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79
‘아무 생각도 못 하겠어.’
뇌를 뽑아서 쓰레기통에 넣고 싶다.
3시간의 수면을 제외하고 지금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수련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근래 들어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4시간의 명상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면 피로에 죽었거나 미쳐서 자살했을 테니까.
‘하찮은 건 없다.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 뿐.’
미로의 말을 되새기며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으나 대체 무엇을 들여다보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뭇잎이 매달려 있네. 바람이 부니까 흔들리네.’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집을 짓고 있는 거미가 보였다.
‘저 거미는 무슨 생각으로 살까?’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자 어느덧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는구나, 거미는 뭐라도 먹었으려나.’
거미 또한 무언가를 먹었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지만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기에 사뭇 재미있었다.
“시로네, 야간 훈련 시작하자.”
미로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깔리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지옥 바깥에서의 4시간은 지옥에서의 1시간보다 짧았다.
“……네.”
작게 한숨을 내쉰 시로네는 미로의 뒤를 따라 수련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D-55일.
토르미아 왕성에 마련되어 있는 별채는 귀족의 저택만큼이나 화려하고 거대했다.
마법학교의 유일한 왕족 포니는 특별히 개조한 별채의 풀장 안에 몸을 던졌다.
그녀가 젖은 채로 물 위로 떠오르자 시녀들이 수건을 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아가씨, 오늘은 그만 쉬세요. 이러다 감기에 걸리시면 어쩌려고.”
“괜찮아. 오늘은 됐으니 들어가서 쉬어.”
“하지만…….”
“명령이야.”
차가운 말에 흠칫 놀란 시녀들이 수건을 정리해 놓고 풀장을 나섰다.
“후우우우!”
포니는 금발의 머리를 가르마의 방향대로 좌우로 넘긴 다음 스피릿 존으로 들어갔다.
풀장에 설치되어 있는 프로펠러가 회전하자 수많은 돌물이 생겨났다.
그녀의 전공은 수력, 계열은 급류.
기계가 만들어 낸 물의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 이번 수련의 목표였다.
‘강해질 거야.’
왕족은 고귀하고, 그렇기에 노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직계의 특권일 뿐, 왕위에 오를 수 없는 포니에게는 삶의 목표가 되지 않았다.
‘왕족. 남이 이름 지어 준 권위 따위는 필요 없어.’
급류 마법을 시전하자 물의 흐름이 급변했고 한계치보다 높게 설정한 기계장치의 힘이 밀려들자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해낼 거야! 내 권위는 내가 직접 세운다!’
수면 위로 포말이 올라온 광경은 마치 물이 끓고 있는 듯했다.
D-51일.
시로네의 수열식이 마침내 조 단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1조 2천억을 주파하자 화신의 빛은 찬란한 광채로 아른거렸고 미로는 그 변화를 신중하게 관찰했다.
‘변화는 확실히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특이점에 도달하려면 멀었어.’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면 화신의 개성이 율법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까지는 그 개성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변화의 폭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크으으으!”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시로네의 수열식은 끝을 모르고 뻗어 나갔다.
1조를 넘어 2조, 3조에 도달하는 성장의 폭은 시로네의 재능을 말해 주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경의 경지는 멀었다.
“헉!”
단말마를 내지르며 시로네가 무릎을 꿇었다.
머리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더니 이내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흑…….”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힘들다. 너무 힘들다.’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우는 것은 개념부터 완전히 달랐다.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곧 자신을 죽인다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어제보다 1이라도 더 나아가야 한다.
3조의 숫자만큼이나 죽은 셈이고, 이제는 한계였다.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 같아요.”
“또 그 소리야? 생각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머리가 어지러워요.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해!”
미로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시로네는 적개심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아름다운 미로의 얼굴이 이제는 흉악한 마녀처럼 보였다.
“시간이 없다고 해 놓고 잠을 자겠다고? 계속해. 그 외의 모든 생각은 망상이야.”
“정말로 죽을 수도 있어요.”
“어리광 부리지 말라고 했지.”
시로네의 입꼬리가 서럽게 내려갔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것만 기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누군가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정진하고 있어. 목숨을 걸어서라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강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란 말이야. 그들을 놔두고 굳이 네가 승리의 영광을 차지해야 할 이유는 없어. 시간이 부족하면 수면 시간을 줄이면 되는 거야.”
지금도 3시간밖에 못 자는 상황이었으나 미로의 말은 칼처럼 단호했다.
“괜찮아, 1시간 정도 줄인다고 해도…….”
“죽지 않아! 죽지 않는다, 스크리머!”
“으아아아!”
파이로커의 목소리를 지워 버리려는 듯, 샌드백을 치고 있는 스크리머가 악을 질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버지의 채찍질은 강도가 심해졌다.
“재능에 빌붙지 마! 네가 한 노력에 자부심 따위 갖지 마! 오직 너를 위해서 싸우는 거다!”
“으아아! 으아아아!”
7회의 연타가 쉬지 않고 반복되면서 무거운 샌드백이 삐거덕삐거덕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해진다! 1초 전의 나보다 강해진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강할 것이다.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내뻗는 스크리머의 상체에 핏줄이 모조리 올라와 있었다.
D-48일.
시로네는 정신이 날아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4조 3천억. 6조 7천억. 11조 9천억.’
여태까지 무심하게 지켜보던 미로의 얼굴에 작은 희열이 깃들었다.
‘가속되고 있다.’
정신과 육체가 현재의 훈련에 버티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12조를 넘어서자 시로네가 쿵 하고 고꾸라졌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으아아아아아!”
흉악한 감정이 차오르면서 절로 악이 질러졌으나 몸은 최면에 걸린 듯 미로의 말에 반응하고 있었다.
“시로네, 성공은 실패의 총합이다. 실패를 쌓아 올려 성공의 벽을 뛰어넘는 거야.”
‘14조 4천억! 19조 8천억! 24조 6천억!’
시로네의 코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으나 미로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머리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곳에 황금빛 천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었다.
‘세상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야. 할 수 있다, 시로네. 내가 할 수 있다면 너도 할 수 있어.’
그로부터 10일 뒤, 시로네의 수열식이 1차 목표 지점인 1천조를 돌파했다.
마법학교 개학까지 남은 기간.
D-37일.
하루의 힘 (3)
* * *
D-36일.
수열식이 1천조를 넘은 다음 날부터 시로네의 실력은 급가속이라 부를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눈을 부릅뜨고 1부터 전개한 숫자가 끝없이 가속하면서 조 단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2천조!’
수를 세고 있지만 읽어 낸다는 느낌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마치 혈관을 따라 피가 흐르듯 생각 속에서 끝없이 수가 흐르는 경지였다.
‘3천조!’
새로운 경지에 첫발을 내딛게 하는 거대한 깨달음을 통해 시로네의 수는 끝을 모르고 질주했다.
‘4천조!’
그 커져 가는 숫자만큼이나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미로의 눈에 일순 의아함이 깃들었다.
‘응? 뭐지?’
시로네의 화신은 빛의 날개가 달린 천사의 형태.
또한 수열식이 진행될수록 빛의 잔영은 사라지고 또렷하게 윤곽이 드러나는 게 특징이었다.
하지만 4천조를 넘어서부터 오히려 윤곽이 일그러지더니 심지어 부분적으로는 형태가 붕괴되고 있었다.
‘변화는 이제부터라는 건가?’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면 반야의 정신은 사물의 율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형태가 붕괴되는 것만으로는 시로네의 화신에 어떤 개성이 담겨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허억!”
거칠게 숨을 토한 시로네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몸을 떨더니 쿵 하고 두 무릎을 꿇었다.
미로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몇이야?”
“5천조에서 끝났어요.”
에누리 없는 절반.
‘심리적 브레이크로군.’
조 단위에서 터득할 수 있는 수열식의 어떤 기술을 체화시켜 순식간에 4천조 이상을 주파했지만 목표의 절반이라는 생각이 새로운 한계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집착해서는 안 돼. 물처럼 유연한 사고만이 한계를 깰 수 있어.”
“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세상에 실패는 없을 터였다.
“다시 해 볼게요.”
언제부턴가 시로네에게서 앓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로는 만족스러웠다.
‘성공의 열망이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선 것이지.’
실패, 실패,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닌,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경험으로 흡수된다.
‘잘하고 있어, 시로네.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걸을 수는 없는 거야.’
‘천재적인’ 마법사랄지, ‘괴물처럼 강력한’ 마법사 같은 달콤한 칭호를 얻기 위해 수련하는 게 아니다.
‘수없이 많이 실패해라. 부끄러운 게 아니야. 오히려 자랑스러운 거지.’
어떤 변수에도 대처할 수 있는 ‘훈련받은’ 마법사.
‘그것만이 너의 자부심이고 프로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다.’
수의 세계를 응시하며 초집중하고 있는 시로네의 콧잔등이 일그러졌다.
‘마법사가 될 거야! 반드시 되고 말 거야!’
D-34일.
도로시의 방은 분노의 열기로 뜨거웠고 쾌락의 냄새로 어지러웠다.
침대 위에는 구부정하게 엎드린 도로시가 이불에 파묻혀 있었고, 희열인지 울음인지 헷갈리는 소리가 솜의 장벽을 뚫고 새어 나왔다.
“아아! 아!”
침대 옆에는 고철 인형 히커리가 완전히 박살이 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악! 아악!”
거의 완성했다고 생각했건만, 마지막 순간에 온갖 오류들이 터져 나왔다.
‘어째서 지금이야! 왜 하필 한꺼번에 터지는 거야!’
분노는 극에 달하고, 마음은 일그러졌다.
“아아악! 아악!”
굼벵이처럼 웅크린 형태의 이불이 거칠게 들썩거리는 그때 방문이 발칵 열리면서 여동생이 들어왔다.
“야! 조금 전에 무슨 소리야? 너 또 뭐 깨부쉈지!”
이불의 움직임이 멈추고, 방 안의 풍경을 가만히 둘러보던 여동생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하여튼 사이코! 방학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고 뭐 하는 거야!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기나 해?”
계속되는 잔소리에 도로시가 웅크린 몸을 펴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았다.
“……나가.”
이불에 감싸인 그녀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나가란 소리 하기 전에 너나 조용히 지내! 옆방에 사는 사람도 생각해야 할 거 아냐!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가아아아아!”
목이 터져라 외치는 고성에 여동생의 어깨가 움찔했다.
평소에도 정상이 아닌 언니지만 이번 히스테리는 장난이 아니었다.
“미……친…….”
도망치듯 방을 나선 여동생이 문을 닫자 도로시는 다시 이불을 덮어쓰고 웅크렸다.
“악! 아아악!”
절규의 신음 소리가 이불 밖으로 뛰쳐나왔다.
D-23일.
벌써 20분째 이루키의 눈에서는 전기가 튀고 있었다.
핵융합을 계산하고 있는 머리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역류하자 눈의 실핏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루키의 입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