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90
“그래도 안 돼! 나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줘. 어떻게든 시간 내에 내가 조력자를 구해 볼게. 사비나는 진짜로 안 된단 말이야!”
죽어도 싫다는 데에야 말릴 도리가 없었다.
“알았어. 그럼 네이드는 시간에 맞춰서 조력자를 찾고, 나랑 이루키는 에이미와 도로시를 회유하자.”
그렇게 일단락이 지어졌다.
***
그날 밤, 시로네는 에이미의 방으로 찾아갔다.
에이미의 실력을 생각하면 플랜 B는 있을 수가 없기에 반드시 포섭해야 했다.
‘미행은 없지.’
어차피 적들이 선전포고를 했으니 미행을 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에이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야, 시로네.”
문을 열고 나온 에이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막 씻었는지 잠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시로네? 갑자기 웬일이야?”
꾸미는 성격은 아니지만 편한 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낮에 봤던 것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시로네가 눈을 빛내며 바라보자 에이미가 쑥스러운 듯 홍조를 띠며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까도 봤잖아?”
말투는 퉁명스러워도 싫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니, 잠옷 차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
에이미가 별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피식했다.
“공짜로 띄워 주는 건 아닐 테고, 무슨 일 때문에 온 거야?”
“사실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후후, 그럴 줄 알았지. 무슨 부탁인데?”
에이미의 목소리에 여전히 달달한 느낌이 묻어 있자 용기를 얻은 시로네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초자연 심령과학…….”
쾅!
문이 닫혔다.
***
스크럼블 로열의 최종 협의가 치러지는 날은 이번 주 휴일.
그때까지 조력자를 찾아야 하는 시로네 일행은 유일한 휴식 시간인 점심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조력자 후보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 에이미였기에 시로네는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고집이라면 시로네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에이미, 진짜 중요한 일이야.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가 어떤 곳인지 알잖아.”
“…….”
“미로 씨가 만든 연구회야. 그 연구회의 역사가 우리 대에서 끊기게 된다면…….”
“아우, 정말!”
참다못한 에이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 게 뭐야? 연구회가 엎어지든 뒤집어지든! 그나저나 너, 정말 졸업 안 할 거야? 이러려고 평가 거부했어?”
“아니, 졸업은 해야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시로네를 바라보며 에이미는 입술을 삐죽 뒤틀었다.
‘어휴, 이 순진한 애가 오죽 급했으면…….’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시로네가 이토록 매달린다는 것은 정말로 간절하다는 뜻이다.
또한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점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안 돼. 어떻게 일주일씩이나…….’
감정만으로 허락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졸업반 순위를 대가로 걸었다고 해도, 서열 5위인 에이미에게는 크게 메리트가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스크럼블 로열 기간 동안 평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게 신경 쓰였다.
물론 시간이 날 때만 참전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지만, 그런 반쪽짜리 전력으로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지.’
졸업마저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각오로.
하지만 이번 사건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인가 따져 보면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다.
“알았어. 생각은 해 볼게. 그러니까 제발 얼굴 좀 펴. 체할 것 같으니까.”
시로네의 얼굴이 그제야 밝아졌다.
“고마워, 에이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네이드는 생각했다.
‘쉽지 않겠네, 시로네도.’
그리고 앞에서 밥을 먹는 이루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어때? 도로시 쪽은 잘 진행되고 있냐?”
“응. 이따가 자세히 얘기하기로 했어.”
“오호, 관심을 보여?”
“바보냐, 본론을 먼저 꺼내게? 일단 졸업반 순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 뒀으니까 올 수밖에 없는 거지.”
“꽤나 신중하네. 그런데 대체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여자 심리에는 관심 없다고 그랬잖아.”
“관심이 없기 때문에 냉철하게 볼 수 있는 거야. 연애를 못 하는 남자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너무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거야. 여자는 온갖 감정으로 가득 차 있고, 남자의 감정을 다루는 능력을 천성적으로 타고났지. 냉철함을 잃는 순간 그냥 잡아먹히는 거야.”
“쳇, 입은 살아 가지고.”
네이드는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
어쨌거나 에이미도 조금씩 관심을 드러내고 있고, 이루키는 이유는 몰라도 성공할 것만 같았다.
‘큰일이다. 오늘 안에 후보라도 물색해야 하는데.’
모두와 친하다는 것이 무기인 그였지만 깊게 교감을 나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 독이 되고 있었다.
‘스크리머? 포악해도 의리는 있으니까. 아냐, 스크럼블 로열에는 어울리지 않아. 루만은 믿을 수가 없고.’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수아비가 단테의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응? 무슨 일이지?’
유틸리티 전공인 수아비.
결정 장애에 우유부단한 성격이지만 수십 개의 버프 마법을 쉴 틈 없이 돌리는 유틸리티계의 인재였다.
비록 이루키의 캔슬레이션에 먹히기는 했지만 현재 스크럼블 로열의 조력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얘들아, 잠깐만 갔다 올게.”
수아비가 있는 곳으로 가자 항상 단테와 같이 다니는 사비나와 클로저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까……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단테의 물음에 수아비의 얼굴이 터질 듯 빨개졌다.
“아니, 그러니까…… 사실은 잘 모르겠어.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너에게 물어보려고.”
뒤에서 훔쳐 듣고 있던 네이드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심각하다. 좋아하는 것도 결정 장애야?’
또한 이루키의 지론에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것은, 일단 잘생기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단테 또한 자주 겪었던 일인 듯 태도가 자연스러웠다.
“요약하자면 네가 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니까 말을 해 달라는 거네?”
수아비가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흐음, 글쎄. 그렇게 물어본다고 해도…….”
“그건 내가 알려 주지.”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는 가운데, 네이드가 심판처럼 손을 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수아비, 너는 단테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당연하지. 여태까지 대화한 적도 별로 없잖아?”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려.”
“그건 네가 잠시 외모에 홀린 거야. 수줍음이 많은 너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멋진 사람이 아닐까?”
“그, 그런가?”
네이드는 기다렸다는 듯 본론을 꺼냈다.
“그래. 이제 알겠어? 사실은 넌 나를 좋아…….”
“다행이다. 짝사랑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인데.”
“…….”
멀어지는 수아비를 바라보며 네이드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우두커니 서 있자 단테가 말했다.
“너 지금 뭐 하냐?”
“시끄러! 너 때문에 다 망쳤잖아! 이제 어떡할 거야?”
“뭘 어떡해? 내가 뭘 어쨌다고?”
사비나가 탕 소리를 내며 식기를 내리쳤다.
“야, 네이드. 너 잠깐 나 좀 봐.”
“싫어. 내가 널 왜 봐?”
이를 악문 사비나의 눈이 부릅떠졌다.
“나오라면 나와.”
항상 눈을 마주치면 겁에 질린 듯 시선을 피하던 그녀가 오늘따라 박력이 넘쳤다.
네이드가 식당 밖으로 나가자 벽에 기대어 있던 사비나가 심문하듯 물었다.
“너, 요새 뭐 하고 있지?”
네이드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하기는 뭘 해? 쓸데없는 참견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런 거 없어.”
사비나의 눈에 짜증이 확 솟구쳤으나, 그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네이드를 지나쳐 갔다.
“좋다고 해 줄 때 받아라. 그러니까 연애를 못 하지.”
“저게……!”
사비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으로 들어갔고, 한참이나 마음을 진정시킨 뒤에야 네이드도 자리로 되돌아왔다.
“사비나랑 무슨 얘기 했어?”
“도와주겠대. 근데 내가 거절했어.”
이루키는 사비나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마음에 안 드는 이유가 뭐야? 날라리 같아서? 네가 중부 지방 출신이라 그렇지, 수도에는 저렇게 꾸미고 다니는 애들도 많아.”
“누가 뭐래? 사비나 괜찮아. 나도 보는 눈은 있다고.”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야?”
“하아, 사비나는…….”
네이드는 시름 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을 삼켰다.
‘내 진짜 얼굴을 봤단 말이야.’
개전 (1)
달이 뜰 무렵 졸업반 건물 뒤편에서 남녀가 조우했다.
도로시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그로부터 5분 뒤에야 이루키가 나타났다.
“늦었네. 5분.”
도로시가 특유의 말투로 핀잔했으나 이루키의 머리는 시간을 망각하지 않는다.
“네가 5분 일찍 온 거야.”
“맞아. 내 시계는 5분 빨라.”
도로시가 수줍은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나는 항상 잊어버려.”
이루키는 지금의 대화가 도로시에게 어떤 의미인지 분석하지 못했다.
“그럼 본론부터 말할게.”
도로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스크럼블 로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설명이 끝날 때까지 다른 말은 끼어들지 않았다.
“스크럼블 로열이 치러지는 시간은 매일 정오부터 자정까지야. 오전 평가는 받을 수 있을 거고, 급하다면 오후 평가도 참석해도 되는 조건이야. 너보다 상위에 있는 다수를 끌어내릴 수 있으니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또?”
도로시의 유일한 질문이었다.
“또?”
“그것 때문에 부른 거야? 다른 할 말이 있어서는 아니고?”
이루키는 고민 끝에 말했다.
“있어. 솔직히 스크럼블 로열에 참전하면 오후 평가는 포기하게 될 거야. 물론 제약을 거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래.”
“…….”
도로시는 한참이나 이루키를 바라보다가 살며시 그의 뺨에 손을 댔다.
“찰싹.”
입으로 효과음을 내뱉은 그녀였으나 이루키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알았어. 할게.”
“고마워.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를 대표해서.”
“네 말대로 나쁜 제안이 아니었으니까. 휴일에 연구회로 가면 되지?”
이루키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도로시는 곧바로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
한 주의 6일 차 평가가 끝나고 스크럼블 로열에 대해 협의하는 날이 1일 앞으로 다가왔다.
연구회에 도착한 네이드의 퀭한 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못 구했어. 이제 난 죽었다.’
큰소리를 떵떵 쳤으나 제안했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참전 기간 동안 평가에 방해를 받는 위험도가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리라.
“아니, 그게 아니지.”
이미 도로시를 포섭한 이루키가 유일하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위험도에 더해서 참전하지 않는 쪽의 이득을 계산했기 때문이야.”
시로네가 침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스크럼블 로열에 참전하는 동안 경쟁자들보다 점수를 더 획득할 수 있으니까.”
“아우! 그게 문제야? 이기기만 하면 클래스 원의 애들을 밟을 수 있는데!”
흥분하는 네이드와 달리 이루키는 냉정했다.
“로 리스크 로 리턴이지. 나쁜 선택은 아니야. 게다가 그런 각오라면 어차피 도움이 안 될 거야. 슬슬 현실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할 때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