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77
표정이 풀린 미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천국에서 시로네의 마법은 일취월장했다.
졸업반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확신은 거만한 것도 허황된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상태를 냉철히 분석하는 판단력에서 나온 말이었다.
“너는 강해. 또래 중에서는 비교할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물론 발할라 액션이 당분간 봉인되었지만, 어차피 아르망에 장착된 기능이라 졸업 시험과는 별개고.”
시로네는 담담한 태도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졸업은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반드시 마법사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
“그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야. 졸업 시험은 졸업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일 뿐, 마법사로서 어떤 기관에 취직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전적으로 스카우트의 평가에 달렸지.”
“그건 콜리 선생님에게 들었어요. 그래서 졸업반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죠.”
“바로 그거야. 그리고 단언하건대…….”
미로가 입술을 살며시 뒤틀며 말했다.
“너는 마법사가 될 수 없을 거야.”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마법사가…….”
“정확히는, 네가 원하는 마법사지. 알페아스 마법학교를 졸업하면 비공인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어. 용병이 될 수도 있고, 블랙 라인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을 거야. 하지만 공인 마법사로 협회에 들어간다거나 왕국의 마법 부서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건 꿈조차 꾸지 마.”
심장에 불이 붙은 듯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어째서죠?”
“네가 신을 죽였으니까.”
“…….”
“어쩌니 해도 세상을 움직이는 건 소수의 지배자들이야. 세계 각국의 권력자들이 너를 주시하고 있어. 테라제가 너를 버리지는 않겠지만, 그녀조차 성전에서는 삼황계 중의 1인일 뿐이야. 다른 두 황제가 가만히 있을까? 장담하건대, 너는 온갖 정치적 암투에 휘말려 이용당하고 뜯기다가 버려질 거야.”
현실적으로 와 닿지는 않지만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20인의 심판을 통해 세계 정상들의 견제에 시달렸던 미로가 직접 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 파악이 되니? 나 또한 차원의 벽을 만들어 20년 동안 갇혀 있었지. 물론 내 의지로 한 행동이었지만, 만약 거절했으면 죽었을 거야. 내 가문이 멸문했듯이.”
시로네는 서럽게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천국의 군대를 막아 낸 최강의 반야.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직함이지. 물론 단일 개체로 따졌을 때 나는 충분히 강해. 하지만 시로네, 인간의 위에 있는 게 국가다. 무력보다 강한 게 시스템이야. 네가 아는 그 가올드조차 나를 구하기 위해 20년을 숨죽이며 살았어.”
“……그럼 앞으로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강해져라.”
미로의 해답은 단순했다.
“졸업이 문제가 아니야. 네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어떤 국가에서도 나서지 않을 거야. 테라제도 힘을 쓸 테고. 진짜 폭풍은 졸업한 이후부터. 그 안에 너는 적어도 네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야 해.”
시로네의 머릿속에서 잡다한 상념이 사라졌다.
“마법사에 대한 것은 나중에 방법을 가르쳐 줄 거야. 하지만 그것도 강해지고 난 뒤의 일이야.”
“네. 이해했어요. 지금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태세 변환이 빠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이래서 편하다고 생각하며 미로는 계획을 일러주었다.
“지도를 하겠지만, 사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네가 가장 중점으로 배워야 할 것은 마법이 아니야.”
시로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 말고 또 뭐가 있죠?”
“화신술.”
인류 최강의 반야가 말하는 화신술이었다.
“화신은 누구에게나 있다. 깨닫지 못할 뿐이지. 또한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을 기술이라 부를 만큼 구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야.”
미로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그녀의 배후에 관음의 화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12개의 팔을 꽃잎처럼 만개했다.
“이건…….”
“천수관세음. 심적초월로 화신을 몸 밖으로 드러내는 게 반야라면, 반야의 의지는 세상의 율법에 영향을 미친다.”
미로가 눈을 부릅뜨자 관음의 팔이 날아들었다.
시로네는 손바닥이 몸을 관통할 때까지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뒤늦게 심장이 벌렁거렸다.
“진짜로 했으면 죽었어.”
시로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단지 마음의 작용일 뿐이다. 심적초월로 그 작용이 사물화되어 나타난 것일 뿐이지. 이것도 나름 기술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 말하고 미로가 눈을 감자 관음의 화신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수련관을 가득 채우는 크기에, 시로네는 입을 벌리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갈고닦으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심적초월-물아일체.
미로의 동작을 따라 관음이 합장하자 픽 하고 수백 개의 촛불이 모조리 꺼졌다.
심지 타들어 가는 냄새가 공기에 스며드는 동안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벽 쪽이 반짝 빛나더니 어느새 촛불에 하나씩 불을 붙이고 있는 미로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한 거죠?”
“간단해. 촛불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관음의 팔이 동시에 심지를 잡은 거지. 네가 보지 못했을 뿐이야.”
“화신의 힘이 사물에도 작용할 수 있다는 건가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화신은 사람마다 다르고 고유의 개성도 작용해. 경지는 정해져 있고 나는 스케일 마법을 통해서 응용한 것뿐이야.”
이그나이트로 촛불을 전부 밝힌 미로가 자리에 앉았다.
“화신술의 기본은 화신을 강화시키는 것.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너무 도에 치우친 건 지루하니 이해하기 쉽게 수열식으로 하자.”
“네. 저도 수열식은 배웠어요.”
미로는 피식 웃었다.
“마법학교에서 배우는 건 제로백이 몇 초냐 이런 것들이지. 하지만 화신은 차원이 달라.”
미로의 손가락이 빠르게 가로를 그렸다.
“제로백, 즉 수열식의 속도는 정신력을 높인다. 1초에 100을 세는 순간의 집중력을 이용하지. 따라서 속도가 계속 빨라지지 않는 이상 정신력이 끝없이 강해지지는 않아.”
시로네 또한 실습 시험에서 경험한 바였다.
“반면에 화신을 다루는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수의 거대함이야. 숫자의 크기를 화신에 접목시키는 거지. 지금 해 보자. 너도 반야니까 적용하기는 쉬울 거야.”
“네, 해 볼게요.”
시로네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심적초월에 들어가자 빛의 날개를 가진 천사의 잔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을 수열식으로 강화시킨다.’
학교에서 배운 모듈화를 이용하자 순식간에 제로백을 돌파하고 천 단위, 만 단위로 들어섰다.
‘아직도 아니야?’
5분이 지날 무렵 미로가 하품을 했다.
대체 얼마만큼 수를 세어야 화신이 강화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오기가 발동한 시로네는 이모탈 펑션을 개방했다.
완전히 확장해서 수를 뛰어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기에 조절을 했지만 수의 거대함은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시로네의 화신이 선명해지기 시작하더니 잔영이 사라지면서 또렷한 경계선을 드러냈다.
“허억!”
그 순간 수열에서 이탈한 시로네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제법이네. 처음부터 성공할 정도면 대단한 거야. 그래서, 몇까지 셌어?”
호흡을 고른 시로네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음, 583억 8,721만…….”
“그래, 됐어.”
미로는 첫 자릿수가 나오자마자 말을 끊었다.
“늦는 거야 상관없지만, 10분치고는 너무 적어. 그래서는 화신을 다룰 수가 없지.”
“그럼, 미로 씨는 어디까지 갔는데요?”
“나? 흐음. 딱히 수열식은 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내가 조금 전 촛불을 껐을 때라면…….”
팔짱을 끼고 골몰하던 미로가 말했다.
“경(10의 16승)은 넘지 않았을까?”
“경…….”
인간이 셀 수 있는 단위가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뭘 그렇게 놀라? 이제부터 방학 기간 동안 네가 도달해야 할 경지인데.”
시로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네? 제가요?”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 테니까.”
미로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재능이지만, 그럼에도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쉽다고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벌써부터 겁먹으면 곤란해. 너는 그런 세계에 들어온 거야.”
미로가 얼마 전의 일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천국에서 사탄을 막아야 했던 상황이 있었어.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최고의 일격을 가했지. 당시의 화신술을 수열식으로 보자면 어느 정도일 거라고 생각해?”
감히 예상할 엄두를 내지 못한 시로네가 고개를 젓자 미로가 검지를 치켜들고 말했다.
“일.”
“일?”
“불가사의.”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단위에, 시로네는 책에서 본 대로 세어 나가기 시작했다.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단위가 커질수록 눈동자가 점차 위로 말려 올라갔다.
‘불가사의…….’
10의 64승이었다.
하루의 힘 (1)
10의 64승을 생각으로 가늠해 보던 시로네의 입에서 대뜸 말이 튀어나왔다.
“인간이 셀 수 있는 수인가요?”
“수가 아니야. 경지지.”
미로는 머리를 가리켰다.
“수열식은 정신을 확장시키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야. 수의 질주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면 굳이 생각 속에서 읽어 나갈 필요는 없어.”
시로네의 수열식도 일반인의 범주를 훨씬 초월하는 속도였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로의 말을 반대로 풀이하자면 정확하게 느끼지 못하는 이상 읽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경 단위의 수를 느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신에 충격이 가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차분히 달리다 보면 결국에는 도달할 터.
속도는 그때부터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개학까지 앞으로 73일 남았어. 그 안에 화신을 물아일체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야.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지만, 분명 마법에도 도움이 될 거야.”
시로네도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정신력의 강화는 가히 엄청날 것이다.
“네, 해 볼게요. 어떤 것부터 하면 될까요?”
무엇보다 천하의 미로가 지도를 해 주고 있다.
불가능한 일을 시킬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이제부터 네가 할 일은…….”
시로네가 침을 꿀꺽 삼키는 가운데 미로가 입을 열었다.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거야.”
대답은 그로부터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 나왔다.
“네?”
“네? 방금 그거 대답한 거야?”
“아뇨, 그게 아니고 어떤 방법이랄지…… 그러니까 시간도 73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고…….”
미로가 피식 웃었다.
“그래. 73일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시로네, 그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바꿀 수 없는 걸 생각할 필요 없어. 73일이 주어졌으면, 그 안에 해결해야 하는 거야.”
숨이 턱 막히는 말이었다.
“기분은 이해해.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현실의 장벽이란 거야. 넘으면 이기는 것이고, 못 넘으면 지는 거지.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세상에 그런 건 없어. 여태까지 그래 왔잖아?”
시로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 하루의 힘을 믿어라, 시로네. 네가 오늘 1을 해냈다면 73일 후에는 그보다 73배를 쌓아 올린 것이 된다.”
그것 또한 명백한 현실.
“세상 사람들은 재능에 주목하기를 좋아하지만, 실상은 나도 매일같이 하루를 쌓아 올려 도달한 것에 지나지 않아.”
그나마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육체는 뇌의 지배를 받고, 뇌는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은 오직 결과만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미로는 시로네의 가슴을 가리켰다.
“물아일체에 도달하면 너의 화신 또한 특이점이 발휘될 것이고 지금보다 월등히 강해질 거야. 그것만 생각하면 돼.”
‘성공한다. 반드시 해내고 만다!’
시로네의 눈빛이 전과 달라진 것을 확인한 미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이해한 것 같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자. 따라와.”
시로네가 도착한 곳은 오두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개울가였다.
미로가 그늘 아래 평평한 바위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으나 무언가 거창한 수련을 기대했던 시로네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여기서 뭘 하죠?”
“아무것도 하지 마.”
“네?”
“하루 종일 수열식만 할 수는 없어.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는 여기에 앉아서 건너편 풍경을 봐. 수열식도 안 되고, 스피릿 존에 들어가는 것도 안 돼.”
시로네는 개울가 너머를 바라보았다.
휘어진 나무 하나가 유독 앞에 심겨 있을 뿐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흔한 산속의 풍경이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기껏 불이 붙은 각오마저 사라질까 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냥 수열식을 연습하면 안 되나요?”
“안 돼.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쉬는 것도 안 돼. 휴식은 최소 4시간 이상이야.”
산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4시간 동안 자연을 바라보는 걸 휴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럴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불신의 표정을 발견한 미로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니?”
“아, 네. 사실은…….”
시로네의 어깨를 짚은 미로가 개울가 너머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로네, 하찮은 건 없다.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