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85
“대장님!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를 노려!”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간 시로네는 모퉁이 앞에 펼쳐진 광경에 인상을 찡그리며 멈춰 섰다.
“이게 뭐야?”
계단을 따라 몸이 부서진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대부분 병장기로 무장했고 개중에는 마법사도 있었다.
시로네는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상태의 시체들을 유심히 살폈다.
“이건…….”
병장기에 토르미아 왕국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어째서 왕국 병사가 이곳에?’
“포위해! 길목을 차단해라!”
위층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치켜든 시로네는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바뀐 듯, 창고의 경계선을 마지막으로 시체의 열이 뚝 하고 끊어져 있었다.
천장의 표식으로 현재 좌표를 확인한 시로네는 사거리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걸음을 멈췄다.
“미로 씨?”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 몇 년도에 일어난 사건인지는 모르지만 20년 가까이 나이를 먹지 않은 미로를 알아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전방을 장악한 병사들과 대치하고 있던 미로가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너는?”
‘내 목소리가 들려?’
환청 같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어떤 사건의 현장에 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미로 씨예요?”
미로는 다시 병사들을 향했다.
“학생인가 본데, 돌아가.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잠시 후 그녀가 자조적인 말을 내뱉었다.
“하긴, 이미 붙잡힌 시간이지.”
“네? 그게 무슨…….”
병사들을 향해 돌진하는 미로를 시로네가 따라가려는 순간, 오른쪽 복도에서 일단의 병사들이 밀려들었다.
“뭐야, 저놈은?”
“학생인 것 같습니다! 어떡할까요?”
“학생? 학생이 어떻게 여길 들어와?”
자문해 보던 대장이 살의의 눈을 치켜떴다.
“죽여! 어차피 나갈 방법은 없다!”
“처치해라!”
병사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가속되었다. 한눈에 봐도 스키마의 고수인 정예병들이었다.
눈의 기술을 걸면서 돌진하자 마치 사방에서 던진 올가미에 걸린 듯 시로네의 몸이 곱아들었다.
“크윽!”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과연 저들의 검에 자신이 베일 것인가였다.
미로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으로 봐서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여전히 지금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멍청하긴!’
가불가를 떠나 무조건 피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눈의 기술을 금강태의 정신력으로 이겨 내고 순간 이동을 시전하자 수많은 창칼이 시로네가 있던 곳을 베고 지나갔다.
“쳇! 그래도 마법학교 학생이라는 건가?”
“어차피 애송이야! 빨리 해치워!”
순간 이동의 섬광이 도착한 지점을 향해 사방에서 칼날이 날아들었다.
‘이런……!’
토르미아 공용 병기인 장검이 목을 치는 순간, 시로네의 눈이 번쩍 빛났다.
‘시불상폭매!’
갑자기 시로네의 고개가 젖혀진 상태로 돌변하면서 칼날이 목젖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 뭐야?”
시간을 공간으로 표현한다면 시로네의 활동 반경은 완벽히 거푸집에 갇힌 사람에 비해 넓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이기 때문에 기괴한 것이었고, 단련된 정예병들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마법이야! 죽여!”
대장의 외침에 병사들의 살기가 칼날처럼 솟구쳤다.
“큭!”
막다른 길에 몰린 시로네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반원을 그리며 포위망을 좁혀 오는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포위망을 가르고 등장한 대장이 번개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어디 이것도 피해 보시지!”
사방을 할퀴는 검광을 목도한 순간 죽음의 냄새가 후각을 타고 뇌리를 강타했다.
‘피할 수 없어!’
“죽어라!”
어금니를 깨문 시로네가 시불상폭매를 해제하자 눈앞까지 들이닥친 칼날이 갑자기 사라졌다.
“허어어어억!”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마치 칼에 관통당한 기분이 들면서 숨이 저절로 멎었다.
“…….”
복도는 그저 고요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크게 치켜뜬 시로네의 몸이 벽을 타고 스르륵 아래로 떨어졌다.
‘죽을 뻔했어.’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느낌만큼은 너무나 선명했다.
‘내가 무엇을 본 거지?’
어쨌거나 확실한 건, 절대로 이곳에서 화신술을 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편, 시로네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7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작게 오가고 있었다.
“뭐야? 왜 저러지? 혼자서 발광을 하는데.”
“미친 거 아닐까?”
“수련하는 거겠지. 순간 이동도 하고 그랬잖아.”
목소리만 작게 새어 나올 뿐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시로네는 연구회로 발길을 돌렸다.
‘일단 점심시간을 기다렸다가 애들에게 물어…….’
찰나의 순간 시로네의 눈이 빛났다.
‘……봐야겠다.’
스쳐 지나가듯 공감각을 통해 느껴진 침입자의 존재.
이제 막 전투를 치러 감각이 예민해진 덕분에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럼에도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어떤 놈들이야?’
모르는 척 계속 걸음을 옮긴 시로네는 상대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연구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속 쫓아온다. 타깃이 나인 건 확실하네. 그렇다면…….’
창고들이 일자로 연결된 복도의 중앙에서 시로네의 걸음이 멈췄다.
“나와.”
대답은 없었다.
“다 알고 있어. 나오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속으로 3초를 센 시로네는 갑작스럽게 스피릿 존을 확장시켜 적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하지만 그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벽에서 세 장의 투명 망토가 벽지처럼 벗겨지면서 정체를 드러냈다.
“젠장! 들켰다! 튀어!”
경계한 만큼이나 강력한 포톤 캐논을 장착해 놓고 있던 시로네는 멀어지는 자들을 보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나같이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고급반 애들이잖아?”
그러는 와중에도 후배들은 빠른 속도로 복도를 벗어나고 있었으나 시로네는 여유를 되찾고 마법을 해제했다.
대신 천장의 표식과 철문의 색, 갈림길의 개수를 꼼꼼하게 파악하며 머리를 굴렸다.
“어디 보자, 여기 좌표가…….”
***
“아우, 짜증 나! 누가 실수한 거야!”
소녀가 짜증을 부리자 그녀의 좌우를 나란히 달리던 두 소년이 서로에게 삿대질을 했다.
“네가 들켰겠지!”
“아니, 너야. 내 숨바꼭질 능력은 너 따위하고는…….”
“꺄악!”
소녀가 귀신이라도 본 듯 소리를 지르자 두 소년이 급하게 정지했다.
“어, 어떻게?”
시로네가 어느새 그들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떻게 벌써 따라잡은 거지?”
시로네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어떻게 따라잡기는. 너희들 좌표상으로는 10미터도 안 움직였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이 없자 시로네가 물었다.
“그래, 슈아민, 알트, 게레인. 여기에는 무슨 일이야?”
얼마 전까지 시로네와 고급반 통합 수업을 함께 받았던 클래스 파이브의 후배들이었다.
특히나 슈아민은 시로네가 열두 살 무렵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담장을 넘었을 때, 스피릿 존으로 동전의 개수를 세는 묘기를 선보였던 아이였다.
당시에는 시로네보다 어린 꼬마였지만 지금은 소녀가 되어 능구렁이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일은요? 당연히 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보재 찾으러 왔죠.”
천진난만한 거짓말에 시로네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되겠네?”
알트가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후, 후후, 요즘은 졸업반이 그렇게 한가한가요? 굳이 고급반에 가서 확인까지 하시게?”
“응, 괜찮아. 나는 졸업반 평가 거부자거든. 시간 많아.”
후배들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하는 걸 지켜보며 시로네가 다가갔다.
“솔직하게 얘기해. 여기에는 왜 왔어?”
슈아민 일행은 서로를 돌아보더니 결심한 듯 동시에 시로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응?”
“윈드 커터!”
다짜고짜 공격 마법을 시전하자 황당한 기분이었으나 시로네의 몸은 이미 반사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광폭.’
빛의 구체가 번쩍이자 바람의 칼날이 처참하게 짓뭉개지면서 대기에 섞였다.
물론 윈드 커터는 멋진 마법이다.
하지만 고급반 수준으로 시로네의 방어 마법을 뚫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크럼블 로열 (1)
“튀어!”
시로네를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슈아민 일행은 기습과 동시에 반대편 복도로 도망쳤다.
‘제정신이야?’
선배에게 공격 마법을 시전하다니.
더 이상 봐줄 수 없다고 생각한 시로네는 순간 이동을 시전하여 그들의 뒤를 쫓았다.
시로네에게 무브먼트로 승부를 걸었다는 것 자체가 후배들의 패착이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결국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슈아민 일행은 모퉁이를 돌자마자 창고로 들어갔다.
은신의 말미를 포착한 시로네는 창고의 문을 거칠게 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그들이 사라져 있었다.
‘투명 망토. 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
시로네의 목소리가 창고를 울렸다.
“나와. 여기 숨은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대답이 없자 호밍 포톤 캐논을 주위에 띄우고 스피릿 존을 통해 타깃을 포착했다.
시커가 세 방향으로 돌아서자 황금빛 구체가 튀어 나갈 듯 부르르 떨렸다.
“레이저 보이지? 이건 유도탄이야. 일단 발사하면 나도 취소시킬 수 없어. 이제부터 셋을 세겠다. 하나.”
정적.
“둘.”
흔들리는 분위기.
“셋……!”
슈아민이 창고의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흥, 우리를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자 속에서 알트가 나타나고, 건축자재의 틈새에서 게레인이 기어 나왔다.
‘숨는 건 진짜 빠르네.’
몸을 일으킨 게레인이 슈아민의 말에 동조했다.
“맞아요. 교내에서 마법은 금지라고요. 특히나 학생을 다치게 하면 일주일 정학으로는 끝나지 않을걸요?”
그들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마법은 너희가 먼저 쐈잖아.”
“하하하! 좋아요. 그럼 같이 죽죠, 뭐. 퇴학 한번 당해 보고 싶었는데.”
‘당돌한 것들이…….’
졸업반과 고급반은 삶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어처구니없는 논리였다.
“좋아, 그럼 마법을 쓰지 않을게.”
자백을 받아 내려면 장단에 맞춰 주는 게 좋다고 시로네는 생각했으나 게레인은 이미 이긴 듯한 표정이었다.
“잘 생각했어요. 그럼 우리는 가 볼게요. 얘들아, 가자.”
시로네가 옆으로 움직여 출구를 가로막았다.
“가긴 어딜 가?”
“그럼 어떡할 건데요? 마법을…….”
시로네가 오른팔을 살짝 들고 손바닥을 펼치자 게레인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망막에 큐브릭의 슬롯이 회전하면서 한 자루의 검을 상단에 띄우자 시로네의 손아귀에 아르망이 붙잡혔다.
“금강무장.”
키워드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검의 칼날이 쩍 하고 갈라지더니 오른팔을 타고 순식간에 시로네를 집어삼켰다.
“저,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