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82
“해냈구나, 시로네.”
“네. 미로 씨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네가 열심히 한 거야. 이제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지. 내일 하산하도록 해.”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시로네는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알다시피 변한 건 없어. 앞으로 너에게는 수많은 시련이 닥칠 거야. 인간 시로네의 삶에서도, 마법사로서의 삶에서도.”
시로네는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미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각오하고 있어요.”
“그래. 수련이 무사히 끝나면 말해 주기로 했었지. 마법학교 선배로서, 너보다 먼저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피해자로서, 앞으로 네가 학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줄게.”
시로네가 심호흡을 하며 말을 기다리자 미로가 검지를 치켜들고 작전을 설명했다.
“일단 학교에 돌아가면…….”
***
토르미아 중부 지역 웨스트 가문.
방학 내내 창고에서 지냈던 네이드는 개학을 코앞에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빠졌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시로네는 생사조차 불분명하지만 집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까, 그날 밤 또다시 오래전의 일이 악몽으로 되살아났다.
“후하하하! 이 녀석 신기하잖아!”
“으아아아!”
닭 벼슬처럼 머리를 자른 악명 높은 도적단이 네이드를 꽁꽁 묶어 두고 전기 충격을 가하고 있었다.
“해 봐! 또 해 보라고!”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어린 나이에 당하는 전기 충격은 고통뿐만 아니라 뇌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공포였다.
“이 녀석 재밌는데? 마법이라는 건가?”
“꼬맹이 따위가 무슨 마법사야? 꼬마야, 너 이거 정말로 네가 만든 거냐?”
“으아아악!”
또다시 전기 충격이 가해지자 악몽을 꾸는 네이드의 몸이 거칠게 들썩거렸다.
식은땀으로 범벅이었고, 손은 괴로운 듯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 마…… 하지 마…….”
네이드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전기가 발산되자 창고에 널브러진 금속 부품들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죽어라! 죽어라!”
도적단은 집요하게 네이드를 괴롭혔다.
‘엄마, 엄마…… 왜?’
온몸에 새겨진 화상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몸이 불에 타는 듯했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이들은 자신을 죽일 것이다.
무엇보다 서러운 것은,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자신을 버려두고 도망친 사람들이 다시 되돌아올 일은 없을 테니까.
“좋아! 이번엔 최대출력이다!”
네이드는 자신이 만든 발전기의 집게발이 전신에 장착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스위치가 끝까지 올라가고, 감당할 수 없는 전류가 아이의 몸에 흘렀다.
“으아아아아!”
꿈에서 깨어난 네이드가 악을 지르며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강력한 전기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창고가 펑 소리를 내며 통째로 날아갔다.
“허억! 허억!”
불이 붙은 침대에 앉은 채, 네이드는 살기등등한 눈동자로 정면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황급히 사태를 깨닫고 불이 붙은 옷을 벗어 던졌다.
“크윽!”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몸의 이곳저곳에는 화상의 흉터가 남아 있었다.
실험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고 이루키뿐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택 쪽에서 폭발음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네이드를 쳐다보았다.
언제부턴가 그가 저택에 들어가지 않게 된 이유였다.
사람들이 두려운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건 익숙하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하나의 시선이 있었다.
인파 사이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자신의 표정도 일그러져 있을 것이라고, 네이드는 생각했다.
***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개학 날이 돌아왔다.
하루 동안 가족들과 회포를 푼 시로네는 오젠트 가문의 마차를 타고 느릿느릿 학교로 출발했다.
졸업반은 개학식과 별개로 강철문을 지나는 데다 시로네는 테스트에서 이탈했기에 시간은 여유롭다고 할 수 있었다.
고급반이 시끌벅적 해산할 무렵부터 졸업반 학생들이 하나둘씩 강철문을 지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지키고 있던 졸업반 부장 교사 콜리가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미소를 띠며 그들을 맞이했다.
에이미, 카니스와 아린, 이루키, 네이드, 단테 일행 등,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학생들의 눈동자에는 하나같이 섬뜩한 광채가 깃들어 있었다.
‘후후, 이 맛에 졸업반에 있는 거지.’
전반기 졸업반 일정을 소화한 사람이라면 경쟁의 치열함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고스란히 특훈으로 이어져, 다시 개학 날이 되면 잘 벼린 명검처럼 살기등등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다.
‘누구 하나 좌절하지 않았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 하지만 이들 중에 졸업할 수 있는 것은 고작 10명이다.’
자신조차도 소름이 돋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속이 울렁거릴 것인가.
그런 만큼 오랜만의 재회에도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루키와 네이드가 에이미에게 다가가 회포를 풀고 있었으나 예전만큼 활기차지는 않았다.
‘시로네는 없군. 복수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방학 중에 무시무시한 특훈을 끝내고 온 카니스는 그 점이 못내 서운했다.
“오랜만이다, 에이미.”
카니스가 손을 들자 에이미도 담담하게 인사했다.
“그래, 오랜만이네. 아린도 잘 지냈지?”
아린이 수줍게 손을 흔드는 가운데 카니스는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시로네는 어디 있어?”
“시로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짜증이 섞인 에이미의 목소리에 잠시 눈을 깜박이던 카니스가 알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오해하지 마. 그냥 네가 친하니까 물어본 거야. 절대로 실연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에이미의 눈에 불이 켜졌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시로네가 어디에 있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알았어, 알았다고.”
평소에는 에이미의 천적이라고 자부하는 카니스지만 이번만큼은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초상집이었다.
‘나쁜 자식. 어떻게 그렇게 떠나 버릴 수가 있어? 이제는 나도 상관 안 해. 어디서 죽든지 말든지.’
에이미가 토라진 얼굴로 자리를 떠나자 이루키와 네이드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이루키, 아버지에게 무슨 말 못 들었어?”
“전혀. 수련하느라 대화도 거의 못 했어. 물어봐도 알려 주지 않을 거고.”
“그래……. 학교에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인가? 아니, 그 전에, 살아 있기는 한 거야?”
페르미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지르며 말했다.
“쉽게 죽을 놈은 아니지.”
“뭐야, 저 자식? 꼭 알고 있는 것처럼.”
네이드가 페르미의 등을 향해 투덜댔으나 이루키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27명. 모두 모인 것 같구나.”
콜리의 말대로 아이더는 여전히 병원 신세였고 마야와 시로네는 평가를 거부했기에 참석할 필요가 없었다.
“자, 오늘부터 새로운 경쟁의 시작이다. 후반기 일정을 소개해 줄 테니 따라오너라.”
학생들이 콜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를 살피던 스크리머가 강철문 쪽을 가리켰다.
“어라? 저기 1명 더 오는데요?”
“응? 저, 저건…….”
졸업반 학생들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큐브릭에 짐을 담아 가방조차 메고 있지 않은 금발의 소년이 한적하게 오르막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시로네?”
네이드의 말을 듣고서야 현실임을 깨달은 에이미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으나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시로네는 태연하게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녀왔어, 얘들아.”
또 다시 강철문 (2)
시로네가 돌아왔다.
누군가에게는 희열을, 누군가에게는 절망을 안겨 주는 사실이었다.
전반기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렀던 대부분은 강철문을 지나는 시로네의 모습만으로 제도권에서 밀려나는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시로네!”
네이드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달려와 시로네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진짜 나는……!”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유서를 쓰고 홀연히 종적을 감춰 버린 시로네였다.
“미안해. 조만간에 다 말해 줄게.”
“무슨 조만간이야! 지금 당장 불어! 어떻게 된 거야?”
이루키가 네이드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진정해. 뒤를 보라고.”
고개를 돌린 네이드는 모두가 자신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물러섰다.
“그래,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시로네는 네이드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고 콜리에게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에이미를 돌아보며 작게 웃었으나 그녀는 매몰차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하긴, 천천히 해명해야 할 일이지.’
자신이 당했더라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기에 에이미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콜리에게 다가간 시로네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도착했습니다.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흐음…….”
콜리는 시로네가 평가를 거부한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 학교에 돌았던 흉흉한 분위기와 에텔라와 시이나의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개인적 사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또한 조금 더 비약해 보자면 그가 젊은 교사였을 시절 있었던 20인의 심판의 날과도 관계가 있으리라.
“그래,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후반기부터는 평가를 다시 받을 거냐?”
경쟁자들의 시선이 시로네에게 집중되었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곳에 시로네까지 합류한다면 약육강식의 세계에 또 하나의 포식자가 입장하는 꼴이었다.
“아뇨. 후반기에도 평가를 거부하겠습니다.”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경쟁자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시로네로서는 의외의 결단인 셈이었다.
에이미가 처음으로 시로네를 응시하는 가운데 네이드가 물었다.
“시로네, 너 정말 이대로 졸업 시험 칠 거야?”
-일단 마법학교에 돌아가면…….
시로네는 대답 대신 미로의 조언을 떠올렸다.
“콜리 선생님을 찾아가서 평가를 계속 거부하겠다고 해. 천국에 가는 바람에 이미 100점 이상의 공백이 발생했어. 남은 기간 최대한 따라잡는다고 해도 뒤집기는 무리야. 그런 구조니까.”
주특기 강화나 단체 평가를 제외하면 배점이 작은 점수를 하루하루 누적시켜야 하는 것이기에 몇 주의 부재는 심각한 손실이었다.
“하지만 괜찮을까요? 평가를 거부하면 평가장에 출입조차 못 해요.”
“친구들이 있잖아. 경쟁자이기는 해도 도움을 줄 거야. 졸업 시험에서는 알게 모르게 파벌이 생기니까 인맥을 버릴 이유는 없어.”
우정을 부정하는 말이지만 주고받는 것이 있는 편이 시로네도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야. 경쟁자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것보다 네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거지.”
그 점은 시로네도 부정하지 못했다.
“정상적으로 시험이 치러진다면 너는 충분히 10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그것만으로는 안 돼. 반드시 기억해 둬. 이제부터는 정치야.”
‘이제부터는 정치다.’
생각에서 벗어난 시로네가 말했다.
“혼자 해 보려고. 어차피 점수를 따라잡기는 어려우니까.”
콜리는 시로네의 의견을 존중했다.
“알겠다. 그럼 시로네는 기숙사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응?”
콜리가 시선을 들자 학생들이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갈색 피부에 날씬한 몸매의 여성이 강철문을 지나 들어오고 있었다.
반달형 이마를 드러내고 머리를 뒤로 묶은 미모의 여성을 학생들이 넋을 잃고 쳐다보는 와중에 누군가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마야?”
그것을 기점으로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시로네 또한 멍한 표정으로 마야를 바라보았다.
신비 부족 출신으로 음향 마법을 전공했지만 졸업반 꼴등을 도맡아 했던 그녀.
본바탕이 어여쁘기는 했지만 살이 빠진 그녀는 전과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저게 진짜 마야라고? 울보 마야?”
살이 찌지 않았을 당시의 마야를 모르는 스크리머로서는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권력이라고 했던가?
전략 전술 평가에서 윽박질렀고 고지 점령에서는 맞붙는 등 악연에 가까운 사이였지만, 변해 버린 외모로 다가오자 예전처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저기…… 미안한데 비켜 주면 안 될까? 길이 막혀서…….”
유약한 성격은 여전한지 마야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 아, 미안.”
스크리머가 황급히 길을 열어 주자 콜리에게 걸어간 그녀는 시로네의 옆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못 본 사이에 많이 야위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