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70
“제대로 걸린 셈이군요.”
현실에서 최강의 율법을 구사하는 자라면 언더 코더에서는 가히 반신에 가까운 능력을 선보일 것이다.
“아마도 나를 막아 내기 위해 십로회에서 슈라를 선택한 거겠지만, 반드시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야. 십로회도 테라제와 마찬가지로 시로네에게 주목하고 있어. 아포칼립스 세계가 슈라에게는 일종의 실험실이 되는 거지.”
“여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코드로 분석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마르샤가 말했다.
“이 세상 어디에나 침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슈라를 어떻게 찾아야 하지?”
미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슈라를 찾을 필요는 없어. 아마도 그녀는 군락에 있을 거야. 태양의 아이들을 통솔해서 시로네에게 데리고 가겠지.”
“그걸 어떻게 장담하는데?”
“슈라는 뱀의 화신을 가진 반야니까.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이렇게 부르지.”
미로가 슈라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거짓 교리의 신.”
대직도 (1)
북서쪽 군락으로 돌아온 시로네는 신관 베베토를 불렀다.
금단의 성지에 다녀온 이후로 시로네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 같았기에 요는 눈치만 보며 옆을 보좌하고 있었다.
신전에 코드가 얽히면서 베베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집정관님, 부르셨습니까?”
“군락을 떠날 준비를 해라.”
앞뒤 맥락을 끊고 내뱉은 말에 베베토와 요가 놀란 표정으로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군락을 떠나신다고요? 그럼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아.”
시로네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나는 이 세계를 바꿀 것이다. 전쟁도, 식량도 없는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거야.”
베베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군락과 동맹 제안을 할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으나 지금의 발언은 정상인이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베베토가 요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시로네가 했다.
“아직은 말을 할 단계가 아니다. 동맹을 제안하러 떠난 자들이 모이면…….”
“수호자님이 도착했습니다!”
시로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지기가 외쳤다.
시로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를 향하자 문이 벌컥 열리면서 수호자를 포함해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뭐야?”
시로네가 황당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박쥐의 날개를 펄럭이며 들어온 에크서가 부복했다.
“집정관님, 지시하신 대로 동쪽 군락, 남쪽 군락과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이들은 각 군락의 수호자들입니다.”
시로네가 바라는 바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빠르고 쉬웠다.
하나의 군락에 2개의 태양이 있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그들이라면 동맹의 제안에도 경계심을 세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지?”
많은 의문이 한 번에 담긴 질문에 에크서도 비로소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사실은…….”
“내 작품이야.”
녹색 드레스를 입은 슈라가 수호자들을 가르고 나타났다.
“동쪽 군락, 남쪽 군락의 집정관은 이미 제거했어. 즉, 이 세계의 유일한 태양은 너야, 시로네.”
시로네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섰다.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여자에게서 피어오르는 뱀의 기운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반야들 간의 특정한 주파수일 것이다.
“당신은 누구야?”
“나는 슈라. 라의 요청으로 너를 신으로 만들 사람이지.”
“라의 요청?”
“아무래도 방해꾼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시로네는 미로 일행을 떠올렸다.
“그들을 해치겠다는 거야?”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 그들이 우리를 해치러 오는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막을 거고.”
소세계창유를 통해 반야의 경지에 오른 시로네는 뒤늦게 미로가 얼마나 강력한 인간인지 깨닫게 되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가 이번 일을 없던 것으로 되돌리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미로 씨는 나를 위한 일이라고 했어.’
힘없이 권좌에 앉은 시로네가 물었다.
“어쩌면 이 세계가 거짓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살가운 미소를 지은 슈라는 어느새 시로네의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뱀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시로네의 정수리를 찌른 그녀가 귓가에 속삭였다.
“이 세상에 진실 같은 건 없어, 시로네. 네가 믿는 것만이 진실이지.”
“…….”
시로네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태양신이 되는 의식을 치러야지.”
슈라가 시로네의 어깨를 짚으며 수호자들을 돌아보자 그들의 어깨가 움찔했다.
라의 아내, 시로네의 어미라는 칭호로 찾아왔을 때만 해도 정신이 나간 여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슈라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한 이후부터는 어떤 의심조차 불가능했다.
“일단 장소를 옮길까?”
슈라가 스르륵 눈을 감자 주위의 풍경이 코드로 풀어지기 시작했다.
같은 코더인 베베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신의 언어 그 자체.’
슈라는 진실로 이 세계의 신이었다.
“여긴?”
세 군락의 수호자들 모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풍경이 변하면서 도시 바깥에 있는 사막의 한복판에 도착해 있었다.
“후후, 마음에 들어, 시로네? 네가 신이 될 장소야.”
“어째서 이곳을 골랐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미로를 상대로 온전히 너를 지킬 수는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화려한 게 좋잖아?”
“사막에서 무슨 화려함이…….”
시로네는 말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슈라가 두 팔을 들고 태양을 향해 중얼거리자 구름처럼 얽힌 코드에서 수십 톤에 달하는 직육면체의 돌이 끝없이 떨어졌다.
군락 주민들 모두가 달려들어도 수년이 걸릴 작업이 순식간에 진행되는 과정 앞에서, 태양의 아이들은 신의 존재를 현실로 믿게 되었다.
높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피라미드 앞에서는 시로네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는 대체 누구지?’
슈라가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구조물이 방해자로부터 너를 지켜 줄 거야. 내 모든 능력이 집약되어 있으니까.”
미로의 화신을 막아 낼 만큼 강력한 방어막을 치려면 최소한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 했다.
또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일 시로네와 라의 결합에서 발생하는 코드를 분석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막인가? 하지만 여기서는 라와 결합할 수 없을 텐데.”
“시간이 걸리는 건 감수해야지. 라가 도시의 뮤커스를 전부 이곳으로 끌어올 거야. 늦어도 내일 정오쯤에는 도착해.”
“그렇군.”
시로네는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내일이면 저곳에서…….’
멸망한 세상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불안한데.’
슈라는 손톱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미로만 막아 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로의 일행 또한 어떤 식으로든 방해 공작을 펼칠 터였다.
‘할 수 없지. 손을 빌리기는 싫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던 슈라가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더니 어딘가를 돌아보았다.
“대체 이 원숭이는 뭐 하고 있는 거야?”
* * *
“야호! 사냥이다, 사냥!”
금단의 성지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 지하인 전투 부대는 또 1명의 인간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아주 맛있게 생겼는데!”
박녀는 정면을 바라보며 시야를 지나가는 오토바이 부대를 눈에 담았다.
포위망 뒤편에는 지프차에 앉은 태장이 팔짱을 끼고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녀의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오토바이 부대가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다.
“배가 고파서 유언은 못 듣겠다.”
박녀는 가슴에 스며드는 감정을 분석했다.
‘굶주림. 조롱. 죽음. 마지막 의견.’
박녀의 생각이 끝나는 순간 총구에서 굉굉한 총성이 터지면서 불꽃이 작렬했다.
이어서 그들의 총구가 덜덜 떨리며 하늘로 향했다.
“…….”
태장은 목이 잘린 부하들이 경련하며 하늘을 향해 소총을 쏘고 있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오토바이가 좌우로 쓰러지고, 박녀가 지프차의 보닛 위에 올라섰다.
“제법이군. 정체가 뭐냐?”
‘나에 대한 인정. 대상에 대한 의문.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지하인의 말을 배운 적은 없지만 태장의 말에 담긴 의미는 전신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었다.
박녀.
수라 야차, 1만 1,200세.
대부분의 영생자가 인간 이상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그녀의 정신은 오히려 더욱 동물적인 영역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수천 년이 지났을 무렵,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이루는 것과 자연의 경계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과정 속에서 개발된 육감은 예민한 정도를 넘어 가히 ‘흉물적인 감각’이라 불리는 것으로, 논리가 침투할 여지가 없는 찰나의 현상에 대해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예측을 할 수 있는 경지였다.
“너의 왕이다.”
박녀의 말에 태장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 또한 야생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에 자신을 짓누르는 신호에 극도로 민감했다.
“감히 나를 무시해!”
태장이 용수철처럼 솟구치자 박녀가 거리를 벌렸다.
포진해 있던 지하인들이 십자포화를 가하자 땅에 착지한 그녀가 자세를 낮추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크으으으!”
액싱-니르바나 E-엔진(열반동력 8기통).
펑 소리를 내며 그녀의 몸이 사방을 휩쓸었다.
마치 칼날의 바람이 지나가는 듯 잔상이 스칠 때마다 지하인들의 몸이 숭숭 베여 나가자 태장이 원숭이의 포효를 내지르며 지프차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거나 처먹어라!”
우악스러운 괴력이었으나 박녀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프차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다.
‘벤다.’
그녀의 액싱 니르바나 E-엔진은 열반의 힘으로 율법의 실린더를 밀어낸다.
실린더는 최대 8개까지 배열이 가능하며, 하나의 실린더마다 하나의 행동이 장착된다.
직렬 8기통, 8공정 1사이클의 메커니즘.
니르바나 E-엔진을 가속시킬수록 열반동력은 강해지고, 사이클은 빨라지며, 한계가 없다.
‘가속!’
열반동력을 가속시킨 박녀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지프차를 향해 박도를 휘둘렀다.
8개의 율법에 8방위의 베기를 장착한 그녀의 사이클은 현재 80회를 돌파했고, 그것은 놀라운 동체 시력을 지닌 태장의 눈에도 흐릿하게 보일 만큼 빠른 속도였다.
철로 만든 차체가 별처럼 쪼개지더니 이어서 수많은 베기가 들어갔다.
박녀가 지프차를 지나쳤을 때에는 이미 차체가 마치 부속품으로 분해되어 버린 듯 수천 개의 파편으로 쪼개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우!”
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에 옷이 펄럭거리는 모습은 완연한 야차의 자태였다.
“아…….”
태장은 경악의 눈으로 박녀를 바라보았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야생의 생리가 그의 유전자에 하나의 감정을 전달했다.
“우오오오오! 우오오오오!”
왕이다!
이 도시의 정글을 지배할 왕이 나타났다!
괴성을 지른 태장은 성큼성큼 걸어가 박녀의 앞에 거구를 숙였다.
“왕이시여, 저를 지배하소서.”
야생에서는 힘이 전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박녀는 자연스레 그들의 리더가 되어 지시를 내렸다.
“너의 왕이었던 자에게 나를 데려가라.”
여전히 태장은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본능은 그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 * *
석양이 질 무렵, 미로 일행은 마침내 슈라가 거사를 치를 장소를 발견했다.
검사인 리안이 지상을 지키는 가운데 남은 3명의 마법사들은 하늘로 떠올라 사막에 서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지도에는 없던 구조물입니다. 저곳인가 보군요.”
“그래. 정말 빠르네.”
“늦지는 않았을까요?”
“시간은 충분해. 뮤커스가 도달하려면 적어도 내일 정오야.”
도시의 모든 뮤커스가 꾸물거리며 사막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평균 확장 속도보다 수천 배나 빠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리는 멀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먼 곳을 바라보는 미로의 눈이 광채를 뿜었다.
빛을 굴절시켜 더 먼 거리를 보게 해 주는 망원 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