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94
네이드가 콧방귀를 뀌었다.
“제안할 카드가 뭐가 있는데? 페르미에게 뭔가 얘기를 들었나 본데, 어떤 것도 아르망과 교환할 가치는 없어.”
“과연 그럴까? 내가 페르미에게 얘기를 들었다면, 너도 시로네에게 얘기를 들었을 거 아냐?”
“무슨 소리야?”
헤르시가 검지를 들고 말했다.
“시로네가 아르망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쪽도 페르미의 칩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지.”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차,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이해가 빠르겠군. 현재 페르미는 대략 100억 골드에 달하는 마법을 보유하고 있어. 참고로 여태까지 페르미가 구사한 마법은 비싸 봤자 몇백만 골드야. 만약 네가 아르망을 사용한다면, 페르미는 자비를 털어서라도 연합 팀에 모든 칩을 줘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해 두지.”
시로네는 강하게 나갔다.
“흥! 그래 봤자…….”
“그래, 듣기로는 굉장한 무기라고 하더군. 하지만 그래 봤자 너 혼자서 경기를 주도할 수는 없어. 반면에 우리는 6명 전원이 강화되는 거야.”
‘헤르시의 말도 일리가 있다. 무력은 필요하지만 팀워크보다 중요한 경기는 아니야.’
캉에 패하면 원천적으로 무력을 차단하는 룰이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아르망을 꺼내면 100억 골드 상당의 마법을 구사하는 연합 팀과 싸워야 한다.
“의견 조율 시작할게. 다들 나와 봐.”
시로네는 팀원들을 데리고 11차 비밀회의를 열었다.
“들었다시피 처음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겠어. 페르미가 이 정도로 이스타스에 관심이 있을 줄은…….”
네이드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
“애초에 우리는 연합 팀이 이루키의 캔슬레이션을 금기로 걸 것이라 예상했지. 에덴의 방어 마법과는 천적이니까. 하지만 아르망이라…….”
“100억 골드 상당이라면 확실히 우리 쪽이 끌려가는 경기가 될 수밖에 없지. 어떤 게 더 효율적일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르망의 기능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시로네뿐이었다.
“받아들이자. 100억 골드의 마법은 확실히 맛이 좋지 않아. 하지만 이 조건으로는 안 돼.”
이루키가 확실히 짚고 넘어갔다.
“그렇다면 아르망의 효율이 더 높다고 보는 건가? 우리의 안전 때문이라면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니. 헤르시의 말대로 밸런스는 맞는 것 같아. 내 말은 더 찔러보자는 거야. 나는 기억이 없지만 언더 코더에서 페르미가 아르망의 능력을 봤다면…….”
시로네는 미지의 확률을 통찰했다.
“설령 조금 더 손해를 보더라도 아르망을 금지시키는 쪽을 택할 거야. 페르미의 성격이라면 말이야.”
네이드가 말했다.
“최대치가 더 높다는 거지. 알겠어. 그럼 에덴의 전라 상태를 금지시키는 건 어때?”
사비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마법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잖아? 도로시의 히커리를 금지시키는 것과 같은 거야. 당위성을 걸고넘어지면 우리 쪽도 공격당할 여지가 있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에이미가 말했다.
“어차피 이루키의 캔슬레이션이 금기가 아니라면 에덴의 방어 마법을 견제할 수단은 있는 셈이야. 오히려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안찰의 마정안을 봉인하는 거야.”
사비나가 물었다.
“하지만 안찰은 졸업 시험 때도 안대를 풀지 않았잖아? 과연 스크럼블 로열에서 봉인을 해제할까?”
“확률의 문제가 아니야. 1퍼센트라도 여지가 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에 혼란이 생겨. 따라서 지금 봉인을 시켜 놓는 게 좋아. 특히 안찰은 비밀이 많으니까.”
안찰의 출신은 시로네 일행이 사는 곳과 문화가 전혀 다른, 바다 건너에 있는 진천 제국이었다.
서부와 중부 대륙을 점령한 카샨, 동대륙에는 구스타프가 있다면 동방에는 진천이 있고, 이 세 제국의 황제들이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삼황계였다.
“안찰의 전공은 정신 마법, 계열은 환영. 하지만 아린과 달리 동방의 기술이 접목되어서 생소하지.”
아린이 상대의 정신에 원천적으로 침투한다면 안찰은 현실에 가까운 환영으로 외부에서 충격을 가한다.
졸업 시험 당시 스카우트의 말을 빌리자면 생존 테스트 4단계인 사경에 준하는 강도로, 그녀가 환영의 칼날을 만들어 찌른다면 시로네가 통과했던 4단계 ‘절사’의 강도로 정신에 충격이 가해진다는 뜻이었다.
“안찰의 환영 마법은 전지보다 전능에 밀접하지. 마정안의 봉인이 풀리면 강도는 4단계 정도가 아닐 거야.”
그런 환영을 7일 동안 상대해야 한다.
생존 테스트 당시 4단계 ‘절사’를 통과한 졸업반의 학생 수가 몇 명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막아 두는 편이 좋았다.
“좋아. 안찰의 마정안을 봉인한다.”
의견을 일치시킨 시로네는 다시 연구회로 돌아가 헤르시에게 제안했다.
“받아들일게. 단, 안찰의 봉인 해제까지 걸겠어. 그걸 받아들인다면 나도 아르망의 사용을 금지하지.”
여태까지 표정에 변화가 없던 안찰이 인상을 찌푸렸다.
‘봉인을 풀려고 했군.’
이루키가 확신하는 가운데 헤르시가 안찰을 돌아보며 의중을 물었다.
“어떡할 거야?”
금세 표정을 고친 안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봉인을 풀 생각도 없었으니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럼블 로열이 전부는 아니야. 여기에서 이겨도 다시 금화륜과 싸워야 하니까.’
그때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것으로 협의가 끝났고. 더 추가할 내용이 있다면 지금 말해. 이제 저지에 입력할 테니까.”
헤르시가 종이와 펜을 꺼내며 물었다.
“없어. 이제 붙는 일만 남았군.”
12시간 동안 치열하게 협의했으니 더 할 말이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이득을 본 부분도 있는 만큼 대부분 이번 협상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헤르시가 저지의 종이에 사안들을 기록하자 무려 마흔여덟 장의 메모지가 쌓였다.
“그럼 시작하지.”
차례대로 종이를 저지에 넣은 헤르시가 마지막 기록을 입력하고 부저처럼 생긴 렌즈를 눌렀다.
딸깍 소리를 내며 렌즈에서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모두의 머릿속에 루루의 음성이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어 찰나의 순간에 꽂혔다.
스크럼블 로열 개전.
대기 시간. 10시간 58분 32초.
반응과 대응 (1)
알페아스 마법학교. 제3물류창고.
새벽부터 일어난 시로네 팀 6명은 이스타스가 보이는 부지의 입구에 모였다.
졸업반 평가가 진행되고 있겠지만 자존심 문제에 더해 개인적인 보상과 대가까지 걸렸으니 결석한 자들은 없었다.
“다들 심란하겠지만 일단 대결에 집중하자.”
각오는 모두 끝난 상태였다.
“대결 기간은 7일. 오늘 하루 붙어 보면 대충 역량을 짐작할 수 있겠지. 뒷일은 그다음에 생각하자고.”
네이드의 개전사가 끝나자 에이미가 물었다.
“전략은?”
이루키가 말했다.
“6명의 반응에 대응해 아군 6명을 통제하는 건 무리야. 일단은 탐색전이야. 단, 마스터 카드는 빼앗기면 안 돼.”
시로네가 덧붙였다.
“장외 또한 기권 패가 되는 걸로 정했으니까 전장의 영역은 확실하게 체크해 두고.”
사비나가 물었다.
“그래도 첫 번째 스크럼블은 정하는 게 좋잖아? 흑, 백, 랜덤 말이야.”
시로네가 말했다.
“연합 팀은 모두 랜덤을 선택할 거야. 1단계에서 선(◯)을 잡아도 상대가 선을 잡으면 무승부야. 반대로 악(●)을 택하면 2시간 동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지.”
도로시가 덧붙였다.
“2차부터는 팀의 조합도 생각해야 돼. 두 장의 랜덤 카드(ⓇⓇ)를 오픈해도 이단(●●)이 걸릴 확률은 4분의 1이나 돼. 즉, 우리가 6명이니 최소 1명은 이단을 잡을 수 있겠지.”
시로네가 정리했다.
“초반에 가장 중요한 건 스크럼블을 놓치지 않는 게 되겠어. 좌표에 따라서 불리할 수도 있으니까.”
“상대의 위치는 내가 알 수 있어.”
도로시가 스피릿 존을 펼치자 이루키가 물었다.
“조너였지. 얼마나 확장시킬 수 있어?”
“밀도를 완전히 떨어뜨리면 최대치는 직경 1킬로미터. 하지만 겨우 인간과 비생물체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야.”
조너라고 해도 그녀는 조작계였고, 크기보다는 존의 정밀도가 우선시되는 분야였다.
“참고로 내가 히커리를 조작할 때의 스피릿 존은 대략 직경 50미터 정도야. 미리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직경 1킬로미터를 50미터로 줄일 정도의 정밀도가 아니라면 히커리를 조작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스나이퍼 모드로 전환한 도로시는 일자형 스피릿 존을 회전시켜 적들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초당 수십 바퀴를 회전시키는 에이미와 달리 360도를 살피는 데에만 무려 20분이 걸렸다.
하지만 직경 1킬로미터의 스피릿 존을 일자형으로 바꾼다는 것은 조너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연합 팀에는 소나의 헤르시가 있다. 우리보다 탐색은 빠를 수밖에 없어.’
이루키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도로시가 말했다.
“동쪽으로 7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6명이 모여 있어.”
“그럼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가자. 첫 번째 스크럼블은 반드시 수집해야 돼. 실험 대상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서로의 위치는 어떻게 파악하지?”
“스크럼블은 2시간마다 소환되고 수집한 카드의 현황을 확인하면 대략적인 위치는 알 수 있을 거야.”
사비나가 입맛을 다셨다.
‘단테도 참가했으면 좋았을 텐데.’
통신 마법사가 있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케이지급이 아니고서야 모든 걸 바라는 건 사치였다.
“좋아. 그럼 출발하자.”
6명이 동시에 공간 이동을 시전하자 하늘에 모인 섬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스크럼블 로열 대기 시간 10분.
***
‘3분 정도 남았으려나.’
스타트 좌표에 도착한 시로네는 수열식을 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시불상폭매를 초반부터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는 만큼, 어느 정도 수열식을 진행시켜 두는 편이 좋았다.
‘가장 가까운 곳의 스크럼블을 수집하는 게 1차 목표.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먼 거리를 달려야 할지도 몰라.’
그때 루루의 음성이 전기적 신호로 뇌리에 꽂혔다.
“스크럼블 로열이 개전되었습니다.”
시로네의 눈이 번쩍 빛났다.
어느새 소환된 마스터 카드를 쥐고 엄지로 화면을 넘기자 좌표가 기록된 화면이 나타났다.
정확히 12개의 좌표가 XYZ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가상의 지도를 떠올린 다음 빠르게 12개의 좌표를 입력했고, 거기에서 이미지를 얻어 낸 시로네는 가장 가까운 곳의 좌표를 확인했다.
‘X-271, Y-373, Z-8. 제9훈련장 쪽이다.’
목적지가 정해지자 몸은 저절로 움직였고 머릿속에서는 일단 집어넣은 정보가 점차 분석되기 시작했다.
‘오른쪽이 조금 일그러진 원의 형태. 하지만 분포도는 평균에 가까운 수치야.’
다음 차수에도 스크럼블이 소환되는 위치가 공평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특정 규칙하에 있다면 3일 정도 후에는 이루키가 방정식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마스터 카드를 확인한 시로네는 거의 동시에 2개의 좌표가 사라진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수집했어?’
공간 이동으로 착지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지점에 도착한 시로네는 좌표로 달리면서 다시 마스터 카드를 살폈다.
‘5개.’
12개 중에서 벌써 5개의 좌표가 소멸되어 있었다.
‘아직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확률의 인간미라는 건가.’
화면을 넘기자 이루키, 에이미, 헤르시, 안찰의 현황에 Ⓡ(랜덤 카드) 표시가 떴다.
‘예상대로 전부 랜덤을 택했다.’
그사이에 또 하나의 좌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제길!”
땅을 박차고 도약한 시로네가 순간 이동을 시전하자 강렬한 섬광이 휘어지며 울창한 숲을 빠져나갔다.
***
“이것으로 대인 전투 오전 평가를 마치겠다. 다들 점심 맛있게 먹고 오후에 보자꾸나.”
바인더가 손을 들었다.
“오늘 대인 전투 불참자는 어떻게 되죠?”
이론 점수 100점에 빛나는 수재지만 올해 졸업반 경쟁자의 막강한 실력 탓에 현재 26위까지 떨어진 그였다.
특히나 오늘 대인 전투 상대는 강력한 안찰이기에 거의 포기하고 있던 상태였다.
부장 교사 콜리가 대인 전투 훈련장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오후까지 불참할 경우 부전패다.”
몇몇 학생들의 눈에 화색이 돌았다.
‘제발 오지 마라.’
오전 평가에 불참한 학생은 무려 11명. 이대로라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전승으로 3점을 얻게 된다.
“페르미, 뭐 아는 거 없나?”
콜리가 물었으나 페르미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걸 왜 저에게 물어보시죠?”
금화륜의 멤버가 2명이나 불참했다는 것은 콜리도 아는 사실이었으나 모르쇠로 일관하면 도리가 없었다.
‘어차피 졸업반 평가의 참여 여부는 학생들의 자유다. 이런 경우엔 불참으로 보고서에 기록되겠지만…….’
“어제 뭘 잘못 먹은 거 아닐까요? 단체로 배탈이라도 났나보죠, 크크크.”
연금술의 리차드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가서 점심 먹도록.”
그렇게 말한 콜리가 몸을 돌려 교장실로 향했다.
‘스크럼블 로열이군.’
***
“찾았다.”
시로네는 훈련장 외곽의 나무에 걸쳐 있는, 주먹만 한 크기로 발광하는 스크럼블을 발견했다.
‘남은 좌표는…….’
최초에 좌표들이 빠르게 사라진 이후 수집이 지지부진하여 여전히 4개의 좌표가 남아 있었다.
‘내가 수집하면 3개. 처음에는 랜덤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은…….’
빛의 구체를 움켜쥐자 순정 카드로 변했다.
-스크럼블을 수집한 이후부터는 다른 참가자에게 양도가 불가능하다.
시로네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랜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