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02
“서방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군.”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에이미가 홍안을 번득이며 달려들자 안찰이 손을 휘저었다.
진천요술-심상구현(자화상).
‘아차!’
에이미의 몸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여성의 모체로 형상화되었다.
대상의 정신을 이미지로 구현시켜 주인을 공격하게 만드는 까다로운 능력이었다.
‘이게 내 자화상?’
거대한 불길로 타오르는 여성을 에이미가 올려다보았다.
화력은 폭발할 듯 강렬하고 가슴이 흠씬 풍만한 불의 여성이었다.
“……심상은 콤플렉스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지.”
에이미의 얼굴이 빨개졌다.
“웃기고 있네! 나 정도면 괜찮거든?”
그때 불의 자화상이 주먹을 휘두르며 에이미를 덮쳤다.
‘홍안!’
자화상을 구현과 동시에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에이미가 유일하겠지만 안찰 또한 어느새 자리를 피한 뒤였다.
“이게 대체…….”
스크럼블조차 가져가지 않고 사라졌다는 것이 안찰의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
“……존재함을 믿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세상을 바꿀 것을 믿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깊은 숲속에서 에덴은 기도를 드렸다.
연합 팀과의 계약 조건은 7일 차 마지막까지 무한을 조합하여 지켜 내는 것.
그 대가로 프리 롤을 부여받은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신심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초월하며, 유일무이합니다.”
그렇기에 요르가 깃들어 있는 자신의 육체는 무적이었다.
“신이시여! 뜻에 따라 저를 쓰소서.”
그녀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문이 연거푸 튀어나오고, 몸에서는 성스러운 빛이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
쾅!
시이나가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학교에서 싸움을 하다니!”
“싸움이 아니라 스크럼블…….”
“시끄러! 오냐오냐해 줬더니 앞뒤 분간도 못 하고 날뛰어?”
시이나는 합리적인 성격이지만 이번만큼은 반론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너는 걸어 다니는 전략 병기야! 세계 각국에서 동태를 주시하고 있는 거 몰라? 친구들이랑 고작 이딴 게임이나 하려고 천국에서 돌아온 거야?”
시이나 또한 천국 프로젝트에 참여한 태스크 포스의 일원이었고 그렇기에 시로네는 서운했다.
“이건 프링스가 파 놓은 함정이에요.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어차피 죽어.”
시이나가 차갑게 말했다.
“네가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사고를 친 것을 감사해야 할 거야. 네가 친 사고에 조금만 인간미가 있었어도 너는 이미 죽었어. 왕국이든, 조직이든, 수면 아래의 무엇이든 간에 벌써 암살당했을 거라고.”
시로네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자 시이나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
“알고 있잖아? 너를 지켜 줄 무언가가 있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야. 오히려 모두가 적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거지. 엄청나게 좁은 핵을 가진 태풍의 중심에 서 있는 거라고. 이 상태에서 네가 조금만 엇나가도 순식간에 휘말리고 말아.”
학교에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꿈만 같았다.
그래서 영원히 이 시간이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화를 가라앉힌 시이나가 의자를 돌리며 팔짱을 끼었다.
“조용히 끝내.”
“네?”
시로네가 되묻자 시이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교장 선생님도 스크럼블 로열에 대해 알고 계셔. 올리비아 선생님이 교사회에서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학생들 채널까지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학교에서도 용인해 줄 테니까, 다른 쪽으로 말 나오지 않게 조용히 수습하란 말이야.”
눈을 깜박거린 시로네가 진의를 간파하고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만 나가 봐.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같은 일은 다신 벌어져서는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시로네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
시로네가 전장으로 복귀하자 이루키가 아지트로 모두를 소집했다.
4일 차 스크럼블 로열이 절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몇 가지 특이 사항이 발견되었다.
“안찰이 비밀 회담을 제안했어. 찝찝해서 일단 거절은 했지만 보고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예상대로 케이든은 전장 이탈. 오늘 한 번도 못 봤거든.”
“회복 마법을 받고 있겠지. 7일 차 안에는 돌아올 거야.”
“한 가지 특이한 건 에덴의 활동이 없다는 거야. 스크럼블도 수집하지 않았어.”
“어제 시로네에게 박살 났잖아. 포기한 건 아닐까?”
이루키가 고개를 저었다.
“낙관론은 좋지 않아. 적들도 바보가 아니니까. 뭔가 노리는 게 있다고 봐야 해.”
사비나가 말했다.
“연합 팀 2명이 활동을 멈췄지만 피쇼가 본격적으로 스크럼블 수집에 들어갔어. 곤충들을 풀어서 빠르게 차지하는 바람에 인원에 비해서 카드 수집 속도의 차이는 크지 않아.”
“스크럼블이 다른 요인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적극적으로 활용하겠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도로시가 있어. 후반전이 시작된 지금부터는 수집할 수 있는 카드의 총량도 생각해야 돼. 히커리를 이용해서 스크럼블을 계속 비축해 두는 거야. 할 수 있겠지?”
“……응.”
도로시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제와 같이 의욕이 없는 태도에 이루키가 흘끗 돌아보았으나 일단 신경을 끄고 시로네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 시이나 선생님에게 호출당했다며?”
시로네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수업 중인 장소에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네이드가 이를 갈았다.
“젠장, 너무하잖아. 그 자식들, 분명 노리고 그런 걸 텐데.”
“아니, 내가 잘못한 거야. 후배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당사자가 그렇다면야 친구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행동에 제약이 생기겠군. 스크럼블 이동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 연합 팀이 집요하게 공략할 거야. 그럼 동선을 다시 설계해야 하나?”
“괜찮아.”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훈련장에 들어가기 전에 끝내면 되니까.”
***
그날 밤. 에텔라가 늦은 시간에 시이나를 찾아왔다.
“시로네는 좀 어때요? 낮에 많이 놀라셨죠?”
“잘 타일러서 보냈어요.”
시이나는 열이 나는 이마를 짚었다.
“하아, 저는 최악의 교사예요. 싸움을 부추기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천국에서 돌아오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휴전이었다.
그렇기에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시로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답답하네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니 해법도 찾을 수가 없어요.”
“시이나 선생님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요. 이미 전문가들이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네가 원하는 것을 해. 훌륭한 교사가 되는 일 말이야.
아르민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게 말해 놓고는…….’
이후로 아예 연락 두절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속을 타들어 가게 하는 사람은 아르민이 아닌 쿠안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편지를 그렇게 많이 보냈는데.’
답장 한 번 없던 와중에 카이젠 검술학교로부터 서신이 왔다.
언사는 정중했지만 쿠안은 학교를 그만뒀으니 스토커 짓을 멈추라는 내용이었다.
‘쿠안 씨가 편지 보내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 이상한 여자로 만들고 있어!’
스트레스에 인상을 찡그린 시이나였으나 이내 눈빛이 가라앉았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그 사람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의 한복판일 터였다.
“아.”
사람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시이나가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시로네 때문인가요?”
“그것도 그렇고요, 한 가지 알려 드릴 게 있어서요.”
“어떤?”
에텔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콜리 부장 교사님에게 들었는데, 오늘 페르미가 평가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요.”
“페르미가요? 그건 정말 의외네요.”
금화륜의 수장으로 강력한 동료들을 거느리는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경우는 시이나의 기억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크럼블 로열과 관계가 있는 일인가요?”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 이스타스의 문제일 공산이 커요. 스크럼블 로열에 참전한 금화륜 멤버는 헤르시와 케이든. 그리고 가장 과열되는 시기인 5일 차를 앞두고 페르미가 사라졌죠. 어쩌면 이건 금화륜이 아닌 페르미 개인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회원들의 시선을 스크럼블 로열로 돌릴 만큼 비밀스러운 일이라는 거로군요.”
“네. 그런 느낌이 강해요.”
“흐음.”
책상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 시이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대체 이스타스에 뭐가 있기에 이러는 거죠? 미로의 시공이 사라진 걸로 끝난 게 아니었나요?”
에텔라가 대답을 주저하는 눈치를 보이자 시이나가 다그쳤다.
“말씀해 주세요. 태스크 포스에서 탈퇴한 지금 참견할 생각은 없지만, 저도 뭔가 알고 있어야 시로네를 지킬 것 아니에요?”
에텔라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다만 너무 깊이 연루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시이나는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상층부의 루머. 그게 사실인가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시이나의 표정이 멍해졌다.
“정말로…… 그런 게 있다고요? 대체 뭔데요?”
에텔라는 천국에서 돌아온 이후 들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미로 씨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밤을 넘어야 하는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전능의 괴물 (4)
***
스크럼블 로열 5일 차.
1차 스크럼블이 소환된 즉시 이루키는 가장 가까운 좌표로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다행히 스크럼블은 그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 않았고, 순간 이동으로 이천번 훈련장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비어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으나 1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덴.”
어제 하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딱히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두 눈에 휘감긴 맹렬한 신앙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기다린 건가?”
방어 마법에 천적이라는 것은 단지 캔슬레이션만이 아니라 이루키의 마법이 극단적으로 공격력에 치우친 속성이기 때문.
그런데도 1차부터 마주쳤다면 특별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았다.
“시로네를 만나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실험 대상이라는 건가.’
헤르시의 능력이라면 위치를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가져가려고?”
이루키가 스크럼블을 가리켰다.
“아마도…… 그렇겠지?”
“킥킥!”
이루키의 눈에 오버 드라이브의 전격이 튀었다.
‘자존심을 긁어도 유분수지.’
캔슬레이션!
5일 차까지 왔으니 감출 것이 없었고, 어마무시한 데이터가 이루키의 뇌리를 관통했다.
‘뭐든 해 봐라.’
마법의 메커니즘을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전지를 통째로 분석하여 벡터양을 역전시켜 버리면 되는 것은 서번트 신드롬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당신이 존재함을 믿습니다.”
에덴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내 안에 신의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그녀가 나신으로 걸어오는 와중에도 이루키는 분석을 멈추지 않았다.
“그 사랑이 다시 세상에 깃듦을.”
‘됐다!’