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64
슈라가 목 앞으로 검지를 들어 박도를 소리 없이 막아 냈다.
“안 된다니까. 특히나 여기는 내 세상이라고.”
“……끝까지 해볼까?”
슈라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쳇, 야수랑 말을 섞은 내가 멍청이지.’
수라 야차 박녀.
서열은 9위로 말단이지만 일단 불타오르면 간부들도 그녀의 액싱에 맞서기를 꺼릴 정도였다.
“됐고. 이쯤에서 헤어지자. 너랑 뭔가를 함께한다는 건 진짜 미친 짓이니까. 알아서 잘해 보라고.”
슈라가 아우라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자 박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배고프다.”
현재 그녀가 느끼는 유일한 감정이었다.
* * *
“큐리아, 제발 정신 차리란 말이야!”
몰타의 목소리는 기관실 바깥까지 새어 나갈 정도로 컸으나 큐리아는 오히려 몰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그래요? 당신 미쳤어요?”
“미친 건 내가 아니야! 여긴 거짓 세상이야! 가짜라고!”
“인류는 멸망했어요! 당신과 함께 살 수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고요! 그러니 제발 정신 좀 차려요!”
답답해서 가슴이 폭발할 지경인 몰타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모르는 것일까?
이곳은 언더 코더 아래에 있는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처음에는,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내가 모든 걸 이해하고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영특한 여자였기에 의심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가상의 세계라는 사실을 100퍼센트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몰타, 사랑해요. 당신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러니 이제…….”
큐리아는 몰타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내의 냄새, 아내의 감촉.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긴 몰타는 그녀의 정보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정보! 정보! 빌어먹을 정보!’
갑자기 눈을 번쩍 뜬 몰타가 아내를 밀어 쓰러뜨렸다.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니야! 가짜라고!”
“여, 여보…….”
방을 나선 몰타는 큐리아가 나오지 못하도록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갔다.
“여보! 열어 줘요! 여보!”
몰타는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인공동면 장치에서 꺼냈을 때만 해도 아내를 되돌릴 가능성을 발견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정보는 아포칼립스의 세계와 맞물려 가고 있었다.
‘고립시켜야 돼. 어떤 정보에도 노출되지 않도록.’
언제나 그랬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치자 몰타는 소파에 앉았다.
이제는 죄책감조차 들지 않는 이유는,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주 같은 거로군.’
어쩌면 미쳐 버린 것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아직 아무도 안 왔어요?”
문이 열리면서 마르샤가 들어왔다.
최대한 빨리 조사를 끝내기 위해 4명이 각기 다른 지역을 수색하기로 한 그들이었다.
“자네가 첫 번째일세. 소득은 좀 있었나?”
마르샤는 고개를 저으며 정수기로 갔다.
“아무것도. 미로 씨는 뭔가 찾아냈을까나?”
몰타는 물을 마시는 마르샤의 목덜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네. 방에 들어가서 좀 쉬고 있을게요.”
“그러도록 하게.”
마르샤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몰타는 그녀의 잔상을 쫓듯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진짜다.’
자신과 같은, 진짜 세계에서 온 여자였다.
‘희망 따위는 없는 곳이니까.’
몰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알고 있었나?”
마르샤가 침대에 걸터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몰타의 음심 가득한 눈을 바라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그녀가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익숙하거든, 그런 눈빛은.”
몰타는 담담했다.
“내 사정은 알고 있겠지. 자비를 베풀 수는 없는 건가?”
“그쪽이 참아 보는 건 어때? 나도 은인에게 나쁜 짓 하기는 싫은데.”
그것은 몰타의 욕망이 가질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몰타의 스피릿 존이 공감각을 통해 밀려들자 마르샤의 미소가 살며시 굳어졌다.
‘이 사람…… 확실히 강하다.’
몰타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받아들이게. 현실에서는 공인 4급까지 갔던 마법사야. 미로라는 여자를 제외하면 일행 중에서 나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렇기에 지금인 것이다.
“후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미로 씨가 대단하긴 하지만 나도 왕년에는 잘나갔다고.”
“말이 많다는 건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마르샤는 곰방대를 물었다.
담배를 무는 행위는 빨아들이는 행위를 연상시키겠지만, 그녀는 그 틈을 역이용하여 곰방대를 집어 던졌다.
‘지금이다!’
순간 이동을 시전해 문 앞으로 날아갔으나 이미 몰타가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미리 예측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반응이었다.
“제법이었네. 하지만 너무 얕본 거 아닌가?”
몰타가 두 손을 내밀자 강력한 에어 프레싱이 마르샤를 덮쳤다.
땅과 수평을 이루며 날아간 마르샤는 벽에 처박혔고, 다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크윽!”
쓰러진 마르샤를 몰타가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항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자네가 상대하는 사람은 시정잡배가 아닐세.”
‘시정잡배가 아닌데 이런 짓을 해?’
마르샤는 나오는 욕지거리를 필사적으로 삼켰다.
일단 욕망의 불이 켜진 남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깔아 뒀으면 충분하겠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쉰 마르샤가 두 손을 들고 일어섰다.
“알았어. 좋게 끝내자고. 나도 죽기는 싫으니까.”
몰타가 의심의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아예 돌아섰다.
“뭐 해? 그렇게 겁이 많아서 안아 보기나 하겠어?”
몰타의 눈에 분노가 일렁이더니 마르샤를 뒤에서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너무 거칠게는 하지 마.”
오른손으로 왼쪽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뒤덮은 마르샤는 규정외식 패륜의 단도를 발동했다.
문신이 빛나더니 실체화된 검은 칼날의 단도가 오른손에 붙잡혔다.
‘나는 좀 거칠 테지만.’
마르샤가 빠르게 몸을 틀면서 단도를 휘두르자 몰타가 담담한 눈으로 상체를 젖혔다.
“말했을 텐데, 시정잡배가 아니라고.”
단도가 있는 손목을 붙잡은 몰타가 반대편 손으로 마르샤의 목덜미를 짓누르며 벽으로 밀고 갔다.
뒤통수를 찍은 마르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어서 가녀린 손목을 벽에 처박자, 손에서 벗어난 단도가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규정외식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 또한 그것에만 집착한다는 것은 규정 마법 36종조차 배우지 못한 길바닥 출신이라는 얘기. 그 단도에 찔리면 어떻게 되지?”
“알았어. 말해 줄게. 그러니까 좀 풀어 줘.”
“굳이 알 필요도 없어. 어쨌거나 치명적일 테니까. 수면 마법을 걸 테니 얌전히 걸려. 그편이 자네에게도 좋을 거야.”
마르샤는 이를 뿌드득 갈며 오른쪽 손바닥에 있는 문신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또 한 자루의 단도가 실체화되었다.
“말이 많다는 건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 아냐?”
몰타의 눈썹이 꿈틀하는 순간 사타구니를 걷어찬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단도를 목덜미에 내리꽂았다.
“으아아악!”
놀란 몰타가 마르샤의 목덜미를 붙잡고 반대편으로 던지자 숨을 컥컥대는 그녀가 황급히 방을 벗어났다.
“제길! 쥐새끼한테 물리다니!”
상처부터 확인한 몰타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뭐, 뭐야?”
목에 생긴 시커먼 칼집에서 검은 가스가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물리적인 능력이 아니군.’
단도는 사라졌고 피도 흐르지 않았으나 몸에서 무언가가 계속 빠져나가는 기분은 정말이지 좋지 않았다.
규정외식 패륜의 단도.
마르샤가 양부를 죽일 때 사용했던 칼의 정신적 모델로, 핵심 개념은 인간의 육체를 욕망의 가스통으로 인식한 다음 거기에 칼집을 내어 모조리 뽑아내 버리는 것이다.
칼집 하나에서 새어 나가는 욕망의 양은 분당 1퍼센트로, 산술적으로 100분이 지속되면 어떤 대상이라도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되는 강력한 능력이었다.
‘위험하다. 규정외식을 해제하려면 일단 찾아야 해.’
몰타는 목에서 뿜어지는 연기가 방 밖으로 빠져나가 어딘가로 휘어져 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일단 한 번만이라도 찌르면 실력이 월등한 상대라도 탈진시킬 수 있는 규정외식이지만, 욕망의 가스는 반드시 마르샤를 향하게 되어 있어 위치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규정외식의 대가. 이런 개념이라면 파훼법은 찾아서 죽이는 것 정도가 되려나?’
몰타의 입이 사악하게 찢어졌다.
육체관계를 맺기 위해 공격 마법을 자제했던 게 패착이라면 패착이지만 이제부터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기다려라. 1초 만에 죽여 주마!’
방을 나선 몰타는 연기가 흐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기는 기관실 밖으로 흐르고 있었고, 이어서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을 이용해?’
빛이 없는 터널 안이라면 검은 연기를 찾아내기가 훨씬 어려울 터였다.
그제야 깨달은 몰타가 이빨을 드러내며 악을 질렀다.
“이런 빌어먹을 계집애가!”
그런 문제 (4)
기관실을 빠져나간 마르샤가 터널을 내달리자 뒤편에서 분노의 괴성이 들렸다.
“죽여 버리겠어!”
몸을 날린 마르샤는 철로와 승강장 사이에 몸을 숨겼다.
‘일단 한 번은 찔렀네.’
현재까지 소모한 패륜의 단도는 두 자루.
일단 실체화가 되면 문신은 사라지고 24시간 후에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
‘다섯 자루 남았어.’
왼쪽 허벅지 깊숙한 곳으로 손을 밀어 넣은 그녀는 또 한 자루의 단도를 꺼냈다.
가스의 배출량은 분당 1퍼센트로 완전히 소진시키려면 100분이 걸리지만, 그 시간까지 버티는 건 무리였다.
‘최소한 두 번은 더 찔러야 해.’
분당 3퍼센트의 배출량이라면 설령 포화 상태라고 해도 33분이면 탈진시킬 수 있다.
터널이 불안한 적색 빛으로 일렁거리자 마르샤는 황급히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거대한 불덩어리가 열차를 박살 냈다.
“미친……!”
간담이 서늘해진 마르샤는 승강장 위로 올라가 복잡한 길을 질주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나!”
몰타는 순간 이동을 시전해 승강장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 시점을 기준으로 가스의 분출이 끊어지며 검은 연기가 사라졌다.
“뭐지?”
마지막으로 본 연기의 궤적은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지만 선뜻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규정외식의 응용이라는 얘기.
몰타의 예상대로 마르샤는 잠시 마법을 중단한 상태로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숨어 있었다.
스피릿 존을 차단할 경우 패륜의 단도는 사라지고 욕망의 가스 또한 분출을 멈춘다.
‘이제 네 자루…….’
써 보지도 못하고 한 자루가 사라졌지만 결과론일 뿐이었다.
“나와! 길바닥 출신답게 비겁하기 짝이 없구나!”
‘헛소리하고 있네.’
도발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몰타는 패시브 마법으로 몸을 보호하고 스피릿 존만으로 주위를 탐색하고 있었다.
‘반격의 기민성을 높인다는 거지.’
순간 이동으로 접근한 마르샤가 패륜의 단도를 발동하자 다시금 가스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몰타의 마법을 피해 고양이처럼 몸을 구른 그녀가 발목을 베고 지나가자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어스 스킨을 뚫었어?’
패륜의 단도는 물리 방어를 무시한다.
“꺄악!”
강력한 에어 프레스가 마르샤를 바닥에 짓눌렀다.
척추가 끊어질 듯한 충격이 밀려들었으나 몰타의 손에서 이글거리는 불덩어리 앞에서는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쾅 소리를 내며 폭발이 일어나고, 마르샤는 몰타의 허리에 태클을 걸면서 반경을 벗어났다.
‘이 간격이면 범위 마법은 시전할 수 없어.’
몰타의 옆구리에 푹 하고 단도가 박혔다.
“짜증 나는 계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