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88
“바로 그거야. 소식통에 의하면 에덴이 전라 상태일 때는 전능이 극한까지 강해져서 프로 마법사들도 상처 하나 낼 수 없다고 하던데.”
이루키가 말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운이 안 좋은 셈이군. 작년 졸업 시험 말이야.”
에이미가 당시를 회상했다.
“1차는 페르미의 주도로 순식간에 끝나 버렸고, 2차는 정신력 측정이라 마법이 딱히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졸업 시험이지. 여섯 가지 중에 무작위로 2개를 평가하기 때문에 모든 평가에 대비를 해야 돼. 알겠어? 지금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단 말이야.”
에이미가 일일이 가리키며 잔소리를 했으나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식이라면 에덴이 후보군인 것도 이상하지 않네. 하지만 여성 인체 연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엄청난 그림 실력이잖아?”
“흐음, 그렇다면 콩거도 가능성이 있지.”
네이드는 졸업반 서열 6위 콩거를 가리켰다.
거구의 덩치에 오랑우탄을 닮은 얼굴과 달리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실뜨기를 하고 있었다.
금속을 연성하는 강철 마법사답게 실뜨기의 실도 강철을 연성한 것이었다.
“여성스럽고 손재주도 좋지. 외모는 좀 그렇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어울린다고 할까?”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특이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잖아?”
콩거는 의리파인 데다가 누구에게나 다정했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음침한 것으로 따지자면 피오르드가 최고인 것 같은데.”
마법사 로브에 후드를 둘러쓰고 앉아 벌레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있는 학생.
그래서인지 그가 있는 주변의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독을 다루는 마법사로, 키도 작고 몸도 왜소한 데다가 얼굴은 열여섯 살 정도로 어려 보이지만 약물의 부작용일 뿐 실제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다.
본래 클래스 원이었으나 후배들의 약진으로 현재는 서열 11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루키는 시로네의 판단에 한 표를 보탰다.
“성격 사악하기로는 제일이지. 밸런스가 좋지는 않지만 앙케트에서 대인 전투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학생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정말로 놈이 여성 인체 연구회의 회장이라면 꽤나 어려운 싸움이 될 거야.”
네이드가 머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아아, 몰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모두 다 후보가 될 수 있잖아. 솔직히 여성 인체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에이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거니까.”
이루키가 말했다.
“어쨌거나 우리의 적은 이 정도로 상정할 수 있겠군. 게다가 놈들은 고급반 애들까지 회원으로 두고 있으니 졸업반 수업을 틈타 공격할 수도 있을 거야. 오늘 아침처럼 말이야. 그러니 시로네, 네가 지켜 내야 해.”
졸지에 이스타스의 수문장이 된 시로네였다.
“알았어.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고급반에서 누가 쳐들어오든 지금의 시로네라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에이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자. 아, 그리고 시로네, 시불상폭매는 당분간 이스타스에서 시전하지 마.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응. 나도 그럴 생각이야.”
졸업반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학생들이 모두 떠나자 매점에는 시로네와 매점 주인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흐음, 음지의 연구회라.”
코코아의 마지막 한 방울이 시로네의 목으로 넘어갔다.
***
그날 저녁, 금화륜.
알페아스 마법학교 북동쪽 산맥에 은신해 있는 아지트에 간부들이 소집되었다.
이례적으로 연회는 없었고, 페르미는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독한 술을 넘기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미로가 돌아왔다.’
그렇다면 더 이상 페르미의 계획에 방해되는 것은 없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학교에 있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겠군.’
생각을 끝낸 그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이걸로 다 모인 건가?”
“어. 그 녀석만 빼고.”
금화륜의 간부는 페르미를 포함해 5명.
현재 모인 자들은 소나의 헤르시, 일렉트릭 몬스터 라이컨, 연금술의 리차드였다.
“갑자기 소집이라니, 무슨 일이야?”
“오늘 프링스가 협정을 제안했다.”
“숨바꼭질 연구회가?”
참모인 헤르시가 첨언했다.
“이미 다른 연구회에도 제안을 한 모양이야. 인형 수집, 개미 언어의 회장들이 나에게 진위 여부를 물어 왔으니까.”
“그렇다면…….”
간부들의 눈에 빛이 번쩍이는 가운데 페르미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스크럼블 로열이야. 타깃은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 놈들을 몰아내고 우리가 이스타스를 차지하는 거지.”
“크크크, 드디어 고대했던 날이 온 거로군.”
연금술의 리차드가 입꼬리를 올리자 그의 두 눈동자에 푸른 빛이 들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대표를 보내야지. 스크럼블 로열에 참전할 대표.”
“내가 하지.”
금화륜의 2인자 일렉트릭 몬스터 라이컨이 손을 들었다.
현재 졸업반 서열 2위로, 페르미를 제외하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강자였다.
“아니, 너는 이번에 나서지 마라. 나랑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라이컨은 의심없이 페르미의 의견에 따랐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낼 생각이야?”
“헤르시가 참전한다. 스크럼블 로열은 이스타스의 비밀에 근접하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게 중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헤르시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졸업반 서열은 13위까지 떨어졌지만 정보 수집에 있어서는 숨바꼭질 연구회에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니까.
“그럼 우리 쪽은 헤르시, 숨바꼭질은 프링스가 나설 테고, 인형 수집은 안찰, 개미 언어는 피쇼. 이렇게 4명이 참전하는 건가?”
“아니, 여성 인체 연구회도 참전시킨다.”
“하지만 그 녀석은 활동을 안 하잖아.”
“이번에는 할 거야. 가서 참전하라고 해.”
페르미는 확신했다.
“시로네가 움직이면, 그놈도 나설 수밖에 없을 테니까.”
***
자정이 넘은 시각, 기숙사에 도착한 헤르시는 누군가의 방문 앞에 섰다.
미행은 불가능하다.
그의 음향 마법 소나는 마음만 먹으면 몸속의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수집할 수 있었다.
‘심장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헤르시가 노크를 하려는 그때 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광기의 풍경이 드러났다.
온 방 안에 그림이 붙어 있었고, 그 그림 속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마야였다.
“여전히 감이 좋군, 케이든.”
현 졸업반 서열 7위, 십자성의 케이든.
금화륜의 간부이자 사조직 여성 인체 연구회의 수장이었다.
“무슨 일이지?”
헤르시는 테이블로 다가가 케이든이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움직이는 선이 정확히 실물의 마야를 모사하고 있었다.
“알고 있잖아, 내가 온 이유?”
“몰라.”
“음지의 연구회가 스크럼블 로열을 제안했어.”
“관심 없어.”
“또한 상대편에는 시로네도 포함되어 있지.”
마야의 목선을 그리며 움직이던 선이 갑자기 삐죽, 이탈했다.
“내가…… 알량한 질투심 따위로 움직일 인간처럼 보이나?”
헤르시는 그저 웃기만 했다.
정직한 성격만큼이나 반듯한 외모에 어울리게 방의 한구석에는 십자가 형태의 장검이 세워져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케이든은 본래 검사였다.
정확히는 토르미아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검사 가문인 크로스 집안의 유망주.
‘검술에 마법에. 확실히 괴물이지.’
십자성의 기운을 받는 크로스 가문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별점을 통해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중에서도 케이든은 43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는 적십자성의 날에 태어난 아이로, 어떤 분야에서건 잠재력을 100퍼센트 끌어낼 수 있었다.
일종의 범우주적 율법으로, 이미 열네 살에 카이젠 검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였다.
하지만 적십자성의 아이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속설이 맞는 것인지, 정작 케이든에게는 검술보다 더 열망이 강한 분야가 있었다.
바로 예술이었고, 그중에서도 그림이었다.
물론 적십자의 율법은 케이든에게 최고의 그림 실력을 선사했다.
하지만 문제는, 예술이란 기술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떤 사물이든 생각한 대로 그려 낼 수 있지만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킬 무언가가 케이든에게는 없었다.
“멋지군. 노출을 조금 더 과감하게 해 보는 건 어때?”
헤르시가 그림을 가리키며 말하자 케이든이 미간을 구겼다.
“예술을 모독하지 마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면, 여성의 인체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 자체로 예술이다.
예술적 표현 능력이 전무한 케이든이 세미누드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유일한 선택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참가하지 않겠다고?”
케이든은 말없이 일어나 가문의 상징인 십자가 장검을 수직으로 세우고 칼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겠다.”
‘그럴 줄 알았지.’
인간의 감정을 읽어 내서 이용하는 능력이라면 페르미를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
자신을 합리화시킬 시간이 필요했을 뿐, ‘알량한 질투심’ 같은 표현을 쓴 것부터가 이미 질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럼 이것으로 모두 모였군. 일정은 추후에 공지하지.”
헤르시가 방을 나서자 케이든은 벽에 걸린 거대한 전지 그림을 바라보았다.
가문을 버리고 알페아스 마법학교로 도망치듯 숨어들어 온 그였다.
이곳에서 마야라는 여자를 알게 되면서, 그는 어째서 자신에게 예술적인 감성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예술의 신은 마야를 선택했던 것이다.
“마야…….”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신성한 전율을 떠올리며 케이든은 그림 앞에 부복했다.
“당신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림에 바치는 혼자만의 기사 서약이었다.
스크럼블 로열 (4)
***
케이든을 포섭한 헤르시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숙사를 나왔다.
언제부턴가 일정 거리에서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누군가의 심장박동 소리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한적한 공원으로 들어간 뒤에야 헤르시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 보면 남자보다는 여자일 확률이 높았다.
“이제 그만 나와. 누구야?”
가로수의 기둥 너머에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의외의 인물이었다.
“에덴이라…….”
요르교의 독실한 신자이자 방어 마법의 스페셜리스트.
헤르시가 알기로 그녀는 연구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기에 스크럼블 로열의 전초전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야밤에 무슨 일로 나를 미행…… 아니, 불러낸 거지?”
헤르시를 미행할 수 없다는 건 에덴도 알고 있었다.
“스크럼블 로열에 참가하게 해 줘.”
“연합이 커질수록 유리하기는 하지. 하지만 너는 음지의 연구회가 아니잖아?”
“만들 거야. 이스타스를 내가 차지하면.”
‘결국 상층부인가?’
헤르시의 짐작은 절반의 정답이었다.
요르교의 신자인 에덴이 마법학교에 온 이유는 오직 미케아 가올드 때문이었다.
한때는 토르미아 마법협회의 회장이었고, 현재도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를 꼽는 데에 반드시 들어가는 인물.
하지만 그는 요르교를 배신하고 신을 저버린 이단이었다.
‘용납할 수 없어.’
가올드와 같은 교회 출신인 그녀는 후반기 졸업반 일정이 시작되기 전 요라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가올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는 불쌍한 아이야.”
존경하는 요라에게서 이단에 대한 비호를 들은 에덴은 불쾌감에 치를 떨었다.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는 요르 신을 저버린 자입니다. 폭력을 숭상하고 수많은 살생을 저지른 괴물이 아닙니까?”
“그래, 괴물이지. 하지만 그를 괴물로 만든 건 그가 아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어.”
“아뇨. 그것이야말로 믿음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고통이 닥쳐와도 요르 신께서는 우리를 지켜 주고 계십니다.”
세계적인 종교인 요르 교단 내에서도 신의 사제라고 불릴 정도로 에덴이 인정받는 이유는 그저 맹목적으로 신을 추종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굉장히 합리적인 성격이고, 현실과 교리의 충돌을 이해하며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받아들일 만큼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다.
믿음과 논리의 결합은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고, 그렇기에 에덴을 설득시킬 방법은 없었다.
“요라께서는 가올드의 강함에 환상을 가지고 계시는 겁니다. 만약 별 볼 일 없는 파괴광에 불과했다면 과연 지금도 그를 비호할까요? 그가 어떤 고통을 통해 그 자리까지 갔는지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자라는 것도. 하지만 결국 이단에 불과해요. 요르 신이 지배하시는 이 성전에 살인자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나도 가올드의 결정은 안타깝다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는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벌요?”
에덴이 비웃음을 지으며 요라를 돌아보았다.
“요라께서는, 제가 가올드보다 약하다고 보십니까?”
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최고의 전투 마법사 따위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야만적인 칭호는 관심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가올드보다 강합니다. 이단은 결국 이단일 뿐.”
에덴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요르 신이 지켜보고 계시는 한, 저에게 적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