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60
“오빠, 이 소리!”
우드가는 정신을 퍼뜩 차리고 소리쳤다.
“큰일이야! 라의 경고가……!”
그사이 3명을 더 해치운 시로네는 이명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우드가의 목소리를 듣고 퍼뜩 떠올렸다.
‘자기장!’
숲의 초입에서 잠시 기다린 이유는 생명나무를 중심으로 전자기 필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터였다.
“탈출하자! 시간이 없어!”
적진에서 빠져나온 시로네는 우드가와 하메이를 붙잡고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쫓아! 놓치면 안 돼!”
“먹는다! 나는 오늘 먹는다!”
방해물이 많은 지형이라 순간 이동을 시전해도 나무를 뛰어넘는 지하인들을 완벽하게 따돌릴 수는 없었다.
“야! 쫓아온다! 빨리!”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생각을 극한으로 쪼개자 섬광이 거울에 반사되듯 나무들 사이를 지나갔다.
다급해진 지하인들이 화력을 총동원하자 탄흔이 바닥을 때리며 뱀처럼 시로네의 뒤를 쫓아왔다.
“으아아아아!”
숲의 입구를 발견한 시로네는 전심을 다해 순간 이동의 연계 속도를 높였다.
그때 삐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엄청난 두통이 밀려들었다.
“크윽!”
스피릿 존이 깨지는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시로네 일행은 허겁지겁 기어서 숲을 빠져나왔다.
“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지하인들이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살려 줘! 으아아아!”
입구까지는 30미터 거리밖에 되지 않았으나 고통을 견디지 못한 그들은 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실핏줄이 터진 눈에서 피가 주르륵 새어 나오더니 갑자기 억 하는 단말마를 내지르며 버둥거림이 멈췄다.
우드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었어. 라의 경고를 무시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그리고 황급히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너, 도대체 누구야?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거지? 태양의 아이들도 아닌데 말이야.”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시로네는 당장은 그들과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마법…….’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는 인공동면의 캡슐로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도 남아 있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새로운 기억이 떠오른다는 건 긍정적인 일이야. 일단은 안전한 장소가 필요해.’
시로네는 그제야 우드가를 돌아보았다.
“너희가 사는 곳으로 데려가 줘.”
시로네가 손짓으로 전달하자 우드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너는 우리의 노예야. 하지만 오늘 안으로 돌아가기는 글렀어. 오염 구역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거야.”
시로네는 우드가가 태양을 가리킨 의미를 깨달았다.
‘한 가지 방법은 있다. 그런데 정말로 될까?’
광익.
시로네의 어깨 뒤로 황금빛 날개가 찬란하게 펼쳐지자 하메이가 홀린 듯 바라보았다.
“우와…….”
라는 태양의 아이들이 부르는 태양의 명칭.
또한 생명을 창조한 유일신으로, 빛의 날개를 지닌 천사들을 수족으로 부린다고 성서에 적혀 있었다.
“오빠, 어쩌면 저 사람…….”
하메이가 말을 줄인 이유는 우드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과 상통했다.
군락에는 이미 집정관이 있다.
하나의 군락에 라의 화신이 둘일 수는 없으니 시로네를 데려가는 게 옳은 판단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이곳에서 밤을 지낼 수는 없어.’
이제 막 태어난 태양의 아이들은 빛이 쬐는 곳에서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정을 내린 우드가가 하메이를 이끌었다.
“일단 가자. 우리 잘못도 아니잖아. 집정관님에게 솔직하게 보고하면 될 거야.”
두 사람이 손을 잡자 시로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빛의 날개를 강하게 내리쳤다.
펑 하고 공기가 폭발하며 수십 미터 높이로 떠오르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비행에 우드가와 하메이가 기겁했다.
반면에 시로네는 담담하게 풍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역시 익숙하다. 그렇다면 마법 쪽이 진짜 기억인가?’
고도를 높이자 파괴된 세상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타들어 간 성냥개비 같은 빌딩 사이로 수많은 생물들이 날고 있었고, 지평선 너머에는 드문드문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야. 확실히 문명이다.’
하지만 역시나 시야에서 가장 큰 부분은 얼룩덜룩한 뮤커스로 뒤덮인 오염 구역이었다.
‘도시의 70퍼센트 이상이 잠식당했어. 저게 대체 뭐지?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정신을 가다듬은 우드가가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가 우리 군락이야.”
빌딩으로 가려진 틈 사이를 완전히 채우고 있는 고철 덩어리의 단면이 보였다.
“좋아, 간다!”
미리 경고를 했으나 풍경이 빨려 드는 것처럼 날아가는 비행 속도에, 태양의 아이들은 비명을 참지 못했다.
* * *
걸어서 반나절이 걸리는 거리를 시로네는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도착했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착지하자 한때 60층이 넘었을 빌딩들이 절반 이상 부러진 채로 주위를 가로막고 있었다.
“따라와. 내가 서기관님에게 데려다줄게. 하지만 군락에 도착하면 함부로 행동하면 안 돼.”
빌딩 숲을 지나자 철골이 얽힌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굉장한 규모였고, 외곽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채집 임무를 끝냈다. 길을 열어라.”
우드가가 보초에게 말하자 건장한 2명의 백인이 왼쪽 가슴에 주먹을 댔다.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시죠.”
보초들은 인종과 성별, 나이를 따지지 않았으나 그들의 눈에 있는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은 공통적이었다.
‘익숙한 외모야. 인공동면에서 깨어난 자들인가.’
피르미드 안은 예상보다 밝았다.
시로네는 천장 위에 떠 있는 빛의 구체를 올려다보았다.
‘조명 마법 샤이닝. 이곳에도 마법사가 있다.’
우드가는 하메이를 데리고 배양실로 갔다.
갓 태어난 태양의 아이를 건네받은 노파가 은은하게 빛이 깔린 곳에 아이를 내려 두자 그제야 울음이 멈췄다.
“고생했구나. 쉬운 여정이 아니었을 텐데.”
“헤헤, 우드가 오빠가 같이 가 줘서 괜찮았어요. 이제부터는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처럼 쉬운 임무가 아닌 것은 알고 있기에 노파는 그저 지그시 미소만 지어 주었다.
“그런데, 저 노예는 누구니?”
“아, 이번에 고대인의 쉼터를 발견했거든요. 하메이가 발견했어요. 그런데…….”
우드가는 머뭇거리더니 노파에게 생명나무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생각에 잠긴 노파는 짐작이 가는 바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드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고는 내가 하는 게 좋겠구나. 하메이가 발견한 것은 꼭 말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렴.”
우드가와 하메이의 얼굴이 확 펴졌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식으로 보고를 해야 할지 난감하던 참이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두 사람이 도망치듯 배양실을 나가자 노파는 그제야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하여 시로네에게 말했다.
“따라오너라. 네가 치러야 할 의식이 있다.”
시로네는 노파를 따라 피라미드의 최상부까지 올라갔고, 서기관에게 보고가 끝날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면서 여태까지 봤던 것과 달리 정갈하게 바닥이 깔린 신전의 풍경이 드러났다.
횃불이 타오르는 길의 끝에 제단이 있고, 그 위의 권좌에 녹색 머리를 짧게 깎은 강인한 인상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집정관님, 빛의 능력을 구사했다는 고대인입니다.”
서기관이 고개를 숙이며 아뢰자 집정관의 눈빛이 매섭게 시로네를 꿰뚫었다.
“서기관의 말이 사실인가?”
시로네가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않자 집정관이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브를 걸친 노인을 불렀다.
“신관이여, 이 소년을 조사해라.”
걸음조차 위태롭게 시로네에게 다가온 노인은 움푹 들어간 입으로 주문 같은 것을 외우며 두 손바닥을 빙빙 돌렸다.
“이건……?”
시로네는 노인의 손바닥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손이 지나가는 자리를 따라 마치 서리가 끼어 있던 유리창을 닦아 내는 것처럼 황금빛 코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문은 끝없이 이어졌고, 노인은 손을 더욱 크게 휘돌리며 시로네 주위를 이루고 있는 코드들을 살폈다.
그런 다음 시로네의 얼굴부터 배까지 스캔하자, 육체가 반투명해지면서 또 다른 코드들이 나타났다.
“흐음, 그런 것인가…….”
노인은 오른손을 허공에 내밀어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특정 코드의 배열이 투명한 띠에 새겨진 패턴으로 손에 잡혔다.
이어서 왼손으로는 다시 시로네의 머리 부분을 스캔하여 코드를 드러낸 다음 띠를 끌어당겨 연결했다.
“허억!”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에, 시로네는 사지를 꼿꼿이 펼친 채로 부들거렸다.
“신의 언어가 너에게 기적을 행할지니.”
그렇게 말한 노인이 집정관에게 돌아섰다.
“확인했습니다, 집정관님. 이 소년의 몸에는 빛의 언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통탄할 노릇이군. 어찌하여 라께서는 노예에게 빛의 언어를 새기셨단 말인가.”
집정관이 오른손을 뒤집자 손바닥 위로 거대한 빛의 구체가 떠올라 천장으로 치솟았다.
‘샤이닝…….’
태양의 아이들의 언어가 뇌의 정보와 융화되는 과정 속에서도 시로네는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샤이닝 마법이 시전되자 신전에 있던 모든 자들이 두 손을 쳐들고 우렁찬 외침을 터뜨렸다.
“라의 화신이시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소서!”
오만하게 턱을 치켜든 집정관이 명령을 내렸다.
“빛의 언어를 지워라. 우리에게 복종하는 자만이 비루한 섭식의 삶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뭘 지운다고?’
조금씩 그들의 말이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겨를도 없이, 시로네는 노인의 눈에 담긴 적개심을 발견했다.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군락에 태양은 하나다.”
노인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휘젓더니 이번에는 붉은빛의 코드가 적힌 띠를 움켜쥐었다.
그런 다음 왼손의 빛을 시로네에게 쬐여 코드가 드러나게 하고는, 띠를 처박듯 연결했다.
“으아아아아아!”
엄청난 충격이 뇌에 가해지면서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홍수가 머리를 터뜨릴 듯 차올랐다.
“참아라! 노예에게는 오직 복종만이 있을지어다!”
‘나는 노예가 아니야!’
시로네는 자아를 파괴하는 코드에 저항하며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스피릿 존이 조여들면서 프레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노인이 끌어온 코드와 시로네의 코드가 맞붙는 지점에서 과부하가 일어나자 겁에 질린 신관이 몸을 떨었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시로네의 눈에 흰자가 보이면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버텨야 돼.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끝장이야.’
금강불괴!
파괴되지 않는 정신 상태가 구축되자 시로네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스피릿 존이 무한으로 확장되었다.
펑 하고 코드들이 폭발하면서, 지척에 서 있던 신관이 비명을 지르며 제단 앞에까지 날아갔다.
힘겹게 상체를 세운 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하려던 말을 이어서 내뱉었다.
“어떻게 신의 언어를 거부할 수가…….”
시로네는 코드가 연결되어 있던 자리를 어루만지며 제단 위에 앉아 있는 집정관을 노려보았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야?”
“…….”
시로네 정보 복구율.
57퍼센트.
최후의 세계 (4)
신전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답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노예라는 건 또 뭐지?”
집정관은 전투 능력이 없으나 빛의 능력을 지켜 줄 강력한 전사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신관, 라의 수호자를 불러라.”
신관은 두 손을 빠르게 휘저어 각기 다른 곳에서 코드를 움켜쥐더니 그것을 눈앞에서 연결시켰다.
그러자 코드의 접점에서 스파크가 터지면서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관이 다시 돌아오고, 덜컹하고 문이 열리면서 4명의 인물이 바람처럼 빠르게 들어왔다.
“라의 화신이시여, 그대의 명을 따릅니다.”
집정관이 시로네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신의 이름을 사칭한 이단을 처단하라. 노예에게 빛의 언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음이라.”
수호자들의 기도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 시로네는 경계하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저들도 뭔가 다르다.’
군락의 간부들은 생명나무에서 0.001퍼센트의 확률로 태어나는 돌연변이들이었다.
능력의 종류는 생물적, 정신적, 현상적 범주를 모두 아우르며, 강력한 힘으로 태양의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었다.
“고대인이로구나. 라의 세례를 거부했다지?”
수호자 중에서 유일한 여성인 요가 다가왔다.
녹색 머리카락을 매듭처럼 복잡하게 묶어 머리에 붙이고 앞머리를 눈썹 위에서 일자로 자른 여성이었다.
“라의 세례가 아니라 세뇌겠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
“잘못은 오직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