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89
회상에서 벗어난 에덴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이스타스부터 시작된 당신의 전설을 내가 박살 내 주겠어.’
거칠게 뛰는 에덴의 심장 소리를 들은 헤르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일단 보스에게 보고는 해 두지.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좋을 거야.”
헤르시는 에덴의 어깨를 짚어 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개학하고 처음으로 맞는 휴일.
시로네와 이루키, 네이드는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에 모여 재회의 파티를 벌였다.
과자와 음료수가 전부였지만 오랜만의 수다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항상 문제는 조별 평가야. 특히나 전략 전술. 결석이 3명이나 있으니 마지막 조는 2명이서 해야 한다고.”
총원이 27명밖에 되지 않으니 마지막 6조는 고작 2명으로 이천번에서 몬스터를 섬멸해야 했다.
물론 참가 인원수에 따라 난이도가 조절되지만 5명의 화력이 시너지를 내는 효과는 기대할 수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네이드의 푸념에 이루키가 찌르듯 말했다.
“그래서 모두 순위를 올리려는 거지. 너도 빨리 치고 올라와. 바인더랑 피쇼만 제치면 5조는 될 수 있잖아.”
“하아. 그게, 점수 편차가 너무 벌어져서…….”
그때 연구회가 진동하며 이스타스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뭐지? 선생님인가? 오늘은 휴일인데.”
시로네가 두리번거리는 것과 달리 네이드의 표정은 어느새 진지했다.
“올 것이 왔군. 우리도 준비하자.”
기관 장치가 동작을 멈추고, 시로네 일행은 손님을 맞이하는 포지션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문밖에서 익히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음지의 연구회다.”
“들어와.”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시로네는 눈을 깜박거렸다.
대부분 졸업 예정자 1순위의 강자들이었다.
뒷짐을 지고 들어온 헤르시가 직각으로 몸을 틀며 선포하듯 말했다.
“스크럼블 로열을 제안한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네이드는 삐딱하게 턱을 괴고 일렬로 서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졸업반 서열 3위 프링스, 서열 7위 케이든, 서열 9위 안찰, 서열 10위 에덴, 서열 13위 헤르시, 서열 25위 피쇼까지 총 6명.
음지의 연구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황이었다.
‘이제부터 전쟁이군.’
***
스크럼블 로열.
조건을 걸고 대결을 하여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하는 규정의 총체.
개인적인 대가를 떠나서 졸업 시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음지의 연구회에는 교칙보다 우선하는 절대적 룰이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 3명과 음지의 연구회 연합 6명이 마주 보고 앉았다.
음지의 룰에 익숙하지 않은 시로네였으나 졸업반 평가하고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교사도 교권도 간섭할 수 없는, 오직 그들만의 일이었다.
“딱히 소개는 필요 없겠지. 구면이니까.”
금화륜의 대표로 참석한 헤르시가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가 온 이유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네이드가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그렇군. 그럼 간단하게 일정과 룰만 정하면 되겠어.”
‘일정? 룰?’
아직 모든 게 생소했지만 시로네는 듣고만 있었다.
탁 소리를 내며 헤르시가 철로 만든 상자를 내려 두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지만 낯이 익은 이유는 천국에서 봤던 헤나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스크럼블 로열. 시작해 볼까?”
30년이면 미로가 활동하기도 전이었다.
시로네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자 네이드가 설명했다.
“이건 ‘저지’라는 도구야. 상호 합의를 통해 룰을 정하고 저지에 입력하면 승자에게는 보상을, 패자에게는 대가를 치르게 하지. 계약 파기에 대한 룰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걸고 대결하기에는 최적의 도구야.”
헤르시가 덧붙였다.
“상호 간의 협의하에서는 어떤 룰도 가능해. 만약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을 시 사망’이라는 룰을 설정하면 실제로 죽게 되지.”
‘규정외식.’
시로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또한 천국에서 건너온 고대 장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병기나 무구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천국의 생활상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장치지만 상식 밖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천사나 요정의 유희 도구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는 당연히 ‘흑과 백’이겠지?”
“30년 동안 변한 적이 없지. 매뉴얼이 있어서 바로 대결에 들어가기도 편하고.”
어떤 경기인지 궁금했으나 당장 물어보는 것도 적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소지가 있었다.
“연합 쪽의 참가 인원은 보다시피 6명. 너희도 인원을 맞춰. 셋이서 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인원수 또한 상호 합의에 의해 정하면 그만이었다.
“흐음.”
소수 정예라고 큰소리를 쳤던 네이드도 이번만큼은 신중했다.
연구회 인원이 아닌 자들은 가급적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연합의 멤버들이 너무 막강했다.
‘확실히 조력자가 필요하긴 하겠어.’
헤르시, 안찰, 프링스는 물론 곤충 마법의 피쇼나 방어 마법의 에덴도 밸런스의 완벽함에 일조하고 있다.
‘게다가 케이든이라……. 응? 케이든?’
네이드의 눈썹이 올라갔다.
“잠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금화륜에서 2명이나 대표로 참가한 거지?”
그렇게 룰을 정하면 상관없지만 협의에 응해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해하지 마. 케이든은 금화륜의 대표로 온 게 아니니까.”
“무슨 소리야? 그럼…….”
네이드는 무언가를 깨닫고 멍하니 케이든을 바라보았다.
“설마 네가……?”
“그래. 내가 여성 인체 연구회의 회장이다.”
페르미 일행 중에서 그나마 정직하다고 여겼던 케이든의 충격 선언에 시로네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여성 인체 연구회의 회장이라고?”
케이든이 감출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미의 누드도 상당히 많이 그렸지.”
곧바로 들어오는 도발에 시로네가 인상을 썼다.
‘갑자기 그런 얘기는 왜……?’
문득 빨간책에 있던 마야의 그림이 떠올랐고, 같은 생각을 한 이루키가 말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는 모르는군. 정체가 밝혀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참가한 이유는 질투인가? 아니면 시로네에게 마야를 포기하라는 룰이라도 걸게?”
“그런 싸구려 감정으로 매도하지 마라.”
케이든이 상체를 들이밀며 눈을 부릅떴다.
“나를 움직이는 건 분노다. 시로네, 너에게 최고의 고통을 선사해 주지.”
살기가 느껴지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시로네도 물러서지 않았다.
“얼마든지 덤벼. 전에도 말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적에게는 가차 없을 테니까.”
분위기가 무르익자 안찰이 나섰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지. 그동안에 인원을 모아. 세부적인 룰은 그때 정하도록 한다.”
이루키가 반박했다.
“아니, 그 전에 미리 협의해 두고 싶은 게 있어. 조력자를 구하려면 그들 또한 보상이 필요한 만큼 전체적인 가닥은 잡아 둘 필요가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졸업반 레벨인 만큼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는 것은 안찰도 예상하고 있었다.
“좋아, 말해 봐.”
“일단 연합이 원하는 것은 승리했을 시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를 포기한다는 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스타스를 포기하는 거지.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야 어찌 되든 상관없어.”
“뭐, 좋아. 일단 받아들이지. 대신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이루키는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고 보상을 제시했다.
“우리가 이기면 졸업 시험 전까지 연합 팀 전원이 우리 팀보다 낮은 서열에 위치할 것.”
연합 측의 표정이 굳었고 시로네의 눈은 빛났다.
‘그렇구나. 이건 반드시 필요하다.’
적들과 수준을 맞추려면 조력자는 최소 졸업반 이상이어야 하는데, 모두 음지의 연구회와는 관련이 없다.
졸업반 일정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스크럼블 로열에 끼어들 사람은 없을 터.
하지만 클래스 원에 다수 포진한 이들보다 높은 순위에 오를 수 있다면 확실한 동기가 생기게 된다.
“음, 순위라…….”
헤르시가 장고에 들어가자 네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고민하는 척하지 마. 이스타스 때문에 졸업도 안 한 너희가 순위 따위로 망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는 지금 가장 협의하기 어려운 안건을 손쉽게 따낸 거라고.”
헤르시 또한 이스타스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협의하는 게 가장 난관일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건 사실이지. 심지어 너무 쉽게 내준 감이 있다. 아니, 그만큼 조력자를 구하는 게 어렵다고 봐야겠지. 어쨌거나 질 것이란 생각은 요만큼도 안 하고 있군.“
어차피 연합 쪽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나는 찬성하지. 다른 대표들도 발언해 줘.”
안찰이 곧바로 말했다.
“나도 상관없어.”
케이든은 물어볼 것도 없었고 남은 자들이 동의하자, 그제야 아쉬운 마음이 드는 네이드였다.
‘흐음, 너무 양보했나? 피쇼는 어차피 순위가 낮은데. 하긴, 프링스와 케이든만 끌어내릴 수 있어도 소기의 성과는 달성한 셈이지.’
헤르시가 저지를 챙기며 일어섰다.
“그럼 3명을 더 구해. 일주일 후에 세부적인 협의에 들어가도록 하자고.”
“그래. 멀리 못 나간다.”
네이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들을 배웅했다.
스크럼블 로열 (5)
연합 팀이 나가고서야 네이드의 얼굴이 풀어졌다.
“후우, 결국 이렇게 됐네. 미안해. 일단 받아들이고 말았어.”
이루키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야. 우리도 이스타스를 양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나저나 인원은 어떻게 할 거야? 생각해 둔 사람이라도 있어?”
시로네와 네이드가 동시에 말했다.
“에이미.”
이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실 나도 같은 생각으로 그런 조건을 걸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에이미의 서열이 이미 5위라는 거야. 감정에도 호소를 해야 할 거야.”
“내가 부탁을 해 볼게.”
다른 사람도 아닌 시로네라면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좋아, 에이미는 시로네가 맡기로 하고. 남은 두 사람은?”
정적이 흘렀다.
“정말로 생각해 둔 사람 없어?”
네이드가 턱을 괴고 말했다.
“흠, 후보야 많지. 카니스 팀, 단테 팀도 있고, 보일도 괜찮아. 소환 마법이 피쇼를 견제할 수 있을 테니.”
이루키가 고개를 저었다.
“외부에서 구할 수밖에 없겠지만 알려져서 좋을 것 없는 음지의 일이야. 확실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접촉해야 돼. 그런 의미에서 카니스는 위험해. 시로네를 벼르고 있으니까.”
시로네가 말했다.
“보일도 다른 후보군에 비해서 딱히 메리트가 있다고 볼 수는 없어. 단테는 팀으로 움직일 확률이 높고.”
네이드가 울상을 지었다.
“그럼 누굴 구해?”
“그런 의미에서 도로시는 어때?”
시로네가 이루키를 돌아보았다.
“도로시?”
무언가를 직감한 네이드가 도끼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너 이 자식!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솔직히 불어! 어디까지 갔어?”
“아무 데도 안 갔어. 내가 왜 관심도 없는 도로시와 친하게 지냈는지 알아?”
네이드가 눈을 깜박거렸다.
“응? 너, 관심 없었어?”
“말했잖아, 분석 불가능한 건 취향이 아니라고.”
“그럼 왜 친하게 지내는 건데?”
“졸업반 일정 첫째 날에 도로시는 시로네와 대인 전투가 잡혔지. 그때 했던 말 기억해? 무승부로 해 주면 시로네가 원하는 것을 해 주겠다고 했지.”
“아하.”
이루키가 손가락을 들었다.
“순위에 집착하고, 조건과 대가를 활용하는 타입이야. 게다가 조너라면 스크럼블 로열에서 굉장히 유리한 점이 많지.”
네이드는 비로소 이해했다.
“좋아, 그럼 이루키는 도로시를 회유해 보고……. 마지막 1명은?”
이루키가 물었다.
“사비나는 어때?”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팀을 이루려면 감정적 동질감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비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건 절대로 안 돼.”
네이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단테 일행의 홍일점 빅터 사비나.
초당 수십 회의 에어 커트를 난사하는 에어 마법의 강자였고 이천번 대결에서 네이드를 꺾은 전적도 있는 만큼 실력은 확실했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생각해 봐. 은근히 널 신경 쓰는 것 같던데. 나도 도로시를 회유하기로 했고, 시로네도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하잖아.”
“안 돼! 안 돼! 절대로 안 돼!”
네이드가 사지를 파닥거리며 발버둥 치자 시로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할 수 있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네이드는 질색을 하며 두 손을 싹싹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