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66
“하지만 물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잖아.”
“괜찮아요. 저장한 물이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으니까요. 저는 태양이 너무 좋아요.”
요의 얼굴에 홍조가 피었다.
“그리고…… 집정관님의 빛도 좋아요.”
시로네는 샤이닝 마법을 머리 위에 띄워 주었다.
어제는 비가 왔기에 전략의 일환으로 시전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그냥 장난이었다.
“아아! 너무 좋아요!”
“요는 식탐이 많구나.”
고대인의 농담을 요는 이해했다.
“하하! 맞아요. 사실 제가…….”
시로네의 차가운 눈빛을 본 순간 요는 말을 멈추고 주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기습이다.’
요가 은경을 발동해 시로네의 앞을 가로막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불똥이 튀는 금속질의 팔 사이로 지하인들이 보였다.
“먹을 거다! 먹을 거!”
얼추 세어 봐도 40명이 넘어가는 숫자였다.
“전투부대예요! 제 뒤에 숨으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집정관만큼은 지켜야 하는 요였지만 시로네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튀어 나갔다.
‘산탄 무브먼트!’
광자화 상태로 변한 시로네가 마치 폭발하듯 여덟 방향으로 쪼개지면서 사방에 포톤 캐논을 작렬시켰다.
거기에서 다시 순간 이동을 연계하자 섬광이 그물처럼 얽히면서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우와…….”
잠시 넋을 잃고 지켜보던 요는 골목에서 들리는 엔진음에 고개를 돌렸다.
“크하하하! 사냥이다, 사냥!”
기관총이 달린 지프차 한 대가 일곱 대의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자 부하들이 반색했다.
“태장!”
시로네는 운전자보다 덩치가 2배나 큰 지하인을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저런…….”
지하인의 평균 체구를 가늠할 수 없었다.
“태장이에요. 전투부대의 우두머리죠.”
“일단 피하자.”
광익을 펼친 시로네가 요를 끌어안고 날아오르자 지프차의 기관총이 홱 틀어지면서 시커먼 탄흔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으으으으!”
건물의 옥상 위로 솟구치는 그때 요가 소리쳤다.
“집정관님! 아래!”
태장이 거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벽을 타고 쫓아오고 있었다.
‘대체 뭐야?’
소총이 쏘아지는 순간 시로네는 레인보우 드롭을 이용해 난간 아래로 휘어지듯 떨어졌다.
“이야호오오!”
그러자 잔뜩 신이 난 태장이 방향을 틀더니 시로네가 있는 곳으로 몸을 던졌다.
‘미친……! 20층인데!’
“크하하하하하!”
추락 따위는 생각도 않는지 태장은 소총을 아래로 겨누고 미친 듯이 탄을 갈겨 댔다.
순간 이동을 포기한 시로네가 광폭을 발동하자 빛의 장막이 탄의 궤적을 미묘하게 뒤틀었다.
“흐으으으으!”
총알이 눈에 보인다는 것은 끔찍한 공포였다.
‘정신 차리자! 추락 시점을 놓치면 끝장이야!’
실수로라도 탄이 자신에게 휘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땅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다시 순간 이동을 시전한 시로네는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땅 위를 미끄러졌다.
“이런 빌어먹을!”
뒤이어 같은 지점에 도착한 태장이 소총을 놓고 몸을 뒤틀자 쿵 소리가 나며 그의 몸이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다가 고물 차량에 처박혔다.
“으아아악!”
“태장, 괜찮아요?”
지프차와 오토바이 부대가 마중을 나왔다.
안면을 고릴라처럼 일그러뜨린 태장이 탈골된 어깨를 밀어 넣으며 지프차에 올라탔다.
“가! 오늘 포식이다!”
“끼야야야야!”
멀리서 밀려드는 원숭이 떼의 괴성에 시로네는 등골이 오싹했다.
‘진짜 위험한 놈들이다. 신체 능력도 그렇지만 무기도 마법의 위력에 준하고 있어.’
아니, 어쩌면 자신의 마법이 저들의 무기에 준하는 것인가?
기억의 혼란을 접어 두고 시로네가 말했다.
“따돌릴 수 없겠는데. 싸우는 수밖에 없나?”
“한 군데 있어요, 저들이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고?”
“네, 아마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저도 들어가고 싶지 않거든요. 우리는 그곳을 금단의 성지라고 불러요.”
“위험한 곳이야?”
“모르겠어요. 오염 구역이긴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들었어요. 저도 지금 기분이 이상해지고요.”
‘흐음,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멸망한 세계에서 통용되는 밈이라면 시로네로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곳으로 가자, 안내해.”
요는 께름칙했으나 집정관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도착한 곳은 도시에서도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뮤커스로 완전히 뒤덮인 건물이었고, 그렇기에 파괴된 흔적조차 없었다.
“확실히…… 위화감이 느껴지기는 하네.”
아포칼립스의 인류라면 더욱 불길할 터였다.
“하지만 뮤커스가 가로막고 있는데?”
요가 은경을 깨트리며 말했다.
“건드리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급할 때에는 이런 식으로 길을 열기도 해요.”
은경의 파편이 바닥에 깔린 뮤커스를 할퀴자 점액질이 생물처럼 꿈틀거리더니 물러서기 시작했다.
“저기에 있다!”
블록 저편에서 지하인들이 추격해 오자 시로네가 요를 끌어당기며 광폭을 시전했다.
“가자!”
빛의 장막이 박동하면서 입구로 가는 길목이 활짝 열렸다.
“놓치면 안 돼! 쏴! 쏴!”
시로네와 요가 돌아볼 틈도 없이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지프차가 건물 앞에 정차했다.
“하필이면 금단의 성지로 들어가? 비겁한 자식들.”
“태장, 어떡하죠?”
성인 두 사람이면 전투부대가 배불리 먹고도 남는다.
하지만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태장이라도 이곳은 절대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없지. 포기한다. 다른 사냥감 찾아보자고.”
엔진이 굉음을 내며 멀어져 가고, 입구 옆에 세워진 비석에 철떡 하고 뮤커스의 점액이 떨어졌다.
페어리 바이오미메틱스 연구소
* * *
콰아아아앙.
도시 저편에서 들리는 폭음성에 미로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뭐지? 전투인가?”
이어서 사격의 소음이 밀려들었다.
“가 보자. 꽤나 치열한 것 같은데.”
시로네가 군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미로의 공간 이동으로 한꺼번에 거리를 건너뛴 그들은 총성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달렸다.
“귀찮군요.”
페르미가 에어 스케이트 마법을 시전하자 두 발이 뜨면서 지면 위를 빠르게 미끄러졌다.
“별 마법을 다 가지고 다니네.”
마르샤가 딴죽을 걸자 페르미가 몸을 틀며 다리를 벌린 자세를 취했다.
“플라이 마법처럼 비행은 안 되지만 이동 마법 중에서는 가성비가 좋죠. 무브먼트도 자유롭고.”
런 스텝을 밟으며 앞서 나간 페르미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쨌거나 이번 작전에 제 돈을 전부 털어 넣었으니까요.”
성공하면 1,900억 골드가 굴러들어 오는 임무였다.
리안이 말했다.
“계속 멀어지는데요? 추격전인 것 같습니다.”
괜히 부아가 난 마르샤가 페르미에게 물었다.
“야, 그거 얼마야? 양도되는 거지?”
“200만 골드요. 사실래요?”
“닥쳐.”
부지런히 발로 뛰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마르샤였다.
* * *
“이상하다. 정말 이상해.”
시로네는 건물 로비를 두리번거렸다.
예전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소였고 벽면에 뮤커스들이 달라붙은 것을 제외하면 딱히 특이한 점도 없었다.
“당연히 이상하죠. 여긴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분명 예전에 왔었던 것 같아.”
시로네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밀려들었다.
순백의 사무실에 오크 테이블. 지적인 안경을 쓴 남자가 서류 한 장을 내밀며 말했었다.
-축하합니다, 시로네 씨. 인공 동면 대상자에 당첨되셨습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아뇨. 소중한 사람들을 이곳에 두고 저만 살아남을 수는 없어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개인의 생존 문제가 아니에요. 인류의 대표로 들어가는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건방 떨지 마세요. 당신에게 계약서를 내밀고 있는 저 또한 이곳에 남아야 합니다. 즉, 여기가 삶의 끝이죠.
“……정말로 나는 혼자가 되어 버린 것일까?”
요는 시로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슬프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들이 있잖아요.”
벽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로 걸음을 옮긴 시로네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 건물 꼭대기에…….’
그 사무실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는 뮤커스의 점액질로 완전히 가로막혀서 울긋불긋한 벽이 되어 있었다.
“지금쯤 돌아갔을까요? 사냥 때문에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텐데.”
요의 불안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시로네는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지하로 가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죄송해요, 제 생각만 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지하. 지하에 뭔가가 있다.’
엘리베이터로 달려간 시로네가 요에게 말했다.
“이 문을 열어 줄 수 있어?”
“네? 아, 네.”
요는 두 팔을 금속으로 만들어 엘리베이터 문틈에 꽂아 넣고 힘껏 벌렸다.
“흐으으읍!”
문이 열리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승강기 통로가 나타났다.
“됐다. 지하로 갈 수 있겠어.”
“지하로 가시게요?”
“불안하면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아.”
요의 표정이 곧바로 변했다.
“아뇨. 저는 집정관님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괜찮을 거야.”
샤이닝 마법을 통로에 던진 시로네가 승강기 선을 붙잡고 내려가자 요가 뒤를 따랐다.
“…….”
그로부터 1분 뒤, 로비의 천장을 잠식한 뮤커스에서 사람의 얼굴이 불룩하게 밀려 나왔다.
금단의 성지 (2)
* * *
엘리베이터 천장에 금속 팔이 불쑥 들어왔다.
은경의 수도가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칼집을 내기 시작하더니 천장이 무너지면서 시로네와 요가 뛰어내렸다.
“생각보다 깊지 않네.”
높이로 보건대 승강기는 지하 1층에 멈춰 있었다.
“바닥을 뚫고 가면 어떨까요?”
뮤커스가 계단을 가로막은 것을 봤기에 시작부터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건 위험할 듯싶었다.
갑자기 천장에서 파직 하고 전기가 튀더니 승강기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전기가 있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저절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쭉 뻗어 있는 복도를 따라 천장의 전등이 순차적으로 불을 밝히고, 단조로운 연구소의 풍경이 그들을 맞이했다.
뮤커스가 군데군데 묻어 있기는 했지만 활동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