브가 훈련장에 모였다.
최선을 다해 치른 시험인 만큼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들 후련한 얼굴이었다.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시험이 있는 날은 일찍 끝나니까 좋죠? 푹 쉬고 다음 시간부터 다시 즐겁게 수련하기로 해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에텔라가 수도사의 예법을 행하자 학생들도 장난 반 존경심 반으로 그녀를 따라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에텔라가 산을 내려간 뒤에도 학생들은 여운이 남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시로네, 너무 잘됐다! 분명 에이미도 좋아할 거야. 아니지. 자신의 기록이 깨져서 화내려나? 아무렴 어때! 남자 친구가 이겼는데! 호호호!”
세리엘의 수다를 듣고 있는 시로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쉬고 싶어.’
기도가 통했는지, 이루키가 다가오면서 훈련장 전체에 정적이 찾아왔다.
“오오.”
학생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과연 오만한 천재가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시로네를 비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이루키의 결론은 명쾌했다.
“내가 졌다. 완패야.”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럴 때는 겸손하지 않아도 돼. 특히 나 같은 놈에게 패배 선언을 들었을 때는 말이야.”
“정말로 이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번 시험은 타기팅 평가였어. 하지만 마지막에 내가 시전한 마법은 공간 전체를 장악한 거잖아.”
“크크, 진짜 고리타분하네. 어차피 그것도 타기팅이야. 타깃을 동시에 제거한 거라고. 네가 이긴 거니까 찝찝하다는 생각은 하지 마.”
잠시 생각하던 시로네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럼 인정해. 이상주의가 아니야. 도시를 없앨 정도로 위험한 마법을 연구하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는 건 잘못된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미안하다.”
너무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시로네는 오히려 의아함을 느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유일하게 인정하는 건, 그가 수학적 결과만을 추구하는 너드라는 점이다.
“……진심이야?”
“시로네, 너는 오해하고 있어. 폭발은 폭력이 아니야. 폭력이란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는 살아 있는 의지지. 그건 인간의 몫이야. 폭발에는 의지가 없어. 그저 인간의 기준보다 훨씬 강한 에너지인 것뿐이야.”
“하지만 의지가 없다고 사람이 다치지 않는 것은 아니야. 그 에너지를 다루는 건 사람이니까.”
“인정해. 그래서 나는 폭발을 이렇게 정의하지.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 그런데 말이야, 폭발을 통제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도시를 날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은 1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에너지이기도 해.”
시로네는 눈을 깜박거렸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겠지. 한정된 자원 때문에 싸우는 일은 줄어들 거고, 많은 사람들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어. 물론 나에게 그런 숭고한 신념이 있는 건 아니야. 다만 그런 세계가 가능하다면, 적어도 시도는 해 봐야 되는 거 아닐까? 내 능력은 그런 곳에 쓰라고 있는 거니까.”
“어…….”
머릿속이 복잡한 시로네였으나 이번만큼은 이루키의 말이 제대로 들렸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좋았잖아. 괜히 감정 상할 일도 없었고.”
이루키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네가 순수하다는 거야. 설령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을 통제하지 못하면 오히려 세계를 파멸시키는 힘이 되지. 하지만 시로네, 나는 할 거다. 그런 것이 두려워서 멈출 수는 없어. 설령 그 희생자 중의 1명이 내가 되더라도.”
“……통제하지 못하면? 만약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어.”
“하하! 맞아. 그래서 그런 거야.”
이루키는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럼 차라리 여기서 그만둘까? 대충 클래스 파이브에서 놀다가, 이것도 지루하면 던전이나 파고 살지 뭐. 항상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더군. 나같이 위험한 놈은 세상에 나가지 않는 게 좋은 건지도 몰라.”
동급생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결국 클래스 파이브에서 버틴 이유가 자신의 재능이 두려워서라는 뜻이 아닌가?
시로네도 마음이 심란했다.
‘이 녀석은 뭐지? 이상주의, 현실주의, 대체 어느 쪽이야?’
아니면 단순한 괴짜인가?
“그러니까…….”
이루키가 손을 내밀었다. 시로네가 맞잡고 끌어당기자 그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네가 나를 책임지는 거야.”
“응? 책임?”
“살면서 누구한테 질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 그러니 어쩌면 네가 나를 이긴 유일한 1명이겠지. 만약 먼 훗날에 내 방식이 비극을 일으키게 된다면 네가 막아 줘.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면, 나를 죽인다고 해도 절대로 원망하지 않을 거야.”
시로네는 당황했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이루키가 말을 끊었다.
“네가 해 주지 않으면, 난 여기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아니, 나아가지 않을 거야.”
시로네는 이루키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비꼬는 것도, 허세도, 과장도 아닌 사실 그대로의 진심을 담고 있었다.
“알았어.”
여기에서 거부하면 자신이 내뱉은 말도 한낱 이상론이 되어 버릴 것이기에.
“반드시 너를 막을 거야. 아니, 절대로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할 거야.”
학생들은 멍한 표정이었다.
‘쟤들 뭐야. 진짜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여긴 클래스 파이브라고.’
오늘의 대화가 현실로 이루어지려면 엄청나게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하겠지만, 다른 동급생과 달리 네이드는 그들의 진지함에 감동했다.
“으아아아! 너희들 정말 멋있다! 역시 내 친구들이라니까! 좋아, 앞으로 열심히 해 보자!”
네이드가 동시에 목을 끌어안자 시로네와 이루키도 서로를 향해 웃었다.
‘어쩌면…… 괜찮은 녀석일 수도.’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가운데, 시로네는 이루키와의 대결을 복기했다.
‘정말 강한 녀석이었어.’
어쩌면 다음 승부에서는 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로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루키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지킬 거야.’
빛의속도로 질주하는 극한을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거대한 무한뿐이니까.
이상한 연구회(1)
시로네는 어둠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흩뿌려져 있는 조용하고 차가운 공간이었다.
압도적인 세계.
시간이 멈춘 것 같던 풍경이 갑자기 가속하더니 별들이 선으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빨려 들어간다.’
한곳을 향해 모여드는 별들 사이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구체의 암석과 가스가 있었다.
‘안 돼!’
별들의 충돌 앞에서 시로네는 전율했으나, 그보다 먼저 행성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현상이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어.’
별들에 이어 시로네의 육체가 해체되고, 그 과정에서 의식 또한 사라졌다.
‘그래도 존재한다.’
인간을 이루는 것 중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 시로네는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는 존재했고, 점으로 압축되는 세계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빛과 시간, 중력과 만유인력이 하나로 묶이는 결과의 끝에 있는 것은…….
‘진동.’
빛이 진동하고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자 빛은 거품이 되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부글거렸다.
전체가 빛으로 차오르고, 시로네를 이루는 마지막 무언가마저 합쳐지는 순간.
‘아아.’
극단적인 통합감.
“……!”
그것은 마치 거대한 폭발과 같았다.
“으아아아!”
시로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으로 옷이 축축했고, 비를 맞은 것처럼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을 둘러보니 사위는 적막했고 유리창에 달빛이 처연하게 번지고 있었다.
익숙한 책의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광자화 이론 서적을 보고서야 현실감이 들었다.
“후우, 또 악몽이야.”
주전자 물을 들이켜고 창문을 열자 초여름 밤의 선선한 바람이 식은땀을 날렸다.
‘매일 밤마다 왜 이러는 거지? 대체 나에게 무슨 변화가 생긴 거야?’
스피드건 시험에서 무한의 영역에 들어간 이후 날마다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 끔찍한 악몽은 아닌 듯하지만, 깨어나는 순간의 충격은 상당했다.
‘뭔가 이상해.’
문득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이모탈 펑션이라 불리는 것을 경험한 이후,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게 어긋난 기분이었다.
“으으으으.”
또다시 치미는 한기에 시로네는 몸을 끌어안았다.
‘악몽이야 그렇다 쳐도…….’
정말 심각한 문제는 현실에서까지 이상한 느낌에 휩싸인다는 점이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특정 감각이 고도로 예민해진 상태인 듯했다.
‘그런데 그게 대체 뭐냐고.’
냄새를 더 잘 맡는 것도, 촉각이 예민해진 것도, 시력이나 청각도 아니었다.
‘오감이 아니야. 이건…….’
마치 새로운 감각기관이 장착된 기분.
“설마 귀신은 아니겠지?”
피아노 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시로네는 피곤한 눈으로 욕실로 향했다.
‘잔 것 같지가 않아.’
고급반 실습 평가가 저번 주로 끝났기에 오늘부터 정상 수업이 가동된다.
‘차라리 다행이다. 정신없이 훈련하다 보면 이상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은 시로네는 가방을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
학급 분위기는 평온했다.
경쟁을 끝내고 다시 친구가 된 학생들은 대부분 스피드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습 평가가 끝나면 각 클래스별로 스타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첫날에 치러졌던 클래스 파이브의 스피드건이 너무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이다.
고급반에서 전무후무한 1,200점대 학생이 둘이나 등장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 저기 시로네다.”
고급반 건물로 향하는 시로네는 전과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망주, 에이미의 남자 친구로 유명했던 것에서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클래스 포의 선배들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스피드건은 잘 봤다. 앞으로 인사하고 지내자.”
“네, 선배님.”
선후배가 엄격한 이유는 그만큼 진급이 어렵기 때문이지만, 반대로 실력이 출중한 경우 후배라고 해서 마냥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로네를 일찌감치 인정한 에이미의 선견지명은 탁월한 셈이었다.
선배들과 인사를 끝내자 이번에는 클래스 식스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시로네 선배님, 저 팬이에요! 이제부터 선배님 따라서 공부해도 되죠?”
원래는 시로네의 조기 진급을 가장 고깝게 여긴 클래스였다. 세븐에서 파이브로 급상승했으니 중간에 끼어 버린 그들이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클래스 포의 선배들마저 장차 졸업반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으니 지나간 일은 잊고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오늘 수업 끝나고 뭐 하세요? 이따 마법 시연회 열기로 했는데 선배님도 오실래요?”
“우리 연구회에서 휴일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요. 제가 파트너 해 드릴게요.”
좋은 말로 부탁을 거절한 시로네는 비로소 클래스 파이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로네! 시로네! 시로네! 시로네! 시로네!”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동급생이 시로네의 목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가방을 놓기도 전에 납치당한 시로네는 친구들의 쏟아지는 시선에 어리둥절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학기도 끝나 가는데 연구회 들어와라. 클래스 파이브 애들끼리 하나 만들 거거든. 어차피 수행평가는 자유 주제잖아. 시간도 절약되고 재밌을 거야. 그러니까 들어와.”
“흐음.”
여태까지 많은 입회 제안을 받았지만 한결같이 고사했던 시로네였다.
“그러지 말고 긍정적으로 고려해 봐. 듣자 하니 연구회 가입 안 하는 이유가 개인 공부 때문이라며? 여기 그런 애들 꽤 있어. 근데 수행평가는 해야 하잖아. 그래서 임시로 하나 만들려는 거야. 변별력도 크지 않으니까 얼른 끝내 버리고 해산하면 돼. 그럼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잖아.”
“아하, 그렇겠다.”
확실히 괜찮은 전략이었다.
수행평가는 자유 주제라 이론 시험이나 실습 평가보다 변별력이 크지 않다. 그렇다고 기존의 연구회에 가입해서 수행평가만 끝내고 탈퇴하는 것도 얌체 짓이었다.
따라서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수행평가를 해결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때 네이드가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