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
“왜 그러느냐?”
“딱히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긴 한데.”
“호오?”
샤코라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어릴 때부터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깨쳤으니 무엇을 해도 잘해 나갈 터였다.
“말해 보렴. 아빠가 적극 지원해 주마.”
“아니,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관심만.”
“그렇다면 그 관심을 지원해 주마.”
에이미는 씁쓸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제1계급 귀족의 권력과 부라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딸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어리광에 지나지 않았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카르미스 가문을 부정하는 게 얼마나 유치한 일이었는지 평민에게 당하고서야 알았다.
‘최고가 될 거야.’
결정을 내린 에이미가 입을 열었다.
“마법.”
“응? 뭐라고?”
“마법학교에 아는 분 있으면 소개 좀 해 줘.”
마법을 만나다 (5)
시로네는 도시에서 있었던 일을 함구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얘기를 꺼내게 되면 마법학교에서 있었던 일까지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로네는 그날의 사건이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축복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선을 넘은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건 분명했다.
천재는 자신이 천재라는 것을 알고, 시로네도 어릴 적부터 남과 다르다는 건 막연히 깨닫고 있었다.
우월감을 느낀 적은 없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고 싶은 욕망은 누구보다 강했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시로네에게 부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가난할지언정 한 번도 틀린 길을 강요한 적이 없는 그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근처 숲으로 가서 나무를 했다.
다만 그곳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도끼질이 아닌 명상으로 채워졌다.
각성 이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시로네는 스피릿 존을 몰래 수련해 왔다.
덕분에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스피릿 존에 들어가는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다.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아무리 스피릿 존에 익숙해졌어도 골목에서 시전했던 마법은 재현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강압에 의한, 무의식중에 성공한 마법이었다.
설령 당시와 같은 상황, 감정이라고 해도 이미 성공을 의식한 이상 모방은 어려웠다.
‘이성적으로 마법을 시전하려면 통찰이 뛰어넘은 중간 과정을 전부 알아야 해.’
정식으로 마법을 배우지 못한 시로네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스피릿 존 하나만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명상을 끝내면 천둥패기를 연습했다.
처음과 달리 천둥패기도 의식하기 시작하자 성공률이 오히려 떨어졌다.
‘통찰의 힘이 대단하구나.’
가끔씩 초심자들이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지식이 아닌 통찰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나무를 패는 일은 마법과 달라서 얼마든지 반복 학습이 가능했다.
시로네는 하나씩 오류를 수정해 나가며 수십 번씩 도끼를 휘둘렀다.
쩌저저저적!
통쾌하게 나무가 넘어갔다.
하지만 시로네는 기쁜 표정도, 만족한 표정도 없이 담담하게 톱질을 시작했다.
하나의 오류를 발견했고, 수정한 것뿐이다.
“내일 그리고 또 내일.”
그렇게 기본을 거듭해 나간다.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위해.’
나무를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로네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강렬했다.
목숨보다 값진 기회(1)
창가에 선 시로네는 늦가을의 낙엽들이 산과 산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장관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도 열다섯 살의 소년이 되어 있었다.
앳된 티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누구라도 눈길을 돌릴 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다녀올게요, 엄마.”
“적당히 하고 들어오렴. 장작은 이제 충분하단다.”
“이제 곧 겨울이잖아요. 미리미리 준비해야죠.”
오두막을 나서자 한기가 숨을 끊었다.
산은 도시보다 계절이 빨리 찾아오기 때문에 정상에는 벌써부터 눈이 쌓여 있었다.
“해 지기 전에 돌아오려면 부지런히 걸어야겠네.”
추위에 겁을 먹을 시로네가 아니었다.
3년 동안 스피릿 존으로 단련한 정신적 내구력은 성인의 범주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낯가림이 사라진 이후에는 산꾼의 아이들과도 어울렸으나 특별히 친한 친구는 없었다.
그들은 시로네와 달랐다.
산꾼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거칠었고, 여자아이들도 사고방식은 마찬가지였다.
일례로 1년 전에 화전민촌의 하우란이라는 여성이 시로네를 유혹한 적이 있었다.
여섯 살 연상인 그녀가 육체적인 접근을 시도하자 시로네는 기겁하며 거부했다.
그러자 하우란은 돌변하여 오늘 일을 발설하면 집안을 들쑤셔 놓겠다고 협박했다.
당시를 회상한 시로네는 실소를 터트렸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그녀가 찾아올까 봐 며칠을 끙끙 앓았던 기억이 났다.
‘잘 살고 있겠지.’
벌목 구역에 도착한 시로네는 적당한 나무를 찾아 가볍게 도끼를 찍었다.
그런 다음 홈이 파인 곳을 유심히 살폈다.
‘…….’
흔히 말하는 ‘본다’라는 개념이라면, 그는 실상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눈으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같은 행위나 사고를 수없이 반복하면 저절로 그 원리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3년 동안 수많은 방법으로 도끼질을 시도한 시로네는 근래 감을 잡아 가고 있었다.
‘눈으로 느낀다.’
심안이라 부르는 방식이었다.
순간 눈빛이 달라진 시로네는 전과 달리 강한 힘으로 홈이 파인 곳을 후려쳤다.
천둥소리에 이어 나무가 쓰러졌다.
‘두 번 만에 성공.’
이번에는 유독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어차피 열에 한 번은 성공하는 시로네였다.
“후우.”
할당량을 끝낸 시로네는 다시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아 스피릿 존에 들어갔다.
현재 스피릿 존의 영역은 대략 40미터 직경을 가진 구체로, 이는 인재들이 모인 마법학교에서도 상위 클래스에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시로네는 땅 밑의 세계를 느꼈다.
마치 대지와 동화된 듯 수풀의 흔들림이 느껴지고, 지렁이들이 꾸물거리는 동작과 나무뿌리가 수분을 빨아들이는 소리까지 생생했다.
자연은 쉬지 않고 변화한다.
그 역동적인 세계를 음미하고 있노라면 5시간 정도는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어? 벌써 어두워졌네.”
명상을 끝마친 시로네는 나무를 토막으로 쪼갠 다음 지게에 짊어졌다.
집에 도착한 시로네는 마당에 서 있는 마차를 발견하고 마구간을 살폈다.
못 보던 백마 두 마리가 여물을 핥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평소와 달리 반기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엄마의 얼굴은 어두웠고 거실에서는 처음 보는 노인이 아빠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아빠? 언제 오셨어요?”
“시로네 왔니?”
물건을 팔기 위해 새벽에 떠난 사람치고는 빨리 돌아온 편이었다.
게다가 평소라면 뽀뽀 세례를 가했을 텐데 이번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사드려라, 시로네. 오젠트 가문의 부집사님이시다.”
노인이 다가왔다.
“반갑네. 테무란일세.”
“처음 뵙겠습니다. 시로네라고 합니다.”
시로네는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산골짜기에 사는 시로네라도 오젠트라는 이름의 가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크레아스에 본가를 둔 제2계급 귀족으로, 수많은 무인을 배출한 무가였다.
“자네를 만나려고 찾아왔네.”
집사는 평민이지만 테무란의 말투에는 귀족 특유의 감성이 배어 있었다.
토르미아의 신분제는 귀족과 평민으로 이분화되어 있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하다.
귀족과 밀접한 일을 하는 자들일수록 권위가 높았고, 빈센트 가족처럼 아예 성 밖에서 사는 자들은 천민이라고 부르며 하대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해도…….’
평민 중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이 어째서 이런 산골짜기까지 온 것일까?
“일단 좀 보겠네.”
테무란은 시로네의 몸을 더듬으며 외모며 골격, 눈빛 등을 살폈다.
마치 가축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려는 그때 그가 물었다.
“글을 읽을 줄 안다고?”
“네. 어릴 때부터 책을 조금씩 읽었습니다.”
“흐음.”
시로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무슨 일인지부터 듣고 싶은데요.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테무란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자네 평판이 꽤 좋더구먼. 산꾼의 자식이면서 책을 읽을 줄 알고, 더군다나 효심이 그렇게나 깊다지?”
마치 조롱하는 투였다.
‘대체 뭐야?’
참을 수 없어 시로네가 대꾸를 하려는 찰나 테무란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말이 나왔다.
“자네, 오젠트 가문에서 일해 볼 생각 없나?”
“네?”
시로네는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무슨 일을 한다는 거지?’
아니,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것도 아닌 제2계급의 귀족 가문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본가에서 대도서관 이전 작업을 한다네.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일이지. 1만 권에 달하는 서적 중에는 유출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네. 힘쓰는 일은 짐꾼들이 하겠지만 분류 작업은 나와 자네, 단둘이서만 하게 될 것이야. 2년 정도 걸리는 일이 되겠지.”
‘도서관!’
시로네는 심장이 터질 뻔했다.
뛰어난 통찰력은 제안에 감추어진 독을 직감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독배라도 마실 수 있을 듯했다.
테무란은 시로네가 마셔야 하는 독이 무엇인지 말해 주었다.
천민을 상대로 속이지 않겠다는 자부심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네와 가족뿐일세. 어떠한 이유로든 서적이 유출되거나, 유출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자네와 가족은 죽은 목숨이네.”
시로네는 부모님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를 알았다.
설령 발설하지 않는다고 해도 2년 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목숨을 남에게 맡기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목숨을 거는 일인 만큼 돈은 충분히 지급할 것이네. 자네 아버지가 사냥해서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을 게야. 자식 잘 둔 덕분에 식구들도 살림 피는 거지.”
빈센트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돈 때문에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오! 나는 우리 시로네가, 시로네가……!”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 못난 애비가 기껏 가져온 기회라는 게, 아들의 목숨을 거는 일이라니.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랄 뿐이란 말이오.”
테무란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겐가? 아첨이라도 떨어서 출세해 볼 생각인가? 그렇다면 꿈 깨시게. 분명히 말하지만 고용하는 것일세. 아들을 써 달라고 부탁한 건 바로 자네야. 돈이 아니고서야 그럴 이유가 없겠지.”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했잖소!”
“물론 책은 읽을 수 있지. 하지만 읽으라는 게 아니라, 읽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감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네. 그렇기에 유출이 되면 목을 베겠다고 한 게야.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지.”
빈센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물건을 팔러 도시로 들어갔을 때 귀족 가문의 집사가 글을 읽을 줄 아는 평민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운의 기회라고 여긴 그는 두말 않고 테무란에게 달려가 시로네를 써 달라고 사정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아들이 받을 상처였다. 설마 돈에 눈이 멀어 자식을 팔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나가. 돈 따윈 한 푼도 필요 없어. 이럴 줄 알았다면 사정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 당장 나가!”
“아빠, 저 할게요.”
“시로네!”
테무란은 의외라는 듯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15세의 소년이, 그것도 천출이 감당하기에는 상당히 공포스러운 일일 터.
“정말 괜찮은가? 나는 겁을 주려는 게 아니야. 분명히 말하지만 조그만 소문이라도 돌았다가는 자네의 목이 잘리게 될 것이야.”
“네, 할게요. 절대로 유출시키지 않을 거고, 설령 어떤 이유로 소문이 퍼진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테무란도 믿어 볼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