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65
마르샤의 턱을 주먹으로 갈긴 몰타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떼어 내자 마르샤는 반대편 손을 등 뒤로 돌려 엉덩이 골에서 패륜의 단도를 꺼냈다.
“이야아아아!”
그것으로 미친 듯이 옆구리를 찔렀고, 순식간에 4개의 칼집이 추가되었다.
“빌어먹을!”
몰타가 피해를 각오하고 화염 마법을 시전하자 펑 하고 폭발이 일어나며 두 사람이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흐으으읍…….”
피부를 녹이는 듯한 고통에 마르샤가 부들거렸다.
‘이것으로 7개.’
가스 분출량 분당 7퍼센트라면 대략 10분 안에 몰타는 끝장날 것이다.
“우오오오오!”
온몸에서 검은 가스가 뿜어진다는 건 당하는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이었다.
전심력을 다한 몰타의 헬파이어가 지하철 내부를 초토화시켰다.
“하아! 하아!”
시간이 지날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느낌에 몰타도 비로소 규정외식의 능력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그런 거였군.’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몰타는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고, 마침내 마르샤를 막다른 벽에 몰아세웠다.
“죽어라, 미련한 것!”
거대한 2개의 불기둥이 꽈배기처럼 꼬이면서 몰타의 머리 위에 뭉쳤다.
“허어어어억!”
그때 몰타의 눈이 크게 뜨이더니 마법이 사라졌다.
“타임 오버야.”
욕망의 가스를 전부 분출해 버린 몰타가 쿵 소리를 내며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하루 종일 산을 달린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크윽! 너 같은 것에게 내가…….”
마르샤는 화상을 입은 오른팔을 감싸 쥐고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몰타를 바라보더니 그의 턱을 강하게 걷어찼다.
“컥!”
버틸 힘조차 없이 넘어간 그가 바닥에 뒤통수를 처박고 기절했다.
“손은 뒀다 뭐해?”
한숨을 내쉰 마르샤는 몰타를 질질 끌면서 기관실을 향해 걸어갔다.
일행이 모두 돌아오자 마르샤는 화상당한 부위를 페르미의 회복 마법으로 치료했다.
몰타의 일을 고발하자 미로는 리안에게 지시를 내려 방에 갇힌 아내를 꺼내 남편의 앞에 꿇어앉혔다.
“여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보!”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아내 앞에서 말하기에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몰타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남편분이 우리 일행에게 흑심을 품은 것 같군요. 과거에도 이런 전적이 있나요?”
페르미의 말을 들은 아내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여보. 사실이에요? 정말로…… 정말로 저 여자를…….”
몰타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차라리 죽여! 어차피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사는 것도 지긋지긋하니까!”
“그럴 수는 없죠. 이건 좋은 케이스가 되겠어요.”
미로가 페르미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쩔 생각이야?”
“저에게 맡겨 주시죠. 마이너리티 컨셉션이 어떤 식으로 정보를 결합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몰타를 고문하면서 아내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실험해보고요.”
“그건 안 돼.”
리안이 뇌를 거칠 필요도 없다는 듯 반대했다.
“안 된다고요? 왜요?”
“잔혹한 짓이니까.”
“하하하하!”
페르미는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어 웃어 버렸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벌을 주려는 게 아니에요. 어차피 여긴 법도 없는 세상입니다. 시로네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이죠.”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어. 중요한 건, 아내는 잘못이 없다는 거야.”
“그럼 생각을 좀 해요.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페르미가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는 이곳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열린 상태’죠. 반면에 몰타의 아내는 ‘갇힌 상태’예요.”
갇혀 있는 것만이 진실이다.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보의 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다면 시로네는 어떨까요? ‘갇힌 상태’입니다. 이 세계의 정보를 유의미하게 받아들이고 있죠.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로네하고는 성격적, 기질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높아요.”
페르미는 몰타의 아내를 가리켰다.
“심지어 남편과 같이 지내면서도 정보는 완벽하게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갇혀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조우’가 아닌, 그보다 더 큰 충격을 가해 보는 수밖에 없어요.”
페르미는 피곤한 성격이라는 듯 혀를 차며 아내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일단 방으로 데려가겠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눈앞에 대검이 불쑥 들어오자 말을 멈춘 페르미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정말로 멍청한 겁니까? 미생물도 아니고, 어떻게 열린 상태에서 갇힌 상태처럼 생각할 수 있죠?”
“상태의 문제가 아니야. 진짜든 가짜든, 잘못이 없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거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협조할 거야.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시로네를 되돌려 놓을 거야. 그러니 이번에는 내 말을 믿어 주면 안 되겠나?”
리안과 페르미는 그 상태로 한참이나 눈싸움을 벌였다.
“후우.”
마침내 페르미가 졌다는 듯 두 손을 들고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정말 답답하군요. 시로네 친구 맞습니까?”
“시로네는 똑똑하고 냉철하지. 확신하건대 너보다 더. 하지만…….”
리안 또한 대검을 거두었다.
“시로네라면 나와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거야.”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친구 관계를 의심한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물러서던 페르미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하지만 전 시로네가 아니에요.”
페르미의 손에서 에어 커트 마법이 시전되자 몰타의 목이 뎅겅하고 잘려 나갔다.
“여보오오오오!”
아내의 비명을 무시한 페르미는 몰타의 머리채를 붙잡고 얼굴을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자, 보입니까? 남편의 얼굴이에요. 당신 때문에 죽었죠. 이제 뭔가 떠오르나요?”
“꺄아아아악! 꺄아아악!”
“소리는 마음껏 질러도 돼요. 하지만 생각해 봐요. 당신은 가짜입니다. 진짜는 이미 죽었어요.”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 내가…….”
아내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식물인간……?”
페르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거다!’
아내가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페르미가 아쉽다는 듯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죽음에 준하는 충격, 혹은 그 이상.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일단…….”
“이 자식아아아!”
리안이 대검을 들고 달려드는 순간 마르샤가 달려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기다려, 리안! 참아!”
“놔요! 설마 저 자식 편을 드는 겁니까?”
“나도 너랑 똑같이 생각했어! 하지만 일단 저질러 버렸잖아! 냉철해지자! 돌이킬 수 없다면 차라리…….”
“으아아아!”
리안은 마르샤를 뿌리치고 달려갔다.
‘냉철! 냉철! 효율! 효율!’
마법사의 말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그렇다면 가슴속에서 폭발할 것 같은 이 들끓는 감정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용서하지 않겠어!”
대검이 페르미를 향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환영처럼 나타난 수십 개의 손바닥이 칼날을 붙잡았다.
미로가 두 팔을 쭉 내밀자 거실의 끝까지 날아간 리안이 검을 겨눈 자세로 착지했다.
“뭡니까? 당신도 냉철 어쩌고 할 거라면…….”
“아니. 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이건 알아 두었으면 해서. 페르미를 죽이면 시로네는 평생 되돌아오지 못해.”
“아뇨. 시로네는 제가 구할 겁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만둬. 시간이 촉박하니까.”
리안이 검을 내리고 물었다.
“무슨 소리죠?”
“설령 시로네의 정보가 100퍼센트 복구된다고 해도 계약서에 적힌 서명이 유효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페르미?”
“네. 처음 이곳에 와서 깨달은 사실은, 가상의 세계라고 해도 화신과 율법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최대한 빨리 시로네를 찾아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생기죠.”
페르미가 손가락 2개를 폈다.
“첫째, 시로네가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할 경우, 정보의 재결합은 불가능합니다. 이건 몰타의 아내를 죽여 보는 것으로 검증할 수 있어요.”
리안이 쏘아붙이기 전에 페르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요. 사실 우리가 찾아다니지 않아도 시로네는 곧 발견될 겁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상황 판단은 기가 막히게 빠른 놈이니까요. 사막에 버려 놔도 모래성을 지어서 살 놈이죠.”
그것은 리안도 인정하는 바였다.
“아포칼립스의 정보는 끝없이 시로네를 변화시킬 겁니다. 갇힌 상태니까요. 위험한 세계라면 마법이 발현될 가능성은 충분해요. 어쩌면 현실과 똑같이 마법을 구사하는 단계까지 갈 수도 있어요.”
마르샤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진짜 시로네는 아니라는 거군.”
“상황을 최대로 이용하면서 생존하고 있을 겁니다. 저라면 그럴 테니까요. 여유가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도모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만나게 될 겁니다. 다만 그것은 아포칼립스의 시로네입니다.”
“후우우우.”
페르미가 한숨을 쉬는 리안을 돌아보았다.
“이제 알겠어요? 몰타의 아내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시로네가 아포칼립스에서 완벽하게 재구성되었을 경우, 유일한 방법은 이곳이 가짜임을 깨닫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건, 확실히 미친 짓이죠.”
미로가 말했다.
“현실에 대입해 보면 쉽지. 누군가가 현실 세상이 거짓이라고 말해도 우리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
페르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 그런 문제죠.”
금단의 성지 (1)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로 몸을 씻으며 미로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갈수록 난감해지네.’
몰타는 사망했고 아내는 페르미의 실험 끝에 말소되었다.
그것 또한 살인이라고 생각한 리안이었으나, 끝내 입을 다문 이유는 시로네 때문만은 아니었다.
열린 상태.
어비스 워커를 제외한 모든 것이 거짓이고, 처음부터 생명은 없는 정보 개체에 불과했다.
‘시로네 또한 마찬가지야.’
그와 조우한다면 몰타 부부의 케이스로 봤을 때 어느 정도는 기억을 되찾을 것이지만, 결국 왜곡된 기억일 뿐이었다.
“미로 님.”
욕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미로가 눈을 뜨자 환영처럼 아른거리는 아리우스가 나타나 부복했다.
“결국 들어온 거야?”
“코드를 통해서 정보만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 말해 봐.”
“시로네는 현재 도시의 북서쪽 군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화벽 때문에 자세한 정보는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그쪽에 코더 능력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몰타가 말한 뮤턴트인가?”
“어쩌면요.”
“시로네의 상태는 어때?”
“정보의 흐름은 원활합니다. 다만 임무를 기준으로 하자면…… 좋지 않습니다.”
페르미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렇군.”
“군락을 중심으로 수색하십시오. 그러면 시로네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군락이라. 말이 통해야겠네. 그들의 언어, 코딩할 수 있어?”
“가능합니다. 제 정보를 주입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저는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할 겁니다.”
“상관없어. 일행에게도 코딩해 줘.”
아리우스는 고개를 숙였다.
“……조심하십시오. 얼마 전 아포칼립스에 2개의 신규 정보가 추가되었습니다. 완벽한 화신, 마이너리티 컨셉션이 아닙니다.”
“어비스 워커군. 그런데 조심하라는 건 뭐야?”
“정확한 실체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코드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아리우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미로 님이 두 명 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을 씻던 미로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그만큼 강한 화신입니다. 현재는 둘로 갈라졌지만 마주치면 아무리 미로 님이라도 껄끄러우실 것 같아서…….”
미로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십로회인가. 하지만 그들이 어째서 여기에?”
답은 하나였다.
‘우오린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미로는 샤워기를 끄고 몸을 돌렸다.
“알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코딩해.”
“부디 옥체를 보존하소서.”
아리우스의 환영이 기호와 숫자가 뒤섞인 코드로 변하면서 사라졌다.
* * *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아포칼립스의 하늘에 오랜만에 선명한 태양이 떠올랐다.
아침 일찍부터 군락을 벗어난 시로네와 요는 날이 맑은 김에 어제보다 더 깊숙한 도심지를 탐색하기로 했다.
“비가 갰네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요를 바라보며 시로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