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67
“여기부터 살펴보자.”
시로네는 요를 데리고 연구소 복도를 거닐었다.
방마다 공기압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고, 유리 벽 안쪽으로는 수많은 전기 철창이 블록처럼 쌓여 있었다.
‘격리 시설. 동물실험을 했던 곳인가?’
유일하게 문이 열린 중앙통제실로 들어가자 탁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벽면에 옅은 핏자국이 남아 있고 지상에서 새어 들어왔는지 뮤커스들이 벽을 따라 반쯤 흘러내린 상태였다.
“전투가 있었나 봐요.”
파괴된 기물들이 사방에 던져져 있고 바닥에도 핏자국이 있었다.
“전투가 아냐. 일방적인 학살이지.”
그런 확신이 들 정도의 광경이었다.
“전기가 들어온다는 건…….”
시로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앙통제실의 관리자 버튼을 눌렀다.
웅 소리가 나면서 사방에 홀로그램 모니터가 켜지더니 수많은 3차원 이미지를 전송했다.
“지, 지하인……!”
요가 두 팔을 경화시키며 전투 자세를 취하자 시로네가 손을 들어 말렸다.
“걱정하지 마. 환영일 뿐이니까.”
시로네는 원통형 홀로그램에 떠오른 이미지를 심각하게 살폈다.
인간과 원숭이가 나란히 돌고 있었는데, 잠시 후 홀로그램이 겹쳐지더니 지하인의 특징을 지닌 생물체로 합성되었다.
‘대체 뭐야?’
시로네가 홀로그램의 장치의 옵션을 조작하자 측면의 모니터에 문서가 나타났다.
“고대어인가요? 뭐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시로네는 동면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읽어 나갔다.
“다이내믹 휴먼 프로젝트. 정부 공식 승인.”
거기까지 말한 시로네는 입을 다물고 눈으로만 읽었다.
태양의 아이들이나 지하인들이 어째서 이곳을 꺼렸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문서에 적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핵전쟁의 여파로 인류의 80퍼센트가 돌연변이, 기형, 생체 기능 저하에 시달렸다.
열성인자로 가득한 인류는 더 이상 건강한 자손을 번식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시도된 것이 다이내믹 휴먼 프로젝트였다.
인공 배양한 영장류와 인간의 유전자를 결합하여 전보다 월등히 강인한 인간을 만드는 것.
그렇게 하면 최소한 멸망한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집정관님. 뭐라고 쓰여 있어요? 지하인들이 곧 벌을 받는대요?”
말 그대로 이곳은 금단의 성지였고 시로네는 설명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괜찮으신 거예요? 얼굴색이 안 좋아요.”
그때 뒤편의 벽에서 뮤커스가 소리 없이 흘러내리더니 점액질의 2미터 높이에서 2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눈동자가 시로네와 요를 포착하자 점액질이 밀려 나오면서 인간의 형태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그 순간, 스피릿 존으로 무언가를 감지한 시로네가 빠르게 돌아섰다.
“뭐야!”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부릅뜨며 돌아선 요가 표정을 풀고 물었다.
“왜 그러세요?”
“분명 뭔가 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냐. 점액질의 모양이 달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천장까지 밀려 올라가 있어도 형태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요의 눈썰미로는 그것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걱정되시면 그냥 나갈까요?”
시로네는 입술을 말아 물고 생각에 잠겼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깨달은 이상 이대로 군락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분명 여기에 답이 있다. 잘하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결정을 내린 시로네가 말했다.
“일단 조금 더 탐색해 보자.”
그렇게 연구실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나섰다.
* * *
“폭발음이 사라졌어.”
미로의 말에 페르미가 가속했다.
“제가 살펴보죠.”
에어 스케이트를 타고 빠르게 블록을 지나간 그가 모퉁이 쪽을 확인하더니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뒤늦게 도착한 리안이 높은 건물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곳만 심하게 부서지지 않았군.”
마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전보다는 주의력이 있네? 어쨌거나 이 풍경은 확실히 이상한걸.”
각자 맡은 방향을 경계하며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미로가 한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보여?”
뮤커스로 뒤덮인 초고층 빌딩이었다.
“누군가 들어갔군요.”
방만하게 퍼져 있는 점액질에 투박한 길이 나 있다는 것은 분명 인위적인 흔적이었다.
“뮤커스는 귀찮죠. 더군다나 이 정도 양이라면…….”
건물 내부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점액질이 차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가 보는 수밖에 없잖아?”
미로가 먼저 걸음을 옮기자 남은 세 사람이 뒤를 따랐다.
로비는 의외로 깨끗한 편이었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만 뮤커스가 가득 차 있었다.
“뚫어 볼까?”
미로가 계단을 가리키며 말하자 페르미가 모퉁이를 돌아 승강기 쪽을 향해 섰다.
“저쪽으로 간 것 같군요.”
그곳으로 걸어간 마르샤가 벽을 붙잡고 승강기 통로의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철로 만든 상자 안에 미약하게 불빛이 어려 있었다.
“빛이 있네. 어비스 워커인가?”
“그것도, 내려가 보면 알겠지.”
네 사람이 승강기 통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로비의 천장에서 철떡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점액으로 만들어진 인간.
마치 피부가 벗겨진 것처럼 흉측스러웠으나 이목구비는 선명했고 두 눈은 또렷했다.
통칭 뮤커스 맨이었다.
“…….”
승강기 쪽을 바라보던 뮤커스 맨의 정수리로 점액질이 천천히 흘러내리더니 마치 물방울을 빨아들이듯 그의 얼굴을 붙잡고 천장으로 끌어당겼다.
* * *
지하 4층으로 내려온 시로네는 쾌청한 공기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와…….”
요가 환희에 차오른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열대에서나 볼 법한 수목원이었고, 수많은 나무들의 이파리가 벽을 타고 자라 있었다.
“지하에 생태 환경이라니. 아니, 그보다 어떻게 지금까지 버틴 거지?”
온도, 습도, 빛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내려가자. 아무래도 여기는…….”
요를 데리고 4층을 확인하기가 꺼림칙했다.
“저기에 더 큰 나무가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이제 자신이 먼저 발 벗고 나서고 있었다.
유리 벽으로 밀폐되어 있는 대형 수목원에 들어가자 수많은 컴퓨터 장치들이 가동되고 있었고, 중앙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시로네는 멍하니 서 있는 요의 뒷모습만 보고도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 어어?”
요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바깥에서 봤던 것보다는 크기가 작지만 분명 생명나무였다.
꼭지를 단 태아들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뿌리를 가둔 넓적한 유리통에는 뮤커스의 점액질이 채워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우리는…….”
요가 중얼거리는 그때, 유리통의 점액질이 쭉 하고 올라오더니 태아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꼭지가 뚝 하고 끊어지면서 점액에 빠지는 광경을 본 요가 창백해진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진정해! 큰 소리를 내면……!”
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정관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왜 여기에 생명나무가 있죠? 라는, 태양은……!”
시로네라고 알 턱이 없었으나 확인할 방법은 있었다.
통제장치의 옵션 버튼을 누르자 또다시 홀로그램이 켜지며 설명이 이어졌다.
‘인류 멸종 방지 프로젝트. 정부 비공식 승인. 역시…….’
다이내믹 휴먼과 마찬가지로 태양의 아이들 또한 자생적으로 진화한 인류가 아니었다.
문서에 적힌 내용은 1층에서 봤던 것 이상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동식물의 70퍼센트 이상이 멸종하고 자원이 고갈되면서, 인류는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더 이상 인간이 에너지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간의 욕심이 모든 걸 망쳤다!
인류는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특별한 관리자가 필요했고,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로컬 에너지 순환 시스템 뮤커스였다.
점액으로 동식물을 소화시켜 생태계에 필요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 뮤커스의 존재 의의.
하지만 결국 로컬 에너지마저 말라 버리자 스스로 영역의 한계를 파괴하고 확장하기 시작했다.
특정 개체의 보존보다 생태계 유지가 우선이라 판단한 시스템은 심지어 인간마저 소화시켜 버렸다.
그렇게 행성이 말라 버린 상황에서 인류가 내린 결론은, 인간의 동력 메커니즘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
정부 주도하에 인류 생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사일런스 인공동면 주식회사는 소수만 남은 요정족의 후예와 접촉했고, 페어리 바이오미메틱스를 설립했다.
그 결과물이 태양력을 이용한 생명나무.
광합성과 물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체라면 세상이 멸망해도 인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결코 확인할 수 없었던 미래가 시로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뮤턴트는 요정의 특성이 발현된 것이었구나. 인간의 종에 대한 집착, 참으로 가공할 만하다. 하지만…….’
시로네는 슬픈 눈으로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이것이 그들이 꿈꿨던 미래의 모습일까?’
쿵! 하고 요가 무릎을 꿇었다.
“아니야.”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죠?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거죠? 우리는…… 태양의 아이들은 라의 축복을 받은 종족이 맞는 거죠?”
아주 오래전에는, 다이내믹 휴먼이나 태양의 아이들도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결코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이었고, 그것이 본능으로 이어져 마침내 금단의 성지가 된 것이다.
“집정관님! 말씀해 주세요! 우리는 뭐죠? 정말로 인간인가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지금 이 세계에 살아남아 있는 종족이 너희라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여태까지 우리는……!”
그때 생명나무의 아래에 잠겨 있던 뮤커스가 꾸물거리더니 뮤커스 맨이 튀어나왔다.
“위험해!”
시로네가 요를 끌어안고 바닥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천장에서 뮤커스가 흘러내려 벽을 도배했다.
“저건 또 뭐야?”
요를 끌어안고 고개를 돌린 시로네는 뮤커스 맨의 흉측한 모습에 질겁했다.
“고효율 에너지…….”
뮤커스의 팔이 고무처럼 쭉 늘어나면서 쇄도하자 몸을 던진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연사했다.
어깨와 복부가 폭발한 뮤커스 맨이 뛰어오르자 천장에서 점액질이 내려와 그를 붙잡고 빨아들였다.
“제길!”
눈에 보이는 것을 잡는다고 끝이 아니라, 건물에 채워져 있는 뮤커스 전체가 적이었다.
새로운 육체를 얻은 뮤커스 맨은 거미처럼 벽을 타고 돌아다녔고, 시로네가 공격을 할 때면 곧바로 점액에 스며들어 버렸다.
‘이런 것하고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바닥에서 솟구친 뮤커스 맨이 주먹을 휘두르자 시로네는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벽에 묻은 점액에서 굵은 촉수들이 쭉 하고 뻗어져 나왔다.
“집정관님!”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요가 튀어 나가려는 그때, 수목원의 문이 열리면서 거구의 사내가 그녀의 곁을 지나갔다.
가속을 무시하고 시로네의 앞을 막아선 그가 대검을 휘둘러 철떡하고 촉수를 베어 냈다.
“시로네! 괜찮아?”
푸른 머리의 사내가 고개를 돌리자 시로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들더니 수많은 기억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리안?”
시로네 정보 복구율.
69퍼센트.
금단의 성지 (3)
“어떻게 네가 여기에……?”
시로네는 자신이 내뱉은 말의 근원을 찾지 못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조금씩 기억은 되살아났지만 이번만큼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적은 처음이었다.
“집정관님!”
요의 비명 소리에 고개를 들자 뮤커스 맨에게 잡힌 요가 벽의 점액질에 파묻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런!”
황급히 문으로 달려가던 시로네는 리안을 따라 뒤늦게 달려온 3명과 마주쳤다.
어딘가 낯이 익은 자들이었다.
“오랜만이야, 시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