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7
“야! 너희들 무슨 수작이야! 시로네는 안 돼! 시로네는 내 거란 말이야!”
친구들이 황당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네이드의 속사정을 아는 친구가 말했다.
“웃기고 있네. 너, 그 이상한 연구회에 가입시키려고 그러는 거지? 시로네, 거긴 절대 들어가면 안 돼. 꼭 우리 연구회에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어디든 다른 연구회를 들어가. 내가 학교 다니면서 네이드가 수행평가 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지만 공식적인 활동은 극히 드물었다.
“어라? 네이드, 너 연구회 있어? 어딘데?”
네이드가 빠르게 눈을 굴리더니 특유의 처세술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했다.
“훗, 당연하지. 학교 최고의 인기인이 연구회 하나 없을까 봐? 아무튼 시로네는 안 되니까 내가 데려간다.”
네이드가 시로네를 끌고 가자 연구회를 권한 학생이 크게 소리쳤다.
“야, 시로네! 진짜 잘 생각해야 돼! 거긴 절대 들어가지 마! 그리고 네이드, 너도 시로네 공부 방해하지 말고 그냥 편한 곳에 들어가게 해 줘.”
“하하하하! 그런 말 해 봤자 이미 늦었어. 우린 벌써 금단의 선을 넘었다고!”
“잠깐! 그게 무슨…….”
문이 쾅 닫히면서 시로네의 말이 끊기고 강의실의 학생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쟤 지금 뭐라고 한 거냐?”
“큰일 났다. 네이드 저 자식, 진짜로 시로네를 끌어들일 생각인가 봐. 휘둘리면 안 되는데.”
“아니, 이미 휘둘린 것 같은데? 그나저나 쟤들 왜 나간 거야? 이제 곧 수업인데.”
***
복도로 나온 시로네가 네이드의 손을 뿌리쳤다.
“야! 말을 해도, 금단의 선이 뭐야?”
“하하! 틀린 말은 아니잖아. 너는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의 실체를 본 유일한 사람이니까.”
“연구회의 실체? 볼 것도 없던데, 뭐.”
주위를 둘러보던 네이드가 시로네를 주저앉혔다.
“일단 좀 앉아 봐.”
“알았어. 보채지 좀 마.”
네이드가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연구회에 직접 들어와 본 사람은 너밖에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절대 발설하면 안 돼.”
“발설이나 마나, 누가 물어보지도 않잖아.”
“아무튼! 가뜩이나 회원도 없는데 운영진에서도 해체 얘기가 돌고 있단 말이야. 가급적 조용히 지내야 하니까 초자연의 초 자도 꺼내지 말라고.”
“알았어. 어차피 할 생각도 없었어.”
시로네는 망하기 일보 직전인 연구회라고 생각했지만, 진가를 아는 음지의 회원들은 호시탐탐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를 삼킬 궁리를 하고 있었고 반대로 교사들은 어떻게든 해체를 시키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그나저나 시로네 너…… 정말 게네들이 만든 연구회에 들어갈 거야?”
“고민은 했지. 왜?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당연하지. 아무리 수행평가가 변별력이 없어도 아무하고나 연구회를 하는 건 손해야. 게다가 너는 전교 톱을 노리고 있잖아. 1점이 중요한 거라고. 어설픈 곳에서 때우느니 차라리 혼자 하든가, 아니면 진짜 제대로 된 연구회에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졸업반을 목표로 하는 클래스 포에서는 특정 과목의 만점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행평가의 1점 차이가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흐음, 하지만 그렇다고 나 혼자 수행평가를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시로네가 말했다.
“혹시 말이야, 내가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에 들어가면 어떨까?”
“시로네, 네가?”
“응. 듣자 하니 대외 활동도 없는 것 같고, 어차피 너나 이루키도 수행평가 해야 하잖아. 다른 멀쩡한 연구회 망치느니 너희랑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하하! 그건 그렇지.”
네이드는 순순히 인정했다.
또한 그런 부분이야말로 시로네에게 권할 수 없는 이유였다.
알페아스 마법학교가 설립된 지도 어언 45년째. 대다수의 학생들은 졸업 시험을 거쳐 사회로 나가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음지에서는 또 하나의 사회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며 생활하고 있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도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시로네가 다시 물었다.
“뭐, 조금 전의 말은 농담이고. 어때? 너랑 나, 이루키, 이렇게 수행평가를 하는 게?”
“정말 괜찮겠어? 네가 들어오면 나야 좋지만, 솔직히 멀쩡한 연구회는 아니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네가 생각하는 그런 느낌은 절대로 아닐 거라고.”
감출 게 많은 곳이라는 건 강의실에서 동급생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흥미와 무관하게 성적만을 위해 뭉친 연구회도 매력적이진 않았다.
“사실…… 꼭 수행평가 때문만은 아니야.”
“응? 무슨 소리야?”
“요즘 내가 좀 이상하거든. 안 그래도 너희들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초자연 심령과학이라면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상한 연구회(2)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호오, 그런 문제라면 또 내가 전문이지. 그럼 이따 같이 연구회에 가 보자.”
“근데 이루키는 어디 있어? 안 보이네.”
“오늘은 안 올 거야. 다시 찾은 열정이 진부한 교육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나? 어쨌든 연구회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어.”
“하하! 이루키답네.”
시로네와의 대결 이후 꿈을 향해 전진하겠다고 선언한 이루키지만, 극단으로 치우쳐 있는 천성이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따 얘기하자. 수업 시작하겠다.”
어느새 복도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본 시로네는 황급히 강의실로 들어갔다.
다른 생각 없이 공부에 집중한 시로네는 일과가 끝나자 네이드와 연구회로 향했다.
마법 창고 이스타스 앞에 도착한 시로네는 또다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전에 봤던 형태가 콜로니처럼 뭉쳐 있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7개의 탑이 솟은 형태였다.
“이 건물, 다시 봐도 정말 대단하다.”
“건물만 89채니까, 패턴으로 따지자면 끝이 없지. 이루키가 깨어 있으면 좋겠는데.”
형태가 변한 만큼 내부도 달라졌지만 네이드는 미로를 종횡무진 걸어 다녔다.
“전에도 궁금했는데 어떻게 길을 찾는 거야? 형태가 변하면 표시를 해도 소용없잖아.”
“하하, 그렇게 저차원적인 방법은 쓰지 않지. 말 그대로 전부 외우는 거야. 오래전에 연구회의 어떤 선배님이 이스타스의 설계도를 복원했거든.”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뭐어? 이 복잡한 건물을? 아니, 그 전에, 왜 그런 일을 한 거야? 새로 짓는 것도 아닌데.”
비생산적인 일이었으나 그렇기에 네이드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자, 저기 천장을 봐 봐. 점이 3개 찍혀 있지? 3번 방이라는 의미야. 그럼 다음에는 세 번째 창고의 철문이 무슨 색인지 보는 거야. 파란색이지? 따라서 이 장소는 3번 방의 파란색이 되는 거지.”
시로네의 시선이 네이드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 다음 큐브의 숫자를 세. 갈림길이 네 군데니까 주변과 연결된 큐브는 네 개.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방의 숫자를 X, 색을 숫자로 치환한 것을 Y, 큐브의 숫자를 Z로 치환한 다음 방정식에 대입하면 돼.”
“방정식?”
“설계도는 실제 도면이 아니야.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내가 말한 설계도란 이스타스의 패턴을 분석해서 만든 방정식이라고. 이 식에 숫자를 대입하면 소수점 두 자리의 해가 나오거든. 그 숫자로 방위를 파악할 수 있어. 따라서 이스타스에서 길을 잃을 리는 절대로 없는 거지. 마스터키라고나 할까?”
‘마스터키.’
시로네는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한에 가까운 형태 변형을 하는 이스타스, 그 패턴을 방정식으로 정립한 선배들.
비록 쓸데없는 짓처럼 보여도, 그 안에 담긴 사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씩 계산하다가는 연구실에 들어가는 데만도 엄청 오래 걸리겠는데?”
“날마다 다니면 익숙해져. 체득이라는 거지. 너도 알잖아? 세 달 정도 지나면 방정식에 대입할 필요도 없이 감각적으로 느낌이 올 거야.”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다. 방정식 하나로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다니.”
“사실 지금도 이스타스는 베일에 싸인 구조물이야. 알페아스 마법학교에만 있거든. 소문에 의하면 초대 회원 중에 서번트 능력자가 있었나 봐. 이루키도 이 방정식을 처음 봤을 때 엄청나게 아름답다고 말했어. 자신도 이것보다 더 단순하게 방정식을 설계할 자신은 없다던가? 아무튼 남들에게는 절대 말하면 안 돼. 마스터키가 유출되면 큰일 나니까.”
‘……확실히 마니악하네.’
초대부터 내려오는 선배들의 비생산적이고 광기 어린 집착이 담겨 있는 곳.
그게 바로 이스타스 미궁에 숨어 있는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였다.
두 사람은 연구실에 도착했다.
전과 마찬가지로 간판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고 문을 열자 여지없이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리 입을 막고 있어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이루키, 우리 왔다.”
칠판에 복잡한 수식을 적어 나가던 이루키가 시로네를 발견하고 빙긋 웃었다.
“여어, 시로네. 어쩐 일이야? 이런 누추한 곳에는 다시 안 올 줄 알았는데?”
예전 일을 떠올린 네이드가 웃었다.
“하하, 그랬지. 그런데 이제는 가입하고 싶단다.”
“호오?”
이번만큼은 이루키도 의외였는지 분필을 내려 두고 시로네에게 다가왔다.
“예상 밖이네. 여긴 네 개인 학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연구회일 텐데.”
“그게, 이제는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요즘 고민이 하나 있는데, 상담 좀 할 수 있을까?”
네이드와 눈을 마주친 이루키가 피식 웃었다.
“나를 이긴 천재께서 고민이라. 듣지 않아도 엄청나게 대단한 고민이겠군.”
이제는 시로네도 이루키의 성격을 알기에 꼬인 말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스피드건 시험 이후로 뭔가 좀 변한 거 같아서. 악몽을 꾸기도 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좀 오싹해. 아니, 너무 오싹해. 꼭 옆에 누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이게 초자연이든 심령이든, 아무튼 관계가 있지 않을까? 너희들은 이런 쪽으로 빠삭할 거 아냐?”
친구들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네이드는 미지의 탐구자로, 이루키는 미지의 비판자로 흥미를 느끼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찾아왔네. 일단 여기 앉으시고.”
네이드가 소파를 털며 자리를 권했으나 시로네는 피어오르는 먼지에 질색했다.
‘드디어 알았다. 이 먼지…….’
전부 이루키가 사용한 분필 가루였다.
“됐어, 그냥 앉을게. 제발 이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마. 아니면 평소에 치우든가.”
“자, 자! 한낱 미세 먼지 따위에 굴하지 마시고! 연구회의 첫 번째 의뢰인이여, 어서 용건을 말씀하시지요.”
의자를 끌어와 앉은 네이드와 이루키는 사뭇 전문가답게 다리를 꼬았다.
시로네는 기가 찼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야, 내가 요즘 이런 꿈을 꾸는데…….”
시로네는 꿈에서 본 것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상한 감각도.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혹시 귀신 같은 게 내 몸에 들어온 건 아니겠지? 혹시…… 나와 비슷한 사례를 겪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정적이 이어졌다.
농담으로라도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던 시로네는 심각한 분위기에 침을 삼켰다.
“뭐, 뭐야? 긴장되게 왜 그래? 너희들 또 장난치는 거지?”
네이드는 난감하게 눈썹을 긁었다.
“음, 그게, 저기…… 듣고 보니 꽤 그러네.”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 봐.”
“네가 느꼈다는 그 감각 말이야. 오싹오싹하고, 무언가가 느껴지는 그런 기분.”
“맞아. 특히 새벽에 심하고.”
“과학적으로 검증이 된 건 아니지만, 네가 겪은 건 초상감이라는 현상이야.”
“초상감?”
“200년 전에 어떤 학자가 사형수에게 실험을 했어. 영혼 전해라고 부르는 건데, 사람의 혼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면 전기로 분해할 수 있을 거라는 가설이지. 방법은 이래. 밀폐된 전도체의 금속 상자에 사형수를 가두어 두고 전류를 흘려 보내는 거야. 하지만 너무 비인도적인 처사라서 중간에 실험이 중단되고 말았어. 덕분에 사형수는 목숨을 건졌지만 한 달 동안 의식을 잃었다고 하더군. 문제는 지금부터야. 마침내 깨어난 사형수가, 의식을 잃은 동안에 벌어졌던 바깥의 정세를 전부 꿰고 있었던 거지.”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러니까 놀라운 거지. 학자는 영혼의 이온화라는 가설을 세웠어. 영혼을 전기분해 시키자 전자기력이 발생해서 세계의 정보를 사형수에게 끌어당겼다는 거야. 물론 학계에서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지. 게다가 사형수가 목숨을 보전하려고 경비들에게 뇌물을 주고 정보를 얻었다는 소문도 돌았거든.”
“……그런 실험도 있구나.”
“정통파 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심령과학계에서는 여전히 화두로 오르내리는 사건이야. 게다가 정식 종교 단체인 교령회에서도 트랜스 상태를 인정하잖아. 따라서 영혼의 이온화 또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지. 아무튼 그 사형수가 느꼈던 감각을 이쪽 분야에서는 초상감이라 불러.”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시로네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다면 이제 내 차례군.”
이루키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먼저 물어볼 게 있어. 초상감이 생긴 게 스피드건 시험이 끝난 후라고 했지? 확실히 너의 광자 출력은 평소와 달랐어. 비밀이라면 밝히지 않아도 되지만, 일단 들어 두는 게 도움이 될 듯싶은데.”
시로네도 이루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결과를 분석하려면 원인을 알아야 하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시로네는 무한의 영역에 도달한 과정을 상세히 고했다.
수열식에서 발견한 깨달음과, 대결의 압박 속에서 수를 초월해 버린 것까지.
이루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념에 대해서는 이미 아버지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이모탈 펑션이군.”
“이모탈 펑션?”
“어릴 때 들은 적이 있어. 세상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절대함수. 내 생각에 그건 아주 위험할 거야. 전부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와 현상적으로 같으니까.”
에텔라의 말과 같은 맥락에, 시로네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시도를 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가설만 세웠지 정말로 성공할 줄은 몰랐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야.”
이루키가 피식 웃었다.
“무슨 멍청한 소리야? 수학자에게 이모탈 펑션은 꿈의 영역이라고. 이제야 납득이 가네. 하긴, 나를 이길 정도면 이모탈 펑션은 되어야지. 킥킥킥.”
에텔라조차 걱정했던 이모탈 펑션을 장기 자랑처럼 생각하는 이루키는 분명 괴팍했지만, 그런 태도가 시로네를 오히려 안심시킨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아무튼 이모탈 펑션이었단 말이지. 흐음, 이제야 좀 정리가 되네.”
“그래? 뭔가 좀 알아냈어?”
이루키는 벽을 돌아보았다. 마치 백지의 벽면에 눈으로 수식을 쓰는 듯했다.
“심령 쪽은 전공이 아니라서 초상감은 몰라. 하지만 네가 매일 꾼다는 그 악몽 말이야, 그게 뭔지는 짐작이 가. 왜 그런 꿈을 꾸는지도.”
시로네는 주먹을 쥐었다.
“말해 줘. 어떤 말이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우선 꿈은 기억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하지만 너의 꿈은 아마도 기억이 그대로 투영된 거야. 심리적 퇴행 현상이라고 불리는 건데, 최면에 들어간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선명하게 기억해 내는 것과 같은 원리지. 어찌 됐든 너의 악몽이 그런 종류라고 가정한다면…….”
“한다면?”
“네가 본 것은 아마도 우주일 거야.”
“우, 우주?”
시로네도 우주가 뭔지는 알고 있다. 세상 바깥에 있는 미지의 세계.
하지만 지식은 단지 거기까지였고,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태곳적부터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우주로 나간 종족은 드래곤이 유일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680년 전, 세인트 드래곤 그라미슈는 각 종족들의 대표가 참관하는 자리에서 대륙을 벗어나 우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결국 13시간 만에 지상으로 추락했고, 당시 그의 시체는 처참할 지경이었다.
약조에 따라 각 종족 대표들은 시체를 분리해 각자의 영토로 돌아갔는데, 거기에서 얻은 증거물은 훗날 우주론을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내 꿈에 나온 것이…… 우주라고?”
이상한 연구회(3)
“내 전공이 계산물리학이잖아. 공간의 규모나 속도, 형태로 보았을 때 우주가 아니고서는 그런 현상을 관측할 수가 없어. 대륙에서 구현하기에는 수치가 너무 크거든.”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꿈을 꾸지? 심리적 퇴행 현상이라면 내 기억이라는 건데, 나는 우주에 가 본 적이 없잖아.”
“아마도 그렇겠지만, 우주에 가지 않더라도 기억은 존재할 수 있어. 네이드의 말에 의하면.”
“초상감…….”
네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혼 전해 실험에서 사형수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각국의 정세를 알고 있었어. 즉, 시공간을 초월해 정보를 얻었다는 얘기지. 초상감은 심령과학의 유체 이탈과는 분야가 달라. 만약 영혼이 비둘기처럼 날아다니는 거라면 온 세상의 정보를 동시에 접할 수는 없을 거야. 반면에 전기적으로 이온화가 일어나면 양자적 현상이 발생하겠지. 그럼 시공간을 초월할 가능성이 생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