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97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알페아스가 말했다.
“티오는 단순하게 정해지는 게 아니야. 어느 학교나 한 해에 실력자들이 몰리는 경우는 있는 법이니까.”
“교장 선생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판도라의 언성이 높아졌다.
“올해만의 일이 아니에요. 페르미 팀, 프링스, 안찰, 에덴 등은 다들 이미 프로가 되었어야 마땅한 실력이에요. 작년에 안찰은 마정안의 봉인조차 풀지 않았죠. 졸업할 생각이 없는 거라고요.”
콜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개인이 판단할 일이야.”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그런 실력자들이 해마다 졸업반에 누적되어 가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기록을 조사해 보면 7년 전부터 상위 서열에 위치한 자들의 졸업 비율이 30퍼센트 이하예요. 분명 비정상적인 수치고, 어떤 이유에서든 졸업생 배출의 순환 구조가 붕괴된 상태라는 뜻입니다.”
“분명 그렇다.”
알페아스가 말했다.
“하지만 판도라, 너의 주장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다. 상위권자의 졸업 비율이 낮은 것과 올해 졸업생의 평균 실력이 높은 것을 합쳐서 생각해서는 안 돼. 올해 졸업반의 능력치가 높은 이유는 오히려 신입생의 실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너와 똑같은 선상에 있었던 신입생들 말이야.”
역시 궤변은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단테와 에이미, 이루키는 상위권에서 경쟁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깨문 판도라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솔직히 너무…… 어렵습니다.”
교사들의 눈빛이 측은해졌다.
“비겁하다고 느끼시겠지만, 정말로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최소한 다른 명문 학교와 같은 경쟁을 하고 싶은 게 그렇게 잘못된 생각인가요? 이런 식이면 누구도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입학하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것 또한 개인의 판단 문제지만 올리비아는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저급반부터 수위권을 다투며 착실하게 엘리트 과정을 밟아 왔던 학생.
졸업반 서열 23위는, 그녀 평생 처음 받아 보는 숫자일 터였다.
“그래, 판도라. 내가 교사회에서…….”
“문제는 있다.”
알페아스가 올리비아의 말을 끊었다.
“언제나, 어디에나 문제는 있는 법이지.”
판도라는 글썽이는 눈을 들었다.
“알페아스 마법학교가 틀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판도라, 그것이 너의 졸업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졸업반 모두가 같은 문제하에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지. 내가 생각했을 때 너의 문제는 단 하나야.”
알페아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졸업 시험을 치르는 해에, 너보다 뛰어난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뿐이다.”
현실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진정한 경쟁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판도라를 제외한 모두가 침묵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잔인한 말이겠지만 너도 알고 있잖니? 원하는 것을 말한다고 들어주는 세상은 꿈밖에 없다는 것을. 조직은 개인을 위해 움직일 수 없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야. 그렇기에 네가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 다수를 대표해 학교와 싸우거나, 너 자신과 싸우거나. 그것 외에는 어떠한 결심도 망상에 지나지 않아. 이해하겠지? 너도 마법사잖니.”
“……네.”
이겨 내야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겨 내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에 잠긴 판도라를 바라보며 콜리는 생각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빌어먹을 경쟁 체제인 것이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 보겠습니다.”
의기소침한 인사를 끝으로 판도라가 나가자 3명의 교사들은 비로소 진심을 꺼냈다.
“판도라의 말도 일리는 있어.”
올리비아가 먼저 의견을 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올해 졸업반은 너무 과열되어 있어.”
졸업반을 담당하는 콜리가 말했다.
“계속해서 실력자가 누적되었기 때문이죠. 학생 개인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이쯤 되면 그것도 애매한 감이 있습니다. 교사회에서는 어떻습니까?”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어. 표면으로 끄집어내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스타스.”
알페아스가 말했다.
“프로급의 실력자들이 이스타스를 노리고 학교에 머물러 있다. 실력자들은 차곡차곡 쌓여 갔고, 그러다가 올해 터진 거지. 대형 신인들이 대거로 몰리면서 말이야. 판도라가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해.”
올리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알면서 그렇게 잔인하게 말해? 좀 달래서 보내든가.”
“개선될 여지가 있다면 진즉 그렇게 했어. 하지만 알잖아? 교사회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야.”
올리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로는 이미 세상에 나왔어. 이제 그만 이스타스를 폐쇄해야 돼.”
“생각은 하고 있었지. 하지만 학생들이 한발 더 빨랐군.”
콜리가 말했다.
“스크럼블 로열이 개전됐습니다. 낮에 보고드린 12명이 현재 참전 중입니다.”
“말썽쟁이들 같으니라고.”
자리에서 일어난 알페아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스크럼블 로열을 중단시키면 어떻게 되지?”
“상당히 복잡해지지. 교사회는 무조건 학생들 편을 들 테고 학교는 문을 닫을 거야. 이건 세계 정치가 얽힌 문제야. 카샨, 요르 교단, 토르미아 왕국, 특히나 안찰이 진천 제국의 첩자라는 게 거의 확실한 이상 조용히 있다가 내년에 폐쇄시키는 게 정답이야.”
콜리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어루만졌다.
“페르미의 아르디노 가문도 문제죠. 어쨌든 졸업 시험까지 버텨야 되는 거군요.”
알페아스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 역사상 최고의 졸업 시험이 되겠군.”
올리비아가 덧붙였다.
“혹은, 최악의 졸업 시험이 되거나.”
반응과 대응 (4)
***
시로네 일행이 팀원을 소집한 시점에서 연합 팀도 아지트에 모여 차후의 대책을 논의했다.
시로네와 마찬가지로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은 케이든이었다.
“……엉망진창이군.”
헤르시가 보기에 케이든의 상태는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
말끔한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으로 범벅이었다.
“현재 시로네의 위치는?”
헤르시가 고개를 저었다.
“전략이 바뀌었어. 이제 너도 적극적으로 경기에 참여해.”
“거부한다. 약속했을 텐데. 첫날은 나에게 프리 롤을 주기로. 아직 시로네와 승부가 나지 않았어.”
“그건 알지만 에덴의 전략이 너무 일찍 간파당했어. 알잖아? 경기에서 지면 너도 대가를 치러야 해.”
케이든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예상보다 빨리 에덴에게 프리 롤을 줄 거야. 나 또한 이루키의 위치를 집중적으로 찾을 테고. 상대는 우리의 카드를 개패시키려고 하겠지. 그사이에 적진의 스크럼블을 수집할 사람이 필요해.”
피쇼가 손을 들었다.
“내가 하지.”
곤충 마법이라면 흩어진 스크럼블을 수집하는 데에는 제격이었다.
“좋아. 남은 자들은 스크럼블을 확보하면 에덴을 서포트해 줘. 3일 차 안에만 최강 패를 만들면 승부는 끝나.”
“빌어먹을. 죽일 수 있었는데.”
케이든이 중얼거리자 헤르시는 그제야 관심을 드러냈다.
‘흐음, 검을 사용했는데도 시로네를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마법학교에도 스키마를 응용하는 자들이 있지만 케이든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열네 살에 카이젠 검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검의 천재.
지금 당장 전쟁터에 나가도 천부장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어리석기는. 예술 따위가 뭐라고…….’
검의 일가인 크로스 가문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인생을 포기하고 마법학교에 들어온 것을 보면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래, 어때? 시로네를 상대해 보니 말이야.”
케이든의 투덜거림이 사라지면서 표정이 진지해졌다.
증오는 여전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감탄스러웠다.
“꽤 하더군. 페르미가 견제하는 이유도 알겠어.”
“호오.”
그가 전투에서 누군가를 인정하는 일은 페르미를 제외하고 처음이었다.
“하지만 느낌이 조금 묘했어.”
“묘하다고? 어떤 점이?”
늦은 시간까지 싸운 피로감은 누구나 똑같지만 헤르시는 작은 요인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지? 내 공격을 피했다고 해야 하나?”
헤르시는 눈꺼풀에 힘을 풀었다.
“그건 시로네의 무브먼트가…….”
“알아, 교내 최고라는 거. 하지만 그런 게 아니야.”
“이해를 못 하겠군. 정확히 말해 봐.”
“그러니까 일종의 느낌이야. 전투에 위화감은 없었지만 시로네가 내 공격을 피할 때마다 나는 ‘어떻게?’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머리를 쥐어짜 내며 설명할 방법을 찾던 케이든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 어느 순간 전세가 역전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라는 느낌으로 전투가 진행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역전되어 버려. 시로네가 강하다면 처음부터 ‘이길 수 있다’라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어야 한단 말이야.”
“흐음…….”
헤르시는 고개를 기울이며 턱을 만졌다.
“애매하군. 뭔가 특이한 점은 없었어?”
케이든은 전투를 복기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몇 번 나오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몸에서 빛이 났던 것 같아.”
에덴이 반박했다.
“시로네의 전공이 빛이잖아. 어떤 마법을 시전해도 빛은 발현되기 마련이야.”
“그렇기는 하지만…….”
“육감이라는 건가?”
헤르시는 케이든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의 특기인 정밀한 육감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조금 더 조사를 할 필요가 있겠군. 케이든은 계속 시로네를 커버한다. 할 수 있겠어?”
“이미 그러려고 했어. 위치가 어디인지나 말해.”
헤르시가 정색하며 말했다.
“나는 할 수 있겠냐고 물었어. 오늘 꽤나 고전한 것 같은데, 전력에서 밀린다면…….”
“탐색전이었을 뿐이야.”
케이든이 무심한 눈으로 말했다.
“시로네는 조만간 내 손에 죽는다.”
헤르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기를 바라야지.’
***
스크럼블 로열 2일 차.
전날 밤 에덴의 카드 수집을 막기 위해 분투한 덕분에 시로네 일행은 그녀의 패를 여전히 ○○(성자)로 묶어 둘 수 있었다.
스크럼블을 직접 수집하지 않으면 양도가 불가능한 룰 덕분이었다.
단, 그런 만큼 손해 또한 감수해야 했는데, 시로네 일행이 포기한 스크럼블을 피쇼가 발 빠르게 수집하여 여섯 장의 카드를 모두 모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루키는 기존의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흑과 백 경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룰은 ‘캉의 승자는 카드를 허비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에이미가 말했다.
“최강의 패를 먼저 조합하는 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맞아. 우리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에덴의 수집을 막는 이유지. 적들도 우리의 작전을 간파했으니 오늘부터는 더 복잡하게 전개될 거야.”
“그래서 여기 모인 거로군.”
시로네 일행의 2일 차 스타트 지점은 영내의 중심인 중앙 행정 관리 건물 앞이었다.
“스크럼블의 숫자는 12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습득하자. 우리가 먼저 방향성을 지워 버리면 적들도 동선을 계산할 수 없어.”
“눈을 가린 상태에서 휘두르는 칼이 더 피하기 어렵다는 거로군.”
사비나가 말했다.
“운에 맡겨서 반응을 계산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에덴이 크게 돌아 나가면 어쩌지?”
“그때는 한 장 주고 다시 생각하는 수밖에. 어제 성자로 막은 게 컸어.”
스크럼블이 소환되었다는 루루의 메시지가 스며들었다.
“좋아, 출발이다!”
6개의 섬광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
‘찾았다, 스크럼블.’
히커리를 어깨에 걸친 도로시는 졸업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제4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외곽의 바위 틈새에 끼어 있는 스크럼블을 확인하고 몸을 날리는 순간 섬뜩한 한기가 느껴졌다.
‘위험.’
도로시가 걸음을 멈추자마자 스크럼블 주위에 날카로운 얼음의 꽃이 피었다.
“아쉽군. 꽝이야.”
프링스가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꽝은 아니지. 개털인 너를 만났으니까.”
어젯밤 에이미의 캉에 의해 개패당한 프링스는 현재 두 장의 패를 보유한 상태였다.
마스터 카드에 기록된 패는 ○●로, 만패로 대놓고 3단계 패를 노리는 전략이었다.
“물론 나는 개털이지.”
어젯밤 ○●○●(민주주의)로 안찰을 개패시킨 도로시는 한 장의 랜덤 카드를 추가했고 현황은 ○●○●Ⓡ이었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지만 어차피 만패인 프링스에게 캉을 거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었다.
‘만패를 개패시키는 게 5단계 랜덤 카드를 공개하는 것보다 중요한가?’
생각을 차단하듯 프링스가 물었다.
“캉. 걸지 않을 건가?”
“걸 거야. 위험해지면.”
프링스는 졸업반 서열 3위였고 전투 마법사였다.
‘설마 만패인가?’
○●○●(민주주의)에서 다음 단계로 조합할 수 있는 패는 ●○●○●(혁명)뿐.
따라서 도로시의 랜덤 카드가 백이라면 만패가 되어 프링스가 꿀릴 이유가 없다.
‘궁금하군. 차라리 내가 캉을 걸어도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