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95
별다른 반응은 없었고, 기존의 규칙대로 1초가 지나자 랜덤 카드로 변환되었다.
“역시 안 되는구나.”
순정 카드 상태에서 임의대로 랜덤을 선택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저 가지고 있으면 자동으로 변환되는 것이지만 시로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랜덤 카드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면 시불상폭매를 이용해 다시 순정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확인했고, 다음은 오픈 카드를 랜덤 상태로 되돌리는 것.’
시불상폭매를 발휘하기 위해 수열식을 빠르게 끌어 올리는 그때 머릿속에 음성이 들렸다.
“모든 스크럼블이 수집 및 파기되었습니다. 다음 소환 시까지 1시간 38분 12초 남았습니다.”
시로네는 실험을 미뤄 두고 마스터 카드를 확인했다.
“후우, 다행이다.”
팀원들이 모두 한 장씩을 얻은 상태였고, 미리 약속한 대로 전부 랜덤을 선택했다.
시로네는 다음으로 연합 팀의 수집 현황을 확인했다.
‘역시 이쪽도 랜…… 응?’
다섯 명의 이름 옆에 모두 Ⓡ 표시가 떠 있었지만 에덴의 이름 옆에만 ○(백색 카드)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백을 선택했다. 1단계 최강이지. 하지만 1시간 30분 후면 역전될 텐데?’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설마……?’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수풀이 부스럭거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만났군.”
시로네의 눈에도 살의의 빛이 켜졌다.
“케이든.”
십자성의 케이든이 가문의 병기인 크로스소드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빠른 시간에 스크럼블을 획득하고 오직 시로네만을 찾았을 것이 분명한 그가 칼끝으로 땅을 긁으며 다가왔다.
“랜덤을 선택한 모양이군. 내 카드도 랜덤이다.”
같은 랜덤이라고 해도 위태로운 쪽은 아직 오픈을 하지 않은 시로네였다.
‘케이든은 수집과 동시에 오픈했겠지. 랜덤 카드를 유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다만 시로네는 시불상폭매를 실험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기에 약간의 유예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오픈할까? 하지만 그러면 다음 실험까지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이 상태에서 캉을 받으면 오픈 카드는 어떻게 되지?’
자동으로 오픈될 것인가, 개패가 될 것인가.
어쩌면 그것도 또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케이든에게서 예상 밖의 말이 나왔다.
“내가 캉을 부를 것 같나?”
“…….”
“어차피 첫 번째 카드. 별 의미가 없지. 그래서 널 찾은 것이다. 패에 관계없이 두들겨 팰 수 있으니까.”
케이든이 검을 들어 시로네를 가리켰다.
“일단 좀 맞자.”
케이든의 도발에 기꺼이 넘어간 이유는 시로네 또한 마찬가지로 화가 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했을 텐데.”
시로네의 주위에 떠오른 포톤 캐논을 유심히 살핀 케이든의 콧잔등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한눈에 봐도 광자의 압축력이 전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를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포톤 캐논이 섬광으로 변해 튀어 나가고, 케이든이 잔상을 늘어뜨리며 오른쪽으로 벗어났다.
‘엄청나게 빠르다. 스키마인가?’
마치 땅에 레일이 깔린 듯 훈련장을 우회하며 들어오는 케이든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우오오오!”
막무가내처럼 크로스소드가 휘어들어 왔으나 하나하나의 궤적은 분명 치명적이었다.
‘광폭!’
빛의 장막에 얻어맞은 케이든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 16개의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호밍 포톤 캐논.”
“크윽!”
휘어지듯 날아오는 섬광에 케이든은 제비처럼 날쌘 동작으로 달렸으나 시커의 추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시로네……!”
땅을 밀며 멈춰 선 그가 이를 악물자 붉은 기운이 피어올라 십자가의 형태로 응축했다.
운명을 희생하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최고의 재능.
“시로네에에!”
케이든이 일갈하며 검을 휘두르자 땅땅 소리를 내며 호밍 포톤 캐논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하나를 튕겨 낼 때마다 두 다리가 1미터는 밀렸고, 16개를 전부 튕겨 낸 그의 위치는 처음보타 20미터나 멀어져 있었다.
“크으으으!”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충격을 감내한 케이든이 시로네를 무섭게노려보았다.
‘괴물 같은 위력. 이게 포톤 캐논이군.’
크로스소드의 칼날은 빛을 반사시키지만 처박히는 질량의 충격에 손가락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기분이었다.
‘감히 너 따위가 마야를……! 내 뮤즈를!’
마야의 얼굴을 떠올린 케이든이 흰자를 드러내며 다시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너를 죽인다!”
반응과 대응 (2)
케이든의 몸이 흐릿해지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눈에 텅 빈 훈련장이 보였다.
아르망의 신경 강화가 아니고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이렇게 강했었나?’
졸업반에서는 검을 다룬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막상 검을 쥔 케이든은 마법을 구사하는 케이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
‘이건 그냥 검사잖아!’
광폭의 장막이 펼쳐졌으나 케이든은 그것까지 꿰뚫고 들어와 검을 휘둘렀다.
“죽어라!”
시로네의 목젖을 스치고 지나간 칼날이 다시 종적을 감췄다.
산탄 무브먼트를 시전한 시로네가 8개의 섬광으로 퍼지며 위치를 옮겼으나 케이든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시로네의 머리를 붙잡은 케이든은 우악스러운 힘으로 돌진해 나무둥치에 얼굴을 처박았다.
“죽어! 죽어!”
온 힘을 다해 시로네를 끌어당긴 그가 두개골을 박살 낼 각오로 팔을 내뻗었다.
“죽어어어어!”
쾅!
나무둥치가 우지끈 부러지고, 이마를 처박은 시로네의 눈이 빛을 내며 부릅떠졌다.
‘시불상폭매!’
1초 전.
“죽어어어어!”
나무둥치가 눈앞으로 빠르게 다가오자 시로네는 손에 광자를 압축시켜 팔을 휘둘렀다.
펑 소리를 내며 나무둥치의 중간이 끊어졌다.
“뭐……!”
케이든의 중심이 앞으로 기울자 몸을 뒤튼 시로네가 한 발의 포톤 캐논을 케이든의 복부에 박아 넣었다.
“커억!”
해머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며 케이든의 몸이 훈련장의 중앙까지 날아갔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낸 시로네는 뒤로 몇 바퀴를 구른 후 검으로 땅을 찍으며 웅크린 케이든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이……! 커억!”
케이든의 눈의 초점이 흔들리더니 핏물이 토해졌다.
‘제길!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충격보다도 믿을 수 없는 것은 현재 뇌리에 피어오르고 있는 묘한 의문이었다.
‘딱히 위화감은 없었는데.’
전투는 자연스럽게 전개되었고, 그렇기에 지금의 결과도 받아들일 만하다.
‘그게 문제야. 자연스럽다는 것.’
이미 승기를 굳혔다고 생각했건만 어느새 피해를 입은 쪽은 자신이었다.
‘분명 머리에 충격이 없지는 않을 텐데.’
검사가 마법사를 상대하는 정석이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가장 좋은 급소는 머리.
이미 뇌에 충격이 여러 번 가해진 상황에서 회심의 반격을 했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다.
정신적 내구력이 엄청나거나, 어떤 능력이거나.
보통은 전자에 높은 확률을 두겠지만 육감의 케이든은 두 번째 선택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대체 저게 뭐지?’
시로네의 몸에서 빛의 광채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
“3차 스크럼블이 소환되었습니다.”
“좌표는…….”
이루키는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화면을 찍어 내듯 머리에 저장했다.
‘이천번 훈련장이다.’
그것이 가장 가까운 좌표.
하지만 이루키는 순간 이동을 시전하기 전에 우뚝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
어떤 경우에는 확실하지 않아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한번 물리면 되돌릴 수 없어.’
마스터 카드의 화면을 넘긴 이루키는 참가자 전체 현황을 확인했다.
시로네처럼 대부분 랜덤 카드 두 장을 수집한 상황.
상대적으로 패의 가치가 낮을 때에 랜덤을 선택하는 것은 정석이지만 두 번째 카드에 흑과 백을 선택한 자도 몇몇 있었다.
‘3차 구간에 캉을 걸거나 4차까지 보고 있는 거로군.’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이것이었다.
에덴의 패는 ○○(성자).
너무 이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만이 랜덤을 선택하지 않고 또다시 백색 카드를 수집했다.
‘삼부회로 승부를 볼 생각일 수도 있겠지.’
이루키는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가 향하는 곳은 자신이 획득할 스크럼블의 좌표가 아닌 에덴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스크럼블이나 모으고 있을 때가 아니야.’
카드를 수집하면 각자의 마스터 카드에 현황이 기록되고 좌표는 사라지기 때문에 에덴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는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에덴이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
에덴은 또다시 백색 카드를 수집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크럼블 로열의 최강 패인 ○○○○○○(무한).
오늘 안으로 여섯 장의 백색 카드를 전부 모으고 내일부터 상대의 스크럼블을 파괴하는 전략이었다.
‘전략대로라면 차수마다 하나씩만 파기해도 남은 6일 동안 서른여섯 장의 카드를 우리 팀이 손해 보게 된다.’
또한 이 전략이 가능한 이유는 그녀가 공격력이 제로인 방어 마법의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까지 지켜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차피 비폭력주의인 그녀는 캉을 걸 필요가 없으니까.’
그것이 연합 팀의 큰 그림.
에덴이 여섯 장을 모으고 프리 롤을 부여받기 전에 카드의 수집을 막아야 했다.
‘이 지점이다.’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철봉 중앙에 스크럼블이 반짝이고 있었다.
동시에 다리의 건너편에서 순간 이동으로 도착한 에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빙고!’
먼 거리에서 서로의 눈빛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상황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속도전이다!’
2개의 섬광이 솟구쳐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중앙으로 휘어지며 내려왔다.
‘아토믹 봄.’
도착과 동시에 이루키가 스크럼블 주위를 폭발시키자 에덴이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세인트 배리어.’
스피릿 존이 백색 광채를 뿜어내면서 폭발의 화염을 밀어냈다.
‘쳇, 역시 즉발로는 어림없나?’
서번트인 이루키는 여타 기폭 마법사보다 방정식을 계산하는 게 월등히 빠르지만, 에덴의 방어막을 파괴할 정도의 위력이라면 고민을 해 볼 문제였다.
두 다리를 모은 채로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철봉 위에 기립한 에덴이 말했다.
“스크럼블을 수집하지 않았네.”
“남의 스크럼블이 더 커 보이는 법이라서 말이야.”
농담으로 받아쳤으나 에덴의 표정은 더욱 차가워졌다.
“서번트의 이루키. 빠른 판단은 인정하지만 날 밀어낼 수 있을까?”
세인트 배리어의 광채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확실히 까다롭지.’
방어 마법사들은 보통 속성별, 기술별로 수많은 방어 대응책을 가지고 있지만 성직자인 에덴의 마법은 오직 세인트 배리어뿐이었다.
하나의 방어 마법으로 모든 종류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모든 공격에 취약하다는 얘기.
하지만 요르교 최고의 신자라고 불리는 에덴의 전능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에덴이 들어오라는 듯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떡할 거지? 나랑 싸울 건가? 아니면 해보지 그래, 캉?”
이루키는 씁쓸하게 웃었다.
“안 해. 어차피 안 받을 거잖아.”
모든 캉에 파오로 대응할 각오이기에 랜덤으로 패를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에덴의 공격력은 제로. 그렇다면 굳이 캉을 걸어서 내 랜덤 패를 공개할 이유가 없지.’
생각에 잠긴 이루키를 바라보던 에덴이 천천히 스크럼블을 향해 나아갔다.
“그럼 스크럼블은 내가…….”
“움직이지 마.”
에덴의 걸음이 다시 멈췄다.
‘역시 신경 쓰고 있군.’
에덴의 전략은 완벽해 보이지만 파고들 여지는 남아 있다.
캔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