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73
오직 기사도의 정신으로 검을 이끄소서!(250 kill)
“크르릉! 크릉!”
리안의 속도를 가까스로 따라잡고 있는 뮤커스의 선두에서 마치 잠영하듯 수많은 생물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세상 전부를 밀어붙이는 듯한 리안의 돌진을 바라보고 있던 박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하가 밀려들고 있다.”(257 kill)
시야의 끝에서부터 리안의 동선만을 추격해 온 점액질의 형태는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는 대직도.
여태까지 그러했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신념 앞에서 그녀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두렵구나, 야차여.”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두렵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달려! 리안, 달려!”
마르샤가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우직한 전진을 한심하게 지켜보던 페르미도 이번만큼은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어. 곧 결합이 시작된다.’
베베토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273 kill)
죽음을 뚫고 전진하는 야차가 자신에게 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273명을 죽인 끝에, 피와 살점으로 가득했던 리안의 시야가 확 트였다.
피라미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킹콩이 풍선처럼 부푼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와라! 누가 더 강한지 붙어 보자!”
리안이 대검을 움켜쥐는 그때, 뮤커스의 선두 부분이 거대한 맹수로 탈바꿈하면서 왼팔을 깨물었다.
“크윽!”
미로에게는 절망을, 슈라에게는 희열을 주는 결과였다.
“크르륵! 크르륵!”
뮤커스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수에게 점액질을 흘려보내 덩치를 부풀렸다.
“끝났어. 이건 무리야.”
페르미 또한 마르샤와 같은 생각이었다.
‘멍청하긴. 그깟 신념이 뭐라고 전술을 무시해.’
하지만 리안은 여전히 뽑히지 않는 왼팔을 뒤로 내민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직…… 아니야.”
모두가 끝났다고 말해도,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해도.
‘너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
“아직……!”
그것은 바로.
“끝나지 않았어!”
자신의 목소리다.
액싱-디나이.
“크아아아앙!”
리안이 야차의 일갈과 함께 어깨를 휘두르자 거대한 맹수의 점액질이 왼팔째로 뜯겨 나갔다.
“우오오오오오!”
톤 단위의 중량이 대포처럼 쏘아지자 킹콩이 두 팔을 벌리고 맞이했다.
“받아 주마! 나는 최강의 지하인……! 억!”
충돌과 동시에 킹콩의 목소리가 먹히더니 점액질에 파묻힌 상태로 날아가 피라미드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274 kill)
왼팔이 뜯겨 나간 리안은 디나이의 후폭풍으로 이빨을 모조리 드러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크으으으……!”
-스밀레. 스밀레.
몸을 회복시킬 시간 따위는 없었기에, 그는 끊어진 발목으로 땅을 찍으며 피라미드를 오르기 시작했다.
‘시로네! 시로네!’
그리고 마침내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보이는 시점에서 오른발로 계단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시로네에에에!”
하늘에 떠 있는 리안을 올려다보며, 베베토가 눈물콧물을 쏟아 내며 흐느꼈다.
“아아, 신이시여.”
태양이 리안을 감싸고 있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코드 분해 (1)
“시로네!”
리안은 태양을 등진 채로 대검을 치켜세웠다.
죽음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충격을 정신에 가하지 않고서는 시로네의 기억을 돌릴 수 없었다.
‘시로네, 이것이…….’
리안은 이를 앙다물고 온 힘을 다해 대검을 휘둘렀다.
‘내 최고의 일 검이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대검을 휘두르자 섬광처럼 번뜩이는 궤적을 따라 검은 균열이 그어졌다.
리안의 디나이에 율법이 부정당하면서 피라미드를 감싸고 있는 방어막이 포도껍질처럼 벗겨지는 것이었다.
‘짜증 나게 디나이라니.’
슈라가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대검에 담긴 무시무시한 의지의 힘은 코드를 타고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
시로네는 그저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신경만큼 기민하게 반응해야 마땅한 아르망의 로브에서도 어떠한 방어적인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대검이 눈앞에 우뚝 정지하자 시로네는 답답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리안에게 말했다.
“리안, 너는 나를 각성시킬 수 없어.”
“크윽!”
대검을 붙잡고 있는 손이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던 시로네는 리안이 지나온 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백 명을 베어 가며 여기까지 온 너지만…….”
시로네의 눈이 다시 리안을 향했다.
“너의 검에서는 적개심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시로네의 말을 인정하듯 리안의 팔에서 떨림이 사라졌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죽일 수 없다.
리안이 알고 있는 시로네는 고작 죽음 앞에서 정신이 각성될 만큼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리안, 어디까지가 진실이지? 너는…… 도대체 나의 뭐지?”
“나는 너의 검이다.”
리안은 새어 나오는 원통한 신음을 삼켰다.
“내 살, 내 피, 내 뼈! 모두 너의 것이다!”
리안의 목소리가 진실의 손이 되어 시로네의 심장을 움켜쥐자 아주 머나먼 기억 속에서 하나의 정보가 뇌리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약 리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모든 게 거짓이라면. 나는 대체 뭐지?’
슈라가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빨리 죽여!”
박녀의 검이 목을 겨누고 날아들자 황급히 대검을 뒤틀어 막은 리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흐읍!”
디나이를 파괴할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에 리안의 몸이 날아가자 박녀가 계단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참으로 신비롭다.’
그녀에게 리안은 1만 년의 시간 속에서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어떤 율법이지?’
야차의 액싱은 율법을 왜곡시키지만 몸이 버틸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
따라서 보통은 왜곡의 강도가 커질수록 육체에 작용하는 율법 또한 기괴할 정도로 뒤틀리게 된다.
십로회의 간부들 중에서 정상적인 인간이 없는 이유였다.
‘스키마는 아닌데.’
반면에 리안의 액싱은 육체에 대한 고려를 조금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초월적인 재생이야말로 그의 액싱일지도 모르지만, 설령 데스나이트라고 하더라도 이미 떨어진 죽음의 영역에서 다시 삶의 영역으로 기어 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확인해 볼까?’
열반동력을 폭발시킨 박녀의 몸이 허공에서 무섭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상의 직렬 8기통에 장착된 율법들이 연쇄적으로 구현되면서 무시무시한 8연격이 리안의 몸을 쪼개 버릴 듯 쳐들어왔다.
“리안! 큭!”
시로네가 리안에게 달려가려고 하는 그때, 정신에 방대한 양의 정보가 침투했다.
뮤커스를 통해서 시로네와 연결된 디지털 라가 일화의 의식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인간이여, 나와 하나가 되어라.
“아직, 아직은 아니야!”
리안이 직접 심장에 새긴 진실의 멍이 욱신거리는 한 이대로 세상을 떠날 수는 없었다.
-너와 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으아아아아!”
디지털 라와 시로네의 뇌가 연결되면서 두 개체의 기억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관음 격뢰장.’
관음의 손바닥이 피라미드를 향해 날아가자 슈라가 앞을 가로막으며 방어의 율법을 발동했다.
응집의 게슈탈트-부정의 십계명.
슈라의 앞에 거대한 역십자가가 탄생하더니 관음의 손바닥을 막아 냈다.
“진짜 미치겠네. 너는 나가서 보자.”
미로는 이를 까득 깨물었다.
열린 상태의 인간이 갇힌 세계의 율법을 다룬다는 것은, 장난감 블록으로 자유롭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것과 흡사하다.
현실의 피라미드가 율법의 수로 유일무이한 1이라면 이곳의 피라미드는 ‘슈라가 지칭한 피라미드’로 2에 해당.
율법의 경계는 블록처럼 단절되어 있고 세계의 한계는 명확하다.
이는 곧 슈라의 율법이 현실의 마법처럼 명확하게 구사된다는 뜻이었다.
“끝까지 해보자 이거지.”
방어 일변도의 슈라를 노려보던 미로가 스케일을 더욱 키웠다.
“이익! 이익!”
한편 점액질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마르샤는 탈출이 여의치 않자 페르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떻게 좀 해 봐! 이러다 진짜 끝나겠어!”
그녀와 마찬가지로 붙잡혀 있는 페르미가 시로네의 상태를 살피며 혀를 찼다.
‘쳇, 할 수 없지.’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냉기 마법. 하이퍼 인터쿨러.’
무려 1억 골드의 거금을 주고 구입한 대마법사의 마법이 발동되자 페르미의 주위에 냉기의 연무가 피어올랐다.
뮤커스가 까득 소리를 내며 얼어붙고, 순식간에 지상이 북극의 땅처럼 반짝거렸다.
마르샤는 아래에서부터 얼어붙는 뮤커스를 살피며 탈출할 준비를 했다.
동시에 거대한 관음의 화신이 하늘에서 떨어져 피라미드의 4분의 1을 짓이겨 버렸다.
쿠르르르르릉!
율법의 방어막이 사라진 피라미드가 붕괴되자 슈라가 뱀의 혀를 내밀며 표독스럽게 중얼거렸다.
“가증스러운 인간……!”
자신의 텃밭임에도 관음의 공격을 엇나가게 만드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미로가 1만 년을 산 것도 아니다.
하루살이나 다름없는 인간이 이 정도로 거대한 개념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영생자인 슈라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크으으윽!”
디지털 라와 접속이 끊어진 시로네는 피라미드가 흔들리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집정관님!”
지상에서 주시하고 있던 요가 피라미드를 오르려는 그때, 등 뒤쪽에서 기묘한 감각이 연달아 침투했다.
“흐윽!”
몸을 돌리자 패륜의 단도를 연거푸 찔러 넣은 마르샤가 서 있었다.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욕망의 연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요가 물었으나 대답을 할 마르샤가 아니었다.
“죽어라.”
손을 내민 요가 은경의 파편을 깨트리려는 그때 사위가 어둠에 잠겼다.
“뭐지?”
페르미가 마르샤의 손을 붙잡고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암흑 마법, 장막.’
어둠에서 벗어난 마르샤가 고개를 돌리자 피라미드 쪽에서 끌어온 그림자가 구체의 형태로 요를 가두고 있었다.
“이제부터 협공하죠.”
슈라의 방어막을 파괴했으니 더 이상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었다.
페르미가 다양한 마법으로 군락의 수호자들을 교란하면 마르샤는 되는대로 패륜의 단도를 찔러 넣었다.
욕망의 연기는 두 사람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지만, 장막의 마법과 군중 제어 기술로 수호자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페르미의 실력은 대단했다.
‘시로네의 라이벌이라고 했지. 확실히 이 녀석도 범상치 않아.’
감가상각의 거래는 다른 규정외식처럼 독특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성 친화력을 아예 무시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상극이 되는 빛과 어둠, 물과 불마저 동시에 구사한다는 것은 발생하는 모든 변수에 대응할 수 있다는 얘기.
임무 수행 능력만 놓고 보자면 이만한 프로 마법사를 찾기도 힘들었다.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페르미의 말대로 뮤커스는 얼어붙은 영역을 떼어 버리고 새로운 점액질을 움직여 시로네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시로네!”
리안이 다시금 피라미드로 몸을 날렸으나 이제는 그에게도 벅찬 박녀라는 장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